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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충성 2012년 임직예배 [고전 4: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2.09.23
오늘은 교회적으로도 매우 복된 날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목사님이나 장로님, 권사님들이 한 분 한 분 나올 때마다 교회는 기둥 같은 일꾼들을 얻어 더욱 든든히 서게 되지요. 이처럼 귀한 여러분에게 오늘 증거해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충성’입니다.

1. 육적인 충성과 영적인 충성

임직하시는 여러분에게 있어 지난 며칠간은 특별히 더욱 감동적인 날들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처음 만난 은혜의 순간, 눈물의 간구 속에 이겨 온 연단의 날들, 또 응답과 축복으로 감사했던 순간들, 지난 세월을 상고해 보면서 눈물 흘린 분들도 많으셨겠지요. 받은바 은혜와 사랑을 갚고자 열심히 충성했던 하루 하루를 떠올리며 깊은 감사의 고백도 올리셨을 것입니다. 감동과 설렘 속에, 귀한 직분을 얻게 되니 앞으로는 더욱 충성하리라는 뜨거운 다짐으로 이 자리에 임하셨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2절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충성은, 육적인 충성이 아니라 영적인 충성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크고 중요한 사명을 많이 맡고, 많은 시간과 물질을 헌신하여 드린다 해서 다 영적인 충성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이 담겨 있어야 하지요.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성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충성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좋아 보이는 일에는 너무나 열정적인 반면 관심 없는 일은 비협조적이거나 적당히 하지요. 이는 육적인 충성입니다. 내가 원하는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된다면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 섬기는 것이 영적인 충성이지요.

이 시간 임직하시는 여러분은 지금까지 나름대로 충성해 오셨기에 오늘같이 복된 날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증거되는 말씀을 통해, 각자의 충성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후로는 매순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 충성을 이루어 착하고 충성된 아들, 딸이라 인정받는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충성을 하려면

첫째, 영적인 충성을 하려면 화평해야 합니다

본 교회에서 사명을 감당해 오신 분들이라면 화평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지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주의 종이나 일꾼들 중에는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과 열정이 있지만 화평을 이루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여 주변 사람들과 불화를 일으키지요.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큰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화평이 깨진 곳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고 오히려 사단의 송사거리가 만들어지지요. 결국 영적인 열매가 나지 않습니다.

오늘 임직하시는 분들의 믿음이라면 드러나게 다투며 화평을 깨는 일은 당연히 없겠지요.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거나 상처를 주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자기의 유익에 맞추려 하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 상대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의견만 옳고 좋다고 고집하는 것, 자신이 믿음 있다 해서, 상대의 믿음에 맞추지 못하고 강요함으로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화평을 깨는 이유가 됩니다.

내가 계획한 대로 잘 감당해서 멋지게 열매 내어 보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하나 되어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는 자세가 되어야 하지요. 더불어 화평을 이룸에 있어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장 먼저 화평을 이루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과 화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자와도 화평해야 하지요.

이는 곧 죄의 담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디도서 1장 등 곳곳에 강조하기를, 감독이나, 장로, 집사 등의 직분을 얻으려면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했습니다. 어둠과 짝하고 죄 가운데 산다면 직분을 받아 수고하고 봉사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 봉사를 기뻐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 충성을 “영적인 충성”이라 인정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이루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마음의 할례, 곧 성결이라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결을 이루어야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고, 모든 사람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지요.

둘째, 영적인 충성을 하려면 섬겨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직분이 커질수록 섬김을 더 받으려 하지만 교회 안에서의 직분은 섬기는 직분입니다. 집사보다는 장로가, 양 떼보다는 주의 종이 더 낮아지고 섬겨야 할 의무가 있지요.

“내가 이제 목사가 되었으니까 전도사 때와는 대우가 달라지겠지”, “내가 이제 장로인데, 권사인데 성도들이 내 의견을 더 존중해 주겠지.” 이런 마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여러분의 직분이 높아질수록 성도님들은 여러분을 더 섬겨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럴수록 여러분은 더욱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혹여 마음이 높아지지 않도록, 섬김 받기에 익숙해지거나 당연히 여기지 않도록 낮아진 마음을 지켜야 하지요. “희생할 일이 있어도 내가 먼저 하고 헌신할 일이 있어도 내가 먼저 하리라” 하는 마음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하물며 질서상 아래의 일꾼이나 양 떼에게 자신의 말에 순종하기를 강요하거나, 순종하지 않는 상대에게 불편한 마음을 갖는다면 머리 된 일꾼으로서 심히 부끄러운 일이지요.

베드로전서 5장 3절에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했습니다. 내 생각이 옳은 것 같아도 무조건 상대가 나에게 맞추도록 명령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의 믿음과 상황을 고려하여 진리를 행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생명을 낳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지요.

여기서 한 가지 더 주의하실 점이 있는데, 성도들을 위하는 마음이 자기적인 의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 어떤 부서에서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지 못해 성도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합시다. 이 때 성도들을 편하게 해 주려고 건의하고 앞장서서 개선해 보려는 것은 좋지요. 그러나 관련된 부서를 판단 정죄하여 “왜 그 정도밖에 못하느냐,” “여러분은 왜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느냐” 하고 찌르는 것은 덕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예로, 주차장이나 편의시설들이 부족할 때 일꾼들은 성도들보다 더 양보하여 섬기지요. 나는 섬기는 마음으로 일찍 와서 먼 곳에 주차했는데 다른 일꾼이 늦게 와서 교회 안이나 가까운 자리에 편히 주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저 사람도 일꾼이고 진리를 알 만한 사람인데 왜 섬기지 않고 자기 유익을 좇는가” 하고 불편해한다면 선한 마음이 아니지요. 다른 누구를 바라볼 것 없이 내 자신이 먼저 기쁨으로 섬기면 됩니다.

섬김의 마음을 이루라는 말씀은, 단지 성도들만 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윗분이든, 동역자들이든,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적용되어야 하지요. 이처럼 섬김으로 사명을 감당할 때 영적인 충성이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영적인 충성을 하려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교회의 사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들로서, 온 세상에 이 비밀을 선포해야 하지요. 또한 참 자녀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대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말과 혀로만 아니라 사랑으로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복음과 성결을 외치되 말로만이 아니라 지극한 사랑으로 양 떼를 돌보았습니다. 자신이 당한 핍박과 환난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염려 때문에 더 많이 기도했지요. 연약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권면하며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에게 죄에서 떠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끊임없이 호소했지요. 이런 사랑의 고백이 성경 곳곳에 나옵니다.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2장 8절에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했지요.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너무 사랑하기에 복음으로만 아니라 생명까지 주기를 즐겨한다 고백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사랑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얼마나 간절히 구하십니까? 영혼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며 돌아보는지요? 죄 가운데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내어줄 수 있겠는지요?

2010년 이후로는 많은 분들이 고백합니다. “범죄한 영혼들을 다시 살리며 회개한 영혼들을 지키기 위해 목자께서 아버지 앞에 얼마나 애타게 기도하시는지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어떻게 매달리시는지 이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겠습니다.” 하시지요. 여러분에게도 이 마음이 임하여 죄에서 온전히 떠날 뿐 아니라, 함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으로 외치는 분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임직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저와 여러분을 독생자 예수님의 보혈로 사셨습니다. 흉악한 죄인이었던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귀한 사명과 영혼들을 맡겨 주셨지요.

인간 경작의 긴 세월을 오래 참고 기다리신 아버지께서, 이제 무르익은 곡식단을 추수할 충성된 일꾼들을 찾으십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하며 애태우고 계십니다. 그 간절한 기대와 소망에 부끄럽지 않게 온전하고 거룩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화평하고 섬기며 사랑하는 일꾼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믿고 맡기실 수 있는 충성된 사명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장차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의 진주문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때, 착하고 충성된 내 아들이라 딸이라 칭찬 듣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09-24 오후 10:30:12 Posted
2012-11-06 오후 7:24:0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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