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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순전(3)  [마 12:19-21]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8.08.19
지난 시간에 이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의 순전하신 모습에 대해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다투지 않고 들레지 않는 분이시기에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신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순전’이란 ‘순수하고 완전함’을 뜻하며 깨끗한 마음 그릇에 영의 열매가 가득 담겨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난 시간에 ‘상한 갈대’란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하며, ‘꺼져가는 심지’란 마음이 악으로 심히 물들어 영혼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순전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살려내고자 하셨습니다.


1.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 예수님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상처 입고 힘든 사람을 만나 주시고 생명을 주시며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당시 함께 사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라 생각할 정도로 참 평안과 쉼을 얻지 못했지요. 예수님께서는 여러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으며 갖은 풍파를 겪어 그 마음이 찢기고 상한 것을 긍휼히 여기시며 상처를 어루만져 주셨지요. 세상에서 진정 믿고 의지할 사람을 만나지 못해 사랑에 주린 여인의 심령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를 주시고, 영적인 참 신랑인 구세주를 믿고 영접할 수 있는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도 그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죄인이라 판단하며 싫어했지만 예수님은 사랑으로 용서해 주시고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요. 그리하여 막달라 마리아는 치료받고 새 생명을 얻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자리까지 붙좇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압제 하에 있었고 세금을 거둬들이는 세리들은 백성들로부터 미움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세리들은 설움도 쌓이고, 마음의 상처도 많이 있었지요. 때로는 울분을 이기지 못해 더 강압적인 모습으로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 멀리하지 않으시고 그런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찢기고 상처 난 마음을 이해해 주고 고쳐 주길 원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같이 정죄를 받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시고 그들의 중심을 보시고 상한 영혼, 찢기고 짓밟힌 영혼이라도 끝까지 구원해 주기 위해 비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오직 선만 행하셨습니다. 인생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하신 말씀처럼 사람은 누구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점점 더 악해져 죄악에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물들고 상처 난 마음에서 곱지 않고 거친 행동이 나오며 거짓된 말과 행동이 나올 수 있는 것을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셨지요. 그래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고 사랑으로 가까이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10절에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말씀한 대로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람들과 예수님께서는 함께하시며 진리를 가르쳐 주셨지요.
그런데 악한 사람들은 오직 선과 사랑만 베푼 예수님을 비방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도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며 찌르거나 다투지 않고 진리로 깨우쳐 주셨습니다(마 9:12~13).

오늘날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죄인들을 바라보지만 그들을 구원과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주저하는 것을 봅니다. 함께하면 판단을 받거나 수군거림을 받을까 염려하기 때문이지요. 선과 진리를 행함에 있어 혹여 사람들이 판단한다 할지라도 선을 좇는 것을 주춤하거나 사람의 눈치를 봐서는 안 됩니다.
이는 늪에 빠진 사람에게 “거기 있으면 죽으니까 빨리 나오세요.”라고 말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경우는 상대의 손을 꽉 붙잡고 놓지 않다가 같이 빠져 죽을 위험한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상대를 사랑한다면 어찌하든 구하려 힘쓰지요.
또한 늪에 빠진 사람의 손을 잡아 주면 오물들이 내게 묻을까 그것이 싫어서 그저 말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물론 나 혼자의 힘으로 구해 낼 능력이 없으면 다른 도와줄 사람을 불러야겠지만 내게 어떤 손해가 오는 것이 싫어서 죽어 가는 영혼들을 보고도 모른 체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늪에 빠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 진정한 선이며 순전하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 말씀은 영혼들을 전도하지 않거나 잘 갈무리하지 못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지요. 누군가가 사망으로 가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권면하면 싫어할 거야. 권면해 봤자 듣지 않을 텐데.’ 하고 외면해 버리고 모른 척한다면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상대에게 진리로 가르쳐 주고 깨우쳐 주는 것이 적극적인 선입니다. 이때 혹 권면해 주었는데 상대가 싫어하고 받지 않는다고 해서 내 안에 불편한 감정이 나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늪에 빠져 있었을 때 주님께서 살려 주신 그 사랑을 기억하여 더 적극적으로 영혼들을 선으로, 진리로, 구원으로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이들을 깨우쳐 주시고, 또 기회를 주시고 용서해 주시며 사랑으로 품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지요. 세리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막달라 마리아는 몸과 영혼이 온전케 되어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며 붙좇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2.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순전하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선과 사랑으로 영혼들을 대하셨는데도 예수님을 미워하여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율법과 하나님에 대해 잘 알았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참 빛 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심으로 자신들의 악함이 드러나자 견디지 못해 더욱 악을 발했지요. 어찌하면 예수님을 잡아 죽일까 궁리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꺼져가는 심지와 같이 불이 약하여 기름을 완전히 연소시키지 못하므로 매캐하고 검은 연기를 내어 주변을 해롭게 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더 이상 검은 연기가 나지 않도록 심지의 불을 아예 꺼 버리게 되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기 악으로 인해 스스로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사람들이 악을 발하여 예수님에게 해를 가해도 그들을 결코 저주하지 않았고, 그들이 멸망당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또한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반해 팔아넘기려는 마음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사랑으로 품어 주셨는데 이는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순전한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요 13:1).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의 빛을 보고 영생에 이를 뿐 아니라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온전한 희생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과 비밀 된 섭리가 있으셨기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난과 고통도 선과 사랑으로 견디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순전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육으로 볼 때는 도무지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러분 편에서 먼저 안 된다며 포기하지 마시고 어찌하든 구원으로 인도하시길 바랍니다. 선을 베풀어도 오히려 악을 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악은 싫고 밉더라도 그 영혼은 불쌍히 여김으로 여러분이 먼저 심지를 끄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연약해 시험 환난에 넘어져 교회에 나올 힘이 없는 영혼, 아직 버리지 못한 악으로 인해 성도들을 어렵게 하는 영혼, 스스로 악을 행하고 교회를 떠났다가 이후에 잘못한 것을 깨우쳐도 부끄럽고 민망하여 다시 나오지 못하는 영혼 등 어떤 영혼들이라도 여러분이 먼저 찾아가 주고, 손잡아 주며 이끌어 주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먼저 시작했는데 뒤쳐지니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때로는 뒤쳐진 것이 속상하므로 악을 발하거나 앞선 사람들을 시기하여 그들에 대해 판단하며 험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 해도 영으로 앞서 가는 사람이라면 뒤쳐진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헤아려서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흑백을 가리거나 옳고 그름을 논하여 상대를 꺾으려는 것은 순전한 마음이 아닙니다. 흑백을 가린다고 상대의 잘못을 들춰내어 다툰다면 오히려 꺼져가는 심지를 꺼 버리는 경우가 되지요. 어찌하든 살리고자 해야 하며 죽이고자 마저 짓밟아 버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진실과 사랑으로 선대함으로써 악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녹이고 감동을 주는 것이 순전한 마음입니다. 깨끗한 마음 그릇 안에 양선과 사랑이 가득하여 누구를 대하든지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므로 그리스도의 진한 향을 발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태복음 12장 21절에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신 대로 순전하신 예수님의 이름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구세주로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존귀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양식 삼아 하나님 앞에 순전한 성도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진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이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과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18-08-20 오후 11:22:43 Posted
2018-08-25 오전 12:37:2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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