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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2)  [잠 6:16-19]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8.06.03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벗어 버려야 할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두 번째 ‘거짓된 혀’에 이어서 오늘은 거짓말의 유형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고 세 번째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에 대해서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거짓된 혀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거짓된 혀의 대표적인 인물로 악한 거짓말과 궤계를 써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 또한 악을 행하게 한 이세벨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또 자신의 유익을 위해 상대를 속여 삼손에게 큰 해를 입힌 들릴라와, 아합왕 때 400인의 거짓 선지자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거짓말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남의 것을 탈취하며, 상대를 괴롭히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자신은 그냥 말을 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상대는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하지요. 내가 누군가의 거짓말로 인해 모함을 받거나 괴로움을 당해 심히 낮아지고 큰 해를 입는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오직 선과 사랑의 말, 진실한 말을 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거짓말의 유형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어떤 악의를 가지고 속인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말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므로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3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하였으나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당시 베드로는 거짓말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아직 성령 받기 전의 사람이라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자신의 마음을 지킬 수 없었지요.
이렇게 육은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끊고자 결심해도 결국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신앙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육의 사람들은 충만했다가도 힘든 일을 만나면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하며 낙심하지요. 더욱이 초신자는 성령 충만할 때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생명 다해 충성할 것같이 고백하지만 몇 달 가지 못해 그 다짐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일꾼이라 해도 그 고백을 지킬 수 없도록 원수 마귀 사단은 시시각각 역사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6장 41절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셨고, 베드로전서 4장 7절에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선 줄로 생각지 말고 항상 깨어 기도하여 온전한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사울왕과 다윗을 통해서도 육의 고백의 거짓됨과 영의 사람의 진실함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4장에는 사울왕이 삼천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죽이기 위해 쫓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굴이 있어서 사울이 그곳에 들어가 쉬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 굴 깊은 곳에는 다윗과 그 일행이 있었기에 다윗의 사람들은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지만, 선한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을 죽일 수 없다며 사울의 겉옷자락만 가만히 베어 왔습니다.
사울왕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자 다윗은 뒤에서 “내 주 왕이여” 외치며 땅에 엎드려 절하고, 그 옷자락을 보여 주면서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사울은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선대하는 다윗에게 소리 높여 울며 말합니다.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비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삼상 24:20~21)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인정하고 그에게 자기 후손까지 부탁합니다.
이처럼 사울왕은 진심으로 고백했지만 사무엘상 26장을 보면 다시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쫓는 장면이 나옵니다. 변개하는 육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고백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끝까지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켰으며 사울과의 맹세도 지켰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 사울의 집에 남아 있는 사람을 찾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사울에 속한 재산을 다 그에게 주고, 자신의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도록 해 주었지요.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진실한 영적인 사람이므로 자기가 맹세한 것을 지켰습니다.

다음으로 본의 아니게 거짓말하는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하얀 거짓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중에는 하나님께서 죄로 여기지 않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피치 못하게 거짓말하는 경우이지요.
여호수아 2장에 나오는 여리고성에 살던 기생 라합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 준 일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여리고 왕이 보낸 사람들이 정탐꾼을 잡으려고 라합의 집에 들이닥쳤는데 라합이 ‘그들이 어디 갔는지 알지 못하니 급히 따라가라’고 거짓말을 하여 돌려보냈지요.
그러면 좋은 거짓말, 하얀 거짓말은 죄가 되지 않으니까 해도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얀 거짓말이라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거짓말하지 않고 지혜롭게 말하거나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면 더 좋습니다. 예수님은 하얀 거짓말도 하지 않으셨지요. 지혜롭게 피하시거나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등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으셨습니다.
셋째,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입니다

자신의 악으로 인하여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울왕의 경우, 나라와 왕을 위해 의를 행한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지는 못하였으나 그렇게 행했던 모든 것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에 해당됩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을 도와주었다며 놉에 있는 무죄한 제사장들과 남녀노소는 물론 짐승들까지 진멸했습니다(삼상 22:18~19). 다윗에 대한 시기, 질투로 이렇게 큰 악을 행했지요.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시기, 질투, 미움, 원망, 서운함과 같은 악이 이런 큰 죄를 낳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인도 시기로 인해 의인인 동생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은 가인이나 사울왕과 같이 살인을 하거나 폭력을 행하여 큰 해를 입힌 경우에 해당하므로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나 싫은 사람을 미워하고 혈기를 내거나 괴롭히고, 뒤에서 험담하는 악을 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높은 위치의 권세가 주어진다면 사울왕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빌라도 총독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여 거짓 누명을 씌워 십자가에 못 박게 했던 대제사장들과 장로, 권세자들의 죄악은 말할 것도 없이 큽니다. 하지만 이를 허락한 빌라도 또한 그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지요. 그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시기로 인해 예수님을 넘겨준 것을 알았지만 민란이 날까 염려하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도록 내주었습니다.
아무리 백성들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해도 결국 1차적인 책임은 빌라도에게 있습니다. 물론 죽이고 살리는 권세는 하나님께 있지만 빌라도는 내줄 권세도 있고, 내주지 않을 육적인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직위를 지키기 위해 거짓인 것을 알면서도 이런 악을 행했지요. 더구나 선하고 의로우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죄는 너무나 큰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빌라도 총독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려고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백성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결국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유대인들의 고백과 같이 이스라엘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서기 70년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면서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습니다. 그 후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아다니게 된 유대인들은 곳곳에서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했지요.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에 의해 온갖 고문과 학살을 당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구세주를 벌거벗긴 채 죽음으로 몰아넣었기에 그들도 벌거벗긴 채 비참하게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들이 말한 대로 죄악에 대한 보응을 철저히 받았습니다. 이처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우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는 않는다 해도 이 말씀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질서상 윗분이 평상시 자신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사람을 칭찬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칭찬받는 것을 들으니 마음에 시기가 일어나면서 상대의 단점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뒤에서 수군거리고 비방하며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하더니 칭찬을 받는구나.” 하고 윗사람까지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이것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에 해당됩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말씀한 대로 영적인 살인이기 때문이지요.
요즘은 학교에서 친구들을 왕따시킨다거나 괴롭히고,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의 글로 피해를 입히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상대를 험담하는 글이나 거짓으로 만든 글을 퍼뜨려 큰 고통을 주고 죽음에까지 몰아가는 일들도 있지요. 세상에서도 이런 일들을 큰 죄로 다루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뭐라 하실까요? 당연히 죄라 하십니다. 마음이나 생각으로 짓는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지혜가 기록된 잠언 1장 16~19절을 보면 타인의 생명을 잃게 하고, 해를 가하며 타인을 힘들게 하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잠깐의 유익이나 자신의 악한 감정 때문에 상대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잃게 하는 것임을 명심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항상 선과 의, 진실만을 좇아 행하심으로 하나님 사랑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18-06-04 오후 9:21:49 Posted
2018-06-07 오후 10:40:2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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