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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팔복(2)  [마 5:1-3]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5.09.06
지난 시간에는 참된 복과 팔복 중에 첫 번째 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복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해야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아름답고 영원한 천국을 온전하게 소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가난한 심령으로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받았다면 멈추지 말아야

이 세상에서 부와 명예, 권세가 있어 남부러울 것 없이 산다 해도 내세에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복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복은 주님을 영접하여 천국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복된 것이 무엇인지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단적인 예로 설명하셨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잔치를 베풀며 살던 부자와 그 부자의 대문 앞에서 남은 음식을 얻어먹고 사는 나사로라 하는 거지가 있었습니다. 죽음 후에 두 사람의 형편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되었고, 이 땅에서 부요하게 살았던 부자는 아랫음부, 지옥에 떨어져 고통 중에 나사로를 통해 물 한 방울이라도 좀 떨어뜨려 달라며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거지 나사로입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을 영접하여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받았다면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천국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 구분이 있어 영화로움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날마다 더 높은 천국을 침노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천국을 소유하는 복이 나오고, 10절에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여 천국이 나오는데 이 천국의 의미가 같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소유하는 천국은 낙원부터 시작하여 새 예루살렘까지 다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소유하는 천국은 가장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입니다. 곧 성결을 이루고 주를 위해 생명 다해 충성하며 핍박을 받더라도 기뻐하는 온 영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천국이지요. 이렇게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항상 그 마음을 비우고 더 가난한 심령이 되기 위해서 힘써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가 계속하여 마음을 가난하게 비워야 하는 이유는 현재는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았다 해도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갈 3:3). 구원받아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얻었다 해도 깨어 있지 않고 변질되면 그 믿음을 원수 마귀에게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하신 것입니다(빌 2:12). 가난한 심령이었다가도 다시 세상 것으로 채워질 수 있음을 알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깨어서 마음을 계속 비워 가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죄악된 것을 보거나 듣거나 취하지 않을 것이고 사단이 나를 어떻게 범접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조금 안일해지고 기도를 쉬면 사단이 나를 밥으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항상 깨어 있어야 영원한 천국은 물론, 이 땅의 삶에도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곧 정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삶에는 주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복이 임하여 범사에 축복과 형통함이 있습니다.

2.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천국의 복을 온전히 소유하려면

1)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있는 만큼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요, 심령이 부유한 것이니 천국의 복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성령 체험을 하고 믿음을 가졌어도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미혹에 넘어가 죄를 짓거나 믿음을 저버리는 모습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 남아 있다 해도 신속히 벗어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 관심을 두고 바라본다면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없음을 기억해 세상에 대한 마음을 뿌리째 뽑아내시기 바랍니다.

먼저, 육신의 정욕은 육신이 죄를 범하고자 하는 속성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사람에게 있는 죄성이 겉으로 표출되려고 하는 욕구, 곧 범죄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마음에 간음, 짜증, 혈기, 미움, 시기, 질투, 판단, 정죄 등의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을 때 이것이 유발될 수 있는 환경조건을 만나면 비진리가 행함으로, 생각으로 나오려 합니다.
예를 들어 마음에 혈기가 있으면 짜증스러운 상황이 생길 때 이내 분을 내게 됩니다.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육신의 정욕입니다. 많은 사람은 화를 내고도 “상대가 나를 화나게 해서 화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음에 혈기가 없으면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혈기가 있고 혈기를 낼 상황이 되어질 때 원수 마귀 사단이 내 안의 죄성을 건드리면 육신의 정욕을 받아들여 혈기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신의 정욕을 버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불같은 기도를 통해 육신의 정욕이 발동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에 악이 있어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악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 내가 죄 버렸나봐.’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쉬어 충만함을 잃으면 죄를 짓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알아도 마음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같은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하고 행함으로 나타나는 구습과 육체의 일은 스스로 빨리 정리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내 마음에 세상을 취했던 죄성이 많이 있어도 죄를 버리기 위한 의지와 노력이 있을 때 성령님이 도와주심으로 분명 변화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안목의 정욕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속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끊으려는 사람이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있거나 계속 냄새를 맡으며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보고 있다면 안목의 정욕을 통해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성을 포위해서 공격하고 있는 사람이 성안으로 계속 지원군이 들어가게 놔두는 것과 같습니다. 포위된 성을 하루 속히 함락시키려면 지원군을 완전히 차단해야 하는 것처럼 세상을 사랑하는 죄의 속성을 벗어 버리려면 먼저 안목의 정욕을 통해 범죄하게 만드는 근거를 완전히 차단해야 합니다.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진리가 아니라면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진리로 보고 듣고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세상 정욕까지도 기도를 통해 신속히 빼내 버려야 합니다.

세 번째로, 이생의 자랑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랑하는 속성을 말합니다.
이생의 자랑이 있으면 자신이 가진 것, 부나 명예, 권세, 재능, 외모, 지식 등으로 자랑하며 자신을 드러내려 합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4장 16절에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생의 자랑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으로 남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니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교만이 쉽게 나오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낮아짐, 섬김, 희생, 사랑과는 거리가 먼 심령이 부요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아름다운 천국의 소망은 없고 이 세상의 것들이 좋아 보이고 가치 있으며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며 헌신하는 것이 싫습니다. 그저 구원만 받으면 된다 생각하며 교회에 왔다 갔다 합니다. 또한 세상의 것으로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세상의 것을 취하려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세상을 사랑하여 부, 명예, 권세, 지식이 신앙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므로 자신도 모르게 세상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시며 사망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어떠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자리 잡고 있는지, 지금도 버리지 않고 취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은 단순하고 순수하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알려 주면 쉽게 받아들이고 자존심과 자기 욕심이 없어서 누가 지적을 하거나 권면을 하여도 쉽게 인정합니다. 그러니 잘못에 대해 금세 뉘우치고 회개하며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물들어 순수함이 사라지고 세상의 것으로 마음을 채우고 있는 사람은 죄를 범하면서도 무감각해지고 권면을 받아도 인정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죄책감도 갖지 않습니다.
영적인 어린아이는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선한 것을 보면 쉽게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서 악이라 하시면 마음에서부터 싫어지고 어찌하든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힘씁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요, 빠른 시간에 그 마음을 비워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만하지 않고 낮아진 마음으로 진리를 듣는 대로 즉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진리를 보고 들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어야 온전히 천국을 소유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73편 28절에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는 말씀과 같이 날마다 하나님과 가까이, 더 가까워지기를 힘써야 합니다. 세상으로 채워진 모든 것을 비우고 오직 진리, 선, 사랑으로 채워서 천국을 소유하되 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최고의 천국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15-09-07 오후 11:28:53 Posted
2015-09-17 오전 9:54:2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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