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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 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본문 : 잠언 1:6-7]
출처
크리스챤 신문
날짜
2010년 9월 30일 목요일
조회수: 1882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1:6-7)

뉴스▲ 순종할 수 없는 것에 순종했을 때 인정해 주신 하나님 / 일러스트 김동호


잠언은 깨달음을 더해주기 위해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고차원적인 지식을 여러 가지 비유로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잠언을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또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에 대해 확신이 있었기에 지혜 있는 자의 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는 것은 지혜자의 가르침대로 순종해 보면 아름다운 열매로 맺혀지기 때문입니다.


1. 지식의 근본이 되는 이유

그러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왜 지식의 근본이 되는 것일까요?

다윗 왕 당시 이스라엘은 부강한 나라였습니다. 솔로몬은 다윗 왕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던 밧세바의 아들이었으며 하나님이 지명한 후계자였으니 다윗이 그에게 얼마나 심혈을 쏟아 가르쳤겠습니까?

당시 최고의 스승을 두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가장 좋은 것을 누리고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장한 솔로몬은 왕이 되자 일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았습니다. 최고의 지식과 지혜를 가졌던 솔로몬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겪은 후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지식이 필요한 것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지식을 배울수록 끝이 없음을 느낍니다. 열심히 배우고 연구하여 어느 분야의 박사가 될지라도 결국 한계에 부딪힙니다. 과학기술이나 문명, 의학의 발전도 한계가 있습니다. 생명을 창조해 낼 수가 없으며 불치병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기서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는데 근본(根本)은 사물의 본바탕으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입니다. 한계가 없으며 불가능이 없는 분으로 모든 것이 영원이라는 단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부와 명예와 권세를 모두 누려보았지만 죽음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즉,

사람으로서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한계가 없음을 깨우치게 되었는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한계가 없는 영원한 세계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동물만 보아도 지식의 근본인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동물이라도 살아갈 수 있도록 창조되어 본능 속에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얻는 지식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할 뿐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것은 행복이며 영원한 삶인데 이를 위한 지식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할 수 있을까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잠 8:13)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렸을 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고 하셨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면 순종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없는 것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진정으로 경외하였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것은 버리라, 이것은 지키라, 이것은 행하라, 이것은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우리에게 천국 가는 길이 되고 생명이니 당연히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당연히 순종해야 할 것도 순종하지 못하는데 순종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며 전폭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할수록 지식의 근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기에

1장 7절에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부친 다윗에게 늘 훈계를 받았습니다. 이방 여인을 취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누누이 들었지요.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신 7:2-4)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의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왕상 11:4-25)

오직 하나님만 좇았던 다윗 왕과는 달리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을 취하며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서 떠나자 하나님이 외면하셨고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로 곤경에 처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그의 아들 대에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된 것입니다(왕상 11:9-13).

솔로몬이 말년에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보니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바로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 미련한 자였다고 뼈아픈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윗왕 당시 요합은 훌륭한 장수였지만 다윗 왕의 훈계를 멸시하니 그 결말이 비참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왕상 2:28-34).

예수님은 유다가 깨우칠 수 있도록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 리라"(막 14:20) 하며 설명해 주신 후 훈계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재정에 손을 댔던 도둑으로서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미 지켜야 될 도리와 선을 넘었기에 깨우칠 수가 없었고 미련한 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윤리나 예의 등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고 사람이 지켜야 할 선을 넘는 것은 미련한 자가 되는 첩경입니다.

훈계란 이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며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훈계를 듣고도 행치 않습니다. 여전히 죄를 짓고 불순종합니다. 훈계를 멀리하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주로 어떤 사람이 훈계를 받지 않을까요?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며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열매로 분별해야 합니다. 악의 열매가 나오는데도 자기 생각이 옳다고 하지 않는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1:8-9)

여기서 아비와 어미는 이 세상에서 말하는 부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아비는 마귀입니다(요 8:44). 교육이나 책을 통해 배우는 내용 중에도 옳지 않은 것을 진리인 것처럼 가르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자녀를 교육할 때 부모의 생각이 옳은 것도 있지만 옳지 않는 것도 많이 있지요. 그러나 부모가 온전하지 못하다 해도 진리 안에서 옳은 말은 순종하면 유익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이지만 성부는 아버지, 예수님은 진리를 행함으로 이루어 놓으신 분이고, 성령은 어머니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진리 가운데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이지요.

그런데 솔로몬은 당시에는 성령이 온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이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배우고, 밧세바인 어머니를 통해 진리의 법도를 깨우친 것을 말합니다. 다윗과 밧세바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순종하며 살았기에 솔로몬에게 진리 안에서 올바른 훈계를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은 육의 부모를 통해 배운 하나님의 법도와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아비의 훈계란 잠언말씀이요 더 나아가 성경 66권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과 훈계이지요.

또한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 가르치는 법도를 어긋나지 않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이끌어 가지만 자식을 품에 안고 키우는 것은 어머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러 주신 말씀을 품에 안고 그 안에서 살아갈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 여호수아, 갈렙 등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훈계를 받으며 그것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버리라 하면 버렸고, 지키라 하면 지켰고, 행하라 하신 것을 행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행했을 때 그 결과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이라고 했습니다. 머리의 관이란 명예를 말하며 금사슬은 부(富)를 의미합니다. 진리 안에서 최선을 다해 정도를 좇아 노력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했을 때는 머리에 관을 썼고 금사슬, 즉 많은 물질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법도를 떠나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하였을 때는 그만큼 참담한 결과가 온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이 모든 것을 온전하게 지킬 때 그 사람의 머리에 관이 되고 금사슬이 됨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왕들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진리를 지켜 나가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관을 씌워주십니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행한 대로 존중받는 관, 혹은 신뢰받는 관, 인정받는 관 등을 쓰게 되며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니 물질 축복도 받는 것입니다.

2010년 9월 30일 (목) 15:23:50 이재록 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