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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2)  [롬 8:12-13]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19.05.12
주님을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추어야 할 몸의 행실을 6가지 분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 살펴보았고, 오늘은 예수님의 눈과 귀, 입과 자세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눈을 닮아야 합니다

1) 예수님은 영혼들을 향한 긍휼의 눈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니실 때 많은 무리가 모여 들어도 우쭐하거나 그들의 왕이 되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사랑과 긍휼함으로 병든 자를 치료하고, 영적인 말씀을 먹여 주셨지요(마 9:36, 14:14). 또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굶주림까지 해결해 주셨습니다(마 14:15~21). 하나님의 아들이며 큰 권능을 행하는 예수님이시지만, 인생들의 먹을 것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는 사랑의 마음과 섬김의 모습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 명예, 권세가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아픔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은 병들고 가난하고 헐벗은 영혼들을 바라보셨고, 마음에 담으셨습니다. 여러분의 눈은 어떠하십니까?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판단하고 째려보는 눈과 같이 미움과 악이 가득한 모습은 없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은 하늘을 바라보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눈을 가지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릴 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 때, 귀먹고 어눌한 자를 치료할 때도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며 기도하셨지요(요 11:41, 마 14:19, 막 7:34). 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심으로 예수님이 행하신 기사와 표적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과 하늘에 대해 많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의 삶을 보는 영적인 눈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셨지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말씀하신 것입니다(눅 10:23).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기에, 이 땅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고 이로 인해 천국의 삶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복됨을 알려 주셨습니다.
만일 현재의 어려움을 보며 힘들어한다면 믿음의 눈이 아닙니다. 영적인 눈을 가질 때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지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중 10정탐꾼은 현실을 보고 불평함으로 가나안 땅을 밟지 못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그들은 우리 밥이라” 고백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3) 예수님은 상대를 믿음으로 바라봐 주는 사랑의 눈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멀리하는 이방인이나 죄인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그 마음과 중심을 보고 치료해 주며 만나 주셨지요. 세리 삭개오가 돌이킬 것을 아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구원을 베풀었으며, 연보궤에 아주 적은 두렙 돈을 넣는 가난한 과부의 정성과 그 중심을 보고 칭찬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적을 때도 앞으로 변화될 모습을 바라보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모든 것을 오직 진리와 사랑, 긍휼과 선으로 보셨으며 무엇을 보든지 그 속에 담겨 있는 영적인 의미들을 찾으셨던 것입니다.


2. 예수님의 귀를 닮아야 합니다

악한 자들이 “귀신들렸다, 바알세불 지폈다”라고 헐뜯는 말을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분별해 들으셨고, 들을 것과 버릴 것을 확실하게 진리로 구분하셨지요. 듣는 대로 마음이 상하고 낙심하며 힘들어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하신 말씀대로 악한 말은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셨지요(고전 13:5). 오직 진리로 듣고 악한 말에 대해 시시비비하거나 변론하지 않고 선으로 수용하셨습니다.
그러면 선으로 듣고 선으로만 생각하니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셨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선은 항상 악을 이깁니다. 선으로 행할 때 원수 마귀가 일곱 길로 물러가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지요. 예수님께서는 악과 대항하여 싸우지 않으셨지만 돌이킬 수 있도록 선으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서 잡수실 때,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하며 악한 마음으로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고 진리로 그들을 깨우쳐 주셨지요(마 9:11~13).
예수님을 송사하기 위해 안식일에 한편 손 마른 자를 데리고 왔을 때에도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말씀하시고 그 손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마 12:11~13).
또한 육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진리로 분별하며 행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을 마친 후, 마귀에게 세 번의 시험을 받으실 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정확히 분별하여 물리침으로 멋지게 승리하셨지요.
우리의 귀도 예수님과 같이 진리로만 분별하여 정확히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나를 칭찬하고 감언이설로 유혹할 경우 미혹에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귀가 얇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남의 말을 쉽게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은 비진리의 말에도 얼마든지 현혹되어 육으로 물들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하와의 경우, 그 귀와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뱀의 간교한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는 큰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말이든 진리로 바꾸어 들을 수 있는 선한 귀를 가지셨기에 오직 진리와 선의 말씀으로 상대를 깨우쳐 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닮아 좋은 것만 듣되 설령 나쁜 것을 들어도 진리로 바꿀 수 있는 영적인 선한 귀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의 입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선과 사랑, 진리였습니다. 불필요하고 무익한 말을 하지 않음은 물론 많은 말씀을 하지도 않으셨지요. 오직 생명을 살리는 말씀과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는 입술이었습니다. 온유하고 자상하신 모습으로 영적인 말씀을 지혜롭게 비유를 통해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악한 자에게도 악으로 대항치 않으시며 오직 진리와 선으로 말씀하셨지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올무를 잡고자 여러 가지 말로 예수님을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이들의 악한 의도를 아시면서도 결코 찌르거나 변론하지 않으셨습니다. 미운 감정이나 불편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참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선하고 지혜로운 말씀으로 일러 줄 뿐이었지요. 그래도 깨우치지 못할 때는 다투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셨습니다.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도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쳐 주기 위해 몇 마디 말씀하신 것 외에 어떤 변론도 하지 않으셨지요. 애매히 고난을 받으면서도 아무와도 다투지 않음은 물론, 그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리실 뿐이었습니다.
또한 달고 오묘한 생명의 말씀으로 은혜를 끼치고 힘과 소망과 감동함을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듣기에 좋은 말만 하신 것이 아니라 심령을 변화시키는 날선 검과 같은 말씀으로 깨우쳐 주기도 하셨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말은 범사에 유익만 주는, 영혼을 살리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같이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선한 예수님을 향해 꼬투리를 잡으며, 판단 정죄하는 거짓된 입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로 상대를 죽이는 입술이었습니다.
특히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잠 10:19). 또한 농담이나 불필요한 말을 자주하는 것은 무익하며 비진실한 것임을 알아야 하지요. 성경은 사람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약 3:8~12). 여러분은 선과 사랑의 입술,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 등 항상 단물만 내는 입술이 되어 모든 소원을 신속히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4. 예수님의 자세를 닮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19~20절에 예수님은 ‘다투지도, 들레지도 아니하며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였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걸음걸이나 몸가짐, 언어 습관에서도 얼마나 흠이 없고 온전하셨는지를 나타냅니다. 참으로 교양이 있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린 소자나 어떤 사람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지요(마 18:10).
요한복음 4장에는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먼저 물을 달라고 청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오는데, 누구도 업신여기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를 섬기고, 영혼들에게 항상 복음을 전하시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는 모습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척박하고 먼지가 많은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하인들이 손님의 발을 씻겨 주는 풍습이 있는데 스승인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이는 장차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알리고 복음을 전하는 중요한 사명을 감당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곧 주님의 모습을 기억하여 그 의미를 마음으로 깨달아 희생하고 섬기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자세가 곱고 선한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주님의 모습을 닮아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함으로 인정받고 칭송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행실은 지극한 선과 겸손함, 영적인 사랑으로 가득한 내면으로부터 나온 몸의 행실로 우리의 표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랑과 행함은 사람의 심령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세 번이나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랑과 긍휼의 눈빛으로 바라봐 주셨지요. 지금도 여러분을 향해 사랑의 눈빛과 마음을 주고 계십니다. 그 사랑을 중심에서 깨닫는다면 주님의 선한 마음을 닮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아름다운 신부처럼 보고 듣고 말하며 행함으로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라고 칭찬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19-05-13 오후 8:19:18 Posted
2019-05-24 오전 11:26:5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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