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정기 예배

제목
순전(2)  [마 12:19-21]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8.07.15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의 다투지 않고 들레지 않으신 순전한 모습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처럼 순전한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그리스도의 향기는 죽어 가는 영혼들을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순전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순전’이란 ‘순수하고 완전함’을 뜻하며 깨끗한 마음 그릇에 영의 열매가 가득 담겨 있는 상태와 같다 했습니다. 이러한 순전을 이루기 원하는 성도라면 먼저 입술의 말을 살펴봐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특히 말속에 사람의 선과 악이 담겨 있습니다.
만약 남의 말 하기 좋아하고 판단 정죄하며 수군거린다면 이는 자기가 얼마나 악한지 드러내는 것입니다. 반면에 순전한 사람은 그 말과 행실이 온전하며 아름답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희생적인 사랑과 긍휼, 자비, 양선, 오래 참음과 절제 등 영의 열매가 마음 안에 풍성히 맺혀 있으니 그 말과 행실에서 순전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납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본문을 중심으로 순전하신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고우신 성품이 겉으로 나타난 모습입니다. 걸음걸이나 몸가짐, 언어 습관에서도 얼마나 흠이 없고 온전하셨는지를 나타내 보여 주시지요. 성경에 이러한 예수님의 성품과 교양을 왜 기록해 놓았는지 깨달아 우리도 닮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의 교양과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는 가정 안에서 주의 교양이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순종하지 않는다고 “너는 왜 그렇게 행동하니?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라고 짜증스럽게 지적할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먼저 주의 교양으로 행하며 본이 되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녀는 부모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배워 행합니다.
예를 들어 혈기가 많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이 청년이 되면서 혈기를 부리고 심하면 부모에게 폭력까지 행사합니다. 다 큰 자녀를 부모가 제재할 수도 없고 가족 모두 심히 고통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그런 자녀를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먼저 부모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부드럽고 온유하며 덕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자녀를 위해 중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변화시켜 주십니다.
또한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변화되어 선과 사랑으로 남편을 섬긴다면 남편이 구원받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여 물질의 축복도 받고 영육 간에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주의 교양으로 가정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면 남편도, 자녀도 변화시킬 수 있지요.
주의 교양을 갖추는 것은 영으로 들어가는 데 있어서도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교양이 있다 해서 다 영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영으로 들어갈수록 교양 있는 언행이 나옵니다. 사람의 걸음걸이나 몸가짐, 말에는 그의 마음과 성품이 배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선과 사랑이 가득하면 상대를 섬기며 배려하게 됩니다. 주의 교양은 육적인 에티켓을 배운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닮고 영과 온 영이 될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의 교양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삶 속에서 개선해야 할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대체로 걸음걸이나 말과 행동이 빠릅니다. 남의 말을 다 듣기 전에 성급히 판단해 답하기도 하며 남의 말을 중간에 끊는 무례함도 나오지요. 급히 행동하다 넘어지거나 물건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몸을 심하게 흔들며 걸어가는 사람도 있고, 삐딱하게 앉기도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걷거나 앉아 계실 때 모습이 어떠셨겠습니까? 그 자태만으로도 고상함이 느껴지지 않겠는지요?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외모도 반듯하고 참 교양 있어 보이는데 막상 대화를 해 보면 실망스러운 경우가 있습니다. 남을 은근히 험담하거나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전하는 것을 보니 인격이 좋지 않음을 알게 되지요. 이처럼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마음과 직결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말씀하십니다(약 3:2).
말을 전할 때는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임의로 다른 사람에게 전하므로 이간질시킬 수도 있고, 자신의 느낌을 보태거나 중요한 것을 빼고 전달하므로 오해가 되거나 일이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영을 사모한다면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비진리의 말이나 세상적인 말들은 절대 담지 말아야 합니다. 말의 내용뿐 아니라 말하는 모습도 잘 살펴 순전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비진리의 말은 아니라 해도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한다거나 어떤 상황에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말을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입에 음식물을 머금고 말을 하는 것이나 침을 튀기면서 말하는 것, 또는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말하는 것 등도 순전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 밖에도 대화를 할 때 상대를 툭툭 치거나 손가락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얘기하거나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는 것도 고쳐야 합니다. 여러분이 순전하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말씀하고 행동하셨을까를 생각한다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2.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셨습니다

먼저 ‘상한 갈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했습니다. 여기서 풀과 꽃을 인생의 모습에 비유한 것처럼 본문의 ‘갈대’도 사람을 의미하며, ‘상한 갈대’란 영적으로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찬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풀은 영혼이 없기에 말라 죽으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영원불멸의 영을 부여받았기에 육의 수명이 끝나면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져서 세세토록 고통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6장 30절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 말씀하십니다. 들풀도 아끼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죄에 물들어 그 형상을 잃어버리고 원수 마귀 사단에게 찢기고 상했다 해서 어찌 단번에 버리시겠습니까? 아무리 불의가 가득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회개할 수 있는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참으십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는 말씀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꺼져가는 심지’란 불이 꺼져간다는 뜻으로 아직 불씨는 남은 상태입니다. 여기서 ‘심지’도 인생의 영혼을 의미합니다. 잠언 13장 9절에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하신 대로 영혼의 생명을 등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꺼져가는 심지 또한 구원의 빛이 꺼져가는 인생의 모습을 의미하지요.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는 것은 악한 세상에 마음이 물든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시금 불을 피울 수 있는 조그만 불씨만 남아 있다면 그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수 있는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기다리시고 은혜를 주신다는 뜻이지요.

마지막으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하신 심판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심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는 인간 경작이 모두 마친 후에 임하는 심판으로 모든 사람은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심판에서 한 사람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7~18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하신 대로 모든 사람은 장차 백보좌 대심판 때에 최종 심판을 받게 되지만, 이 땅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이미 심판이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면 영생이라는 복이 주어집니다. 반면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이 땅의 생명이 다하면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한 성도들이라 해도 구원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영접할 때 우리 마음 안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온전한 구원과 참 자녀로 나올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사랑의 의미가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는 이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성령을 받았다 해도 심히 짐짓 죄를 범하면 회개의 영이 오지 않고 결국 성령이 소멸되어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완전히 성령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불씨처럼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오래 참으시고 많은 기회를 주시며 최후까지 쉽게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라는 말씀에 담겨 있는 의미입니다.
이뿐 아니라 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무리 죄악 가운데 살며 하나님을 대적한다 해도 예수님께서는 그가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계속해서 마음 문을 두드리신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참고 기다리시며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예수님의 순전한 모습처럼 주의 교양을 갖춰야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과 주님의 마음을 전해드렸습니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영혼들이라도 주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힘써 전도하고, 충성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드립니다.


2018-07-16 오후 11:36:08 Posted
2018-07-19 오후 11:30:51 Updated

다음 글 최후 승리 얻기 위해 이전글
이전 글 순전(1) 다음글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