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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회개에 합당한 열매(2)  [마 3:8]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7.03.26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중심의 회개를 이루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신속한 변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려면 첫째로, 중심의 회개를 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회개를 하면 그 죄에 대해 더럽고 추하며 악하다 느껴지니 반드시 버리리라는 마음이 간절해져 근본의 죄성까지 버릴 수 있다고 했지요.

1. 늘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며 중심의 회개를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때 성령이 임하시는데 그때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 회개입니다. 죄인임을 인정하며 나의 죄를 위해 아무런 죄 없으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이 믿어지니 중심의 회개가 나오지요. 하지만 그렇게 회개하였어도 구원받는 날까지 다시 회개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3장 5~10절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수제자 베드로가 자신의 발을 절대로 씻길 수 없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지요. 그러자 베드로는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목욕한 자’란 처음 구원받아 지난날 허물과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죄 씻음 받은 것을 말합니다. 이때는 제자들이 성결된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기 전이며 아직 성령 받기 전이므로 실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미 목욕한 자는 깨끗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아직 온전히 성결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깨어 있어서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고자 힘써 노력하였기에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발을 씻는다’는 의미는 아직 버리지 못한 근본의 악이 있어서 그때마다 회개하여 더 온전해지기를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행하며 사는 경우는 발을 씻는 정도의 수고가 아닌 목욕을 하듯 회개하는 수고와 정성이 있어야 하지요.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을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를 제외한 모든 교회가 주님의 책망 또는 권면을 받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는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 ”(계 2:5) 하시며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설령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않았다 할지라도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뜨거움과 열심, 충만함이 없다면 신앙생활에 큰 문제가 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말씀하시며 미지근한 신앙생활에 대해 지적하십니다(계 3:19). 이처럼 식어진 신앙생활에 대해서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나는 지난날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왜 믿음의 반석으로 못 들어가지? 나는 왜 이렇게 믿음의 성장이 더디지?’ 하며 답답해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미지근했던 것, 변개했던 것, 첫사랑을 잃어버렸던 것 등도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명자요 직분자임에도 세상을 사랑하고 짐짓 죄를 지은 지난날 허물과 죄에 대해 얼마나 민망히 여기는 마음과 정성으로 회개하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목자님께서 회개의 시간과 기회를 열어 주셨으나 내 할 몫을 하지 않는다면 구원은 받으나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 신앙생활에서 변질된 것들을 회개하도록 한 것을 처음에는 후회하였으나 나중에는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통해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심의 참된 회개를 이루면 지난날의 죄악이 후회되며 싫어지고 미워지기에 근본의 죄성을 버리고 성결을 향해 가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근심은 영적인 깊은 회개를 이루게 되고 결국 우리를 깨끗게 하는 것입니다(고후 7:8~11).

2. 이전의 죄악을 다시 행치 않음은 물론 그 죄성까지 온전히 버려야 합니다

죄성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 다시 죄를 지을지 모르니 참으로 불안한 일입니다. 그리고 성결되었다 할 수 없고 더 큰 믿음을 이루지 못하지요. 그러니 사함 받지 못할 죄에 대해 용서받을 때는 감사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계가 늦춰지면 다시 죄 가운데 빠지기도 합니다. 근본 죄성을 버리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그 죄악에 대한 느낌이 좋게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근본의 죄성까지 버리기 위해서는 그 느낌을 바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음란물을 볼수록 마음의 간음이 커지며 아무리 기도해도 버려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찔림이 되니 음란물을 안 보려고 인터넷을 끊거나 휴대폰을 바꾸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음란물을 보게 됩니다. 상대가 있어 죄를 짓는 것도 아니요, 그저 잠깐의 눈의 유희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간음을 행하지 않기 위해 경계할 때는 보지 않았지만, 경계가 늦춰지면 이내 사단이 죄의 좋았던 느낌을 자극하여 행함으로 죄를 짓게 합니다.
음란물도 비진리의 속성 중 가장 더럽고 추한 간음을 자극하고 점점 더 정욕적이게 만드는 원수 마귀의 역사입니다. 성범죄자들의 대부분이 음란물에 빠져 있으며 중독되면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니 결국 범죄로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함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가 마귀의 궤계에 빠져 있을 수 있습니까? 음란물이 얼마나 나쁘고 해가 되는지 깨달아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추하고 더러운 느낌으로 바꾼다면 혼의 작용도 물리칠 수 있으며 이런 자세로 기도할 때 근본까지 버릴 수 있습니다.
다른 예로,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고 합시다. 이런 분들은 대부분 상대가 나를 힘들게 했던 것, 어렵게 했던 것, 괴롭게 했던 것을 잊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당하시고도 욕하고 죽이려는 악한 이들을 용서하셨는데 나는 어떠했는가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에 비추어 선한 기도를 올리면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그래서 쉽게 용서가 되고 근본에 있는 미움까지도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남녀 간에 육체의 일이 있었습니다. 회개한다 해 놓고도 나의 마음과 생각은 ‘상대가 나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다’ 생각하거나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다면 현재 그런 죄를 행치 않아도 근본의 죄성까지 버리기는 어렵지요. 시간이 지나 그 죄에 대해 경계가 풀어지면 또 좋았던 느낌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 했구나. 정신 차리지 않았으면 나는 지옥에 갈 수도 있었구나. 목자께서 그렇게 당부하시고 경계하셨는데 내가 이렇게 어리석었구나. 내게도 이렇게 간음의 속성이 있어서 미혹에 쉽게 넘어갔으니 신속히 이 간음을 버려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죄성을 버릴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 행한 도적질을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이제 도적질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남의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고 취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눈물을 흘리며 도적질했던 것을 회개하였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도적질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고 있으니 어찌해야 할까요?
자신의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더 갖고자 하는 이생의 자랑, 삶에 불평과 원망, 천국의 소망이 없는 것,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마음, 남이 가진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마음, 이런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힘써 기도하며 버려야 합니다. 막연히 “도적질하지 않게 해 주세요.” 하는 것이 아니라 세세하게 쪼개어 자신을 발견하고 악의 모양을 찾아 버리고자 노력할 때 더 쉽게 버려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의 변화, 악의 모양과 근본의 죄성까지 버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노력이 불같은 기도입니다. 중심을 다한 간절한 기도를 하지 않으면 성령의 능력, 불세례를 받지 못하니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불세례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받고 유지하여 근본의 죄성을 태움은 물론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닮기까지 사모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노력하면 믿음의 반석을 지나 영으로, 온 영으로 가는 길이 대로와 같고 힘들지 않게 이룰 수 있지요.

3. 회개에 합당하도록 전에 행한 죄악과 반대되는 진리와 선을 행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뵙고 싶어 뽕나무 위로 올라간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삭개오의 사모함을 기뻐하셔서 그를 불러내려 그의 집에 묵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삭개오는 그동안의 삶에 대해 철저히 회개하고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합니다. 이러한 삭개오의 고백을 들으시고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였다면 이제 그 잘못을 하지 않음은 물론 반대로 선을 좇아 행하는 것이 참된 회개요,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충성한다면서 불평불만이 많았고 이로 인해 반석에 서지 못한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제 감사의 입술, 칭찬의 입술로 바뀌어야 합니다(엡 4:29, 5:4).
교회와 목자에 대해 악한 생각을 품고 판단했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이제 판단하지 않음은 물론 더 열심히 교회를 위해 충성하며 목자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쌓아가야 합니다. 목자의 하시는 선행과 우리를 위한 희생을 마음에 담고 매일매일 중심의 감사의 기도를 이루며 닮아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요.
용서하지 못했던 상대를 미워하지 않음은 물론 더 사랑하고 섬길 때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이런 중심의 변화와 선한 행함을 이룬다면 이것이 바로 돌이킴이요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그럴 때 죄 없다 칭함 받음은 물론 더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은 아름다운 천국을 예비하고 함께 살기를 바라며 변화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느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죄를 버리기 위해 힘써 노력하는 것이 힘들지 않고 신속히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주님, 목자의 사랑을 느끼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아름다운 눈물의 열매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17-03-28 오전 1:30:59 Posted
2018-06-07 오전 11:37:4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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