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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악을 미워하는 것(4)  [잠 8:13]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4.09.28
지난 시간에는 믿음의 반석에 서지 못하는 악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악이 얼마나 무익하며 나쁜지 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악의 모양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신앙생활을 힘들게 하는 마음의 악을 어떻게 신속히 버릴 수 있는지를 살펴본 후 ‘미움, 시기, 질투’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신앙생활이 힘들고 지치는 이유

성도님들은 우리의 삶이 이 땅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세계인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확실히 믿습니다. 또 믿음의 분량대로 천국의 처소가 구분되기에 변화되려고, 더 큰 믿음의 분량으로 성장하기 위해 힘써 노력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변화되는 것이, 믿음의 성장을 이루는 것이 무거운 짐과 같고 힘든 숙제같이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빨리 변화되어야 하는데, 믿음의 분량을 높여야 하는데, 반석으로 영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왜 이렇게 더딘가?’ 생각하며 그에 따르는 수고와 노력이 힘들게 느껴집니까? 변화되기 위해 힘썼다고 생각했는데 믿음의 분량을 받지 못하거나 기대한 것에 비해 믿음의 분량이 낮을 때 지치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낙심과 지쳐 버린 자신의 마음을 포장하여 “나도 목자의 기쁨이 되고 싶은데 그리하지 못해서 힘든 것이다.” “신앙생활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 때문에 힘들고, 발견되는 악이 너무 많아 변화가 더디니 힘든 것이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왜 힘들어하는 것일까요? 바로 내 안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살아오면서 죄도 많이 짓고 악도 많이 쌓았습니다. 변화되려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더 많이 노력하고 수고하면서 “아버지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안 되나 아버지 하나님의 힘과 능력이 있으면 악한 나라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달려가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과 시선이 점점 나 자신과 환경을 보게 됩니다. 내가 처한 환경 속에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자 하는 ‘나’라는 마음이 앞서면 지쳐 버리고 힘들게 되지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악을 버리고자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나’라는 것이 여전히 남아 있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내가 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을 때에는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럴 때 힘들고 지칠 수가 있는데 잘 이기셔야 합니다.
스스로 ‘뭐가 문제지? 왜 믿음의 성장이 이렇게 더디지? 열심히 행할 바를 행하고 있는데 왜 내 안에 기쁨이 없지? 왜 내 안에 성령의 충만함이 전과 같지 않지? 무엇이 문제지?’라고 중간 점검을 하면서 ‘내가 아버지의 능력,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고 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하려고 하니까 힘들고 지쳐 버렸구나!’ 이런 차이를 정확하게 찾으셔야 합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우리가 변화되고자 하는 이유는 사랑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자녀, 그리도 기다리고 고대하시는 영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당장 믿음의 분량을 받기 위해서, 믿음의 분량을 높여 인정받고 큰 일꾼이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이 있음이 싫어서, 나도 그 악이 싫고 미워서 열심히 버렸더니 변화되었고 인정받아 반석으로, 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심히도 사랑하는데 그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을 행할 수 없어서, 내 안에 가지고 있을 수 없어서 힘써 노력했더니 변화되었고 그만큼 믿음이 성장하여 인정받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버려야 된다 하니 버리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힘들다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하시니 세상 친구, 오락, 놀이 등을 끊었습니다. 끊을 때는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목자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하여 결단하였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도를 쉬고 그 마음을 지키지 않으니 변개하여 다시 세상을 취합니다. 스스로가 세상의 무익함과 악, 더러움이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임을 중심에서 깨달은 것이 아니었기에 예전의 행함이 다시 좋게 느껴지고 편하다고 느끼면서 예전으로 돌아갑니다. 혹 세상의 무익함을 느껴서 결단했다 해도 그것을 명심하지 않고 다짐하지 않으니 다시 세상의 것을 보며 동경하는 마음이 생기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변화된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세상의 더러움을 깨달았을 때 왜 세상을 취하면 안 되는지 그 의미를 중심에 담고 세상이 얼마나 헛된 것임을 다짐하고 다짐했기에 누가 미혹해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바로 이런 신앙생활입니다. 억지로나 무서워서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이 밉고 싫어져서 힘들지 않게 버리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중심에서부터 악이 싫고 미워지므로 신속히 벗어 버릴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미움, 시기, 질투를 신속히 벗어 버리려면

먼저, 미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상대가 나를 미워하니 함께 미워하고 피해를 주니 같이 대항한다면 세상에서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이는 명백한 악이지요. 믿음의 성장을 바라며 좋은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님들이라면 이러한 육체의 일로 드러나는 미움은 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해도 마음에서 상대를 미워하는 것 또한 악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미움이라는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미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기 합리화’로 덮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의 하는 일이 못마땅하고 불편하며 판단, 정죄를 하면서 ‘미워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과는 성격이 달라서 친하지 않을 뿐이에요.’ 하며 미움을 인정하지 않지요.
상대가 내게 피해를 주거나 조금 힘들게 하는 것 같으면 싫어서 피하면서 미움은 아니라고 한다면 어찌 변화되고 영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내 안에 미움이 있는지 살피는 데 있어서 ‘내가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돌아보면 더 쉽게 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희생하고 섬기며 함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합니다. 부족한 것이 있어도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불편한 사람, 싫은 사람, 미운 사람은 단점이 먼저 보이고 피하고 싶으며 상대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싫지요.
이런 마음과 모습이 내게 있으면 사랑이 없는 것이요, 상대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서 나를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상대를 미워하는 것을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요일 3:15). 이렇게 미움이라는 악이 얼마나 나쁜 것이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미움이 영적 살인임’을 마음 안에 명심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힘과 권세가 있는 사람이 밉고 싫은 사람에게 쉽게 해를 가하며 죽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요. ‘내가 그런 시대에 권세가 큰 사람인데 미운 사람이 있었다면 나도 상대에게 해를 입히고 큰 악을 행할 수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미움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면서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니 조금 누가 불편할 때 그냥 ‘이것은 미움이 아니다.’가 아니라 너무나 큰 악으로 느끼면서 간절히 버리고자 기도했습니다.

다음은 시기, 질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상대가 칭찬과 인정을 받으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상대의 부족한 모습을 떠올리며 칭찬받는 상황이 불편해집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함도 떨어지고 어떤 사람은 충성도 식어지면서 상대와 화평도 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시기, 질투는 미움으로 쉽게 발전하며 더 나아가 큰 죄를 낳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농사를 짓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둘 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으나 아벨의 제물만 열납되었지요. 이를 시기한 가인은 결국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아벨을 죽이고 맙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충신 다윗이 자신보다 백성의 사랑을 더 받자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선으로 대하니 항상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끝내 악을 버리지 못한 사울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시기 질투해도 심한 악을 행치는 않는다.’ 생각지 말고 내게 있는 시기 질투가 큰 악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심히 나쁜 마음임을 스스로가 인정하셔서 신속히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또 시기 질투로 인해 나오는 마음은 비교하는 마음입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니 순간 부족한 자신에 대해 힘들어하다가 시기 질투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과 자기를 비교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는 것이 겸비함 같으나 낙심하고 판단한다면 이는 악이고 자격지심입니다. 매사에 상대와 나를 비교하니 자신은 부족해 보이고 그러니 낙심합니다. 윗사람이 내가 시기하는 대상에 대해 칭찬이라도 한다면 그 윗사람에 대해서도 불편하고 싫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자격지심 속에 힘들어지고 괴롭습니다. 이렇게 악은 여러분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잠언 14장 30절에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말씀한 대로 시기 질투는 나를 괴롭히며 힘들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 무익한 악을 신속히 버려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움, 시기, 질투는 모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당연히 이 악을 싫어하여 빨리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악을 행함으로 맞은 최후에 대한 것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에서 설명한 가인과 사울 왕의 결말은 참으로 비참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선과 사랑, 진리는 응답과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요, 선이요, 진리 자체이시기에 우리도 그 빛과 선, 진리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 하면서 응답과 축복을 받고 항상 행복한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면 마음에 있는 악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신속히 악을 벗고 선과 사랑, 진리 가운데 거함으로 항상 하나님께로부터 사랑과 축복만 받아 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4-09-29 오후 9:27:04 Posted
2014-11-05 오전 9:00:3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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