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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정구영 권사(전 서울여대 총장)
출처
날짜
2005년 2월 17일 목요일
조회수: 4202
|칼|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뉴스 탈무드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강한 것이 12가지가 있습니다. "돌은 강하다. 그러나 그 돌은 쇠에 깎이고 만다. 그러나 이 쇠도 불에 녹으니 불이 더 강하다. 그런데 이 불도 물로 끌 수가 있으니 물이 더 강하다. 그러나 이 물도 증발하여 구름에 흡수된다. 그런데 물을 흡수한 구름은 바람이 불면 흩어지거나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이 바람도 인간들을 흩어지게 하거나 없애 버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공포와 괴로움에는 견디기가 어렵다. 이렇듯 막강한 힘을 가진 공포나 괴로움을 잊기 위하여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그러나 이 술도 한잠 자고 나면 깬다. 그런데 잠도 죽음을 이기지는 못한다. 모든 것은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랑이다.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가서 8:6에서도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했고, 요한일서 4:18 에서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라고 했습니다.
실로 사랑은 강합니다. 흔히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며 덤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9.11 자살테러 사건도 결국 한 목숨 아깝다하지 않고 거대한 미국을 상대로 한 나름대로의 사랑의 몸짓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진정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것일까요? 진정 인간이라는 존재는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일까요? 1917년 러시아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거대한 공산주의 국가로 변모하면서, 소련 전역에 최고의 시설, 최고의 음식, 최고의 의료진을 구비한 탁아소를 세우고, 갓난아기까지 이곳에 수용하면서 최고의 공산주의자로 키워보겠다는 야심찬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6개월이 못되어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는가 하면, 대다수의 아이들이 정신질환을 앓게 되어 결국은 탁아소의 문을 닫고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비록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라 할지라도 부모의 사랑을 대신 할 만한 것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찌 부모 자식 간에만 해당되는 것이겠습니까? 성인이 되어 결혼한 부부 사이도 예외는 아닙니다. 상대방이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사랑이 없다고 느낄 때 삶의 의욕도 떨어지고, 때로는 가슴에 한으로 쌓이기도 합니다. 분노가 쌓이고, 한이 쌓여 심신이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비참한 생을 살기도 합니다.
빵없이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남녀노소 누구든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사랑은 고귀한 것입니다. 죽어 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묘약입니다.
문제는 이토록 꼭 있어야만 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때로는 변질되기도 하고 부패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것 때문에 울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사랑 중에서 가장 끈질기고 변질의 가능성이 적은 것은 부모의 사랑인 듯 합니다. 그러나 이 부모의 사랑도 경우에 따라서는 변질될 가능성이 있음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을 보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빵만으로는 살 수가 없는 존재인 사람들, 사랑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들이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요?
인간 자신의 힘만으로는 길이 없으나, 사랑의 근원지와 연결이 될 수만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의 근원을 가진 분이 누구일까요?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변하는 인간의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면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모든 것을 다 품어 안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만 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칼로 무우를 베듯 그 순간부터 온전하게 변질되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만큼 닮아 가느냐,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과 합일이 되어 있느냐에 따라 변치 않는 사랑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자 새롭게 결심하는 분들에게 '사랑차(茶)' 끓이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정갈하게 끓여 겨울에는 따끈하게, 한 여름에는 차게 식혀 자주 드시면, 하나님을 꼭 닮은 사랑스러운 자녀가 될 것입니다.
먼저 재료 손질을 해야겠지요. 성냄과 불평의 뿌리를 잘라 낸 후 잘게 다집니다. 교만과 자존심은 속을 빼낸 후 깨끗이 씻어 말리고, 짜증은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토막을 낸 후 넓은 마음으로 절여 둡니다. 재료 준비가 다 끝났으면 요리를 시작하겠습니다. 주전자에 실망과 미움을 한 컵씩 붓고 씨를 잘 빼낸 불만을 함께 넣어 푹 끓입니다. 여기에 미리 준비한 재료를 넣고, 인내와 기도를 첨가하여 재료가 다 녹고 쓴맛이 없어질 때까지 충분히 끓입니다. 사랑의 달콤한 설탕을 넣고 기쁨과 감사로 잘 저어 미소를 몇 개 띄운 다음 깨끗한 믿음의 잔에 부어서 음미하면서 천천히 마시면 됩니다. 이때 소망의 부드러운 음악으로 무드를 잡으면 차(茶) 맛이 훨씬 좋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