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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4)  [잠 6:16-19]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8.06.24
하나님의 사랑받는 참 자녀가 되어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벗어 버려야 할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에 대해 들으면서 참으로 악하다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악인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상대에게 해를 끼치며 괴롭게 하고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악을 거침없이 행할 수 있지요. 혹여 여러분 삶 속에 이런 모습은 있지 않은지 말씀으로 자신을 비춰 보시기 바랍니다.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무심코 지나친 악이라도 떠올려 주시고, 신속히 벗어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1.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열왕기상 21장 10절 이하를 보면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과 동조하여 거짓 증인이 되었던 비류 두 사람이 나옵니다. 비류는 쓸데없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불량배나 건달, 깡패를 말합니다. 이들은 이세벨의 악한 궤계로 무죄한 나봇을 모함하여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는 데 망령된 증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들로 인해 나봇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자라는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있을 수 없는 큰 죄악입니다.
그들은 악에 동조하였으므로 이 일을 주도한 이세벨과 다름없이 죄가 큰 것입니다. 거짓 증인이 되어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3장 1절에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말씀하셨습니다. 무함이란 ‘없는 일을 꾸며 남을 함정에 몰아넣는 것’을 말하지요. 이런 사람에 대해 잠언 19장 5절에는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도 피치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21~22장을 보면 옳고 바른말을 하는 선한 증인과 악하고 망령된 증인의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해 도망가다가 먹을 것과 무기를 얻기 위해 성읍인 놉에 잠시 들릅니다. 그때 제사장 아히멜렉은 전후 사정을 모르고 다윗이 요청하는 대로 떡을 주어 먹게 하고, 또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골리앗의 칼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그 후 사울왕은 다윗이 사백 명가량의 사람과 함께 유다 땅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신하들에게 왜 다윗에 대해 고발하는 자가 없었느냐고 노발대발합니다. 이때 에돔 사람 도엑은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먹을 것과 골리앗의 칼을 준 사실을 사울왕에게 고하지요. 도엑이 아무리 사실을 말했다 할지라도 상대를 해코자 하는 마음으로 고한 것이므로 이는 고자질입니다.
이에 사울왕은 놉에 있는 모든 제사장들을 소환합니다. 그 앞에 나온 아히멜렉은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의 대소 간에 아는 것이 없나이다”라고 떳떳하게 다윗에 대해 증거합니다(삼상 22:14~15). 다윗을 도왔다고 책망하는 사울왕의 위협적인 말과 분위기를 느꼈지만, 아히멜렉은 다윗의 선과 진실에 대해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이때 에돔 사람 도엑은 아히멜렉이 사건의 전모를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 변호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아히멜렉이 누명을 쓰고 죽을 줄 알면서도 입을 함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악한 도엑으로 인해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도엑에 대해 시편 52편 2~3절에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고백합니다.

우리는 도엑과 아히멜렉을 비교해 봄으로써 악한 증인과 선한 증인의 차이점을 충분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질서를 따른다고 하나 상대의 비진리나 죄악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까 정직히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선과 진실된 말로 상대의 오해를 풀어 줄 수 있는데도 눈치를 보며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된 증인이요, 망령된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알면 힘써 해명해 주고 오해를 풀어 주어야 하는데 입을 함봉하고 있다면 비겁자인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배신하고 거짓말로 악을 행하는 망령된 증인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되겠습니다. 내 말이나 행동이 악에 동조하며 함께하고 있다면 이것 또한 악한 증인이요, 망령된 증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 하나님이 싫어하고 미워하시는 모든 악은 모양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2.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

‘이간’이란 그 사이를 헐뜯어 서로 멀어지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제 사이에 시기 질투로 인해 이간하여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 야곱의 아들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의 아들은 12명이었는데 그중 요셉은 11번째 아들로 아버지 야곱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형들보다 좋은 옷을 입고 특별한 대우를 받았지요. 이런 동생을 시기했던 형들은 요셉을 없애기 위해 악한 계략을 꾸밉니다. 처음에는 죽여서 구덩이에 던져 버리려고 했지만 맏형 르우벤의 권유로 죽음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마엘 상인에게 종으로 팔리고 말지요.
형들은 요셉의 옷에 숫염소의 피를 적셔서 아버지 야곱에게 보이며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 먹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야곱은 가장 사랑하던 아들이 죽었기에 오래도록 요셉을 위해 애통하였습니다. 형제간에 이간하여 엄청난 불행을 초래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것뿐만 아니라 왕조 시대에는 왕과 신하 사이를 이간하는 경우도 있고, 왕의 여인들끼리 시기 질투로 인해 서로 험담하고 미워하며 이간하는 일들도 많았지요. 친구 사이나 또는 윗사람과 부하 직원 사이를 이간하는 일도 있고, 싫은 상대를 험담하고 소문내어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간질하는 사람으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대부분의 이간질은 하나님 말씀에 엄히 경계하신 비방하고 수군수군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잠언 17장 9절에는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하셨고, 잠언 20장 19절에는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선한 말만 하고 악한 것은 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로운 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글은 전하면 좋지요. 그런데 상대의 허물을 들추어 전하거나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니 판단하여 나쁘게 전하고, 거짓으로 말을 지어 전한다면 자신이 바로 이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것을 확인도 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도 큰 악이며 결과적으로는 이간이 될 수 있지요.
어떤 경우, 내가 전한 말로 상대가 힘들고 기운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시험에 들게 하고 심하면 교회를 떠나게 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친한 사람들끼리 김 집사에 대해 얘기했는데 함께했던 사람 중 어떤 사람이 그 사실을 김 집사에게 전합니다. “누구 누구가 김 집사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더라.”라고 전해 들은 김 집사는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자신에 대해 뒤에서 나쁘게 말한 사람들에게 미운 감정을 갖게 되지요.
또한 어떤 경우는 교회 안에서 일꾼들 사이에 의견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 잘못된 사람으로 몰아 말한다면 이는 명백한 험담이며 이간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고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 말했다고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이 과연 선하며 덕스러운 말인가 깊이 생각해야 하지요. 모든 상황을 파악하여 상대가 왜 그렇게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는 어떤 것도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악의를 가지고 이간하려 한 것은 아니나 이 사람에게 저 사람의 마음을 잘못 전달하고, 저 사람에게 이 사람의 마음을 잘못 전달하여 오해하게 하므로 이간하는 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윗사람이 모두에게 교훈이 되도록 모임에 없는 A에 대해 말했는데 그 말을 전합니다. 자신의 느낌을 가미하여 A에게 전달하니 당사자는 매우 기분이 상하지요. 이렇게 해서 윗사람과 이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할 말이 있고 전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상대에게 전달하여 기분이 상하고 상처가 될 말이라면 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경우는 전혀 악의 없이 전했는데도 상대가 받지 못하고 오해해서 이간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6~8절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좋은 말만 전하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 시간에 걸쳐 하나님께서 싫어하고 미워하시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중 특별히 육칠 가지를 뽑아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신속히 버려야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혹여 나는 이러한 악들에 해당되는 것은 없는가 면밀히 살펴 ‘이 정도쯤이야.’ 하고 넘어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성도 여러분도 싫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여러분도 미워해야 합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사랑하시는 것은 여러분도 사모하여 자기 것으로 삼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18-06-25 오후 10:31:23 Posted
2018-07-12 오전 9:48:1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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