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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팔복(3)  [마 5:4]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5.09.20
지난 시간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영원한 천국을 온전히 소유해야 할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우리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하는 팔복의 두 번째 관문에 대해 증거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세상 욕심이 없으니 하나님께서 마음껏 축복해 주심으로 천국에서는 물론 이 땅에서도 머리 되며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리했고, 연단을 통해 전보다 갑절의 큰 복을 받은 욥, 이방 나라에서도 왕 다음가는 권세를 가진 요셉과 다니엘이 그러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방법이 팔복의 말씀에 담겨 있으니 듣는 대로 깨달아 마음에 이루며 복 있는 자라 인정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애통함의 의미

마태복음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애통’이란 슬프고 아파하는 마음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복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 늘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울고 슬퍼하며 살아야 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자적으로 풀면 안 되고 영적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애통에는 육적인 애통과 영적인 애통이 있습니다.

1) 육적인 애통
육적인 애통은 자기 악함과 감정 가운데서 나오는 애통으로 하나님과 상관이 없고 축복도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난해서 슬퍼하고, 질병과 연약함으로 한탄하며 혹은 어떤 일을 자신의 욕심대로 이루지 못하므로 분이 나서 애통하고 낙심합니다. 슬픈 영화를 보고 울기도 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했다거나 누군가 자신을 서운하게 할 때 가슴 아파하고 애통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육적으로 애통할 일이 있을 때에 오히려 기뻐하라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했습니다. 이렇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응답받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환경을 탓하고 상대방을 탓하며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육적인 애통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는 믿음도 아니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음을 알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애통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영적인 애통
첫째로, 회개의 애통이 있습니다.
처음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을 때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회개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나의 죄로 인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회개하고 애통하여 은혜를 받았다 해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또 애통할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죄악을 발견할 때, 마음을 찢으며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회개하게 되는데 이것을 회개의 애통이라 합니다. 자신의 죄악이 발견되면 간절히 기도하며 회개의 애통을 이루고 변화되기 위해 금식하며 힘쓰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진정 마음을 다한 중심의 회개의 애통을 이루면 아무리 많은 악도 점점 버려지며 결국 하얀 마음, 진리의 마음으로 바뀌어집니다. 이렇게 변화되면 회개의 애통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범죄하고도 애통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의 애통으로 마음의 죄성까지도 버려서 더 이상 범죄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으니 죄로 인한 회개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속히 죄악을 벗어 버려 죄로 인한 회개의 애통을 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사명 감당을 하지 못했을 때에도 회개의 애통을 하게 됩니다. 직분자로서 마땅히 성도의 본이 되어 기도하고 전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때, 또 열심히 심방하여 부흥시켜야 하고 맡은 분야에서 열심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때 이로 인해 마음을 찢으며 애통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달란트 비유로 사명 감당하지 않을 때 구원받지 못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아 가지고 있는 이도 책망의 말씀을 들었는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신 양 떼를 잃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어떠한 책망을 듣겠고 무엇이라 변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심판의 자리에서 책망을 듣지 않도록 회개하고 돌이켜 충성하는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형제가 죄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볼 때 애통하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범죄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있을 때, 또 형제가 시험 들어 힘을 잃고 있을 때 마땅히 그에게 권면해 주고 힘을 줘야 합니다. 자신의 일과 같이 애통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하지요. 불쌍히 여기는 긍휼한 마음으로 자신이 대신하여 회개하며 상대가 진리로 행할 수 있도록 애통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통하고 기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허물과 티를 보고 정죄합니다. 판단하고 정죄하여 찌르는 말을 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가서 그 허물을 전하기도 하지요. 성경은 이런 행위를 악이요, 죄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반대로 선과 사랑의 사람들은 상대의 허물을 위해 대신 중보하며 애통합니다. 모세 선지자가 그리하셨습니다. 자신이 이끌던 백성들이 심히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을 때 그들을 대신하여 회개하며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자비를 구했지요. 순종하고 사랑스러운 백성들도 아니고 늘 원망하고 불평하며 모세를 힘들게 했지만, 그런 백성들이라도 사랑하여 대신 회개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 밖에도 영혼 구원을 위한 애통이 있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가족, 일가친척이나 이웃이 구원받지 못하여 사망의 길을 가고 있을 때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애통하는 것입니다. 가장 크고 아름다운 애통은 멸망으로 가는 세상의 무수한 영혼들을 위한 애통, 나라와 민족과 교계에 대한 애통,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일들에 대한 애통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애통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무수한 고난과 핍박을 당하였는데 이는 그가 잘못이 있거나 하나님이 외면하셔서 당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갖은 고난과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고후 11장). 그런 사도 바울은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하여 자신의 생명, 안위가 아니라 오직 교회를 위해서 염려하고, 시험 들고 세상으로 떠난 성도들을 위해 눈물로 애통하였습니다(고후 11:28).
영적인 애통은 행함이 함께 동반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로만 안타깝다 하고 눈물만 흘린다고 해서 참된 애통이 아닙니다.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죄로 인해 애통한다면 말로만 회개하고 다음에도 계속 같은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열매를 맺어 죄악을 버려 나가는 것이 진정한 죄로 인한 회개의 애통입니다. 영혼들을 위해 애통한다면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것뿐 아니라 심방도 전도하는 행함도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참된 애통을 할 때는 축복을 받게 되는데 곧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하신 복이 임합니다. 이때의 위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말하지요.

2.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위로로 주시는 축복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사람들이 주는 위로와 다릅니다. 가난하여 배고파 굶주린 사람에게 “이렇게 가난해서 얼마나 힘들겠어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야 하니 참 안 됐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게 무슨 사랑입니까. 그런 말을 하지 않고라도 쌀을 사 주는 것이 진정 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과는 달리 실질적인 위로를 주십니다.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행함과 진실함이 있는 사랑이지요. 위로하실 때도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양식을 주시고, 질병 있는 사람은 치료하시며 마음의 소원에는 응답해 주십니다. 이것이 참된 위로이지요.
여러분이 영적인 애통을 하여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때는 반드시 그 열매가 따릅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라는 말씀처럼 범죄함으로 인해 마음을 찢고 애통할 때는 죄 사함의 축복을 주십니다. 이렇게 용서받아 죄의 담이 헐어지면 참된 기쁨과 충만함이 임합니다. 그 충만함 가운데 위로부터 능력과 은혜도 주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음의 죄성까지도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죄에 대해 회개의 애통을 하여 죄 사함 받았다고 축복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죄 사함 받고 그 죄성을 버려 가면서 행하고 심으면 전과 다른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사명 감당을 못해서 애통하는 사람에게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지혜도 주시고 상대의 마음을 알아 심방할 수 있는 성령의 음성도 주시지요. 도울 수 있는 일꾼도 보내 주시며 건강도 주셔서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렇게 영혼들을 위해 하는 애통의 기도와 행함은 맡은 분야에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이러한 애통 가운데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가는 만큼 능력도 나타내어 주십니다. 더 나아가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 등을 위해 애통한다면 더 큰 위로를 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와 같이 권능을 주셔서 죽어 가는 영혼들을 살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나타낼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그리고 생명 다한 사랑으로 이룬 애통과 모든 사역을 하늘나라에 상급으로 쌓아 주십니다. 이 땅에서 영혼들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애통한 모든 것이 영광으로 주어져 하늘에서 영원토록 존귀한 자리에 거하며 큰 자로 칭송을 받게 되니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를 싸워 버리기 위해, 또 영혼들을 구원하고 열매 내기 위해 애통하신 분들에게는 복된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히 임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성도님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내 유익에 맞지 않는다고 육적으로 슬퍼하고 애통해서는 안 되지요. 영혼들을 위한 영적인 애통을 하여 이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넘치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09-22 오전 2:49:13 Posted
2015-10-20 오후 12:07:4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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