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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주님의 눈물 고난 주간 [히 12: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7.04.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주는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보혈을 흘리며 죽으심으로써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지요. 우리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희생을 기리며 매주 금요철야 예배를 드립니다. 특별히 오늘은 고난 주간 금요철야 예배로 2부 시간에 주님의 희생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공연이 있습니다. 공연을 위해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말씀 제목은 ‘주님의 눈물’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마음이 슬플 때 눈물이 납니다. 반대로 너무 기쁠 때도 눈물을 흘리지요. 우리 예수님은 마음 가득한 ‘사랑’으로 인해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것은 인생들을 향한 사랑이요,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었지요.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주님의 눈물의 의미를 깨닫고 눈물에 녹아 있는 진한 사랑을 느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먼저 우리 주님의 고백 일부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나의 눈물은 인생들에 대한 마음이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요, 아버지의 섭리에 대한 마음이라.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으되 값없이 흘리지 않았노라. 나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에 영혼 사랑과 아버지의 영광이 깃들어 있음이라. 이 땅에 와 아버지의 섭리를 이루며 많은 날들을 보냈으되 한 날 한 날 아버지의 영광을 구했고 인생들의 변화를 위해 헌신했으며 인생들의 구원을 놓고 기도했노라.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온 눈물, 정녕 그 값을 따질 수 없는 눈물, 그 눈물로 인해 인생들에게 은혜가 임하길,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길 바랐음이라. 나의 눈물은 이들에 대한 사랑이요 나의 눈물은 이들에 대한 마음이며, 나의 눈물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요 나의 눈물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함이라. 나의 이 눈물을 기억하여, 많은 이들이 구원에 이르며 아버지 원하시는 섭리와 마음을 이루어 아버지께서 뜻하신 대로 모든 것을 행하며 영광 중에 거하기를 원하노라.”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눈물의 가치를 깨달아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흘리신 눈물의 의미를 세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인생들의 구원을 위한 눈물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 영광을 뒤로 하고 육신을 입으셨지요. 죄의 삯으로 영원히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될 인생들을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인생들이 끔찍한 지옥이 아닌 아름다운 천국에 가게 하기 위해 오셨지요. 그때까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던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하늘에서 온 분이기에 알 수 있는 것이었지요.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진리임을 확증하는 기사와 표적도 나타내셨습니다. 마음이 조금만 선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러한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나아가 적대시 했습니다. 심지어 미친 사람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친족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기보다 사람들의 평판을 믿고 예수님을 제지하려고 했지요.

율법사와 바리새인 들은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을 고쳐 주시는데도 안식일에 일함으로써 율법을 어겼다며 정죄했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귀신 들려 비참하게 살고 있던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었더니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 조롱했지요.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 자기를 낮추시고 인생들과 같이 되셨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천국 복음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모이면 서기관과 율법사들은 시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주시했습니다. 율법에 어긋난 말을 하지는 않는지 빌미를 얻고자 감시했고요.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베푸심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기득권 세력인 바리새인과 대제사장 들은 어찌하면 예수님을 없앨까를 모의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악한 인생들의 마음을 친히 보고 듣고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늘 아버지께 눈물로 기도하셨지요. 자신을 믿고 영접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배척하고 판단․정죄하는 이들도 구원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이처럼 인생들의 구원을 바라시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눈물은 둘째, 인생들의 변화를 위한 눈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육신의 생각에 가려서 영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말씀하시자 그때까지 예수님을 붙좇던 무리 중에서도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하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나왔지요. 그리고 결국 그중의 많은 수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떠나는 이들을 어리석다 비난하지 않으셨고, 저주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시며 떠나는 이들을 안타깝게 여기셨지요.

한편, 예수님 당시에도 자기 의와 틀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완고함을 책망하시기보다 비유를 들어 하나하나 깨우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바리새인과 서기관 들이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가 자신들의 의와 틀에 어긋난 점을 발견하자 예수님께 따져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 15:2에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했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들이 옳게 여기는 ‘장로의 유전’이 하나님의 뜻에 위배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장로의 유전’이라는 틀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지키는 장로의 유전이 무조건 틀렸다.” 하시지 않았지요. 다만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마 15:4-6에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주신 모세 오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습니다. 그런데 장로의 유전에는 “부모님께 드리면 보탬이 될 것이라도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면 부모님께 따로 드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돼 있었지요. 이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왜곡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이 판단의 근거로 제시하는 장로의 유전이 하나님의 뜻과 다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이 잘못됐다고 장로의 유전을 근거로 비난하는 자체도 맞지 않음을 깨우쳐 주셨지요. 여기서 더 나아가 마 15:11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라는 설명도 덧붙여 주셨습니다.

바리새인은 ‘분리된 자, 구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이방의 세속적인 문화에 물들지 않기 위해 철저히 율법대로 사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됐지요. 서기관은 모세 오경과 구약 예언서들을 지극 정성으로 필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의 생각이 동원되므로 하나님의 뜻에서 점차 벗어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이러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우칠 수 있도록 여러 비유와 예시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을 빌미로 송사하려 했던 일이 나옵니다. 10절에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했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들어 답을 해 주십니다. 11-12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말씀하셨지요. 그 후 그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의와 틀이 단단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라도 어찌하든 변화될 수 있도록 마음을 쓰셨던 것입니다. 또한 늘 함께한 제자들을 위해서도 사랑으로 중보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 남겨질 제자들이 사명을 잘 감당하고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하기를 바라셨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섬세하게 살피시며 아버지께 맡기는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한 자는 나를 사랑하되 아직 깨우침이 부족하고 한 자는 마음이 여려 눈물이 많고 또 한 자는 믿음이 연약하여 여러 생각이 있고 또 한 자는 중심이 곧아 꺾어지기 쉽고…. 나를 사랑하여 눈물로 그 삶을 살아갈 이도 있사오니 기억하소서. 아버지여, 연약한 제자들에게 힘을 주옵소서. 아버지께서 이끌어 가심을 믿사오되 이 아들이 떠난 후에 이들에게 임할 은혜가 있음을 아옵나니 아버지여, 이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심어 주신 이러한 눈물의 기도는 제자들에게 큰 사랑의 힘으로 작용했지요. 롬 8:35-37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했습니다. 그 결과 가룟 유다를 대신한 맛디아까지 모든 제자들은 새 예루살렘 열두 기초석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눈물은 셋째,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눈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인생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찾지도 않고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만이 인생들에게 찬송을 받기에 지극히 합당한 분이심에도 인생들은 헛된 신에게 경배하고 있었지요.

이에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심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셨지요. 예를 들어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에 4절에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셨지요. 이 일로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났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벙어리로 말하게 하고, 불구자로 건전하게 하며, 절뚝발이로 걷게 하셨습니다. 소경이 보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문둥병자를 깨끗케 해 주셨지요. 예수님께서 이런 표적을 나타내신 이유는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크시고 불가능이 없으시며 참되고 유일한 신(神)이심을 사람들이 믿어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시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요 14:13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것도 아버지의 영광을 위함이었지요.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어야 무수한 인생들이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죽음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수많은 자녀를 얻으시니 얼마나 기쁘실까를 생각하셨지요.

오늘 본문 말씀처럼,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심정이 잡히시던 날 밤 아버지께 올린 기도문에도 잘 나와 있지요. 요 17:4-5에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사시다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죽으셨지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많은 눈물을 흘리셨지만, 그 눈물의 열매는 매우 컸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수히 나왔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영광 받게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은 주님의 눈물의 의미를 세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인생들의 구원을 위한 눈물이요, 인생들의 변화를 위한 눈물이며,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눈물이라 했지요.

주님께서 흘리신 보혈에는 인류의 모든 죄를 단번에 대속하는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흘리신 눈물은 사랑의 결정체요, 인생들을 위한 희생의 증거였지요. 시 126:5-6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여러분은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대가로 맺힌 열매입니다. 더욱 실하고 아름다운 열매로 나와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04-17 오후 11:23:17 Posted
2017-04-25 오후 2:21:2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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