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정기 예배

제목
영광(2) 창립34주년기념 대예배 [학 2:9]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6.10.0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빈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본 교회를 세우시고, 지난 34년간 친히 인도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이 기쁘고 행복한 날을 축하해주기 위해 오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고, 이 축복된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개척 이후, 지금까지 우리 만민과 함께해 오신 교역자들과 일꾼들,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전국 및 전 세계 곳곳에서 GCN 방송과 인터넷 등으로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께도 동일한 은혜와 감동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본 제단과 함께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마음껏 영광 돌리는 기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빈 여러분, 지금까지 본교회의 역사는 크게 세 기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1982년 개척부터 1999년까지가 제1도약기, 2000년부터 2010년까지가 제2도약기 2010년 이후가 제3도약기인데 특히 2016년부터는 본격적인 제3도약기가 시작되었지요.

오늘은 지난 창립전야 금요철야 말씀에 이어 1990년대의 영광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롬 5:4에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1990년도가 되면서 저는 목회자로서 큰 시련을 겪었지만 그것은 큰 소망을 이루는 공의가 되었지요. 바로 당시 소속돼 있던 교단으로부터 목사 파직을 당했던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폭발적인 부흥으로 교단 내 가장 큰 교회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이 이를 시기하여 거짓 소문으로 저와 우리 교회를 송사했지요. 결국 목사 파직 결정이 났는데, 이는 총회 정족수와 찬성수도 부족한 가운데 불법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벧전 2:19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이후 모든 것에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심으로 저와 본 교회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영광을 드러내셨지요.
아무에게도 부당한 제재를 받지 않고 마음껏 하나님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새로운 교단을 설립 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1991년 7월 1일, 예수교대한연합성결교회 (연합) 총회를 창립하여 마음껏 오중복음을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 개인적으로도 큰 시험을 통과하니 하나님께서 더 큰 권능을 허락해 주셨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악한 사람들을 사주하여 저와 본 교회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무죄하니 오히려 영광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1992년부터 1998년까지 7년 동안 저와 우리 교회 일꾼들은 무척이나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매년 교계 행사를 치렀고, 외부에서 열리는 교계 연합 성회에 우리 닛시오케스트라와 성가대, 중창팀, 예술선교단, 솔리스트, 그리고 봉사대와 안내위원까지 가서 각 분야에 충성 봉사했습니다. 교계의 유명한 여러 목사님들이 ‘만민교회 없이는 교계 행사를 치르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일례로, 1992년 8월엔, 여의도 광장에서 ’92 세계성령화 대성회가 있었지요. 그 성회는 연인원 100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였습니다. 제가 공동 대회장으로 순서를 담당했고, 우리 교회에서는 닛시오케스트라와 200여 명의 성가대원이 찬양을 맡았으며, 400여 명의 성도들이 교통 안내 및 대회장 경비를 맡았습니다.
이후로도 저는 교계 행사 협조 요청이 오면 최대한 후원해 주었지요. 그러다보니 해를 거듭할수록 후원 요청이 점점 커져서 우리 예능팀들이 분주하게 뛰어야 했습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는 해마다 미국 한인교회 집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93년 8월엔 미국 워싱턴 지역에서 9월엔 LA 코리아타운에서 교민 초청을 받아 성회를 인도했지요. ’94년에는 다시 워싱턴, 볼티모어 지역에 ’95년에는 LA에 다시 초청받아 갔습니다.
96년 2월에는 하와이 한인연합성회 및 목회자 세미나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곳 교회들은 주의 종과 양 떼 사이에 분쟁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집회 장소를 제공한 교회도 분쟁으로 양 떼가 많이 떠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성도들이 교회를 집회 장소로 빌려 주는 것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회 첫 시간이 마쳐지자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 떡을 만들어 오겠다. 귀한 것을 대접하겠다. 하면서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집회가 모두 끝난 후 담임교역자는 눈물을 닦으며 “내가 교만했기 때문에 교회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전부 내 탓입니다.”라고 고백했지요. 담임목사가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성도들 역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그 기간에 목회자 세미나도 두 번 했는데 저는 목회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습니다. 세미나를 마친 후 연로한 한 목사님은 “양 떼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전부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악한 탓입니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기도 했지요. 또 어떤 목회자는 “그동안 나는 영적 스승으로 자부했는데 이제 처음부터 다시 배우겠습니다.”라고 겸손하게 심정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목회자들의 변화 역사는 ’96년 7월에 아르헨티나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교회 성장의 비결’을 주제로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했지요. 주최측은 300명 참석을 예상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자 천 명이 넘게 몰려와서 현지에서 가장 큰 교회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목회자들이 말씀 듣기를 계속 청하여 오전 10시에 시작한 세미나가 모두들 점심도 거른 채 연장되었습니다. 다음해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후 겨우 마칠 수 있었지요. 약속대로 다음해인 ’97년 10월, 다시 아르헨티나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했는데 그때는 연인원 8천 명이 참석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아프리카와 일본에도 선교의 문이 열렸습니다. ’94년 7월엔 탄자니아의 수도에서 ‘아프리카 교회 지도자 세미나’를 인도했지요. 하나님께서 이 기간 동안에도 기사(奇事)로도 시종 함께하셨습니다.
우리 일행이 탄자니아에 도착했을 때 현지 목회자들이 “목사님, 참 이상합니다. 지금은 전혀 비가 내리지 않는 때인데 강사님께서 도착하시기 전에 계속 비가 내려 지금은 먼지 하나 없는 시원한 날씨가 됐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지요.
세미나 후엔 마사이족 마을을 방문하여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때 영어 통역을 맡으셨던 정명호 박사님이 이듬해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되셨지요. 이후 아프리카 54개국에 복음을 전하며 힘차게 아프리카 영혼들을 깨우셨는데, 그 결과 풍성한 열매가 맺혔습니다. 올해는 무려 869개의 교회가 지교회로 가입하여, 이제 아프리카 지협력 교회는 5천 개가 넘었지요.

1994년 1월에는 일본에도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본격적인 일본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그해 11월에는 제가 이다 지역 성회를, ’96년에는 신슈 지역 성회를 인도했지요. 성회마다 많은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일본 선교는 활성화 되어, 최남단 오키나와에서 최북단 홋카이도까지 현재 12개 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1990년대에는 방송 선교도 활발하게 이뤘습니다. ’90년 3월 극동아세아 방송 ‘먼 땅 좋은 기별’이라는 프로를 시작으로 ’90년 8월부터는 워싱턴 미주 방송에, ’92년 12월부터 부산 기독교방송에, ’93년 11월부터는 이리 기독교방송에, ’94년 2월부터는 청주 기독교방송에, ’94년 5월 이후에는 워싱턴 기독교 복음방송에 설교가 나갔습니다. 이 외에도 해마다 방송 시간이 늘어나 매주 900여 분의 설교가 전파를 탔지요. 이렇게 많은 분량의 방송 설교를 한 것도 사실 기록적인 일입니다.
이와 함께 우리 교회에서 기독교방송과 극동방송의 공개방송을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94년 12월 8일에는 기독교방송 창립 40주년 기념 ‘새롭게 하소서’ 특집 공개방송이 고은아 권사님의 사회로 있었지요. ’95년 12월 10일에는 극동방송 ‘우리교회 좋은 교회’ 프로의 신년 특집 공개방송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국내외 선교를 바쁘게 하는 중에도 우리 교회는 매년 5월이면 2주 연속 부흥성회를 개최했습니다. ’93년 제1회로 시작하여 2004년 12회 까지 해마다 치렀지요. ’93년 5월 5일, 저녁 집회 전체 환자기도 시 저는 주관을 받아 잉태하지 못한 사람들은 잉태의 축복을 받으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불임으로 고민하던 수많은 부부들이 이듬해 대거 출산의 축복을 받았지요.
해마다 2주 연속 부흥성회 시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서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렸습니다. 교통사고로 만신창이가 됐던 몸이 정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1.2킬로로 태어나 몸의 여러 기관의 이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던 미숙아가 치료됐고, 이후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또한 어느 해엔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이 없는 채로 들것에 실려 온 사람이 기도를 받자 의식을 되찾고 살아났지요. 해마다 나타난 놀라운 권능의 역사들을 이 시간 일일이 다 거론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 많은 분들이 그 놀라운 역사들을 목도한 증인이시지요? 지금까지 끊임없는 권능으로 함께 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빈 여러분, ’91년 교단 창설 이후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교회는 98, 99년도 세 차례 시험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그의 세 친구는 풀무 불에 던져졌을지라도 죽지 않았지요. 그들에게 아무런 죄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반전의 역사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냈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세 차례의 시험으로 타격을 입은 부분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반석 위에 세우신 교회이기에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 시련은 2000년도부터 드러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귀한 밑거름이 되었지요.
저는 그 세 차례의 시험을 받는 동안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진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못 박는 자들을 위해 사랑의 중보 기도를 하셨지요.
저도 그런 마음이 됨을 감사했습니다. 은혜를 저버리고 떠나서 오히려 교회를 무너뜨리려 하는 이들이 미운 것이 아니라 한없이 불쌍했지요. 한 사람도 멸망의 길로 가지 않고 모두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받을 수 있기를 눈물로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떠한 악에도 악으로 대응치 않고 선과 사랑으로 대응했던 행함이 공의가 되어 2000년도부터는 이전과 또 다른 차원의 영광이 이 제단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빈 여러분,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우리 만민이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왔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며, 앞으로 펼쳐질 만민의 미래에 대한 더 큰 꿈과 비전을 마음에 새기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만민에게 있어서 2000년은 기념할만한 해였습니다. 무안에서 쓰고 짠 바닷물이 나오던 샘물이 단물로 바뀌는 놀라운 창조의 역사를 필두로, 폭발적인 권능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세계를 무대로 펼쳐져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현실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가라’고 하신 곳이면 어디든 순종해 갔습니다. 첫 번째 연합대성회는 아프리카 우간다였지요. 그러나 성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볼 때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 선교사들의 방해 때문이었지요. 이를 보면서, 사도 바울이 이방인 선교를 할 당시 가는 곳마다 제일 큰 방해를 한 것은 다름 아닌 동족 유대인들이었음을 떠올리며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성회가 아무리 사람이 심하게 방해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제가 우간다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반전의 대폭발로 역사되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 장관 여러 명이 직접 나와 저를 영접해 주었는데, 특히 하나님께서는 법무부 장관을 주관하사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돕게 하셨지요. 그분은 적극적으로 성회에 참석하여 권능의 역사들을 직접 보면서 너무나 놀라고 감동을 받았을 뿐 아니라 저의 숙소까지 직접 찾아와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7년 전에 한 여종을 미국으로부터 우간다로 보내어 저의 길을 예비하게 하셨지요. 그 분은 이미 93년도에 꿈속에서 저를 보았는데 7년이 지나 성회 포스터 사진을 보면서 그 꿈속의 주인공이 바로 저였음을 알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하나님의 사람이라 전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요.
결국 성회는 엄청난 치료의 대폭발과 함께 세계적인 뉴스채널 CNN을 통해서 전 세계에 보도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우간다는 에이즈가 발원하여 창궐하던 곳이었는데 수많은 치료의 역사로 영광을 돌렸지요.
같은 해 일본 나고야 대성회는 다음에 있을 파키스탄 성회를 앞두고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성회였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때 성회에 참석한 수십 명의 농아인들 대거 치료하는 역사를 통해 저의 권능이 얼마나 커졌고 앞으로 펼쳐질 권능의 역사가 얼마나 대단할지를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이어서 회교국가 파키스탄에서 열린 대성회는 이슬람 세력의 방해를 이겨낸 반전의 대역사를 기록하였지요. 그 후폭풍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지금 저를 대신하여 파키스탄 선교를 이루고 있는 길태식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16년 전에 있었던 그 성회를 기억하여, 지금도 제가 다시 한번 오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그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지요.
또한 이삭티비를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방송 선교사역의 열매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파키스탄 성회는 엄청난 치료의 역사와 함께 파키스탄 기독교계를 일으켜 세우는 역사적인 성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2001년에는 다시 한번 아프리카 대륙에 우리 만민과 저의 이름을 확실하게 심는 케냐 연합대성회가 있었습니다. 성회장소인 우후르 공원을 가득 메운 성도들로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목회자 세미나에는 주최측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8천5백 명이 등록하여 뜨거운 사모함을 느낄 수 있었지요.
더욱이 현지 방송은 연합대성회 전날, 30여 분간이나 시간을 특별히 할애하여 저의 우간다, 파키스탄 성회에 대해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방송까지 내보내 주면서 연인원 30만 명이라는 케냐 기독교 역사상 대기록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케냐 연합대성회는 케냐 뿐아니라 저를 아프리카 곳곳에 알리는 계기가 되면서 지금 아프리카에서 사역 중이신 정명호 목사님도, 바로 이 성회를 통해 본격적인 사역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지요.
2001년에는 필리핀 연합대성회도 있었습니다. 필리핀 성회 때는 태풍이 두 개나 오는 상황에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도를 통해 태풍을 물리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기철인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회기간 동안 전혀 지장이 없도록 지켜주셨지요. 매일같이 비가 오는 우기에 주변에는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오는데도 성회가 열리는 곳에는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차량 기사와 가이드, 현지 언론까지도 기상이변이라고 말할 정도 였지요. 수많은 기사와 표적도 나타났습니다. 성회 중, 제 입에서 무지개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달을 두른 원형 무지개를 보여 주셨고 그 외에도 갖가지 무지개로 역사해 주셨지요. 숨어 끊어져가던 사람이 기도 받고 살아나며 갖가지 질병과 연약함들이 치료받는 등 최상의 창조의 권능이 펼쳐진 성회였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저의 권능의 차원이 확연히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전과는 다른 영적인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었지요.
필리핀은 국민의 90%가 가톨릭신자로서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하지만 정작 삶 속에서는 마리아를 비롯하여 사람을 성인으로 추앙하며 섬기는 잘못된 신앙형태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이런 그 나라의 백성들에게 저는 진리를 담대히 선포하여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깨우쳐 주었지요.
이를 아는 원수 마귀 사단은 성회를 방해하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 앞에 결국은 저의 성회를 방해했던 목회자들은 숨었고 마지막 날 만찬 때에는 현지 목회자들이 제 앞에 무릎 꿇어 대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권능 앞에는 원수마귀사단의 궤계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2002년에는 허리케인 지저스를 몰고 갔던 중미의 온두라스 연합대성회가 있었습니다. 기사와 표적과 권능의 대폭발은 이전과는 비교하여 갈수록 더해졌는데 이때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저를 중남미에 알리는 계기를 삼으셨지요.
온두라스의 주요 일간지에 저와 교황의 모습이 나란히 실렸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대조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주님께서 치료하신다” 외치며 당당히 권능을 선포하는 모습인 반면에, 교황은 부축을 받으며 힘든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이었지요. 가톨릭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라 할 수 있는 중남미에,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펼치실 마지막 때의 사역을 예고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016-10-11 오전 1:50:30 Posted
2018-05-07 오후 10:56:39 Updated

다음 글 영광(3) 이전글
이전 글 영광(1) 다음글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