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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축복권과 저주권(2)  [마 16:19]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4.01.19
지난 시간에는 민수기 22~24장을 중심으로 발람 사건의 역사적 배경과 신을 접할 수 있는 기질이 있었던 발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성경에 나오는 신접한 사건들과 하나님께서 악한 발람을 사용하신 이유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성경 상에 나오는 신접한 사건들

레위기 20장 6절에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박수란 신접한 남자를 말합니다. 이 말씀은 악한 영 곧 어둠에 신접하는 자가 있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따른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지요.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오늘의 운세나 일 년을 두고 점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재미로라도 행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생사화복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더라도 점치고 사술을 행하며 박수나 신접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악한 왕들은 이런 것들을 추종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행위를 좇고 믿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므로 결국 멸망을 향해 갔습니다. 그런데 성경 상에 특이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6절에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바울과 그의 일행들을 보고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소리치면서 쫓아다녔지요. 이에 바울이 그 귀신을 쫓아내자 즉시 나갔습니다.


이처럼 신접한 사람들 중에는 악한 영의 세계와 접하여 있지만 빛의 세계를 알거나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보다 더 힘이 세고 밝은 빛의 영역이 있음을 느끼기는 하지만 두려움으로 느낍니다. 그를 사주하는 귀신이 빛의 영역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게 가리우기 때문이지요.


또한 사주하는 악한 영은 이용하는 사람들을 놓아 주지 않으며, 그 사람이 빠져나오려 하면 저주하며 괴로움과 고통을 주기에 자신의 의지로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제단에서는 무당이나 악한 영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 목자를 보고 밝은 빛과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아보며, 목자의 큰 권능으로 악한 영의 세계에서 놓임 받은 경우도 많습니다.


구약에도 신접한 사람에 대해 특이한 사건이 나옵니다. 사무엘상 28장에 사울 왕의 요청으로 신접한 자를 통해 죽은 사무엘의 혼을 끌어 올린 사건이지요. 사울 왕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며 악을 행해 나가니 하나님과 어떤 교통도 이룰 수 없게 됩니다. 더구나 사무엘 선지자가 소천한 후에는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음은 물론 어떤 도우심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28장 6절에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때에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일이 생기니 사울은 ‘전쟁에서 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렵고 답답한 마음에 신접한 여인을 찾습니다. 신접한 여인이란 하나님의 신에 접한 것이 아닌 악한 영의 사주를 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무엘상 28장 11절에 보면 “여인이 가로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사울이 가로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무엘의 혼을 끌어낼 수 있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사무엘이 전에 입던 옷을 입고 나타났고(삼상 28:14) 사울 왕의 죽음과 전쟁에서 패할 것을 예언한 것(삼상 28:19)을 보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8장 13절에 보면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했지요. 그러면 사무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대선지자인데 왜 땅에서 올라왔다고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구원받은 이들이라 해도 윗음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니 신접한 여인이 사울의 요청으로 사무엘 선지자를 부를 때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 것입니다.


또한 사무엘은 구원받은 선지자이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이기에 아직 영이 살아난 상태가 아니지요. 그래서 사무엘의 혼을 불러 올렸다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후에야 영혼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통해 땅에서 사무엘 선지자를 불러 올렸지만 친히 볼 수는 없었습니다. 신접한 여인이 사무엘의 모습을 대신 전해 주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질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이 죽을 것을 말하였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신을 접할 수 있는 기질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의 세계는 두 길이 있어 하나님께 속한 빛의 세계에 접하거나 악한 세계인 어둠의 세력에 접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발람도 신을 접할 수 있는 기질 속에 참 신 하나님과 교통하는 길을 알아 그 방법대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발람은 불순종과 탐심이 있었기에 성결한 사람처럼 밝히 교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악한 발람을 사용하신 이유

1)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시간을 보내면서 모세 선지자의 축복권과 저주권도 체험하였습니다. 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지만 온전히 성결되지 못하니 그 마음에 있는 죄성을 볼 수 있도록 발람을 허락하신 것이지요. 발람의 궤계로 발락 왕은 모압의 제사에 이스라엘 백성을 초대하여 음행하며 우상을 숭배하게 하였지요. 이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아직도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악이 있었기에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궤계를 사용하시거나 선한 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음과 그들의 악을 드러내고 징계하실 수는 없지요. 그러니 악한 자 발락과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의 악이 드러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악이 얼마나 컸는지 음행하며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알면서도 결국 불순종할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 더 깊이 각인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깨우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사건을 통해 신앙생활을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마음 안에 죄악이 있는데도 깨우치지 못하기도 했고,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셔도 ‘나는 그런 악한 마음이 없다’ 생각하며 버리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악한 사람들의 미혹이 오니 그 마음 안에 있는 간음과 욕심, 사심이 드러나서 범죄하고 말았지요. 그제야 ‘내 안에 이런 악이 있었구나.’ 하고 인정하며 버리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신속히 변화되는 성도들은 말씀을 들으며 자신의 깊이 내재된 악을 발견하고 인정하여 버리기 위해 노력하니 시험에 들거나 심한 연단을 받지 않고도 빠르게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악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만 사용하시고 은혜 주시는 분이 아니라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모하고 구할 때 응답하시고 은혜 주시는 분입니다. 설사 나중에 변개할 것을 아신다고 해도 지금 열심히 하는 것을 모른 척 하시고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구할 때 누구에게나 은혜와 기회를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또 은혜와 기회를 주시며 진정 변화되기를 바라시지요.


이는 사울 왕을 사용하신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합한 다윗 왕을 세우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사울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이는 사울에게도 은혜와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겸손한 것처럼 보였던 사울이 왕이 되면 변질되어 불순종하고 교만할 것을 아시기에 기회도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은혜를 주시며 변화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또한 앞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정한 변화와 성결을 원하시기에 그 내재되어 있는 악을 드러내시는데 발람을 사용하신 것과 같이, 사울 왕을 통해 악과 불순종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많은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신 은혜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울을 통해서 다윗을 연단하여 큰 그릇으로 만드셨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 왕이 돌이키기를 항상 바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통해 죽은 사무엘을 부를 때도 허락하시며 사울의 마지막 죽음까지 예언케 하시지요. 발람이 영계를 잘 접하는 기질 속에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을 알아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교통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악한 자를 그냥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변화될 수 있는 많은 은혜와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 할지라도 돌이켜 진리 안에 살기를 바라시지요(마 5:45 ; 딤전 2:4). 그러니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그 사랑과 권능을 보이시며 언제든 많은 은혜와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어떠합니까? 목자를 통해 나타나는 권능과 희생, 사랑은 선한 사람들 순종 잘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은혜가 아니지요. 성결을 사모하고 목자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만 기회를 주고자 했다면 목자의 고통은 이미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짐짓 죄를 짓고 사망으로 가며 불순종으로 살았던 주의 종, 일꾼, 성도들을 변화시켜 구원은 물론 더 좋은 천국으로 이끄시고자 하신 사랑이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목자는 자신의 몸을 희생하시며 공의를 채워 악한 자들도 변화될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십니다. 우리 성도는 물론 더 나아가 교계와 세상을 향해서도 구원의 문을 넓히시고자 목자의 희생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악한 사람들을 버리고자 하신 것이 아닌 살리고자 하신 아버지의 마음이 목자의 사랑과 희생으로 나타나 변화의 기회를 만들고 계십니다. 그러니 이 은혜의 기회를 붙들어 더 신속히 변화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발람이나 사울 왕과 같은 악이 있는 사람에게도 은혜와 기회를 주셔서 변화되기를 바라시는 분이시지요. 하지만 발람은 하나님과 교통도 하고 그 뜻도 알았으면서 자신의 사심과 탐심에 눈이 가리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와 감동을 주셨는지요? 우리의 믿음으로 치료받고 기사와 표적, 권능을 체험한 것이 아닌 목자를 통해 펼치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었지요. 우리도 자신의 악으로 인해 불순종의 길로 행하였던 지난날의 모습이었지만 또 은혜와 기회를 주셔서 이제는 새로워진 만민의 성도들이 되게 하셨지요. 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이제는 더 신속히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2014-01-20 오후 7:46:41 Posted
2014-01-24 오후 10:00:5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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