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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믿음의 분량 창립 26주년 예배 [롬12: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08.10.12
오늘은 본 제단의 창립 26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지난 26년 동안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믿는다고 합니다. 또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 강도는 죽기 직전에 믿음을 가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났을 때는 이제 막 태어난 아기 같은 믿음이므로, 그의 믿음은 수제자 베드로의 믿음과 그 크기가 다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만큼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갓난아기에서 어린아이 같은 믿음, 청년 같은 믿음, 장년 같은 믿음으로 성장하여 주님과 같은 믿음의 분량까지 성장했을 때 온전한 믿음에 이르렀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립 26주년 기념주일인 오늘 ‘믿음의 분량’이란 말씀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온전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오늘을 기점으로 한 단계 이상 더욱 성장한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창대한 만민의 역사를 함께 써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믿음이 온전해지는 만큼 참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온전한 사랑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믿음을 가진 성도라면, 당연히 참 소망과 온전한 사랑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분량과 그에 따르는 사랑과 소망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온전한 믿음

본 교회는 ‘믿음’이라는 말씀으로 개척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불가능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개척 당시 제 수중에는 단돈 7천 원이 있었습니다. 성도는 어린아이 4명을 포함해 총 13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척 12주째인 1982년 10월 10일 창립예배 때 이미 100명을 훌쩍 넘겼고, 아무것도 없다시피 했던 성전에도 각종 기물들이 채워졌습니다. 강대상을 놓고 기도하면 강대상이 들어왔고, 마이크를 놓고 기도하면 마이크가 생겼습니다. 개척 당시 교회적인 믿음의 분량은 어린아이와 같았지만, 오직 믿음으로 기도했을 때 놀라운 믿음의 역사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만민의 믿음의 역사는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침없이 이루어져, 전 세계 66개국 8천여 개의 지교회와 약 2백만 명의 성도를 가진 대형교단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또한 방송과 문서 선교를 통해 전 세계 무수한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사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했는데,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죄악이 관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높아진 사상들이 만연하므로 믿음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기사와 표적을 보아야만 믿음을 가질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개척 때부터 무수한 기사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증거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변한 일이 나옵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도 나타납니다. 바다로 둘러싸여 우물을 파면 짠 바닷물이 나오던 무안만민교회에서 짠물이 단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더구나 무안단물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담겨져 있어서 믿음으로 마시거나 바를 때 치료의 역사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사도행전 19장 11-12절에는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했습니다. 희한한 능은 본 교회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저에게 기도받은 손수건을 가지고 아픈 사람에게 얹고 기도하면, 질병이 떠나고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많은 기사와 표적들을 보여 주심으로써 온전한 믿음에 이르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또한 최근 3년 동안 잠자리 떼를 통해 영의 공간이 분명히 있다는 것도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잠자리는 매우 빨라서 잡기가 쉽지 않은데, 영의 공간에서 나온 잠자리들은 친근하게 성도님들께 다가와 손가락에 앉으라 하면 앉기도 하고, 몸의 여기저기에 앉아서 쉬었다 가곤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여 주신 이유는 이것을 보고 믿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믿으며, 나날이 더욱 큰 믿음으로 성장하여 온전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면 하나님의 깊은 마음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능력도, 권세도, 권능도 받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6-18절에 기록된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성경이 참임을 증거하며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온전한 믿음을 갖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루게 될 만민의 역사를 함께 이루는 능력 있는 믿음의 용사들로 나오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두려움이 없는 온전한 사랑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온전한 사랑을 이루길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온전한 사랑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많이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어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배가 파선하여 바다에서 배의 파편에 겨우 몸을 의지하고 있을 때도 그의 마음에는 평안이 가득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 앞에서는 그 무엇도 장벽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3-24절에는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했기에, 어떤 환난이나 핍박이 있다 해도 복음 전파를 위해 주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본 교회가 오늘에 이르는 동안에도 많은 시험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동족의 위험을 받았던 것처럼, 예전에 소속됐던 교단으로부터 핍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라의 위협을 받은 적도 있으며, 세상 방송으로부터 시련을 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 전파를 쉬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고, 그 사랑의 힘으로 인해 넉넉히 이겨 왔던 것입니다.

2000년도부터 시작된 대형 해외 연합성회들도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의 열매입니다. 매 성회 마다 많은 위협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00년도 파키스탄 성회는 이슬람의 테러 위협으로 인해 성회 당일 장소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을 통해 극적으로 성회가 개최되었습니다. 2002년 인도 성회는 주정부에서 성회 첫날부터 개종금지법령을 선포했습니다. 힌두교가 대다수인 인도 현지인에게 복음을 전하면 엄청난 금액의 벌금형이 부과되고,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면 현장에서 체포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뜨겁게 불이 붙어서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이시며, 예수님만이 구세주시라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잡혀가지 않았고, 성회 결과는 연인원 3백만 명 운집이라는 인도 역사상 최대의 성회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두바이, 러시아, 온두라스, 페루 등 거저, 쉽게 이뤄진 성회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작년부터 이루고 있는 이스라엘 선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을 돕지 말라’는 위협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 사역을 계속하는 것은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선교 또한 계속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며, 누군가는 순교의 피를 흘려야 함도 압니다. 그럼에도 기도하며 준비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주님을 우리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온전한 사랑, 두려움이 없는 사랑을 이제 여러분 모두가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담대함이 오고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증거가 여러분의 삶 속에 풍성히 나타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새 예루살렘 소망

여기서 소망은 천국에 대한 소망을 뜻합니다. 마음에 믿음과 사랑이 온전해질수록 천국의 소망도 뚜렷해집니다. 그런데 천국에는 여러 처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새 예루살렘에 여러분들이 소망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서 믿음의 수고와 사랑의 역사를 함께 이룬 성도들이 천국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길 바라시며, 성전 건축과 선교를 위해 모든 것을 드려온 성도님들에게 큰 위로와 상급을 주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에 올 수 있는 방법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시고, 천국과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밝히 알 수 있도록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성도님들은 더욱 온전히 새 예루살렘 소망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새 예루살렘이요,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입든지 늘 마음에는 새 예루살렘이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모든 말과 행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자연스럽게 좇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모하면, 그분의 마음을 따르며 그분을 닮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의 마음에 새 예루살렘의 소망이 더욱 온전해짐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분량에까지 이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10-13 오후 6:02:11 Posted
2018-07-09 오후 10:40:1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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