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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7) 눈 2 [롬 8:12-13]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0.01.19
우리가 주님 닮은 아름다운 눈을 가지기 위해 주의할 점과, 비진리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와 진리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주님 닮은 아름다운 눈을 소유하려면

1) 비진리를 보는 악한 눈을 주의해야 합니다
비진리, 악한 것을 보면 그것이 마음에 담기거나 그것으로 인해 마음과 생각에 있는 죄성들이 요동합니다.
예를 들어, 폭력적인 영화나 게임을 많이 보면 성격과 마음도 폭력적으로 물들고, 선정적인 것을 보면 생각으로 남아 계속하여 비진리의 생각으로 빠져들지요. 싸우고 다투는 것을 보면 짜증과 혈기가 마음에 담기기 쉽습니다.
눈으로 본 것이 마음에 있는 죄성을 요동케 하는데, 이는 안목의 정욕을 말합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어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는 속성’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나 다른 사람이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도 갖고 싶다.’ 하는 욕심이 작용합니다. 이는 마음에 있는 욕심이 안목의 정욕을 통해 요동한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드라마에 나오는 부유한 사람을 부러워하며 상대적인 빈곤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니 형편이 안 되는데도 더 좋은 것을 갖고자 하다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요. 비교하는 마음과 욕심이 다른 사람이 소유한 좋은 것을 보고 요동하는 것입니다.

또 음란물을 보면 마음에 간음을 자극하게 됩니다. 성범죄자들 대부분은 음란물을 많이 보고, 본 것만으로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성범죄를 저지릅니다. 이렇게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이 마음의 비진리에 작용하여 큰 죄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각종 폭력, 살인, 성범죄의 정도가 심각해 뉴스를 보기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많은 이들이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영상, 게임, 미디어의 영향을 꼽습니다. 좋지 않은 영상을 보기만 했을 뿐인데, 어떻게 심각한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일까요?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것을 볼 때 ‘좋다’, ‘멋있다’는 느낌과 함께 마음에 비진리로 담기고, 계속해서 보다 보면 중독이 됩니다. 이렇게 인터넷이나 TV에 중독된 사람의 뇌는 마약이나 술에 중독된 사람의 뇌 변화와 비슷하여 자제력이 떨어지고 인지 능력이 저하된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강력 범죄들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우리 주변에서도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것들을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악한 것을 볼수록 점점 마음이 악과 비진리로 물들어 갑니다. 심해지면 나쁜 것을 봐도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요.
예를 들어, 불륜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미화한 것을 보면서 자신의 외로움, 육의 감정을 합리화시킵니다. “요즘에는 결혼해도 애인을 두던데.” 하며 배우자 외에 자신의 욕구를 채워 줄 사람을 찾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눈이 세상을 바라봄으로 자신도 모르게 죄악에 물들어 가고, 비진리에 대한 분별력을 잃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비진리를 보는 악한 눈은 점점 더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을 원합니다. 세상 끝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음란하고 퇴폐적인 것들로 사람의 눈과 마음을 빼앗고 있지요. 이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TV, 인터넷, 게임, 미디어, 문화, 유행, 환경을 통해 죄악에 쉽게 물들게 하지요. 우리는 이런 사실을 깨달아 비진리의 것은 절대 봐서는 안 되겠습니다.

2) 선한 것만 보는 진리의 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이 선한 것, 진리의 것을 보면 마음이 빠르게 진리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눈, 천지만물을 바라보며 하나님 창조의 섭리를 찾는 눈, 나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찾아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눈, 이런 진리의 눈을 가질 때 더 신속히 주님 닮은 아름다운 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되어 온전히 진리로 채워진 마음이 되면, 혹여 좋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할지라도 마음에 담지 않으며 기억하지도 않지요. 악한 것이나 상대의 단점 등 좋지 않은 것은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립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하신 말씀처럼 마음이 선한 것을 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려 하거나 전하지 않습니다. 선과 사랑으로 상대의 부족함을 덮어 주고 도와주며 변화될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 주지요.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말씀처럼(요삼 1:11) 오직 선한 것만 보고자 합니다.
이렇게 선한 것만 바라보는 진리의 눈이 되기 위해서는 앞서 설명한 비진리의 것,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고 선한 것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릇과 같아서 무엇을 담았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진리를 담으면 영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나 사람들 앞에 사랑받고 인정받는 복된 사람이 되지만, 비진리를 담으면 사단이 주관하는 어둠의 사람이 되지요.
우리의 마음에 무언가를 담는 데 있어서 눈이 많은 역할을 하는데, 이는 성장하는 시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이 돼서도 현재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가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비진리의 것을 보고 담아 놓았다면 신속히 비우고 선과 진리로만 채울 때 주님 닮은 선한 자녀들이 될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진리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선한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계명대로 지키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복 있는 사람이라 하지요(시 1편). 말씀 보기를 사모하고 계명대로 살고자 하니 천국에 대한 소망이 더해짐으로 무엇을 보든지 믿음으로 바라보는 눈이 됩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 하신 말씀을 믿고 삶에 적용해 나가지요.
믿음의 눈으로 바라봄으로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 야곱이 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집으로 도망하여 20년 연단의 시간을 보냅니다.
야곱은 요셉을 낳은 후 외삼촌이자 장인 라반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뜻을 비쳤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봉사한 대가도 없이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에 라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해 보이는 제안을 합니다. 즉 외삼촌의 양 떼 중에서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 그리고 염소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품삯으로 달라는 것입니다. 양이나 염소 중에서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검은 것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이에 라반은 쾌히 승낙하지요.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 껍질을 벗겨 얼룩덜룩하게 만든 후 실한 가축들이 와서 물을 먹으며 교미하는 장소에 놔두었습니다. 그러나 약한 가축들이 오면 그 가지를 치워 버렸지요. 얼룩덜룩한 가지를 바라보며 물을 마신 튼실한 가축들은 아롱지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새끼를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한 가축들은 야곱의 것이 되고, 약한 것들은 라반의 것이 되었지요.
야곱은 가축들에게 바라봄의 법칙을 적용해 거부가 되어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닌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마음과 눈이 있었기에 따른 지혜였지요.

다음으로, 진리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임을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말씀이 곳곳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먼 자가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벙어리가 말을 하고, 걷지 못하던 자가 걷고 뛰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엄청난 권능을 베푸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참임을 표증으로 보이셨습니다.
이때 선한 눈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사와 표적, 권능이라 고백하였지요. 반면 악한 눈을 가진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은 권능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알세불을 지폈다”,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며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는 큰 악을 행했지요.
주님의 제자들이나 사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낼 때도, 이를 보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믿지 않고 핍박하며 죽이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각색 질병이 치료받고 성경 상의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와 주의 종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선한 눈을 가진 사람은 지금도 성경 상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가 있으니 참으로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눈으로 어떻게 하면 흠을 잡을까 하거나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권능이 나타나 부흥하는 교회를 시기 질투하여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한다면 이는 마음에 있는 악이 그대로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같은 것을 보고도 어떤 눈을, 어떤 마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행동이 달라지게 됩니다. 즉, 진리의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은 진리의 관점에서 보고, 비진리가 많은 사람은 비진리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이러한 ‘관점’이 ‘생각과 행동의 차이’로 나타나지요.
우리의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생각도, 행동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살아도 마음의 어두움이 많으면 불행하다고 느끼고, 아무리 환경이 힘들어도 믿음과 소망이 있으면 평안하고 행복하지요.
그러니 긍정적인 눈, 믿음의 눈, 선한 눈으로 바라보고 진리의 말씀을 지키심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20-01-21 오후 1:08:36 Posted
2020-01-30 오후 9:03:1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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