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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보배 중의 보배는 믿음 개척 38주년 기념예배 [히 1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0.07.26
개척 이후 지금까지 본 교회가 믿음으로 달려온 시간 속에 항상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상고해 보겠습니다.

1. 마지막 때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세워진 교회

사람과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시작하실 때부터 이미 마지막까지의 모든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경작의 섭리를 마무리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처음부터 들어 있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만민’이라는 이름을 친히 주시고, “태양이 작열하는 때 개척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태양이 작열할 때’라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공의의 빛이 가장 밝을 때 곧 공의에 비추어 모든 것이 합당한 때를 말합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종이 되기까지 저에게는 공의의 시간들이 필요했습니다. 7년간 사망의 문턱에서 고통받다가 하나님을 만나 치료받고 기도와 금식으로 온 영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이었지요. 또 개척을 위해 무수한 기도와 금식을 쌓아 마침내 공의 가운데 가장 합당한 때에 이 제단을 개척하게 하셨습니다.
1982년 개척 예배 때 처음으로 선포한 말씀의 제목이 바로 ‘보배 중의 보배는 믿음’이었습니다. 이후 만민중앙교회의 역사는 오직 믿음으로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지극히 미약하였지만 심히 창대해질 날을 믿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교회가 될 것을 믿었지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오직 순종하여 한 걸음씩 전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이 불꽃 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지켜보셨고, 우리가 믿음을 내보일 때마다 모든 역경을 영광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2. 믿음의 위력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 아직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것도 믿음으로 바라고 나아가면 실제로 보이고 만져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의 위력입니다.
1982년 7월 25일, 우리가 개척할 때 성전은 10여 평에 불과했고 아이들 네 명을 포함해서 열세 명으로 시작했습니다. 개척 자금이라고는 겨우 7천 원뿐이었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었기에 몇백, 몇천만 원의 거금을 가진 것보다 더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 속에 숱한 기도와 금식을 쌓았지요.
저도 금식과 철야로 살았으며 일꾼들도 하루 대여섯 시간씩 부르짖어 합심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한 주, 한 주가 지나자 강대상, 마이크, 전화, 피아노 등 필요한 성물이 하나둘 채워졌지요. 때에 따라 달란트가 있는 일꾼들을 하나님께서 보내 주셨고, 교세도 짧은 기간에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개척하여 77일 만에 10월 10일 창립 예배를 드릴 때는 성도가 170명이 넘었습니다. 이후로 만 5년이 채 안 돼 등록 교인 3천 명을 넘어섰지요. 성전을 건축할 틈도 없이 더 큰 건물로 여러 차례 옮겨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역사하여 성전 이전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부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하나님 말씀을 보장하는 권능에 있었습니다.

교회 개척을 위해 기도를 쌓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처럼 병들어 고통받는 영혼이 많고 가난하여 고통받는 영혼이 많으니 열심히 구제하는 제단, 영육 간에 치료하는 제단, 이 복된 소식을 땅끝까지 전하는 증인이 되어 세계를 이루는 제단이 되어라. 일어나 빛을 발하는 제단이 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큰 치료의 역사가 나타났고 개척 전부터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 영육 간에 문제 있는 사람들이 찾아왔지요. 들것에 실려 왔던 이들이 기도받은 후에는 온전한 모습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고 뛰었으며 잉태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잉태했습니다. 암, 백혈병, 뇌종양, 연탄가스 중독, 중증 폐결핵, 3도 화상 등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던 사람들이 살아났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온전해졌습니다. 심지어 호흡이 끊어진 사람도 살아났지요. 이렇게 권능을 체험한 사람들이 하나하나 주의 종이 되고 일꾼이 되어 교회 조직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권능의 역사는 매년 더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면 천기도 조절해 주셨습니다. 수련회나 해외 성회 등 각종 행사 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와 달리 좋은 날씨가 되고 태풍이 소멸되거나 진로가 바뀌었습니다. 무더운 날씨가 선선하게 바뀌고 구름이 몰려와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었지요. 별의 이동과 잠자리, 각종 무지개 등 기이한 일들이 끊임없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권능의 역사들을 체험하면서 성도님들의 믿음도 쑥쑥 자랐습니다. 그런 만큼 세계 선교와 대성전 건축을 향한 사모함도 더해졌습니다.


3. 보배 중의 보배는 믿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며 천국과 지옥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구원도 받고, 믿음으로 응답도 축복도 치료도 받지요. 그러니 보배 중의 보배가 바로 믿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단, 이때의 믿음은 육적인 믿음이 아니라 영적인 믿음이라야 합니다.
그러면 참된 믿음, 영적인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믿음입니다.
영적인 믿음은 사람이 자기 의지로 가질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자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 지르며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지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 그다음에는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합니까? “내가 믿나이다” 할 때의 믿음과 “나의 믿음 없는 것”이라고 할 때의 믿음은 다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 들었기에 예수님이시라면 능히 아들을 고쳐 주시리라는 지식적인 믿음이 생겼지요. 그래서 “믿나이다” 고백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마음에 온전히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은 없으므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빛 가운데 살 때, 하나님의 뜻에 맞게 구할 때, 공의에 합당한 그릇을 준비할 때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 가운데 살면서 “주여 믿습니다” 한다면 이는 거짓말이라 했습니다(요일 1:6).
정말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죽은 믿음은 어떤 역사도 일으킬 수 없지요. 이제까지 본 교회에 하나님의 권능이 끊임없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성결의 복음이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켰기에 담대하게 믿음을 가르치며 권능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님들도 열심히 기도하며 죄를 버려 왔기에 하나님께서 이 제단과 함께하셨지요. 또한 성전 건축이든, 세계 선교든 어떤 것을 구할 때도 성령의 주관대로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기도 제목을 응답받기까지 기도, 물질, 선교 등 믿음의 행함을 꾸준히 쌓았지요. 공의에 합당하게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의 그릇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인 기도에 응답받고자 할 때도 이런 조건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대로 살면서 기도해야 영적인 믿음이 옵니다. 또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선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욕심이나 악한 마음으로 구할 때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잘되기 위해서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악한 기도를 하거나, 성실하지도, 정도를 걷지도 않으면서 욕심으로 물질 축복을 구할 때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소원이나 물질의 축복도 정도를 걸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한다면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이때는 공의에 합당한 그릇을 준비하도록 하나님께서 주관해 가시지요. 경험을 쌓게 하시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연결도 해 주시며, 기술이 부족하면 습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고 그 방면에 축복받을 수 있게 역사해 가십니다.

둘째, 순종할 수 없는 것도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영적인 믿음이 있으면 내 생각에 맞지 않는 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할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보다 하나님께서 지혜로우심을 믿고 내 힘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크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여 순종할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육신의 생각을 동원했다면 결코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사람을 제물로 받으시는 무서운 하나님이십니까? 어떻게 제 손으로 아들을 죽이라 하십니까? 더구나 장차 이삭을 통해 제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 약속하셨는데 그를 죽이면 그 약속은 어찌 됩니까?”
이렇게 온갖 의문과 변명이 떠오를 수 있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철저히 믿어 드렸고 순종했습니다. 약속의 씨인 이삭을 바치라 하심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었고 만약 아들이 죽는다 해도 하나님은 능히 다시 살리실 수도 있음을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5장 4절에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했습니다. 개척 이후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하셨습니다. 항상 축복하셨고 형통하게 하셨지요. 물론 그 형통함 속에도 연단의 시간이 있었고, 축복 속에도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연단과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대보다 더 큰 열매를 주셨지요. 그 기다림의 세월은 반드시 응답으로 축복으로 왔던 것도 봅니다. 우리는 지금 소망 중에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 가운데 신속히 정금 같은 믿음으로 나와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07-29 오전 11:15:48 Posted
2020-08-02 오후 4:06:2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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