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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목자의 성 창립 32주년 기념 전야예배 [계 21: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4.10.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은 본 교회 창립 32주년 기념 전야예배로 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시간 ‘목자의 성’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지난 32년 동안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주제는 ‘성결’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성결을 먼저 이뤄야 ‘능력’을 받고, 더 나아가 권능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 때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는 바로 성결된 자녀들을 통해 권능의 역사를 베풀게 하심으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이지요. 이와 함께, 아버지 하나님을 꼭 닮은 자녀 곧 그 마음이 100에 가깝게 아버지와 하나 된 자녀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녀들을 위해 천국 새 예루살렘 ‘목자의 성’ 안에 별도의 처소를 예비해 주셨지요. 2부 전야행사 시 쓰리디(3D) 영상으로 소개되는 바로 그곳입니다. 새 예루살렘 안에서도 손꼽히게 아름답고 매우 영광스런 처소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바로 여러분 가운데서 많은 분들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도록 지난 32년간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 시간 말씀과 2부 시 시청할 쓰리디(3D) 영상을 통해 소망에 소망이 더해지심으로 많은 분들이 그곳을 침노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자의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참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 조금 사랑하는 것? 적당히 사랑하는 것? 이 정도로는 안 됩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 곧 ‘참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참사랑’의 힘은 그 무엇보다 강합니다. 그 어떤 것도 이 사랑을 끊을 수 없지요.

이는 우리 주 예수님과 제자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눅 22:28-30에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제자들의 믿음이 그 당시에는 온전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 했지만 그 사랑이 참은 아니었지요.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 받으시는 것을 보자 대부분이 두려워 피했으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성령을 받으면, 생명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될 것을 아셨지요. 그 무엇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참사랑으로 주님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주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될 것을 믿으셨습니다.

결국 주님의 제자들은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음으로써 주님에 대한 참사랑을 증명해 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 가운데 구원의 은총을 입은 후로부터 지금까지 첫사랑을 잃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날로 날로 사랑을 키워 왔지요. 그러던 중 하나님을 만난 지 만 4년이 지난 1978년 5월 어느 날, 기도하다가 하나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만세 전에 택한 종아! 내가 너를 삼 년 연단하였으니 삼 년 말씀 준비하라. 너는 나 사랑하기를 네 부모, 형제, 아내, 자식보다 더 사랑하였느니라. 너는 즉시 가게를 놓고 나의 길을 가며 아내가 가게를 맡게 하라.”

제가 하나님을 만난 이후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했다 하시며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삼 년 동안 말씀 무장하고 나면 산을 넘고 강과 바다를 건너다니며 기사와 표적을 행하리라.” 약속해 주셨지요. 과연 이 약속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무수한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해 주셨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과 아버지를 향한 저의 사랑으로 모두 이겨낼 수 있었지요. 때론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고, 애매한 모함을 받은 적도 많았습니다. 국가적인 방해를 받은 적도 있었고, 교계의 탄압도 있었으며, 언론의 훼방도 있었지요.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도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사랑을 주었던 많은 이들에게 배신을 당했던 일들입니다. 또한 저는 오직 진리만 가르쳤는데 오히려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이 있음을 알게 됐을 때는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영혼도 포기할 수 없기에 저의 생명을 담보로 그들을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했지요. 또한 구원뿐만 아니라 영으로, 온 영으로 이끌기 위해 또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했습니다.

연약한 인생들이 힘들지 않게 그 길을 가도록 저는 대신 90%의 공의를 채우기 위해 지금까지 온몸으로 고통을 받아왔지요. 이것이, 아버지,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기에 한 영혼도 포기할 수 없는 저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참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아버지, 주님, 목자를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수 있는 사람. 이러한 참사랑을 이룬 사람이 ‘목자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목자의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둘째로, ‘온전한 성결’을 이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한 성결’은 어떤 차원일까요? 마 5:48에 우리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벧전 1:15,16에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말씀하셨지요.

‘온전한 성결’은 이 말씀과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거룩하심에 이른 차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이 조금도 없는 성결의 차원이지요. 눈에 띄는 작은 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자국이나 주름 잡힌 것도 없는 온전한 마음을 이룬 상태입니다. 육을 모두 벗어버린 것은 물론이요, ‘육의 흔적’도 신의 성품 안에 녹아져서 영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곧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이나 기질까지도 신의 성품에 속한 인성으로 아름답게 변환돼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모세 선지자는 원래 의분이 있고, 급한 성품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훗날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다고 하나님께 인정받았지요. 예전의 의분과 급한 성품이 이제는 백성을 향한 열정으로 바뀌어 나타났습니다.

뜨거운 성품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온전히 변화된 후에는 수많은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까지도 그 마음 안에 다 담을 수 있는 큰 자가 된 것이지요. 백성들을 위해 애끓는 애통을 할 수 있었고, 자신의 구원을 담보로 내걸면서까지 백성들을 사랑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열정은 마지막 순간까지 꺼질 줄을 몰랐지요. 만일 모세 선지자가 미지근하고 냉랭한 성품이었다면, 백성들을 향한 그런 열정을 가지고 그들을 인도해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수많은 백성을 이끌어야 했던 40년 광야생활에 지쳐 버릴 수도 있었겠고요. 이처럼 모세 선지자의 성정이 영적으로 온전히 변화되어 쓰임 받았기에, 그 큰 사명을 아름답게 감당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도 원래 의가 강한 사람이었지요. 자존심도 강했고,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의식도 컸습니다. 또 늘 탐구하며 철저히 대비하는 성품이었습니다. 답이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궁구하며 고민하는 모습도 있었지요. 이런 것으로 인해 ‘자아’가 단단하게 형성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호탕한 성격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늘 계산이 앞서고, 생각이 앞섰지요. 이런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나 깨어지면서 원래의 성정이 영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이 옳다 여겼던 것이 참이 아님을 알자, 단번에 배설물과 같이 여기며 버렸지요. 그것은 성품상 집요하게 궁구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 아무리 의심해 보려고 해도 결코 의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곧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자기가 옳다고 한 번 생각하면 끝까지 옳다고 고집하던 성품이 이제는 주님을 향한 변함없는 열정으로 나타나지요. 수많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한 번 만난 주님에 대한 마음이 변함없었고 복음을 이방에 전하는 자기 사명을 대충 적당히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한 번 옳다한 것을 변함없이 믿기에 주님을 알지 못하고 멸망으로 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수 있었지요. 자신이 믿는 것이 너무나 확실한 진리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인생들로 하여금 깨우치고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해야겠다는 열정이 불타올랐던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그의 탐구하며 궁구하는 성품은 신약 성경 중에 열네 권을 쓰는 바탕이 되었지요. 물론 성경의 모든 내용은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기록한 것이지만 답을 얻을 때까지 집요하게 궁구하고 탐구하는 성정이 성경을 기록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림은 물론 육의 흔적을 영으로 변환시켜 온 영의 마음을 이룬 상태, 이것이 바로 ‘온전한 성결’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녀들을 목자의 성으로 이끌어 들이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목자의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셋째로, 희생적인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요 10:15 후반절에 우리 예수님께서는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신 결과 무수한 영혼들이 구원을 얻었지요. 이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지극히 높여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그 희생의 대가로 인해 영광을 얻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막 8:34에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저도 주님의 종으로서 오늘날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오직 영혼들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의무감이나 억지로 한 것이 아니지요. 영혼들의 아픔이나 힘듦이 고스란히 저에게 전달되니 어찌하든 그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었습니다.

가난한 성도들이 마음에 걸려서 먹고 싶은 음식도 절제하게 됐고, 몸이 아픈 성도들이 눈에 밟히니 어찌하든 더 큰 권능을 받고자 했지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은 이들을 위해서는 생명을 담보로 한 중보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 받은 후 지금까지 크게 일곱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었지요. 그 결과 현재까지 전 세계 1만여 교회에 수백만의 성도를 이루었고, 그 중에서 영 및 온 영의 사람 약 200명이 나왔습니다.

앞으로 이 제단이 이뤄야하는 프로젝트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때를 위해 급속한 영의 흐름을 만들어 오셨지요.

이제는 저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일꾼들이 함께 이루어야 하지요. 여러분이 목자의 권능을 의지하여 각 분야에서 제 역할을 감당해 주셔야 합니다. 그 과정에는 수고와 희생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주어질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바로 ‘목자의 성 본체 1층과 2층 사이’에 특별한 처소가 상급으로 주어지지요. 여러분이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해 주신 것에 특별히 주어지는 ‘하사품’인 셈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희생의 열매로 주어지는 아름다운 상급이 바로 목자의 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계 21:2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참사랑으로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희생의 열매를 맺는 참 자녀들을 위해 영원한 처소를 예비해 주십니다. 신부가 남편을 위해 아름답게 단장하듯 참으로 영광스런 처소를 새 예루살렘 안에 정성 다해 예비해 주시지요.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하는 주님께서는 여러분 모두와 그곳에서 영원히 함께 하길 바라십니다. 이러한 기대와 소망을 바로 여러분이 이뤄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10-14 오후 7:49:05 Posted
2014-10-17 오전 12:10:0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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