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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축복권과 저주권(1)  [마 16:19]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4.01.12
오늘은 민수기 22~24장에 나오는 모압 왕 발락과 발람 사건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모세가 요단 동편 아모리 땅을 정복하자 모압 왕 발락이 심히 두려워하여 당시 유명한 술사인 발람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달라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마치 발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축복권과 저주권을 받은 사람처럼 여겨질 수 있는데, 과연 발람은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발람 사건의 역사적 배경

모세 선지자의 인도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1세대들은 많은 권능을 보고도 참 믿음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고 조금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니 결국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간 광야에서 연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출애굽 2세대는 1세대와 달리 순종의 모습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지요. 그 과정 중에 가나안 근처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에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에 대해 겁을 먹고 심히 두려워하며 번민하였지요(민 22:3). 이스라엘이 앞서 여러 나라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발락 왕은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을 통해 발람에게 예물을 보내며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여 자신들이 승리하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발람은 하나님이 택정하시거나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정하여 사용하신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필요에 따라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발락 왕은 그가 축복권과 저주권이 있는 줄 오해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발람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이스라엘) 복을 받은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 22:12).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모압 왕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하지만 모압 왕 발락은 다시 더 높은 귀족들을 발람에게 보냅니다. 그리고는 그를 크게 존귀케 하고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겠으니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요청하지요. 그러자 발람의 마음이 현혹되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뜻이 그들과 가지도 말고 저주하지도 말라 하신 것을 알면서도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고 하며 여운을 남깁니다(민 22:19). 발람의 마음에 사심과 욕심이 가득하니 두 번째 물질 공세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입니다.


민수기 22장 20절을 보면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하십니다. 이미 발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의 자유 의지에 맡기십니다. 설령 지금 하나님께서 발람을 막으신다 해도 나중에 발락의 사자들이 더 큰 재물과 명예를 가지고 와서 발람을 유혹하면 그는 또다시 마음이 흔들릴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 나귀를 통해 깨우쳐 주셨는데도 결국 범죄한 발람

하나님은 우리를 억지로 순종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얼마든지 억지로라도 막으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공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좇은 발람은 결국 발락에게로 향하고 맙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사자를 보내어 발람의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해 깨우쳐 주십니다. 민수기 22장 23~27절에 보면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의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했습니다.


발람이 사심과 욕심으로 눈이 가리니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눈을 열어 여호와의 사자를 보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왔다” 했지요. 그러자 발람은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고백합니다(민 22:34).


이렇게 여호와의 사자는 발람을 훈계하고 깨우쳐 주면서도 그 길을 막지 않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하며 경계의 말씀을 주십니다. 결국 죽음의 위협까지 느낀 발람은 발락 왕의 귀족들과 같이 모압으로 갔고, 발락 왕은 그를 영접하여 극진히 대접하지요.


발람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법을 알았기에 그 뜻에 따라 일곱 단을 세우고 수양과 수송아지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하시는데 이스라엘에 저주가 아닌 축복의 말씀이 나옵니다. 민수기 24장을 보면 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되자 발락 왕은 발람에게 돌아가라고 합니다. 발람은 마지막으로 모압과 이스라엘 주변나라에 대한 예언을 하고 돌아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25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땅에서 행음하는 범죄가 나옵니다. 이 범죄는 발람의 궤계로 인한 것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민 31:16 ; 계 2:14). 발람이 모압 왕 발락에게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는 방법을 알려 줘서 엄청난 일을 꾸몄던 것입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꾀어야 그들이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는지 알았기에 그것을 이용하여 악한 궤계를 썼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25장 1~3절에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말씀합니다.


우상을 섬기던 모압 사람들은 제사를 지낼 때, 제단 앞에 제물을 화려하게 차려 놓고는 여자들이 음란한 춤을 춥니다. 발람의 사주를 받은 모압 왕 발락은 이러한 자리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대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세월 광야 생활로 인해 지쳐 있었고, 단조로운 생활에만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압 여인들이 우상 앞에서 현란한 춤을 추며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니 결국 우상의 제물을 먹으며 이방 여인들과 행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이 알려 준대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악 가운데로 빠지게 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큰 징계를 받아 염병으로 이만 사천 명이 죽었습니다(민 25:9).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스라엘을 범죄로 이끈 발람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베드로후서 2장 15~16절에 보면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유다서 1장 11절에는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했습니다.


그리고 발람의 죽음에 대해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도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술사 발람도 칼날로 죽였었더라” 했습니다(수 13:22). 이렇게 성경은 발람을 선지자라 하지 않고 술사 곧 ‘술수를 잘 꾸미는 사람, 점술에 능통한 사람’이라 말씀합니다. 그러니 그의 최후가 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술사 발람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던 이유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발람은 진리의 사람도 순종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을까요? 발람은 영적인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길을 알았고 그런 기(氣)를 가진 자였습니다.


세상에서도 보면 신을 잘 접하는 기(氣)가 있는 사람이 있어 무당이 되기도 하지요. 귀신도 아무에게나 역사하여 무당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세계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역사합니다. 발람에게도 그런 기가 충분히 있었고 이런 기 속에 최고의 신인 하나님을 접하는 법을 깨우쳤고 그 방법대로 교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곧 성결되고 영, 온 영의 사람들과 교통하는 것과 발람의 교통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깊고 비밀된 것들도 교통하며 구하면 항상 응답을 받습니다. 하지만 발람은 그 교통함도 방법에 따라 구하여야 하고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것도 아니었으며, 깊고 비밀한 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는데 발람은 보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항상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아브라함 선지자는 어떠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 18:17) 하시며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대해서도 미리 알려 주셨지요. 또한 모세의 경우는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 33:11),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민 12:8) 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그 기질 속에 영의 세계를 잘 접할 수 있었기에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통할 때 응답해 주신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은혜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기 속에서의 능력은 다양하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천재적인 음악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영재처럼 뛰어난 능력을 갖고 태어나기도 합니다. 바로 이렇게 영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질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진리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귀신이나 사단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 무당 같은 사람에게 복을 달라고 빌거나 앞일에 대해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복을 빌어 주거나 저주한다고 이것이 임하지는 않습니다. 용한 점집이 있고 무당이 잘 맞힌다고 해도 이는 단지 과거와 현재의 품은 마음을 맞힐 뿐입니다. 비진리의 사람, 어둠에 속한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지만 진리의 사람,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의 마음은 알 수도 없고 더 나아가 앞일 장래의 일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현재의 마음 상태나 상황을 미루어 앞일을 대충 맞히는 것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발람 사건을 통해 마음에 있는 비진리를 신속히 버려야 함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마음에 사심, 욕심, 비진리가 있는 한 하나님의 뜻을 명백히 안다 해도 쉽게 불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 안에 내재된 죄성과 악의 모양을 버리며 신속히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하나님께 구하면 언제든 응답받으며 밝히 교통을 이루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드립니다.

2014-01-13 오후 10:35:34 Posted
2014-01-24 오후 10:00:5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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