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정기 예배

제목
팔복(5) 온유한 자의 복 [마 5:5]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5.11.22
지난 시간에는 팔복 중에서 세 번째 복을 받을 수 있는 ‘온유한 자’에 대해 그 의미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유한 일꾼의 모습과 온유한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덕을 갖춘 온유함을 이루려면

세상에서는 마음에 미움이나 불편한 감정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겉으로 유하고 자기 표현을 하지 않으면 온유하다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불편함이나 악한 감정 없이 선한 마음으로 상대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는 마음을 온유하다 하십니다.
온유한 마음은 솜털같이 부드럽고 포근하여 나를 힘들게 하고 불이익이 되는 상황이 닥쳐도 감정 상해하지 않으며 소리도 나지 않고 포근히 감싸 안아 버립니다.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불편한 마음과 생각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영적인 온유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에 ‘덕’이 갖춰질 때 온전한 온유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덕’이란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 마음이 올바르고 사람의 도리에 합당한 일, 인격이 갖추어져 남을 정복시키는 일’이라 설명했습니다. 덕을 갖춘 온유함은 권세가 되어 사람들을 진리로 가르치고 권면하니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며 변화되기 쉽습니다. 악한 사람이라 해도 버리지 않으며 변화되기를 믿고 기다려 주되 진리로 지적할 때와 바라봐 줄 때를 알아 정확히 이끌어 가니 영혼들이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을 품는다 해서 지적하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면 상대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악을 행할 때마다 매번 악이라고 지적해 줘야 변화될 수 있을까요? 온유함을 이루면 성령의 주관을 받아 이룰 수 있습니다. 혹여 상대가 지금은 받지 못하여도 선과 사랑으로 권면한다면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깊은 깨우침이 되어 변화시키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온유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친 밭에서 가시를 뽑고 돌을 골라내듯 마음에서 악을 벗어내고 선과 사랑을 심어 나가야 합니다. 때가 이르면 좋은 밭에서 많은 소출을 얻듯 성령의 열매, 사랑장, 팔복이 주렁주렁 열립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충성한 만큼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만일 열심히 충성하는데도 열매가 없다면 온유함이 부족함을 깨달아 더욱 큰마음으로 키워 가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유한 일꾼의 모습

1) 영적인 온유함을 이루지 못한 일꾼의 모습
어떤 일꾼은 말씀을 들어서 화평해야 되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누가 나를 힘들게 해도 큰소리 내지 않고 지적하고 나무라지 않지만 마음은 불편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고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며 사명을 감당하지요. 이는 겉보기에 소리 나지 않고 화평한 것 같지만 영적인 온유함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일꾼은 상대의 비진리를 보면서도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권면하고 지적하면 상대가 싫어하니까 그냥 묵묵히 있거나 때로는 타협합니다. 이것은 소리 나지 않았다고 화평한 것이 아니라 의롭지 못한 모습, 불의한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우유부단하여 상대가 비진리로 가는데도 방관하거나 모르는 척한다면 이 또한 온유함이 아닙니다. 성격적으로 조용하고 유순하기는 하지만 그 마음에 충성하고자 하는 열정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그런데 부딪히기 싫어서 ‘이 정도만 하자.’ 하면 소리는 나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함은 아닌 것이지요. 일하다가 상대가 불편해하면 ‘아, 이거 하지 말자.’ 하고 하나님의 일들을 뒤로 미룬다면 어찌 하나님 나라가 왕성히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렇다고 “나는 하나님의 일 열심히 하니까 소리 나도 돼.” 이것도 합당치 않습니다. 상대와 의견이 다를 때는 내가 설명도 해 주고, 상대의 의견도 들어주며 온전한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2) 영적인 온유함을 이룬 일꾼의 모습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은 영적인 온유함으로 영혼들을 품되 그 안에서 죄와 악에 대해 엄히 경계하며 사랑으로 권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혼들을 변화시켜 천국으로 인도하려면 악에 대해서 지적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모세 선지자는 분명 온유한 사람이었지만 진리로 가르쳐야 할 때에는 엄히 가르치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심히 범죄할 때는 진노하여 크게 책망했습니다. 그래서 모세 선지자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였다라고 칭찬을 받으셨습니다. 온유하니까 묵묵히 아무 일도 안 하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과 뜨거운 열정을 인정받았습니다(민 12:7).
정녕 온유한 사람은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을 품을 뿐만 아니라 진리 안에서 필요하다면 누구보다 강하고 담대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온유의 열매를 맺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마태복음 5장 5절에 보면 온유의 열매를 맺은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했습니다. 기업이라는 것은 ‘선대로부터 이어오는 재산과 사업, 또는 기초가 되는 업’이라고 합니다. 이런 기업은 스스로 돈을 주고 산 땅보다 더 견고하게 사람들로부터 소유권을 인정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 시골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주변 산을 둘러보면서 “저 산은 누구네 선산이야.”라고 다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주인도 잘 팔지 못하고 ‘이거는 대대로 내가 잘 가꾸고 더 늘려서 내 후손에게 물려줘야겠다.’라는 책임을 갖기도 합니다. 율법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파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확고하게 자기 땅으로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세상에서 땅을 많이 소유한 부자가 되게 해 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천국의 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크고 넓은 땅을 가져도 후손이 팔아 버리면 내 소유라고 인정받을 수 없지요. 그러나 온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천국 땅은 영원토록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천국 땅은 이 세상에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땅입니다. 땅이라 하여 이 세상에서처럼 흙이 날리고 돌멩이가 있는 땅이 아닙니다.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하신 대로 천국에는 정금길이 깔려 있습니다(계 21:21). 정금이라 해서 이 땅에서의 순금처럼 무르지 않습니다. 단단하지만 정금길을 걸을 때는 매우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사람들이 집을 지으려면 땅부터 사듯이 천국에 크고 넓은 아름다운 집을 소유하려면 땅부터 취해야 하는데 이 크고 넓은 땅을 취하는 방법이 영적인 온유함입니다. 온유함으로 사명감당을 잘하여 열매 내므로 크고 넓은 땅이 주어진 사람, 그렇게 온유함을 인정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큰 집도 넉넉히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온유한 사람이 천국에서 땅을 얻는다는 것일까요? 세상에서 보면 권세 있고 부요한 사람에게 사람이 몰리고, 붙좇는 것을 봅니다. 진리 안에서도 온유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은 영적인 권세를 가진 것이기에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자 합니다.
머리 된 사람들이 온유하고 덕이 있다면 그만큼 교회는 부흥하게 됩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신이 맡은 구역이나 기관에 불순종하고 악하게 찌르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를 외면하고 소외시키거나 ‘차라리 저 영혼이 없으면 좋겠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사랑하고 포용해 주며 기도해 주어 어찌하든지 그를 변화시켜 알곡이 되게 인도해 줍니다.
이렇게 온유하고 덕스러운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고 힘이 됩니다. 그러니 양 떼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기 사모하며 그로 인해 힘을 내어 진리 안에 거할 수 있고 믿음이 성장하게 되지요. ‘나는 아무하고도 부딪히지 않으니까 온유하다.’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열매가 없으면 안 되지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온유한 사람은 많은 사람을 품는 것뿐 아니라 그들을 쉴만 한 물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마음을 이룬 일꾼에게 많은 사명을 주시고 많은 영혼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품어 구원하고 진리로 인도하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품어 천국으로 인도한 사람은 그만큼 천국에서도 크고 좋은 상급과 웅장한 처소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온유하지 못하여 많은 사람을 품지 못한 사람, 마음이 좁은 사람은 천국에서도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에 들어간 사람은 마음 밭을 개간하지도 않았고 온유함도 이루지 못하여 사람들을 품지 못하니 아무런 땅도 받지 못하지요. 1천층 이상부터는 집이 있으며 여기서부터는 각자의 온유함에 따라서 얼마나 덕을 이루고 많은 사람을 포용했는가에 따라 집터가 달라지지요.
특히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영적인 온유함이 온전히 임했으므로 넓은 땅이 주어지며, 땅이 넓은 만큼 집도 크고 아름답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갔다면 온 집에 충성하여 많은 영혼을 더 좋은 천국으로 인도했으니 당연히 땅도 넓고 집도 클 수밖에 없지요. 또한 집에 걸맞도록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 함께 즐길 수 있는 호수나 수영장, 계곡, 운동장, 무도회장, 동산이나 각종 시설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주신 곳에서 자신이 전도했던 사람들, 마음에 품고 인도했던 많은 사랑하는 사람을 초대하여 마음껏 잔치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크고 넓은 땅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심히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온유함을 이뤄서 모든 사람을 불편함 없이 품을 수 있는 마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이런 온유한 마음에 하나님과 영혼 사랑함으로 많은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여 영원한 천국에서 크고 넓은 땅을 기업으로 얻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11-23 오후 11:38:34 Posted
2015-12-16 오후 6:31:53 Updated

다음 글 푯대를 향하여 이전글
이전 글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다음글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