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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창세기 강해(19) 영적인 존재들(8) [창 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09.12.18
창세기 강해 열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루시퍼의 반란 과정과 그 결과를 말씀드렸습니다. 루시퍼는 교묘한 말로 천사 삼분의 일과 용들과 그룹들 일부를 자기편으로 만들었지요. 그러나 루시퍼의 반란은 실패했고, 모두가 무저갱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루시퍼가 무저갱에 갇히기 전에 성령 하나님, 성부 하나님과 각각 대화했던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루시퍼가 성령 하나님께 했던 말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권세를 주셨다" 즉 자신이 장차 받게 될 어둠을 주관하는 권세를 말하는 것이지요.
"성자 하나님이 장차 육의 땅에 내려갈 때에 나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며 성령님 당신도 나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즉 성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자로 오실 때 루시퍼가 악한 사람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핍박하겠다는 의미이지요.
성령님도 루시퍼에게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루시퍼는 악한 사람들을 사주하여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해를 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내주하시는 성령님도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지요.

그런데 사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해지는 핍박 자체로 인해 고통을 느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루시퍼가 조종하는 원수 마귀 사단의 미혹을 받아 죄를 짓고 사망의 길로 가는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지요. 로마서 8장 26절 후반절에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한 대로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성령을 통해 하늘의 은사와 내세의 능력을 체험했으면서도 심히 타락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점차 성령이 소멸되어 가지요. 또한 도저히 사함 받을 수 없는 성령 거역, 훼방, 모독의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이런 영혼들로 인해 성령님께서는 큰 아픔과 슬픔을 느끼시지요.
이렇게 큰 죄들뿐만 아니라 작은 죄들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들이 이처럼 죄를 짓는 이유는 루시퍼가 어둠의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 마음의 죄성을 발동시키기 때문입니다.
루시퍼는 인간 경작의 기간 동안 계속해서 이렇게 어둠의 권세를 휘두릅니다. 따라서 성령님께서도 인간 경작이 마치기까지는 안타까운 영혼들로 인해 계속해서 아픔과 슬픔을 겪으시지요. 루시퍼는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을 두고 성령님을 향하여 "장차 나로 인해 고통 받게 될 것이라" 말했던 것입니다.

루시퍼는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교만하다 말하지만 내가 교만한 것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이러한 권세를 부리고 싶어함을 아시고 내게 권세를 허락해 주신 것이다" 즉 루시퍼 자신이 교만해서 하나님을 배신하거나 대적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교만함을 깨닫지 못했지요. 자신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해서 권세를 주신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부리게 될 권세에 집착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쫓겨나면서도 큰 권세를 부리고 싶은 야욕을 드러냈지요.

루시퍼는 성령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차 인간 경작의 때에 내가 주관하는 세계가 성령의 역사 가운데 다스려지는 세계보다 더 넓고 클 것이다. 내 권세가 더 클 것이므로 나는 당신을 고난 받게 할 것이다."
루시퍼는 무슨 근거로 자신이 주관하는 세계가 성령께서 주관하는 세계보다 넓다고 하는 것일까요? 루시퍼가 주관하는 어둠에 속한 사람들 곧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수가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많은 거라는 생각에서입니다. 루시퍼는 이것을 두고 자신의 권세가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의 수가 더 많은 것은 루시퍼의 권세가 성령님보다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가지신 빛의 권세는 루시퍼가 가진 어둠의 권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큽니다.
이는 인류 역사를 살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결국은 항상 선이 승리했지요. 또한 어둠의 권세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아무리 심하게 핍박해도 믿음의 계보는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루시퍼가 주관하는 이 어둠의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빛 가운데 행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항상 빛의 권세가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더욱이 이 마지막 때에는 성령의 권능이 폭발적으로 나타남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영혼이 구원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루시퍼가 성령 하나님께 "자신의 권세가 더 클 것이라"고 말한 것은 교만함 가운데서 나온 오산일 뿐이지요. 이것만 보아도 루시퍼의 마음이 얼마나 높아져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루시퍼가 했던 이러한 말들은 대심판 때에 판결의 근거로 제시됩니다. 교만함과 악함이 극에 달했음을 증거해 주므로 가장 무거운 지옥 형벌을 받게 되지요.

루시퍼는 이처럼 교만해져서 자신에게 인성을 주시고, 사랑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은 조금도 알지 못했습니다. 마치 자신이 잘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어둠의 권세도 자신이 받을 만하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착각했지요. 그리고 장차 이 육의 세상은 전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자신의 권세로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까지도 고난 받게 하겠다고 말했지요.

루시퍼는 이처럼 교만했기 때문에 감히 아버지 하나님을 배신하고 대적할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루시퍼라도 어떻게든 깨우쳐 주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네가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며 네가 아버지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도다. 아버지는 너를 사랑하셨고 너를 아끼셨으며 너의 찬양 받기를 즐겨 하셨다. 네가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며 네가 아버지의 사랑을 알았더라면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너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내가 알고 있기에 안타깝도다. 심히도 안타깝도다. 네가 아버지의 사랑을 깨우치지 못하고 그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함이 안타깝도다." 성령님은 루시퍼로 인해 몹시도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루시퍼에게 인성을 주시고 그처럼 사랑해 주신 이유는 참사랑을 주고받기 원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루시퍼는 참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이처럼 교만해져 버렸습니다. 참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질되지 않지요. 사랑을 받을수록 오히려 더 상대를 섬기고 더 사랑을 주는 것인데 루시퍼는 그러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루시퍼에게 또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인간 경작의 모든 역사가 마무리될 때 루시퍼 너는 나의 손에 의해 갇힐 것이다. 그리고 네가 지금 그처럼 말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네가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주관한다 해도 네 권세가 아버지의 권세만큼 클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장차 성자 하나님께서 너로 인해 고난 받으시고 내가 너로 인해 고난 받는 것은 너의 권세가 더 커서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아버지의 계획 안에 들어있었음을 네가 깨닫게 될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것으로 말씀을 마치셨지요.

루시퍼를 더 깨우쳐주려 한다 해도 교만하여 듣지 않을 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잠언 16장 18절에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했지요. 교만은 마음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속아 넘어갑니다. 그래서 옳지 않은 길로 가면서도 자신은 옳은 길로 간다고 여깁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바르지 않은 데도 자신은 바르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사람이 변화되려면 먼저 잘못을 깨달아야 하는데 교만이란 속성은 깨달음 자체를 막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항상 교만이 틈타지 않도록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루시퍼와 성령 하나님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결코 루시퍼가 주관하는 어둠의 권세 아래 들어가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합니다. 곧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 예수님께서도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말씀하셨지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루시퍼는 자신이 주관하는 세계가 더 넓어졌다며 의기양양해 할 것입니다. 반대로 성령님께서는 죄를 지은 영혼으로 인해 또 아파하시며 탄식하시지요. 성도님들은 이 사실을 명심하심으로 이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행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루시퍼는 무저갱에 갇히기 전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도 심히 거만한 태도로 교만한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눈을 치켜뜨고 따지는 말투로 말을 했지요. 이러한 루시퍼의 얼굴은 이미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원래는 매우 아름다웠던 얼굴이 이제 눈꼬리가 올라가고 무섭게 변했지요. 루시퍼는 감히 창조주 하나님과 비겨보겠다는 교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또한 무엄하게도 하나님을 "당신"이라 부르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영의 세계에 당신을 모시고 당신의 명을 받드는 무수한 천사와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유일한 신이시며 나는 피조물에 불과하니 내게도 동일한 권세를 주기 원하나이다. 내게도 많은 무리를 주어 내 나라를 이루게 하옵소서. 당신에게 능히 비길 만한 권세를 주어야 공평케 되지 않겠나이까. 내게도 그만한 권세를 주시고, 내가 부릴 수 있는 어둠의 영들도 주십시오.
인간 경작의 시간 동안에 내가 당신과 겨룰 수 있도록 대등한 권세를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렇게 동일한 조건에서 경주가 시작되어야 내가 당신 앞에 말할 때에 아무런 송사거리가 없으리다. 또한 "내가 능히 견주었다" 할 수 있으리다. 그래야 공의로운 하나님이라 할 수 있으리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루시퍼가 이처럼 오만방자하게 말하는데도 그것을 다 듣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인간 경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루시퍼가 요구한 대로 들어 주셨지요. 즉 루시퍼가 원했던 대로 부릴 수 있는 많은 어둠의 영들도 함께 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왜 루시퍼가 요구한 대로 들어주셨을까요? 그것은 루시퍼가 말한 대로 온전한 공의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루시퍼가 원하는 만큼 어둠의 권세를 허락해 준다 해도 결코 아버지 하나님을 이길 수 없음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지요.
욥기를 보면 사단이 하나님께 욥에 대해 송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욥기 1장 8절에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말씀하셨지요.
그러자 사단은 9절에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하며 욥의 모든 소유물을 치게 할 것을 청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그것을 허락하시자 욥은 일순간에 자녀들과 모든 소유물을 잃게 됩니다. 그럼에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지요. 그런데 사단은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두 번째 송사를 합니다.
욥기 2장 5절에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사단의 청구를 들어 주시지요. 단, 생명은 해하지 않는 조건으로 욥을 사단에게 붙이신 것입니다. 이에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서 심히도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자 이제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친구들에게 분을 내는 등 마음속의 깊은 악들이 드러났지요. 그러면 결국 사단이 이긴 것일까요? 욥기의 결론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단은 신이 났겠지요. 사단의 송사로 욥은 연단을 받았고, 연단 중에 심히도 많은 악이 드러났지만 그것이 오히려 축복이었습니다.
그것은 욥 자신도 알지 못했던 악을 발견해서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욥은 하나님께 회개했고, 더욱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재물도 이전보다 갑절이 되는 축복을 받았지요. 하나님 편에서는 온전한 참 자녀를 얻으셨으니 사단의 송사가 결국은 하나님을 이롭게 한 것입니다.
욥의 경우처럼 사단이 누군가에 대해 송사하면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어떤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연단이 허락됐다면 이는 더 큰 축복을 받기 위함입니다.
반면 죄를 지은 경우에는 죄를 지은 값을 치르기 위한 연단이 허락되지요. 연단을 통해 마음에 명심함으로 다시는 그 같은 죄를 짓지 않게 하시려는 사랑의 매와 같은 연단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연단이든 감사함으로 통과하면 결과는 축복이지요.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한 대로입니다. 인간 경작이란 결국 하나님의 참 자녀로 인정받기까지 연단을 받는 과정이지요. 욥처럼 극심한 연단을 받는 것은 아니라 해도 사람마다 경중이 다른 연단을 반드시 받습니다. 연단을 받아야 마음의 악을 발견하여 벗어 버릴 수 있지요. 또한 연단을 통해 마음이 영으로 굳혀지며 정금 같은 믿음으로 단련될 수가 있습니다.

루시퍼는 자신이 가진 어둠의 권세로 사람들의 마음에서 악을 발동시켜 죄를 짓게 하고 사망의 길로 가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지었다 해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대부분 죄를 회개할 수가 있지요.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 깊이 새겨져서 더 온전히 빛 가운데 살게 됩니다. 결국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결과적으로는 루시퍼가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루시퍼와 어둠의 영들은 농작물에 주는 비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비료는 사람이 직접 먹을 수 없지요. 사람이 비료를 먹는다면 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농작물에 뿌려주면 실하고 좋은 열매를 얻을 수가 있지요. 사람에게 있어 비료 자체는 해가 되듯이 루시퍼와 어둠의 영들도 그 자체로는 하나님을 대적한 악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어둠의 영들의 작용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알곡인 참 자녀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둠의 영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시험하고 핍박하며 힘들게 하는 것이 오히려 비료와 같은 역할을 하여 더 영으로 충실한 알곡 성도가 되게 하지요.
또 다른 비유를 들자면 목자들이 양 떼를 칠 때 뿔 달린 염소를 함께 있게 한다고 합니다. 순한 양들에게 염소는 자기들을 매우 힘들게 하는 존재입니다. 가만히 있는데도 와서 뿔로 받으려 하는 등 양들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들은 염소를 피하기 위해 이리 저리 움직이지요. 그런데 이런 염소의 역할로 인해 양들이 더 건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메기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미꾸라지 양식업자들이 건강하고 싱싱한 미꾸라지를 얻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합니다. 바로 미꾸라지 양식장에 메기 몇 마리를 풀어 놓는 것입니다.
메기는 미꾸라지의 천적이라고 하지요. 천적인 메기 몇 마리를 미꾸라지 양식장에 넣어 놓으면 미꾸라지들은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움직입니다. 일부 부실한 미꾸라지들은 잡아먹히겠지만, 대부분은 메기가 없을 때보다 훨씬 더 크고 튼튼하게 자란다고 하지요. 또한 미꾸라지를 장시간 운반할 때도 수조에 메기를 한 마리 넣어 두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미꾸라지가 생기를 잃지 않는다고 하지요. 천적 메기가 오히려 미꾸라지의 생명력을 길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의 기간 동안 악한 영들이 활동하도록 허락하신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연단을 통해 더 정금 같은 믿음과 참된 소망과 영적인 사랑을 갖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어떤 연단을 받아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에도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음 시간에는 루시퍼를 중심으로 형성된 악한 영의 세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루시퍼는 한낱 피조물에 불과하고 더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렸습니다. 이런 루시퍼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루시퍼의 요청대로 악한 영의 세계를 이루도록 허락해 주셨지요.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단 한 가지 소망 때문입니다. 그 소망은 곧 온전한 공의 가운데 하나님의 참 자녀들을 얻으시는 것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 소망을 이루시기 위해 루시퍼가 그처럼 무엄하게 말하는 데도 그대로 들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루시퍼는 인간 경작의 기간 동안에도 악한 사람들을 사주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난하도록 조종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오래 참아 오셨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기에 언젠가는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끝내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고 사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버지 하나님은 정녕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지요.
베드로후서 3장 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꼭 마음 깊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참으로 선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의 참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인간 경작을 마칠 때 정녕 아버지 하나님이 이기셨음을 증명하는 온전한 열매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12-21 오후 6:10:32 Posted
2012-03-24 오전 3:29:0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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