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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상담] 양심 심판이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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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8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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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장 12절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복음이 들어오기 전인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1. 양심이 증거가 되는 양심심판
하나님께서 지으신 첫사람인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 인하여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구원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생령 곧 살아있는 영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이후에는 죄로 인하여 죽은 영이 되었으므로 마음 안에 비진리가 들어와 본성, 혹은 양심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즉, 태어나서 환경을 통해 보고 듣고 나름대로 지식을 쌓아가면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을 세워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본성 안에는 진리도 있고 비진리도 있는 것이요, 사람은 이 본성을 통하여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원래 하나님께서 주신 영의 마음, 곧 진리의 마음인 속사람과 죄로 인하여 들어온 비진리의 마음,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양심이라는 세 가지 마음으로 구분되는 것입니다(롬 7:22-2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의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 행위에 따라 구원의 여부를 결정하셨습니다. 율법을 듣고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어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신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기 이전에 살았던 선한 사람들은 마음에 심겨진 의의 도, 곧 양심을 좇아 살았습니다. 이러한 양심의 법이 행위의 기준이 되니 선한 사람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악을 행치 아니하지만 악한 사람은 자기 유익을 좇아 악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2장 14-15절에서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양심의 법이 율법이 되어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고 그 행위에 따라서 구원의 여부가 결정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심판이라는 것입니다.
2.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로마서 1장 20절을 보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그 양심을 통해 신을 인정하고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자연만물의 오묘한 변화와 조화를 보면서 조물주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선을 좇아 살았습니다. 또한 양심에서 내세가 있음을 증거하므로 현세의 쾌락을 좇아 자기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을 지키며 절제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 가운데 세종대왕이나 이율곡 선생, 이순신 장군이나 유관순 열사와 같은 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참으로 선한 양심을 지녔기 때문에 신을 찾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복음을 듣지 못하였어도 위로는 신을 인정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부모를 공경하고 나라에 충성하였으며 이율곡은 하늘의 지혜를 받아 외적의 침입을 예감하고 10만 양성설 등을 나라에 건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을까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죽은 사람들이 대기하던 음부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를 먹으며 살았지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죽은 후에는 그 영혼이 아브라함 품에 안겼고, 부자는 이 세상에서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았지만 죽은 후에는 그 영혼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게 되었지요. 이들은 모두 복음을 듣지 못하였지만 선한 양심을 지닌 나사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윗음부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그렇지 못한 부자는 아래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9절을 보면 악인들이 그의 영화를 잃어버리고 고통 중에 있는 곳인 아래 음부가 나옵니다. 아래 음부는 악인들이 고통을 받는 곳이지만 거지 나사로가 의인 아브라함과 함께 있던 윗음부는 창세 이래로 마음이 선하여 양심 심판을 통해 구원받은 영혼들이 편안하게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에 3일 동안 음부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곧 윗음부에 있는 구원받을만한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심으로 그동안 복음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결국 모든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지요.
그러므로 마태복음 12장 40절에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했고, 에베소서 4장 9절에는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3장 19절에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천하 만민에게 구원받을만한 다른 이름이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달아 행함있는 참믿음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양심이 증거가 되는 양심심판
하나님께서 지으신 첫사람인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 인하여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구원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생령 곧 살아있는 영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이후에는 죄로 인하여 죽은 영이 되었으므로 마음 안에 비진리가 들어와 본성, 혹은 양심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즉, 태어나서 환경을 통해 보고 듣고 나름대로 지식을 쌓아가면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을 세워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본성 안에는 진리도 있고 비진리도 있는 것이요, 사람은 이 본성을 통하여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원래 하나님께서 주신 영의 마음, 곧 진리의 마음인 속사람과 죄로 인하여 들어온 비진리의 마음,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양심이라는 세 가지 마음으로 구분되는 것입니다(롬 7:22-2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의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 행위에 따라 구원의 여부를 결정하셨습니다. 율법을 듣고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어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신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기 이전에 살았던 선한 사람들은 마음에 심겨진 의의 도, 곧 양심을 좇아 살았습니다. 이러한 양심의 법이 행위의 기준이 되니 선한 사람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악을 행치 아니하지만 악한 사람은 자기 유익을 좇아 악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2장 14-15절에서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양심의 법이 율법이 되어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고 그 행위에 따라서 구원의 여부가 결정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심판이라는 것입니다.
2.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로마서 1장 20절을 보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그 양심을 통해 신을 인정하고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자연만물의 오묘한 변화와 조화를 보면서 조물주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선을 좇아 살았습니다. 또한 양심에서 내세가 있음을 증거하므로 현세의 쾌락을 좇아 자기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을 지키며 절제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 가운데 세종대왕이나 이율곡 선생, 이순신 장군이나 유관순 열사와 같은 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참으로 선한 양심을 지녔기 때문에 신을 찾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복음을 듣지 못하였어도 위로는 신을 인정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부모를 공경하고 나라에 충성하였으며 이율곡은 하늘의 지혜를 받아 외적의 침입을 예감하고 10만 양성설 등을 나라에 건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을까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죽은 사람들이 대기하던 음부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를 먹으며 살았지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죽은 후에는 그 영혼이 아브라함 품에 안겼고, 부자는 이 세상에서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았지만 죽은 후에는 그 영혼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게 되었지요. 이들은 모두 복음을 듣지 못하였지만 선한 양심을 지닌 나사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윗음부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그렇지 못한 부자는 아래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9절을 보면 악인들이 그의 영화를 잃어버리고 고통 중에 있는 곳인 아래 음부가 나옵니다. 아래 음부는 악인들이 고통을 받는 곳이지만 거지 나사로가 의인 아브라함과 함께 있던 윗음부는 창세 이래로 마음이 선하여 양심 심판을 통해 구원받은 영혼들이 편안하게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에 3일 동안 음부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곧 윗음부에 있는 구원받을만한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심으로 그동안 복음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결국 모든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지요.
그러므로 마태복음 12장 40절에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했고, 에베소서 4장 9절에는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3장 19절에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천하 만민에게 구원받을만한 다른 이름이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달아 행함있는 참믿음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