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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팔복(4)  [마 5:5]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5.10.18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로 주시는 축복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팔복 중에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에 대해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을 품고 관리해 줄 수 있는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영적인 온유함’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영적인 온유함의 의미와 실례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했습니다. 사전에 보면 ‘온유’에 대해 ‘인품이 온화하고 순함, 부드럽고 유순함,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듦’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내성적이거나 소심한 성품이라서 자기주장을 잘 하지 않거나 화를 잘 내지 않고 얌전하면 온유하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 마음을 보지 못하기에 미움이 있고 불편하여도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하여 ‘착하다’ ‘온유하다’라고 말합니다. 화가 나지만 꾹꾹 눌러 참고, 따져 묻고 싶지만 겉으론 상대에게 양보하며 부드럽게 대하면 ‘온유한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온유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함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며느리가 집안일을 못한다고 시어머님께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 앞에서는 며느리가 웃으면서 유순한 모습으로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잘할게요.”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그를 온유하다 칭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시어머니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불평한다면 착하거나 온유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온유함
겉모습만이 아니라 마음에서 어떤 악한 감정도 없이 선한 마음으로 상대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는 마음을 원하시지요. 마치 무더운 여름 아름드리 큰 나무가 많은 사람에게 쉴 만한 그늘을 제공하듯이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깃들어 쉴 수 있는 마음입니다. 또한 솜털같이 부드럽고 포근한 마음이지요.
이런 마음과 반대되는 마음은 단단한 쇠와 같습니다. 단단한 쇠에다 돌을 던지면 쇳소리가 나고 튕겨 나갑니다. 또 유리에다 돌을 던지면 ‘쨍그랑’ 하고 소리가 나며 깨어지고 파편이 날아갑니다.
누가 날 힘들게 하거나 괴롭게 할 때, 악한 사람이 나에게 악을 발할 때 나는 소리가 나는가, 아니면 그를 부드럽게 품어 주고 있는가를 보면 내 마음이 얼마나 온유한지 점검할 수 있습니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지거나 뾰족한 송곳으로 긁어도 소리가 안 나고 어떠한 튕겨 나갈 파편조차도 없는 마음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단단한 마음은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상황이 되면 쇳소리처럼 요란하고 거친 반응이 나옵니다.

2) 영적인 온유함의 실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온유함을 갖춘 사람은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는 사람도 능히 품어 줄 수 있으며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매사에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해 주며, 겸손한 마음으로 섬겨 줍니다.
그렇다고 온유한 사람이 손해 볼까요? 아닙니다. 악이 없으므로 힘들어하지 않고 상대를 품어 가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게 하시고, 영육 간에 필요한 것들로 넘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영적으로 온유한 사람은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없기에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지도 않으며 도리어 상대의 유익을 구합니다. 상대가 더디게 변화되고 나와 생각이 다르며, 너무 많은 불순종을 하거나 모임 중에 소리를 내어도 “저 사람과는 일할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악하고 믿음이 연약해도 함께 어울려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는 것이지요.
상대가 더 잘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이끌어 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바로 영적인 온유함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미워하고 욕하는 사람에게도 감정을 품거나 상처받지 않으며 도리어 사랑으로 중보 기도합니다. 만일 악한 사람으로 인해 힘듦이 자리 잡았다면 마음을 더 키우고 넓혀야 하는 영적인 온유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이라야 거칠고 악한 사람도 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품는다는 것은 내치지 않는 차원을 넘어 변화시킨다는 결과까지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선과 사랑, 덕을 갖춘 온유함은 영적인 권세가 되기 때문에 상대도 변화시킬 힘과 능력이 주어집니다. 이런 온전한 품음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2. 덕을 겸비한 온전한 온유함

온전한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의 내적인 온유함에 ‘덕’이 겸비해 있어야 합니다. 사전에 보면 ‘덕’이란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 마음이 올바르고 사람의 도리에 합당한 일, 인격이 갖추어져 남을 정복시키는 일’ 등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덕의 의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내면의 온유함에 외적으로 덕을 갖췄기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진리로 가르치고 권면할 때 듣는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변화될 수 있습니다. 덕을 갖춘 온유함은 권세가 되는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도 덕이 없으면 행동이 거칠거나 실수가 많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합니다. 너무 소극적이어서 상대에게 답답함이 되어진다면 덕을 갖추지 못한 것이기에 온전한 온유를 이루었다 할 수 없습니다. 입술의 말이 요란하여 떠들고, 농담을 하면 상대에 신뢰를 받기도 쉽지 않지요.
덕은 잘 갖추어 입은 옷과 같이 온유함에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머리 된 일꾼은 때로는 잘못을 지적하고 권면도 해 주어야 하는데 부드럽기만 하여 책망을 못한다면 영혼들을 변화시킬 수 없으니 온유와 덕은 잘 어우러져 나와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에는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예수님의 온유함에 대해 나옵니다.
권세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시비를 걸고 책잡으려 하여도 선한 지혜의 말씀으로 그들을 깨우쳐 주시며 피할 때는 피하시는 등 조금의 다툼도 없으셨지요.
하지만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볼 때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짐승들을 내어쫓으셨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니 이는 감정에 의한 혈기가 아니지요. 진리에 속한 의로움입니다. 때로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책망하시기도 했습니다. 강하게 책망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기에 이렇게 강한 어조로 말씀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3. 온유한 마음을 이루는 방법

마치 거친 밭에서 가시를 뽑아내고 돌을 골라내어 옥토가 되도록 경작해 나가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에서 미움이나 시기, 질투, 다툼, 판단, 정죄 등 악을 벗어 버리면 온유한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농부들은 밭을 옥토로 만들어야 더 많은 열매를 거두기에 열심히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갑니다. 돌이 있으면 주워내고 가시나무가 있으면 뽑아내고 단단한 땅은 부드러운 땅으로 바꾸고 좋지 않은 땅은 좋은 흙을 가져다 뿌리고 거름도 주며 좋은 땅, 옥토를 만듭니다. 이렇게 농부들은 더 많은 소출을 얻기 위해 1년 내 열심히 땀을 흘립니다.
이처럼 마음 밭을 개간해 온유한 마음을 이루면 옥토와 같이 무엇을 심든지 많은 소출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에도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마음을 온유함으로 바꿔 하나님께서 특별히 칭찬하신 사람이 나오는데, 바로 모세 선지자입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 말씀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많이 겪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족히 200만 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출애굽하고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습니까?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심으로 나타내 주신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모세에게 갖은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애굽에서 심한 고난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 기도하여 모세를 보내주심으로 너무도 형통하게 출애굽시켜 주었는데 조금의 어려움이 오면 이 고난이 모세의 탓이라 하며 원망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돌로 치고자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백성들과 40년이나 거하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모세가 얼마나 온유했는지를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였기에 하나님께서 하늘의 큰 자로, 하늘의 크고 넓은 땅으로 보상하여 주심은 물론이고 사역하는 중에도 그를 지극히 사랑하여 영적인 권세로 항상 보장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권능으로 보장하실 뿐 아니라 혹여 모세를 대적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들이 모세의 형이나 누이라 해도 용납하지 않으셨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의 그릇을 키워 가는 것만큼 하늘에서도 하나님께서 더 크고 넓은 땅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그러니 더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열심히 마음의 비진리를 빼내고 크고 넓은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시켜 하늘에서도 영광 중에 거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15-10-19 오후 11:17:51 Posted
2018-06-07 오전 11:42:0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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