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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9] 지혜로운 사람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
출처
크리스챤 신문
날짜
2010년 11월 25일 목요일
조회수: 2352
뉴스▲ 선지자에게 책망받았을 때 회개한 다윗/ 일러스트 김동호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메고 올라갈 때에 너무 기뻐 백성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본 아내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기며 말하기를 수치스럽게 자기 몸을 드러냈다고 비꼬았습니다. 그러자 지혜로웠던 다윗은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며 단호히 말했습니다(삼하 6:20-22).

만일 다윗이 미갈의 말을 옳다고 생각하여 "왕이 체면이 있는데 내가 부끄러운 일을 했구나." 라고 했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노여워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을 서운케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뜻을 굽히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내의 호리는 말에 넘어가지 않고 정확한 답변을 했습니다. 오히려 사울의 딸 미갈이 저주 받아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였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을 좇아 지혜를 받는 사람은 크고 작은 일을 만날 때 높임을 받고 구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이나 일터 등 어느 곳에 있든지 호리는 말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진리로 분별하고 성령의 밝은 음성과 인도를 받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음녀의 자리에 혹은 이방 계집의 자리에 빠져 있으면서 그 길을 가는 것입니까?

소시의 짝을 버렸다는 것은 배신을 말합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성장하면서 어릴 때의 일을 잊고 교만해진 것입니다. 또 교만은 배신을 불러옵니다.

이런 사람의 예로 사울을 들 수 있습니다. 사울이 교만해져서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를 드렸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잊고 패역한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에 불순종하였을 때 사무엘이 책망을 해도 돌이키지 않으므로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당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울을 임금으로 세워 준 사무엘이 두려워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삼상 16:2).

실제로 사울의 패역함은 여러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했을 때 큰 공을 세운 다윗이 백성의 사랑을 받고 앞으로 왕이 될 것을 알고는 잡아 죽이려 쫓아다녔으니 은혜를 원수로 갚은 행동이었습니다. 또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놉의 제사장 85인과 제사장들의 성읍이었던 놉의 남녀와 아이들 그리고 젖먹는 자들과 가축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말해줄 당시만 해도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나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이런 사울이 권세가 주어지고 위치가 높아지니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가 왕으로 세워질 당시 하나님이 앞으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는 지키지 않고 패역한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소시의 짝을 버리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많은 연단을 통해 악이 뽑혀 나갔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선지자에게 책망을 받아도 즉시 회개하며 통회자복했습니다.

그는 소시의 짝을 버리지 않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 겸손한 자가 되고 상대를 귀하게 여기므로 상대를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고 말씀을 존중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2:18-19)

악인의 집이 사망과 음부로 기울어졌다고 했는데 사무엘상 31장에 보면 사울의 집이 어떻게 망하였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길보아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피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는 중에 사울의 아들들인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울도 도망하다가 활에 맞아 중상을 당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사울은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블레셋 사람이 이들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사울의 머리를 베어 블레셋 온 땅을 돌며 구경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아 사람들로 구경하게 하였지요. 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며 이스라엘 백성의 수치입니까.

본문은 악한 길로 가는 사람은 왕이나 백성을 따지지 않고 누구든지 생명길을 얻지 못하며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다윗을 좇은 사람은 영화를 누렸지만 사울을 좇은 사람은 같이 멸망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집이 망하였지만 그 아들 요나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진실로 사랑하였기에 다윗이 후에 그 은혜를 갚았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불러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했습니다(삼하 9:7). 요나단은 그 와중에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했으므로 자손이 축복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2:20-22)

이 말씀은 16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선을 행한 자에게는 하늘로부터 지혜가 와서 선을 좇아 나갈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악이 있는 만큼 악을 좇아가다가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연단을 받아 변화된 후에는 누구든지 함부로 대하지 않고 지혜롭게 행해 나갔습니다.

열왕기상 2장을 보면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여 아들 솔로몬에게 요압과 시므이를 죽일 것을 유언으로 남깁니다. 다윗은 선을 좇아 사람 죽이는 일도 마음대로 하지 않고 솔로몬에게 당부했던 것입니다.

요압은 자기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울의 군장인 아브넬을 죽인 적이 있습니다. 아브넬은 사울이 죽고 그 아들 이스보셋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군장 즉 군대장관이었습니다.

아브넬은 다윗에게 와서 항복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둘로 갈라진 나라를 합칠 좋은 계기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런 아브넬을 요압 장군이 자기 동생의 원수를 갚는다고 쫓아가서 죽입니다. 이것은 평화를 원하는 다윗이나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행동이었지요.

원래 요압은 다윗을 위해 충성을 다한 군장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면 다윗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 좋은 면이 있었기에 다윗이 차마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압은 솔로몬의 형인 아도니야를 왕으로 옹립하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솔로몬을 임금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은 아도니야의 반란 세력에 가담하였기 때문에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가 유언해 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명심하고 있다가 요압의 죄가 드러났을 때에 처형한 것입니다.

또 시므이는 다윗이 반역한 압살롬을 피해 피난 길을 가고 있을 때에 따라 오면서 돌을 던지며 저주했던 사람입니다. 압살롬이 죽은 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에 요단 나루터까지 나와 다윗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주변에서 저를 죽이자는 말도 있었으나 다윗은 용서해 주었습니다.

솔로몬은 시므이를 죽이라는 다윗의 유언을 명심하고 있다가 시므이에게 예루살렘에 살 것을 명합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에 바깥에 있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죽음을 당할 것을 알려주었는데 시므이도 이를 좋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3년 후에 자신의 두 종이 도망을 하자 기드론 시내를 건너갔다 옵니다. 이에 솔로몬은 그를 죽이도록 조처하였습니다.

다윗이 지혜롭게 솔로몬에게 당부하므로 더 많은 피를 흘리지 않고 합력해 선을 이루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보응을 받고 각각 자기 길을 가게 한 것이지요. 우리도 하나님의 지혜를 받으면 선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지혜는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합니다.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는 지혜로운 행동은 아니었을지라도 선한 마음으로 의를 지킨 사람입니다. 그는 다윗이 분부한 대로 집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지 않고 전쟁터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해서 성에서 군사들과 같이 지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죽음을 자초하는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왕에 대한 신하된 도리와 동료에 대한 도리를 지켰던 것입니다. 그는 정직하고 의로운 행동으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빛나는 인물이 되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도 귀감이 됩니다. 죽음이 올지라도 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지혜가 부족한 만큼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지만 정직한 사람은 자신을 지켜 나가기에 목숨을 바칠 일이 없는 한 이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갑니다. 사후에도 이름이 남아서 존중받는 인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서 정직한 사람은 생명이 짧은 경우가 있고 장수를 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로서 오랫동안 살아야 이룰 수 있는 사명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불 속에 있던지, 물속에 있다 해도 보호해 주시며 죽음을 겪지 않게 하셨습니다.

반면에 에녹이나 엘리야는 일찍 하나님께 들림 받은 경우입니다. 이런 분은 믿음의 선진들로 지금도 존중을 받고 있지요. 그러니 땅에 온전히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생명이 짧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가 빛이며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증거하며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다며 정직한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마 11:11). 세례 요한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 대해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책망하며 회개할 것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헤롯 왕에 대해서도 동생의 아내를 탈취한 일과 그가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책망하였습니다. 결국 감옥에 갇히고 결국 죽임을 당했는데 세례 요한은 그의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고 때가 되어 하나님의 부름을 입은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복이 있는 자로서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해와 같이 빛나며 칭찬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잠시잠깐이며 이 땅에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정직하게 행하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릴 수 있으니 이런 정직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22절에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힌다고 합니다. 악인의 한 예로 여러분은 이완용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요? 나라를 팔았으니 얼마나 간사하며 패역한 일을 했습니까? 그는 한일합방 후 일제로부터 친일의 대가로 받은 물질로 막대한 규모의 토지를 매입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심은 지금도 돌아서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연산군이 악을 심하게 행하니 결국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병에 걸려 단명했습니다. 영화가 사라지고 사람의 비방거리가 된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렇게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고 뽑혀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10년 11월 25일 (목) 09:12:40 이재록 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