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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과 절망의 긴 터널에서 생명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 - 홍난식 권사
출처
날짜
2000년 11월 29일 수요일
조회수
6573
뉴스저는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성극을 준비하며 행복해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교회에 발길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젠가는 교회에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 늘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어둡고 긴 절망의 터널 속에서 만난 주님

1974년, 직장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나자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이런저런 사업을 하면서 번번이 실패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나머지 저는 도움을 받고자 친정을 찾아갔습니다. 몇 년 만에 찾아간 친정집은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평소에 차갑고 완악한 성격 탓에 친근감이 없었던 오빠가 주님을 영접하여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빠는 저에게 주님을 영접하라고 권면하며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저는 오빠의 변화된 모습에 은혜를 받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계속되는 사업의 실패로 인하여 삶을 자포자기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남편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이를 등에 업고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도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남편은 교회를 다니게 되었지만 방황의 끝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술에 취해 살림을 부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등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사업관계로 지방 출장을 간다고 하면서 외박하는 날이 잦았으며 사업자금을 마련해 주면 다 날려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빚쟁이에게 시달려야 했고 생활비가 없어 굶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저의 마음은 날로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세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다니면서 각종 예배는 물론 부흥성회도 빠지지 않았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었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도 믿어지지 않았으며 항상 마음이 곤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혼의 참안식과 만족을 줄 수 있는 교회를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개척교회에 다닐 때에는 정성껏 헌물도 하였으며, 성전건축하는 교회에서는 벽돌을 나르는 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모함과 갈급함 속에 열심히 나아가니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만나 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셋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20여 일 동안 계속되는 하혈에 별의별 약을 다 써 보았지만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믿음을 가지고 오산리 금식 기도원에 들어가 3일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매달림으로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또한 무릎 관절염은 새벽기도를 하면서 치료받았고, 무리한 직장생활로 인해 생긴 허리 디스크는 극동방송을 들으면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던 중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조그마한 행함도 기억하시고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본교회에 인도받아 생명의 말씀으로 거듭나니

1994년 5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신명숙 집사님이 전해 준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말할 수 없는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분이 바로 내가 찾던 목자"라고 무릎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그 당시 만민중앙교회에서는 제2회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부흥성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성회에 참석하여 이재록 목사님의 생명의 말씀을 직접 듣고 더욱 큰 믿음과 확신을 얻은 저는 온 가족과 함께 본교회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제게 더욱 은혜가 된 것은 본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던 주님의 품과 같은 포근함이었습니다. 또한 한복을 곱게 입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분들의 은혜로운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며, 성가대와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찬양과 연주는 저의 영혼에 참평안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희열 속에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영안이 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15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죄를 짓고도 회개기도만 하면 구원받는 줄 알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죄가 죄인 줄 몰랐던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막힌 담이 되어 고통스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아

안산에서 서울 구로동까지 교회를 다니다 보니 아이들은 불평이 많았고, 주위에서도 가까운 교회가 많은데 왜 꼭 만민중앙교회를 가야 하느냐며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갈급히 찾아다녔던 생명의 말씀과 목자가 여기 있고 제 영혼이 살 길은 이 길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건의 차량사고를 당하지 않던 남편이 한 주에도 두세 번씩 사고를 당하고, 더욱이 주일이 되면 의례히 사고가 잇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오히려 더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고,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의뢰하며 믿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승리하게 해 주셨고 본교회에서 마음껏 예배하며 기도하며 찬양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생명의 말씀을 듣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삶이 연속되었습니다. 제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게 되었고, 이러한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구역장의 사명을 허락하셨습니다. 부족한 제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드릴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여 열심히 감당하였더니 95년도 우수 구역장으로 뽑혀 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삶은 모두 남편 탓이라고 생각하며 원망과 탄식 가운데 살았던 지난 날을 회개하면서 자신의 탓으로 돌리니 마음이 가벼워지며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원망스럽던 남편을 오히려 사랑하며 섬기기를 힘쓰니 남편도 점차 변화되어 갔습니다.
축농증으로 고통받고 있던 남편은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단에서 해 주시는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고 단번에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이러한 것이 믿음의 체험이 되어서 지금은 술, 담배를 끊고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은 물론, 매일 안산 지성전에서 열리는 다니엘 철야 기도회를 참석하는 성도들을 위해 그레이스 봉고차를 직접 구입하여 봉사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힘쓰니 아이들은 엄마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며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 6-7)는 말씀을 붙잡고 더욱 힘써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식언치 아니하시고 심은 대로 거두도록 역사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부모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이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선생님의 인정을 받고 친구들의 사랑을 받는 아이들, 기도하는 아이들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축복도 주셨습니다. 남편은 건축 프레임 사업을 이럭저럭 운영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대교구장님이신 주현권 목사님께서 본교회 새 성전을 건축하는데 기초부터 철골에 이르기까지 공사를 맡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버지 전을 건축하는 데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성전 공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9개월 동안 이 일에 전념하다 보니 거래처들이 모두 끊기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는데도 저희 부부는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기만 했습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거룩한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저희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방법으로 사업터에 축복을 주셨습니다. 넓은 대지를 싼 가격으로 구입하여 [만민기업]이라는 상호로 새롭게 개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끝이 안 보이던 고통과 절망의 긴 터널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생명의 말씀으로 인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