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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창세기 강해(61)  [창 2:15-17]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1.04.01
창세기 강해 예순한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아담이 피라미드를 어떻게 지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아담은 피라미드를 완공한 후 기쁨과 감격 속에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지요.

“아버지여, 귓가에 울리는 바람 소리에 아버지의 잔잔하신 음성이 담겨 있고, 바람결에서는 아버지의 숨결이 느껴지나이다. 바람의 흐름 속에도 우주 만물을 운행하시는 아버지의 뜻이 담겨 있으며 만물을 운용하시는 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지나이다.
아버지께서 만물들 하나하나를 지으실 때에 정녕 그 마음을 그 안에 담으심으로 아버지를 나타내셨나이다. 산천초목의 호흡 속에서도 아버지의 숨결이 느껴지오며, 바람소리 속에서도 아버지의 음성이 느껴지나이다. 아버지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시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지만 전지전능하신 아버지께서 창조해 놓으신 만물 속에서 아버지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아버지의 위대하심을 느끼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기쁨이 되며 아버지의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이 아들을 탄생시키셨나이다. 이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입고 아버지의 은택을 입어 만물 중에 높이 세워졌나니 아버지여 이 아들의 입술을 통하여 찬양과 영광을 받으옵소서.

아버지께서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지으시사 아버지의 사랑을 펼치시고 그 마음을 곳곳마다 담아 놓으셨나이다. 이 아들로 아버지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게 지으셨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능력으로 이 아들을 탄생시키셨고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나이다. 그리하여 이 아들이 많은 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건조물을 세워 아버지를 기리며 이 아들에게 주신 권세를 기리나이다. 우주 만물 안에 나타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아버지의 모든 마음을 실어 이곳에 지은 바 되었으니 아버지여 받으옵소서.

이 아름다운 건조물이 아버지의 마음에 위로가 되며 이를 지은 이 아들의 권세와 위엄도 높이 드리우나이다. 아버지께서 이 아들을 탄생시키셨고, 이것을 지을 수 있는 능력도 주셨음이나니 이것이 오직 아버지의 기쁨이 되며 아버지의 위로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 앞에는 이것이 아주 작은 건조물에 불과하오나 이를 통해서 아버지의 이름이 더욱 영화롭게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버지께서 주신 그 권능을 이곳에 드러냄으로 만물이 아버지께서 탄생시킨 이 아들 앞에 무릎을 꿇나이다. 이 아들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나이다. 아버지여, 감사하나이다. 아버지여, 모든 영광 받으옵소서. 이 아들을 통하여 모든 영광을 받으옵소서. 아버지여, 기쁨과 위로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찬양 시 안에는 아버지를 향한 감사와 사랑, 기쁨이 잘 담겨 있습니다. ‘아담이 인간 경작을 받기 전에는 상대성을 체험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과 기쁨을 느꼈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닮아 악이 없고 선한 마음을 가진 아담에게 어찌 감사와 사랑과 기쁨이 없었겠습니까? 물론 인간 경작을 받은 우리가 느끼는 감사와 사랑과 기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지만 아담도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았고 사랑을 고백할 줄도 알았습니다.

더욱이 이때는 아담이 피라미드를 지은 직후이니 그 자체로 얼마나 감격에 겨웠겠습니까? 아담은 자신이 지은 피라미드를 보면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비유를 들면 사람들도 어떤 어려운 과제를 해결한 후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결과물을 보면서 감동 속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처럼 아담도 피라미드를 지은 후에 아버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지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권세와 능력과 지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큰 감동과 감격이 밀려왔지요. 더욱이 공룡의 배반 사건을 계기로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더해진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지 않으시고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지금 자신이 누리는 모든 권세와 능력이 아버지께로부터 왔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담은 피라미드를 지어 놓고 감동과 감격에 겨워 아버지께 찬양 시로 영광 돌렸던 것입니다. 찬양 시에는 어찌하든 아버지의 기쁨과 위로가 되기 원하는 아담의 마음이 담겨 있지요.

그런데 찬양 시 곳곳에 아담 자신의 이름도 영화롭게 되었음을 드러내는 표현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아름다운 건조물을 통해 아버지의 마음에 위로가 되며, 이를 지은 이 아들의 권세와 위엄도 높이 드리우나이다” 또한 “아버지께서 탄생시킨 이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주신 그 권능을 이곳에 드러냄으로 만물이 이 아들 앞에 무릎을 꿇나이다. 이 아들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나이다”

이런 표현들을 보면 아담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권세와 위엄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받았음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지요. 쉽게 말해서 아담에게 약간 ‘으쓱’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담을 전혀 나무라지 않으셨지요. 이 땅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자로서 마땅히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아담이 아버지의 선한 마음을 다 깨우치거나 마음에 담은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지요.

그러나 당시의 아담으로서는 이런 표현이 자신을 드러내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쁨과 위로를 드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피라미드를 지었다 여겼지요. 이것도 맞는 말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찬양받기 원하시고, 영광받기 원하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으신 목적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피라미드를 지은 후에도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 시를 지어 올렸지요.
그런데 그 안에 담긴 감사와 사랑의 깊이가 좀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 경작을 받지 못한 마음의 한계입니다. 인간 경작을 통해 상대성을 체험하면 정녕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와 사랑이 우러나지요.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앞에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는 마음이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정녕 받기 원하시는 감사와 찬양은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도님들이 인간 경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 경작을 통해서만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참마음을 이룬 성도들이 찬양과 경배를 올리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기뻐하시지요. 참 자녀가 나오기까지 오랜 세월 인내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람을 느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여러 곳에서 피라미드 외에도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뛰어나고 발달된 문명의 자취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명의 자취들은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이 역시 아담에 의한 것일까요?

앞으로 더 자세하게 설명이 되겠지만 아담이 불순종하여 이 땅으로 쫓겨난 후에도 지구와 에덴동산을 연결하는 영의 통로는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의 후손들은 아담이 이 땅으로 쫓겨난 후에도 이 땅을 왕래할 수가 있었지요. 단 이전보다는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오고갈 때에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지요. 아담이 에덴동산과 첫째 하늘 전부를 정복하고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범죄한 후에는 그 모든 권세를 잃고 지구로 내쫓겼지요.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의 ‘머리’를 여러 명 세우셔서 질서를 잡아가셨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정확한 규율을 주셨지요. 지구를 왕래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범위 안에서 가능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사람들이 지구에 내려왔을 때의 행동 지침도 정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에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규율을 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규율을 어긴 무리들도 생겨났지요. 그로 인해 파생된 일들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낳은 후손들이 이 땅을 왕래하는 가운데 남긴 흔적들이 많이 있지요. 오늘날 불가사의로 여겨지는 고대 문명의 유적들이 대부분 에덴동산 사람들의 흔적입니다.

처음에 에덴동산의 사람들이 이 땅으로 내려온 목적은 조상인 아담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목적은 흐려지고 점차 호기심 가운데 이 땅을 찾게 되었지요. 아담이 피라미드를 남겼듯, 그들도 이 땅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에덴동산 사람들의 지구 왕래는 노아 홍수 전까지 비교적 자유롭고 빈번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는 더 많은 제약이 따랐지요. 그럼에도 에덴동산의 사람들은 UFO를 타고 이 땅에 내려오면 곳곳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고 갔습니다. 바로 그 흔적들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지요.

예를 들어 페루의 나스카 지상화를 들 수 있습니다. 페루 남부 나스카 고원 320제곱킬로미터 대지 위에 200여 개의 기하학적 무늬와 30여개의 동물 형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 자료화면- 나스카 지상화) 그림들이 너무 커서 높은 곳에서 보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을 정도지요.

예를 들어 새 그림은 120미터에 이르며, 8킬로미터에 달하는 도형도 있지요. 원숭이 그림은 길이 122미터, 폭 91미터인데, 선 하나로 이어가며 그린 그림입니다. 또 거미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거미로서 아마존 열대 우림의 오지에만 살고 있는 ‘리치눌레이를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현미경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리치눌레이 거미의 생식기까지 그려져 있었지요.

또한 최근에는 인공위성으로 보지 않으면 식별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문양도 발견됐습니다. NASA(나사)의 자원 탐사용 인공위성 ‘랜드새트’가 나스카의 상공 900킬로미터 지점에서 촬영한 화상에 그 문양이 나타났지요.

이 거대한 도형은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비행기의 고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성층권 이상의 우주 공간에서 관측하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전체 길이는 무려 50킬로미터로 ‘화살표’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화살표는 정남쪽을 가리키고 있지요.(※ 자료화면- 거대 화살표 문양)

이 화살표는 산, 골짜기, 강을 넘어 대지 위에 곧바로 직선을 그리고 있기에 도무지 자연의 산물이라고 볼 수는 없고 명확하게 인공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아주 높은 고공에서 레이저광선 같은 고도의 기술을 사용해 지표의 토질을 미묘하게 변화시켜야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스카 고원은 너무 건조해서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불모지이기에 역사적으로 사람이 정착한 적이 없습니다. 원시 부족들이 이런 지상화를 그렸으리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지요. 학자들은 누가, 언제, 왜 그렸는지를 알 길이 없어서 당혹스러워할 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페루 원주민들은 나스카 지상화는 사람이 아닌 반신반인(半神半人)이 그렸다고 말합니다. 반신반인들은 몇천 년 전에 안데스 산맥 여기저기에도 여러 흔적을 남겨 놓았다고 하지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반신반인의 존재들은 바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낳은 후손들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낳은 후손들이 지구에 와서 남긴 흔적의 예를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미스터리 서클(크랍 서클)이지요. ‘미스터리 서클’이란 들판 한가운데에 수십 미터 이상의 원형 또는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농작물이 눌려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료화면)

1970년대 후반부터 주로 발견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매년 여러 건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현상의 특징은, 먼저 야간에 만들어지며 짧은 시간 내에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날씨, 지형, 자연조건과는 무관하게 발생하지요.

2009년 6월 3일에는 ‘잠자리’ 모양의 미스터리 서클이 영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 자료화면) 미스터리 서클의 생성 원인은 아직 세상에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간혹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미스터리 서클을 만든 경우도 있었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진짜 미스터리 서클과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농작물의 줄기가 완전히 꺾임으로 인해 곧 시들어서 죽었지요. 반면 진짜 미스터리 서클은 농작물의 꺾인 줄기 부분에 마디가 생겨서 휘어진 채로 계속 자랐습니다. (※ 자료화면)

에덴동산의 사람들은 이처럼 오늘날도 지구 곳곳에 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사람들과 관계된 내용은 앞으로도 다른 분야에서 설명이 나갈 것입니다.

본문 15절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고해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아담)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 말씀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구에서 만드신 후 둘째 하늘의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영의 지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진리의 지식으로 채워진 아담은 영적인 빛의 권세로 에덴동산은 물론 첫째 하늘도 다스리며 지켰지요.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무수한 후손을 얻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고도의 발달된 문명을 이뤘지요. 아담에게 있어서 지구는 이국적인 휴양지와 같았습니다. 특히 나일 강은 에덴동산의 생명수 강과 닮아서 아담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지요.

둘째 하늘 에덴동산에 사는 아담이 첫째 하늘의 지구를 왕래할 때에 이용한 교통수단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흔히 UFO라 부르는 비행체이지요. UFO는 에덴동산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교통수단입니다. 종류도 크기도 다양하지요.

아담이 에덴동산에 살며 후손을 낳고, 때론 지구를 왕래하며 지낸 세월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깁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있었던 일 중 큰 사건 두 가지를 소개해 드렸지요. 바로 한 가지는 공룡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피라미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공룡 사건을 다시 상고해 보겠습니다. 공룡은 아담을 가까이에서 돕는 그룹을 매우 부러워했지요. 그룹은 항상 아담과 동행했고 아담이 지구에 갈 때에도 공룡은 못 갔지만 그룹은 갔습니다.

이런 그룹에 대한 공룡의 부러움은 점차 커져서 급기야 사단의 역사를 받기에 이르렀지요. ‘우리도 그룹처럼 될 수 있다. 그 열쇠는 바로 선악과를 먹는 것이다’ 공룡의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공룡은 선악과를 먹게 해 달라고 아담에게 청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요. ‘선악과는 공룡은 물론 아담 자신에게도 금지된 것이라’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아담이 잘 타일렀는데도 공룡은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룹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크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아담이 피라미드 세울 곳을 물색하기 위해 에덴동산의 모든 그룹을 데리고 지구로 간 날 공룡은 선악과를 향해 나아갔지요. 원래 그룹의 일부가 선악과 나무가 있는 에덴동산 중앙 지역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날은 그 그룹들까지 지구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룡들이 선악과에 이르기 전 하나님께 발각되었고, 모두 함께 지구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공룡 사건을 다시 되짚어 본 것은 에덴동산의 중앙에 있는 선악과에 대해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명하신 말씀이 바로 본문 16-17절에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쉽게 ‘선악과’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 그러니까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악과가 ‘먹으면 죽는 과일’이라면 아예 에덴동산에서 나지 않도록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비유를 들면 어린아이들이 성장 과정 중에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입으로 가져가는 때가 있습니다. 음식물이든 아니든, 지저분하든 깨끗하든 무조건 입으로 가져가는 때가 있지요. 그래서 특정 성분이 들어 있는 세제나 의약품의 설명서에 보면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라’는 경고문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모르고 만지거나 먹는 경우에 인체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이것을 먹으면 절대로 안 된다” 말해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은 위험한 물질을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놓거나 아예 집 안에서 치워 버립니다. 자녀를 사랑하기에 해를 입지 않도록 처음부터 원인을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성도님들도 집에서 그렇게 하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아담을 창조하셨고, 영의 지식으로 양육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먹으면 죽게 되는 선악과를 에덴동산의 중앙에 두시고 먹지 말라고 명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신 이유’ 이 질문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품어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고 두셨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앞으로 될 일을 모르시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앞으로 될 일을 정확하게 아십니다. 이렇게 앞으로 될 일을 잘 아시면서도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는 아담이 피라미드를 완공한 후 하나님께 올린 찬송 시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담긴 감사와 사랑의 깊이가 인간 경작을 받은 사람들과는 달랐지요. 인간 경작을 받지 못한 마음의 한계입니다.

사람은 인간 경작을 받아야만 진정한 감사, 변함없는 사랑을 아버지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말씀하셨지요.

그러므로 성도님들! 경작을 받는 동안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설령 슬픈 일이나 힘든 일이 생겨도 진정한 감사의 기도, 찬양을 올려 보십시오. 그 향을 받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더 큰 감사의 조건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더 진한 감사의 향을 올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1-04-04 오후 9:30:07 Posted
2011-04-18 오전 9:01:2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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