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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자기 합리화  [롬7:18-19]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4.08.17
합리화란 잘못된 견해나 행동을 그럴듯한 이유로 정당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합리화는 변화가 더딘 사람, 악을 버리기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자신의 악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며 정당화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제자리에 머무르거나 더디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에는 ‘자기’라는 것이 어떻게 형성되며, 자기 합리화란 무엇인지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1. 악의 시작과 형성 과정

사람은 부모의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탄생합니다. 이 정자와 난자 안에는 생명만 담긴 것이 아니라 부모의 외모나 성품, 식성이나 취향도 담겨 있지요. 그래서 자녀가 태어나 성장하는 것을 보면 부모의 외모나 성격을 그대로 닮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정자, 난자 안에는 죄성도 담겨 있습니다. 이를 원죄라 하는데 아직 세상 죄악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다른 아이가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싫어하고 뺏으려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 아이만 악한 것이 아니라 빼앗기고 속상해서 우는 아이, 자기는 힘이 없으니 엄마에게 빼앗아 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 등 각기 다른 성격 안에 크고 작은 악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을 가지고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악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악을 빨리 버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악을 가지고 태어난 것뿐만 아니라 갓난아이가 성장하듯이 악도 함께 성장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사람의 악은 어떻게 성장하는 것일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 보고 듣고 느끼는 일련의 행동들이 마음 안에 악을 키워 나갑니다. 또 가정, 친구, 학교, 세상이라는 환경들을 통하여 ‘자기’를 만들어갑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부모님께 나름대로 선한 가르침을 받고 학교에서 도덕, 윤리를 배웠다 해도 실제 삶에서는 혈기와 다툼, 미움과 불화, 거짓과 욕심을 더 많이 보고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마음 안에 선의 가르침이 담기기보다 죄악으로 쉽게 물들어 버렸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죄가 죄인지 악이 악인지 모르고 물들었다는 것입니다. 악을 악이 아닌 것처럼,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것이지요.

2. 악을 악이라 느끼지 못하며 자기를 만들어 온 사례

자녀가 밖에서 맞고 들어오면 요즘 세상 부모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때린 친구가 누군지 가서 따져 묻자 하며 “너 누가 때렸어? 거기 빨리 찾아가자.”며 화를 내는 부모가 대다수입니다. 상대 아이도 맞았을 수 있다 생각하고 진리로 분별해 주어야 하는데 보통 부모님들은 “왜 맞았어? 바보야, 너도 때려!” 하며 감정을 표출하고 악을 발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때 자녀는 ‘맞으면 바보구나! 나도 때려야 하는구나.’라고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칫 폭력적이 될 수도 있지요. 이런 비진리 가운데 성장하니 악을 악이라 생각지 않지요. 선한 행함을 보면서 선이라고 느끼지 않고 희생과 양보하는 사람을 바보 같다고 인식합니다.
이처럼 악에 대한 느낌도 세월이 흐르면서 전에는 죄였는데 지금은 아닌 것으로 달라졌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지요. 요즘은 감정을 참으면 병이 된다고 하면서 참지 말고 표현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감정을 참지 않고 표출하면 건강해지고 가정이 행복하고 사회가 평안할 수 있을까요? 점점 가정과 사회의 불안이 가중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참음은 이를 악물고 눌러 참는 것이 아닌 눌러 참는 악한 감정도 버리므로 참을 것이 없는 온전한 참음을 말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선의 가르침을 주는 곳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 속에 태어나 가르침 받고 그 안에서 ‘자기’라는 나를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라고 하는 존재가 얼마나 죄악으로 물들어 있는지를 정확히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마음과 생각, 양심의 대부분이 비진리로 채워져 있음을 깨닫고 인정할 때 신속히 변화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안에 악이 언제부터 자리 잡았고 어떻게 나와 함께 성장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변화되기 전에는 내 자신과 악이 결합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육신’입니다. 보이는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몸이 결합된 ‘육신’을 말합니다. 우리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죄악으로 물든 세상 속에서 성장하며 죄악으로 물들었습니다. 그러니 내 육신에 선한 것이 없는 것이지요(롬 7:18).
이렇게 죄악으로 물들었던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순종하는 만큼 비진리로 가득한 마음에 선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원래 가지고 있던 비진리, 곧 악을 벗어내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만큼 선과 진리의 마음으로 채워져 성결되고 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 선과 진리를 좇고자 하는 마음과 원래 가지고 있던 악이 서로 이기려고 다투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선을 좇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나 그 마음과 함께 ‘육신’이라는 자신의 근본의 악이 있기에 단순히 ‘내가 변화되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조금 노력한다고 쉽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으로 들어가기까지는 내 안에 선을 좇고자 하는 마음과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의 싸움이 계속됩니다. 그런 싸움에서 힘들게 느낄 때가 있고, 포기하거나 멈추려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데 악이 아니라고 자꾸 변호하는 것이 육의 속성이구나 인정하고 결코 포기하거나 멈추지 말고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3. 악을 버리는 데 방해가 되는 ‘자기 합리화’

자기 합리화의 대표적인 것은 이유를 대는 것과 핑계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설명드렸습니다. 또 다른 합리화의 모습은 자기의 악을 찾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앞서 악이 우리 자신과 함께 태어나 성장하며 같이 살아왔기에 악을 악이라 생각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리를 안다 하면서도 자신의 악에 대해서는 합리화하게 되고 악이라 인정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자기를 합리화하는 사람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명백히 악이고 비진리인데 자신은 자기 악에 대해 “아, 그거 아니에요.” 하고 정당화함으로 아예 악으로 여기지 않는다거나 악을 찾아내지 않는 모습도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는 초신자도 아니요, 많은 말씀을 들었고 악을 버리기 위해 기도도 하는데 자기의 악은 정확히 찾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악이 아니라 생각하며 살았고 그렇게 살면 내게 유익이 되고 편하니 자신의 악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합리화”를 이루는 것이지요. 이는 악을 미워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는 모습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4. 자기 합리화의 예

1) 기쁨이 없는 사람
가정과 환경도 좋지 않았고 부모님의 성품도 부정적이기 때문에 자기도 그렇게 물들어 왔습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있었고 불평, 원망도 많아 얼굴에는 기쁨도 없습니다. 삶에 만족이나 감사도 없습니다. 그런 삶이 습관이 되어 있으니 자신에게 기쁨이 없는 것도 찾지 못합니다. 누군가로부터 기뻐하라고 권면을 받아도 “아니에요. 저도 기뻐요.” 하지만 얼굴에 기쁨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변화되려면 기쁨을 잃게 하는 요인들을 찾아 악이라 인정하고 버려야 합니다. 불평 원망을 찾아서 감사와 칭찬으로, 부정적인 사고를 긍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바꿔야 하며, 기쁨이 넘치는 사람의 얼굴과 말, 행동 하나하나를 닮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2) 비교하며 낙심하는 사람
성장하며 형제나 친구들과 비교하니 눈치 보며 주눅 드는 성격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자신이 부족하다 느끼며 힘들어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이것이 악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변화되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려면 자신의 마음에 있는 악을 정확히 찾아내야 합니다.
‘상대와 비교하면 안 된다. 낙심하면 안 된다. 시기 질투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들어서 악인 줄 알았는데 자기가 그렇게 비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 나는 그게 성격이야, 나는 그냥 그렇게 살아왔어.’라고 여전히 자기 합리화하는 모습을 찾아내 버려야 합니다. 만일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탓하며 변호하고 있으면 아무리 기도한다 할지라도 변화될 수 없습니다.

3) 자기중심적으로 살아 온 사람
내가 좋은 것을 상대에게 강요하고 자기 의견, 생각이 옳다 여기며 남의 말과 입장은 배려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내 의견에 상대가 동조하지 않으면 불편했고 싫은 것도 불편한 것도 많습니다. 이런 성격으로 굳어져 버리니 이것이 자기 의와 틀이며 자신이 얼마나 강하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했는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았다면 ‘내가 내 중심적인 모습 속에서 남의 말을 듣지 않았구나. 남을 너무나 힘들게 했구나.’ 하고 깊이 있게 자기를 성찰하며 하나하나의 악을 다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이 있을 때만이 내가 악에 대해서 안 것이고 악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전히 “나는 그런 성격이고요. 내 부모님도 그랬어요.”라고 자기를 덮어 버린다면 변화되기 어렵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악을 발견했다면 어떤 이유나 변명도 대지 말고 내가 이렇게 심히 악하구나 인정하고 버릴 때까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반대로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사람을 닮아 희생과 헌신, 배려, 섬김 등의 선을 행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와 결합된 악을 미워하고 쉽게 버리려면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날마다 죽어져야 합니다(고전 15:31). 자신의 악을 정확히 찾아내고 어떤 이유, 변명도 없이 자신을 인정하고 불같이 기도하며 선을 행하면 누구나 변화될 수 있습니다. 더 신속히 변화되어 받은 은혜와 사랑에 열매로 보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14-08-18 오후 11:33:26 Posted
2014-09-11 오전 4:53:0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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