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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생각 지역장·조장·구역장 헌신예배 [민14:9-10]
설교자
강사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08.02.17
영혼 구원의 사명은 상급이 될 뿐 아니라 자신의 성결도 앞당길 수 있기에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영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영의 생각만 하는 영의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영의 생각을 통해 믿음의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두 명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권면합니다(민 14:9). 만일 육신의 생각이 있다면 이런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나머지 열 정탐꾼의 말이 맞습니다. 가나안 거민은 장대하고 수도 많으며 철병기는 이스라엘의 것보다 강력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만 싸운다면 전혀 이길 승산이 없고 오히려 비참하게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고 돌아와서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표현한 것은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강한 신뢰가 담긴 고백입니다.

또한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옛사람의 구습대로 죄악 중에 거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말할 수 없습니다. 곧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 뜻대로 살며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을 보고 두려워하여 육신의 생각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영의 생각을 했습니다. 영의 생각을 할 때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 뜻에 따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믿음이 없는 백성은 오히려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고자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가득하니 오히려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으려는 해로운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10에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말씀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위험에 처하자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보장을 받습니다. 여러분도 여호수아와 갈렙같이 영의 생각 속에 믿음의 고백을 하고 하나님께 보장을 받기 원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영의 생각만 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세 가지 분야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2. 영의 생각만 하는 영의 일꾼이 되려면

1)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영의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 일을 해도, 성령의 소욕을 좇는 것이 아니면 일의 열매를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음성은 서쪽으로 가라 하는데, 동쪽이 자신에게 유익되면 그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기 욕심이 앞서다 보면 어느새 성령의 음성에 대해서는 점점 귀가 가리고 자기 유익이 되는 동쪽으로 갈 생각만 합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있으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비운 상태에서 하나님 뜻을 구해야 분별할 수 있고 영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분명히 자기 유익을 구하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 일이 명분상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것처럼 포장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머리된 일꾼이 “성전 건축을 위해 우리가 힘껏 예물을 모아 드립시다.” 하고 열심을 냅니다. “이것은 분명히 성전 건축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는 일입니다.” 하면서 저변에는 사심이 깔려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이 일을 이뤄서 목자의 칭찬을 받아야지, 성도들 앞에 인정받아야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 일을 한다.’는 생각이 더 크기 때문에 사심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때에는 일을 이루는 방법과 과정에서 성령의 음성을 듣기보다 자기가 원하는 방법을 좇아갑니다. 따라서 자신의 주장과 고집을 내세워 어려움을 당하거나 주변 사람과 화평을 깰 수 있습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일의 시기와 방법에 대해 성령의 주관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의 마음도 주관하시고, 그 결과에 대해 보장해 주십니다.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또 힘써 일하고 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어도 마음에 요동함이 없습니다. 때로는 힘써 기도하여 일을 이루고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권면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도 기뻐하며 전과 같은 열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달려갑니다.

반면 자기 유익을 구하는 사람은 ‘내가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데’ 합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심방하고 기도와 금식했는데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실까?’ 하며 서운해 하며 낙심합니다. 이런 마음을 버릴 때라야 항상 영의 생각만 할 수 있습니다. 영의 생각 속에서 성령의 인도를 좇아야 큰 열매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1-22에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했습니다. 악을 버리고 선한 마음을 이루면 성령의 역사를 정확하게 받아 상대의 마음을 능히 헤아릴 수 있고 오해나 판단 정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을 가지고 생각할 때에는,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을 보면 쉽게 판단 정죄를 합니다. 몇 가지 아는 사실만 종합해서 ‘분명히 이랬을거야.’ 생각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넘겨짚습니다. 이럴 때 에 누군가 “판단하지 말라.” 하면, “상황을 보면 뻔히 알 수 있는 것인데, 내가 무슨 판단을 했느냐?” 합니다. 세상 말로 “척하면 척”이라는 것입니다.

혹여 그렇게 넘겨짚어 자기가 생각한 것이 맞다 해도, “맞았으니 판단한 것이 아니다.” 할 수는 없습니다. 내 눈으로 보지 않고 직접 상대에게 확인한 것이 아닌데 짐작으로 단정했다면 이는 판단입니다. 그나마 좋게 생각하면 다행인데 악하게 생각했을 때에는 정죄가 나옵니다. 그로 인해 쉽게 오해가 빚어지고 감정이 생기니 사사건건 서운하고 불편하며 서로 하나 될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역장 입장에서 볼 때에 지역장이 다른 구역에는 마음을 많이 써 주는데 자신의 구역에 대해서는 좀 덜한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다른 구역장이 상을 받으면 온갖 육신의 생각이 나옵니다. 서운한 감정과 시기 질투를 합니다. 자기 안에 감정이나 편벽됨이 있으면 온갖 육신의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됩니다.

그러나 선으로 생각한다면 영의 생각만 할 것입니다. ‘저 구역은 든든한 일꾼이 별로 없는데 지역장님이 더 마음을 써 주니 감사하다. 우리 구역은 믿고 맡겨 주시니 내가 좀 더 열심히 충성하고 옆의 구역을 위해서 더 기도해 줘야겠다. 우리 구역에 대해 혹시 염려하지 않도록 안심케 해 드려야겠다.’ 이렇게 선으로만 생각한다면 서로가 행복하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범사에 선 속에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시며 풍성한 열매로 보장하십니다.

3)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은 온 영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경계해야 하는 죄성입니다. 보통 다른 죄성이나 육체의 일은 초신자일 때 크게 드러나고 신앙생활을 할수록 점점 버려 나가는데 교만은 그와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초신자일 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도 일꾼이 되고 머리로 섰을 때 오히려 교만이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깨우치지 못하니 자기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높아지고 섬김받으려는 습관에 젖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쌓은 지식과 틀을 앞세워 점점 화평을 깨기 시작합니다.

‘내가 아버지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헌신했다, 나는 영적으로 많은 것을 안다, 10년, 혹은 20년을 목자를 보았기에 누구보다도 목자 마음을 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을 좋아하시고 목자는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지 나는 안다, 이럴 때는 이렇게 순종해야 옳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해야 순종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 속에서,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면 무조건 그것만 주장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질서상 윗분의 말에도 불순종을 하고 주변 사람과 화평을 깹니다. 자기 경험 속에서 어떤 질문에 대해 한 가지 답을 얻었다고 그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상대의 의견이 죄와 불법이 아니라면, 자신의 답이 더 좋은 것이라 해도 무조건 자기 의견만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의견 자체는 진리라 해도 그것만 고집하는 것은 비진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생각, 영의 생각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옳다’ 하는 교만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더 겸손한 자세로 소자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며 상대의 입장과 주변 상황을 살펴서 화평을 좇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의 계획이 하나님께 보장받아 성령의 역사 가운데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008-02-18 오후 10:21:44 Posted
2018-07-09 오후 10:38:2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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