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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팔복(8)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2 [마 5:7]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6.02.21
지난 시간에는 새 예루살렘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이뤄야 하는 팔복 중 다섯 번째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긍휼히 여기는 자에 대한 영적인 의미에 대해 증거합니다.



긍휼의 문자적인 뜻은 ‘가엾게 여긴다, 불쌍하게 생각한다.’는 것으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양선의 마음과 비슷하다 했습니다. 그래서 긍휼은 용서의 긍휼, 징계의 긍휼, 구제의 긍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지요.

1. 용서의 긍휼

용서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 주님의 마음이십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하시고 기회를 주시며 변화되기를 기다리시되 변화될 수 있는 은혜까지 부어 주시는 크신 사랑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해하고 용서하며 바른길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라시지요.
용서의 긍휼은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되 그가 변화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 마음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충성했다 해도 천국에서 큰 자라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용서해 주길 원하시는데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한 예가 성경에 나오는 요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 명하십니다.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그에 따른 연단을 혹독히 받고서야 철저히 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일 동안 금식하며 회개한 요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며 다시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하여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니느웨로 향합니다.
요나가 니느웨 성에 들어가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왕까지도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며 니느웨에 선포하기를 “모든 사람과 짐승도 금식하며 여호와께 회개하되 악한 길과 강포에서 돌이키라” 하였지요. 이처럼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을 살리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 일을 보고 심히 싫어하며 노합니다. 긍휼의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을 용서하신 것이 싫은 것입니다(욘 4:1~3).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긍휼과 용서의 하나님이심을 알았다면 순종하고 충성해야 하는데 요나는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결국 온전한 순종도 이루지 못하고 칭찬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요나와 같은 일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팔복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마음을 이루며 그 마음으로 충성하여 이 땅에서나 아름다운 천국에서 큰 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징계의 긍휼

하나님의 자녀라면 범죄할 때 당연히 징계가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에 그의 자녀들이 죄를 짓고 지옥을 향해 가는 것을 보고만 계실 수 없습니다. 징계를 통해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게 이끄시는 것이지요(히 12:6~8).
어떤 사람은 징계가 임하면 회개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짐짓 거듭 범죄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외면해 버리시니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만일 징계조차 임하지 않는다면 사생자요, 마귀의 자식이 된 것이지요. 이런 하나님 말씀을 아는 진정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징계나 연단을 피하려 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징계나 연단이 왔을 때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것으로 나는 징계 잘 받고 있다 하시면 안 됩니다. 연단을 받고 징계를 받을 때에는 왜 연단이 왔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찾아서 돌이킬 것은 돌이키고, 잘못된 것은 고치고, 선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럴 때 연단이 신속히 끝나고, 두려움의 하나님이 아닌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연단을 기쁨과 감사로 잘 받는 것,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참 자녀요, 또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징계를 받을 때, 겸비한 마음과 선으로 이겨 나아가면 그 죄가 씻긴 바 됩니다. 깨끗이 씻겼을 때라야 하나님께서는 죄 없다 인정하시고 더 큰 축복으로 바꿔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징계와 연단은 자녀들을 구원하시며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느끼는 자녀라면 어떤 일을 만나든 하나님만 의뢰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아들이 있는데 부모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이 아들이 와서 잘못을 고백하며 “다시는 안 그럴게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눈물로 회개한다면 부모는 긍휼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안아 주며 “이번 일은 용서할 테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라.” 답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말로는 회개한다고 해 놓고 며칠 지나서 또 도적질을 한다면 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권면해야 할 것이고, 책망해야 할 것이며 그래도 듣지 않으면 징계의 매를 들어서라도 고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녀가 잘못한 것에 대해 매번 지적하고 야단치며 매를 대는 것이 사랑의 징계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자주 매를 드니 자녀는 습관이 되어 큰소리로 야단을 쳐도 꿈쩍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는 부모에게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 징계의 긍휼이 아니라는 것을 잘 구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징계는 미움과 감정의 징계가 아니라 사랑의 징계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징계의 긍휼은 부모, 자녀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믿음의 형제 안에서도 서로 가져야 할 마음과 행함입니다. 믿음의 형제가 사망으로 가고 있는데 그저 기도만 하고 안타까워만 한다면 이는 진정한 사랑과 긍휼함이 아닙니다. 엄히 경계하며 책망하여 돌이키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징계 안에는 권면과 지적, 책망도 담겨 있습니다. 때로는 상대가 악에 대해 지적받기를 싫어한다 할지라도 충분히 기도하고 그를 위해 금식하면서 성령의 주관을 받아 권면도 하고 엄히 말하는 이러한 사랑도, 적극적인 선도 갖추어야 합니다. 권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형제의 잘못을 알고 정죄하여 여기저기 전하고 수군거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18장 15~17절을 보면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하셨습니다.
누가 잘못하면 주변에 알리지 말고 직접 가서 사랑으로 권면하고 돌이키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듣지 않을 때는 ‘이분의 말이라면 들을 수 있겠다.’는 그런 윗분에게 말해 돌이키도록 권면하면 되지요. 이런 절차를 통해서도 돌이키지 않을 때는 그를 치리해서 구원시킬 수 있도록 교회에 알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하는 것이 사랑의 징계요, 징계의 긍휼입니다.
머리 된 일꾼이나 주의 종들이 권면하고 징계할 때도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상대의 잘못에 대해 자신의 의와 틀에 맞지 않으므로 불편한 가운데 찌르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무리 겉으로는 진리의 말씀을 인용한다 해도 사랑으로 하지 않고 악한 마음으로 말씀을 인용한다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으므로 성령의 역사를 받지 못하여 상대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또한 높은 마음이 되어 상대를 가르치고 내 뜻대로 주관하려고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긍휼 가운데 그를 위해 대신 죽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권면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권면하고 징계한다면 성령께서 역사하시니 악한 상대도 깨우치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징계의 긍휼은 이렇게 변화시키고 살리고자 권면하고 징계하는 것입니다.

3. 구제의 긍휼

주변에 믿음의 형제가 가난으로 인해 고통 받는다면 ‘참 안 됐다, 불쌍하다.’ 생각하며 말로만 안타까워한다면 이는 하나님 안에서 긍휼이 있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긍휼은 형제가 어려우면 내 것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내가 먹을 것을 먹지 않으면서 주는 것이 긍휼히 여기는 자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긍휼을 베풀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잠19:17).
이런 선한 모습은 이 땅에서도 축복해 주시지만 아름다운 천국에도 다 기록해 놓으시고 무한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구제를 한다 해도 범죄함으로 하나님께 징계받아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구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구제해야 합니다.
구제하면 안 되는 경우로는 도박이나 알코올 중독으로 돈만 있으면 도박을 하려 하고, 술을 마시려 하는 사람에게 구제하는 것은 도리어 죄를 짓게 도와주는 것이 되어 합당하지 않습니다. 또한 일을 할 수 있는데 게을러서 일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오히려 더 게으르게 만들고 실업자로 만드는 것이니 주 안에서 합당한 구제가 아닙니다.
그 밖에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 병든 사람, 낮아지고 소외된 사람,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들에게 구제의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또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내가 전도하지 않으면 저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혹 핍박하고 욕한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전도하는 것이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 나라와 전 세계 진리 안에 살지 못하는 무수한 영혼을 위해 항상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은 사랑과 긍휼을 형제, 자매, 이웃에게 베풀어 줄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부족됨을 채워 주십니다. 사업터와 일터에 축복이 넘쳐나게 하실 뿐 아니라 연약함이 변하여 영육 간에 강건하게 해 주시지요. 마음에 이러한 긍휼을 이루고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풍성히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16-02-22 오후 10:08:42 Posted
2016-03-09 오후 7:02:5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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