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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축복  [요삼 1: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7.05.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삼서 2절을 제가 조금 다르게 읽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의 영혼이 잘됨같이 여러분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제가 간구합니다.” 본문 말씀은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가이오 장로에게 보낸 편지에 쓴 기원(祈願)입니다.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전달되지요.

이는 사실 누구의 마음이겠습니까? 바로, 우리 영혼이 잘됨으로써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바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이 말씀대로 늘 우리 삶 속에 축복을 주셨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여러 번 바뀌어도 이러한 사랑이 변치 않으시지요.

올해에도 설부터 특별 다니엘 철야, 부활절, 영 잔치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축복의 흐름은 멈추지 않고 흘러왔습니다. 이 시간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처럼 많은 축복을 주고 계신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 모두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더 잘 알게 되고, 또 그 사랑이 여러분 마음에 더욱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본문 말씀의 기원이 여러분의 삶에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처럼 끊임없이 축복의 흐름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성결을 향해 열심히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부나 명예, 권세를 얻기 위해 단 한 번뿐인 인생을 허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곧 ‘참마음’을 얻기 위해 여러분의 소유를 다 팔아오셨습니다. 청춘도, 지식과 명예, 권세도 나 자신 또는 가족을 위해 써야 할 물질과 시간도 하나님 뜻이라면 아낌없이 다 드려왔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벌까?’ ‘어떻게 하면 좀 더 높임을 받을까?’ 고민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드릴까?’ ‘어떻게 하면 좀 더 낮아져서 주님처럼 형제․자매의 발을 씻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였습니다.

때로는 아직도 버리지 못한 악의 모양들 곧 미움, 혈기, 감정 때문에 노심초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애쓰고 힘쓰며 살아가십니까? 거룩하시고, 아무 흠도 점도 티도 없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닮기를 너무나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이 계신 곳,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룬 믿음의 선진들이 들어간 새 예루살렘을 너무나 사모하기 때문이지요.
이뿐 아니라 ‘성결’되는 것 곧 영혼이 잘되는 것이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며 축복의 기본 조건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때로는 이렇다 할 결실이 보이지 않으니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다시 세상을 향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결국 여러분은 다시 힘을 내셨고 다시금 아버지를,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셨습니다. 빌 1:6에 말씀하신 대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 126:5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는 영계의 법칙을 믿기 때문이지요.

지금까지 이런 믿음으로 변개함 없이 성결을 위해 달려오신 분들은 설령 칠전팔기 했다 할지라도 결국 축복을 받습니다. 영, 온 영의 열매가 당장 드러나 보이지 않을 때도 믿음을 내보이는 만큼 부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늘 체험해 오셨을 것이고요.

혹여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은 감사하고 자족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는 진정 성결을 사모했는지, 아니면 성결 그 자체보다는 그에 따르는 축복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 장로에게 쓴 편지에 이와 같은 말씀도 함께 적어 보냈습니다. 요한삼서 4절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사람의 마음이 즐거우면 그 얼굴에 티가 납니다.
이처럼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심으로 즐거우시면 그 즐거움을 나타내십니다. 즉 자녀들에게도 반드시 즐거움을 주시지요.
즉 여러분이 성결에 힘쓰는 모습이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현실적으로는 살기가 녹록치 않은 이 시대에도 평안과 풍성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결을 위한 노력은 이처럼 참으로 가치 있고 복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후로도 더욱 성결에 힘쓰셔서 여러분 모두가 새 예루살렘까지 침노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끊임없이 축복의 흐름을 주시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둘째 이유는 세워 주신 목자를 신뢰했기 때문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있을 당시의 일입니다. 수넴 지방에 살던 한 귀부인이 엘리사 선지자가 그 지방에 올 때마다 음식을 대접하고, 남편을 설득하여 언제든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방까지 마련해 줍니다. 이에 감동을 받은 엘리사가 자식이 없던 이 여인에게 복을 빌어 줌으로써 아들을 얻는 축복을 받지요. 이처럼 귀한 아들이 갑작스레 죽었을 때에도 엘리사를 통해 다시 살아납니다. 또 훗날 이 귀부인은 엘리사와의 인연 덕분에 잃었던 집과 땅도 되찾지요.

즉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를 신뢰함으로써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어떻게 이처럼 하나님의 선지자를 신뢰함으로 축복받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마음과 영적인 것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만약 이 땅 어딘가에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 주는 이가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을 만나 보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또한 그 사람을 만나면 이 수넴 여인처럼 그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아봅니다.

왕하 4:9을 보면 이 여인이 그 남편에게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하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엘리사에 대한 소문만 듣고도 그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깨달아 섬긴 것이지요. 이에 엘리사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집에 들러서 음식 드시기를 간절히 권하였던 것입니다. 이로써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제는 왜 제가 기도할 때 오랫동안 가문 곳에 비가 내리는지, 병으로 다 죽어가던 이들이 살아나는지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세워 주신 목자를 통해 마지막 때의 섭리를 어떻게 이뤄가고 계신지 잘 아시지요.
더더구나 목자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분들, 자신의 믿음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얽히고설킨 문제를 해결 받은 분들, 도무지 받을 수 없는 축복을 받은 분들은 목자를 신뢰하되 그 신뢰가 사랑에서 비롯되기에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때로 제가 영적으로 깊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을 드려도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기도하시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목자를 통해 그 뜻을 이루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겸손히 구하시고요.

물론, 간혹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 중에는 자신의 생각 가운데 의심이나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도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이모저모 체험을 통해 깨우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을 봅니다.

최근 한 성도님은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업무를 하다가 졸음운전을 하여 화물 트럭에 부딪치는 아찔한 사고를 당했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골절은 물론 타박상 하나도 입지 않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목자의 공간을 체험한 이 성도님은 그동안 목자를 통해 늘 배워서 알고 있었음에도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지 못한 것과, 목자에 대해 잠시 스쳐가는 생각이나마 온전치 못한 생각들을 회개했다 했지요. 그러자 천국 소망과 ‘나도 변화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목자를 신뢰할 때와 신뢰하지 않을 때 영적인 충만함이 현저하게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목자를 신뢰할 수 있는 많은 증거들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지켜봐 오신 여러분들이 그 누구보다 목자를 깊이 신뢰하실 수 있어야 하지요. 여러분 모두가 참으로 아름답고 온전한 신뢰를 이루심으로써 풍성한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끊임없이 축복의 흐름을 주시는 이유는 셋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재자처럼 자녀들로 하여금 강제로 영광 돌리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먼저 자녀들에게 많은 축복과 응답, 행복과 기쁨을 주시는 분이지요.

신 4:35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이유에 대해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사 42:8에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헛된 우상들이 결코 줄 수 없는 응답과 축복을 주시는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찬양받기에 지극히 합당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지요. 특히 이 제단에는 어려운 세상과 달리 응답과 축복의 간증이 항상 넘쳐나기에 감사와 경배의 찬양 또한 늘 넘쳐납니다. 이로써 우리 성도님들은 성결에 힘씀으로써 영혼이 잘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신뢰하면 반드시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으십니다.

또한 영혼이 잘되는 만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니 행복하게 사십니다. 설령 아직은 성결이 조금 부족해도 목자를 신뢰하면 가난이나 질병, 재앙과 상관없이 평안한 삶을 살게 됨을 많은 체험을 통해 잘 아시지요. 이러한 우리 성도님들의 복된 삶은 장차 인간 경작이 끝난 후 들어갈 천국에서의 삶이 어떠할지를 미리 보여 줍니다.

계 21:3-4을 보면 천국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말씀하십니다.

또한 계 5:13 후반절을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바로 이러한 경배와 찬양이 영원무궁토록 울려 퍼지는 곳이 천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새 예루살렘은 행복의 농도가 가장 진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아름답고 찬란하게 드리워져 있는 곳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며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을 믿으십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과 천국 처소에 이끌어 들이실 것을 믿지요. 이러한 믿음과 소망 가운데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는 이들에게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주어집니다.
지난 영 잔치는 바로 이러한 훗날의 영광을 미리 느껴봄으로써 그 영광을 사모하여 침노하기를 바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지요. 이처럼 우리에게 넘치는 축복과 행복을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여러분 모두가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 마음껏 영광을 올려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제단에 끊임없이 축복의 흐름을 주시는 이유는 첫째, 성결을 향해 열심히 달려왔기 때문이며 둘째,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목자를 신뢰했기 때문이며, 셋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최근 몰도바 만민교회 성도들의 간증을 통해 성도님들도 많은 은혜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길어도 몇 주밖에 못 산다고 사형선고를 받은 분이 시공을 초월하여 저의 기도를 받고 극적으로 살아나는 등 많은 치료 간증도 있었지만 이 성결의 복음을 듣고 영적 갈급함이 채워졌다는 고백들이 유달리 많았습니다.

막심 추바추크 형제는 이러한 간증을 하였습니다. “당회장님의 설교는 제 마음에 성령 충만함과 천국 소망을 주었습니다. 저는 들은 말씀대로 행하고자 했습니다. 당회장님께서 생명을 걸고 받아 내리신 성결의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이면 이 말씀대로 역사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대로 행하면 행할수록 제 삶이 변화되었고 축복이 왔습니다. 즉 이 말씀이 제 삶에 역사하심을 체험했습니다. 이로써 저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귀한 말씀을 주시고 저를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저의 사랑하는 목자이신 당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이 형제님은 직접 만나 본 적도 없는 저를 자신의 목자로 인정하고 성결의 복음을 좇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혹여라도 ‘나는 이렇게 목자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며 말씀을 들었는데 어쩌면 이렇게 변화가 더딜까‘ 안타까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럴수록 더욱 성결에 갈급한 심령이 되어 목자가 대신 쌓은 99%의 공의를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누구나 능히 변화될 수 있습니다.
내일, 축복의 날에도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성결에 대한 간절함과 목자에 대한 신뢰 가운데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05-16 오후 8:54:46 Posted
2017-06-12 오전 9:53:0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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