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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두 마음을 품지 말라  [약1:5-8]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09.06.14
이번 시간에는 응답받는 비결을 말씀드립니다. 참 믿음으로 구할 때와 두 마음을 품고 구할 때의 차이점을 먼저 살펴보고, 두 마음을 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야고보서 1장 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부족한 것을 구할 때 그 부족함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자녀들이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구하는 것을 후히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특히 지혜를 구하라 당부하십니다. 지혜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고백합니다(잠 3:13~15). 우리 삶에 주는 이익이 금, 은, 보화보다 더 낫다고 고백할 만큼 지혜는 값진 보배이며, 우리가 복 있는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할 때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응답받으려면 반드시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이는 지혜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무엇을 구하든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8절에서는 이런 사람을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의심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의심한다면, 이는 두 마음을 품는 것이요, 아무리 구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구할 때는 반드시 믿음으로 구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받을 줄로 믿으라’ 하신 것이 아니라, ‘받은 줄로 믿으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확실한 믿음으로 구하고 계십니까? 많은 분들이 근본의 문제를 발견하여 해결하고 복합적인 축복을 받아 간증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응답의 열매가 아직 맺히지 않음으로 답답해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혹여 내가 두 마음을 품으므로 응답이 더딘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참 믿음과 지식적인 믿음의 차이

믿음으로 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면, 믿음으로 구하지 않고도 자신은 믿음으로 구했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에는 ‘참 믿음’과 ‘지식적인 믿음’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다른 말로는 ‘영적인 믿음’과 ‘육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참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서 믿으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말합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하나님에 대해 듣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으로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험이 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에 의존합니다. 의심하는 사람, 다시 말해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참 믿음으로 구할 때와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할 때는 그 과정과 결과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첫째로, 참 믿음으로 구할 때는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야고보서 1장 6절 후반에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비유한 것처럼, 시험 환난이 오면 마음이 쉽게 요동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자녀가 갑자기 온몸에 열이 펄펄 끓어서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럴 때, 우리 만민의 성도님이라면 대부분 하나님을 의지하실 것입니다.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시고, 음성사서함 기도나 손수건 기도를 받게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했는데도 열이 더 펄펄 끓는다면, 상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참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여전히 마음이 요동하지 않고 감사해 할 것입니다. 반면에,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한 경우에는 ‘정말 괜찮아질까? 더 심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불안하고 초조해하거나, ‘믿음으로 구했는데 왜 낫지 않을까?’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럴 때 어떤 모습인지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변개하지 않고 응답받을 때까지 변함없이 구합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응답이 더디거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변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도제목을 놓고 작정을 했다가 중간에 임의로 작정을 깨뜨립니다. 기도제목을 바꾸거나 목표치를 낮추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때 구하는 즉시 응답받기를 바라고, 자신의 바람대로 응답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 공의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셔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응답받는 속도가 다를 수 있고, 응답주시는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가를 만지자 즉시 병이 나았지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서 만난 문둥병자 열 명은 조금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안수해 주시지도, 몸을 만져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 하셨습니다. 몸이 낫지도 않았는데 제사장에게 가서 치료 여부를 검증받으라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들의 기대와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 문둥병자는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모두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해서 중간에 변개하여 자기 길을 갔다면, 이들은 결코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갔고, 중간에 의심하거나 변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변개하지 않아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까지 고집스럽게 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한 대로, 변개함 없이 구하되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만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응답을 구할 때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응답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변함없이 구한다 해도 정욕을 위해 구하면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것도 유의해야 합니다.

셋째로,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구하는 것을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기에,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했습니다. 당시 유다 왕국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피폐해진 상태였고,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마음에 맞지 않는 예언을 했다 하여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예레미야가 순종하여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비밀한 말씀, 곧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아무리 암담한 현실에 처해도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심을 믿기에, 응답해 주실 것을 믿기에 부르짖는 것입니다. 소경 바디매오도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 주실 것을 확신했기에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신실한 믿음은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표현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 사람은 해결받아야 할 문제가 있어도 힘써 부르짖지 않습니다. 응답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더 부르짖어야 하지만, 오히려 힘이 빠져서 부르짖지 못합니다. 이는 응답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참 믿음을 구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원한다면 참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의심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의심이 들기도 하고, 변개할 마음이 없었는데 중간에 변개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부르짖지 못하기도 합니다.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만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참 믿음을 이루기까지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해결해야 할 문제나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순간순간 의심이 들고 세상의 유혹이 와도, 단호히 물리치고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열심히 진리를 행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행해 나가더라도 원하는 만큼 신속히 응답이 오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십니다. 육의 부모도 어린 자녀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 품에 안겨 올 때 마음이 흐뭇하듯이,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자 할 때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진리를 행하는 과정을 통해 영혼이 잘되게 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는데, 바로 이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주시고 마음에서 비진리를 뽑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 마귀 사단의 조종을 받지 않고, 진리의 영인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아가면, 마음에 담대함과 응답의 확신이 임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한 대로, 결국에는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자녀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는 것이요,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며, 모든 것이 풍성하여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어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이런 사랑을 드리심으로 구하는 것마다 주시는 사랑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06-15 오후 9:05:18 Posted
2018-03-15 오전 11:31:2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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