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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감정을 제어하라  [롬 12:19-21]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0.01.31
<서론>
오늘 ‘감정을 제어하라’는 말씀을 통해 사소한 것 같은 작은 감정이 우리 삶에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봅니다.

감정(感情)은 ‘희로애락’ 곧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을 말하지요. 그런데 오늘 말씀드리는 감정(憾情)은 원망하거나 성내는 마음을 말합니다. 곧 악한 마음, 비진리에서 비롯되는 감정을 제어하고 버리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감정이 있을 때는 별것 아닌 사소한 일에 마음이 상하거나 화를 내어 주변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더 나아가 미워하며 원수를 맺기도 합니다.
또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함으로 큰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가정의 불화와 친구, 이웃 간에 오해와 다툼이 그치지 않으며 회사나 사회에서도 신뢰와 사랑이 식어지는 등 많은 문제를 만들게 됩니다.
심지어 감정을 다스리지 않고 그대로 분출하여 가족 간이나 동료, 이웃 사이에 살인에까지 이르는 뉴스를 듣기도 하지요.
그러니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함은 물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면 악이요, 비진리라 하시는 나쁜 감정은 마음에 조금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악에서 비롯된 감정이 결국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되어 응답과 축복이 막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22-24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화를 내거나 욕하거나 남을 무시하는 것은 악한 감정을 말과 행함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선 이런 악을 행한 사람은 자신도 큰 해를 당할 것을 말씀하시지요. 또 상대와 화평치 못한 모습으로 예물을 드리고 기도한다 해도 응답되지 않음을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통해서 혹시 누군가와 감정이 있지는 않은지 깨우치고 다 풀어서 하나님과 사이에 죄의 담이 헐어지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본론>
보통 자신 혹은 가족에게 큰 해를 끼치거나 혹여 상해까지 입힌 사람이 있다면 그를 원수같이 생각하며 그 원수를 갚는 것은 의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원수를 직접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 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9-21) 하셨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원수를 친히 갚지 말라고 하셨는지 그 뜻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 2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9절에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심판하는 권세를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중에는 주님과 같이 전혀 죄가 없는 사람은 없지요. 따라서 자신도 죄인이면서 남의 죄를 정죄할 수는 없기에 그 누구에게도 심판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하셨고,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주변을 보면 자신도 죄와 악이 많으면서 재판장이 되어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수군거리며 정죄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수군거리지 말라, 비방하지 말라’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말씀하셨지요.
율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며, 우리는 그 율법을 지키는 준행자가 됩니다. 그런데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자신이 재판자인 하나님이 되는 엄청난 교만이며 큰 죄입니다.

심판할 권세가 있으신 주님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서로 섬길 것입니다. 그리고 섬긴다면 빌립보서 2장 3절에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처럼, 나보다 상대를 더 낫게 여기게 됩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때 누구를 얕잡아 볼 수 없고 판단 정죄하고 수군거리는 악을 행할 수 없으며, 오히려 사랑을 주려고 하지요.
따라서 우리 스스로는 아무도 심판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 심판해서도, 원수를 갚으려 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재판장이요 심판자이신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을 닮아 우리도 사랑과 선으로 악을 이겨야겠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을 만나게 되고 감정이 일어나는 일들을 겪습니다. 대체로 어떨 때 감정이 일어날까요?
먼저 자신의 생각, 마음, 기준에 맞지 않을 때 감정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각 자라 온 환경과 배움, 교양이 다르기에 각자의 생각과 기준이 다 다르지요.
그런데 만약 저마다 자신의 생각과 기준에만 맞춘다면 어디에서나 분쟁과 다툼만 일어날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이런저런 일들로 감정적인 마찰들이 생기게 되지요.
각기 다른 식성과 성격, 교양과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서로 자기를 주장하거나 상대가 나에게 맞춰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양보하고 상대를 섬기는 마음을 가지면 평안한 가정이 될 수 있는데 자기주장과 고집이라는 악이 있으니 상대가 나와 다르거나 내게 맞춰주지 않으면 쉽게 감정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말로 자기주장이나 기분 나쁜 표현을 합니다. 그러면 상대도 자신의 입장을 말하니 변론이 되고 큰 소리가 나면서 다툼으로 커지지요.

어떤 가정은 서로 의견과 성격의 차이로 감정의 골이 깊어져 여러 날 대화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한 쪽에서 화해하려는 마음으로 대화를 청합니다.
이제라도 내 의견, 내 생각만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말을 듣고 그 입장을 이해하려고 해야 하는데 마음에 악한 감정이 있으니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대화가 결국 싸움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점점 사랑이 식어져 파경에 이르는 가정도 있고 그리하지 않는다 해도 사랑과 행복 없이 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럴 때 상대에게서만 문제를 찾지 마십시오. ‘나는 얼마나 희생하고 양보했으며 마음 중심에 사랑으로 섬겼는가?’를 살피어 이제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행할 때 가정의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또 감정이 일어나는 경우를 살펴보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힘든 상황을 만날 때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예로, 사람이 많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발이 밟혔거나 불편한 상황이 되었을 때 쉽게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식당에서 손님이 많아 주문한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경우에 유독 혼자서만 큰 소리 내어 불평하는 사람도 있지요.
조금의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쉽게 짜증을 내고 화를 냅니다. 그러니 이 한 사람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이 민망해질 것이고 함께 기분이 상하거나 힘들어집니다. 이렇게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자신에게 오는 불이익에 대해 감정을 참지 못하여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볼 수 있지요.
어떤 경우 “할 말은 해야 한다”며 자신의 악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여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주님을 영접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런 악한 모습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감정이 사람에 대하여 일어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태풍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 한 해 농사의 수확이 좋지 않을 때 하늘을 원망하며 감정을 내기도 하지요.
성경 상에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에게 유익이 되지 않거나 힘들 때는 모세에게,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자신이 기도한 것이 응답되지 않을 때, 혹 생각지도 못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원망 불평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는 심히 악하여 스스로 시험 환란을 자초하는 것이니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감정이 일어나는 경우로 이유 없이 원망을 듣거나 피해를 보았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인이 그런 것이 아닌데 오해를 받는 경우이지요. 하지도 않은 나쁜 말과 행동을 했다고 오해받아 비난을 받으니 화가 납니다.
혹은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 좋지 않게 이야기함으로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거나 피해를 보게 되면 마음이 편치 않고 가서 따져 묻거나 다투기도 하지요.
다른 예로 상대방의 실수로 내가 대신 지적을 받거나 혼이 나고 있는데 상대는 미안해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면 미운 감정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윗사람에게 지적이나 책망을 들을 때, 내가 행한 것보다 더 야단을 맞았다 생각할 경우, 마음이 불편하고 서운한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때도 선한 믿음의 선진들을 생각하며 억울해하고 서운해하는 감정을 버려야 하지요. 그럴 때 원수까지도 화목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오해가 풀리고 더 사랑받게 해주십니다.

이 밖에도 상대의 잘못을 보고 감정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편 37편 1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를 보고 불평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상대의 잘못이나 실수를 보고 감정과 분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이는 그 마음에 사랑과 용서가 없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임 중에 말이 거칠고 지시하고
명령하는 사람을 볼 때, 마음속으로 ‘저 사람은 강한 사람, 화평을 깨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거나 불편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대의 뜨겁고 열심 내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생각하여 선으로 품는다면 감정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그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큰 잘못을 하였다 해도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심판자가 돼서는 안 되지요. 오히려 죄를 지은 사람을 보면 긍휼히 여기며 그를 위해 애통하는 선의 마음이 될 때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대의 잘못을 보고 감정이 일어나는 것과 반대로, 상대가 잘되고 인정받는 것을 보고 감정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기 질투로 인해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성경 상에도 그 대표적인 인물로 사울왕이 나옵니다.
사무엘상 18장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노래하며 춤추며 환영합니다.
하지만 사울은 이 말을 듣고 불쾌해하며 심히 노하였지요. 사울왕이 악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사실 사울왕에게 다윗은 은인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온 이스라엘 군대가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을 때에 다윗이 그 골리앗을 죽임으로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은혜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마음속에 시기가 일어나니 그것이 감정이 되어 이후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론>
이렇게 감정이 일어나는 경우를 몇 가지로 살펴보았는데요.
자신의 생각, 마음, 기준에 맞지 않을 때, 불이익을 당하거나 힘든 상황을 만날 때, 이유 없이 원망을 듣거나 피해를 보았을 때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밖에도 상대의 잘못을 보고 감정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상대가 잘되고 인정받는 것을 보고 감정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회개하고 버림으로, 하나님과의 죄의 담을 헐고 건강의 축복과 응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020-02-05 오전 9:00:52 Posted
2020-02-12 오후 3:33:1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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