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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천국 (11) 생명수 강가 [계 22:1-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0.09.27
오늘은 천국 전체를 두루 돌아 흐르는 생명수 강과 그 강가에서 즐기는 행복한 천국 생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정금길 가운데 생명수 강이 흐르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생명수 강가에 가로수를 심어 멋진 경관을 조성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한가로이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말씀하신 대로 생명수 강가 양쪽에 길을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천국 어디서든지 하나님 보좌가 있는 곳을 쉽게 찾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생명수 강이 하나님 보좌로부터 나와 천국 전체로 퍼져 흐르기 때문에, 생명수 강 양편 길을 따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 보좌가 있는 곳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등 광활한 천국의 어디에 있다 해도 생명수 강 좌우에 있는 길을 따라가면 결국 새 예루살렘에 이르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생명수 강을 따라가면 결국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에 이릅니다. 이처럼 이 땅에서 영생수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천국에 이를 뿐만 아니라 천국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에 이를 수도 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동시에 천국의 시민권을 얻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천국으로 가는 길과 진리, 생명 자체가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진리 안에는 이 세상의 도로 교통 표지판처럼 우리가 곁길로 빠지지 않고 천국의 새 예루살렘까지 곧장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너무도 명확하고 쉬운 안내 표시들이 있습니다. 바로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는 하나님 말씀이 있는데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짧은 기간 안에 천국의 최고 처소인 새 예루살렘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나타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생명수 강가 양편에 길을 두어 생명수 강을 따라 올라가면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에 이를 수 있도록 설계하신 것입니다.


2. 생명수 강가 풍경

생명수 강과 양편에 놓인 길은 바로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생명수 강가의 모래는 금과 은으로 된 금모래, 은모래이지요. 이 땅에서도 고운 모래는 감촉이 부드럽고 모래 위에 앉으면 폭신한 느낌을 주는데, 생명수 강가의 금모래, 은모래는 이보다 훨씬 감촉이 부드럽고 좋습니다.
종류도 우리 눈에 보일까 말까 하는 작은 모래부터 아주 굵은 모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지요. 그 위에서 아무리 뒹굴고 뛰놀아도 결코 먼지가 날리거나 옷에 묻지 않으며, 모래가 눈에 들어가 해를 입는 일도 없습니다.

또한 생명수 강가 좌우에는 심히 큰 생명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는데 열두 가지의 실과를 맺는 열두 종류가 있습니다. 생명나무 한 그루에 열두 가지 실과가 한꺼번에 맺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실과를 맺는 열두 종류의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그러면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 생명나무들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힌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일까요? 이 땅에서 계절마다 열매 맺는 과일이 다른 것처럼 천국에서도 열두 종류의 생명나무가 번갈아 가며 과실을 맺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과가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늘 맺혀 있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땅의 식물들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잎이 떨어지고 시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천국의 식물은 항상 잎이 푸르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을 수 있지요. 따라서 생명수 강가의 생명나무에도 과실이 항상 맺혀 있고 누군가가 과실을 따면 그 자리에서 과실이 생성됩니다.
천국에는 모든 처소에 각종 과일 나무가 있는데 생명나무에서 나는 과일은 ‘생명 과일’이라고 합니다. 열두 가지 생명 과일은 각각마다 빛과 크기와 모양과 맛이 다릅니다.
창세기 2장 9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말씀했습니다. 생명 과일과 선악과는 이 땅의 과일 중에서 보통 메론 정도와 크기가 비슷하지만 모양과 빛깔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선악과는 복숭아와 비슷한 모양에 분홍빛을 띠고 있는 반면 생명 과일은 사과와 비슷한 모양에 약간 붉은색을 띱니다. 아주 빨간색이 아니라 약간의 홍조를 띠며 아름다운 빛을 냅니다.
에덴 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와 천국에 있는 생명나무는 동일하지만 생명 과일의 빛깔은 조금 차이가 나지요. 이 땅에서도 똑같은 사과라 해도 빛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빛깔이 다르듯이 동일한 생명 과일이라도 공간의 차이로 인해 그 빛깔이 다릅니다.


3. 생명나무와 그 잎사귀들의 의미

시편 1편 2~3절을 보면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했지요.
여기서 ‘나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의미하듯이 생명수 강가에 심긴 생명나무는 생명수 곧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천국에 이른 하나님의 자녀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두 가지의 생명나무를 두셨는데 열둘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선, 열둘(12)의 의미는 “만국”입니다. 성경을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로 인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형성되었고, 이를 통해 만국에 하나님의 나라가 형성되었지요. 또한 주님의 열두 제자를 통해 만국에 복음이 전파되어 만국 백성 중 많은 이들이 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만국 백성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으면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생명수 강가에 열두 가지의 생명나무를 두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열둘(12)의 의미는 빛의 수로서 빛이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빛의 자녀가 된 영혼들에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물가에 심은 나무는 뿌리를 강변에 뻗치므로 물을 흡수하여 그 생명이 유지되듯이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빛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영생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열두 가지 생명나무에 맺히는 형형색색의 생명 과일들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빛 가운데 살 때 맺히는 빛의 열매, 성령의 열매, 의의 열매 등을 상징합니다.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은 진한 녹색에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며 이 땅의 잎사귀보다 더 넓고 큼직하지요. 시간이 지난다 해도 시들거나 지지 않으며 영원히 푸르른 빛을 발하는 잎들이 생명나무에 가지런히 질서 있게 나 있습니다.
나무에 열매가 맺히기 위해서는 먼저 나무가 자라서 가지를 뻗고 잎사귀를 내며 꽃이 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나무가 성장하기까지는 뿌리에서 양분과 물을 흡수해야 하지만, 성장한 나무에서 열매가 맺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뭇잎이 있어야 하지요. 나뭇잎에서 일어나는 광합성의 결과물이 모여서 나무의 열매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연 현상을 알게 되면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이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계 22:2)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소성이란 “중한 병에서 다시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원래 만국의 모든 사람들은 잠깐의 육의 생명은 붙어 있으나 죄로 인해 결국은 사망으로 가야만 하니 사실은 죽은 것과 같았지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가 풀리고 영생을 얻어 소성될 수 있습니다. 나무가 뿌리로는 물을 흡수하고 위로는 잎사귀에서 햇빛을 받아 양분을 만듦으로써 생명을 유지하고 열매를 맺듯이 만국의 성도들도 영적인 물과 빛의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영생을 얻고 믿음이 성장하며 영의 열매를 맺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하나님께서 생명수 강가의 풍경을 환상으로 보여 주신 적이 있습니다. 강 좌우에는 금이나 보석으로 무늬를 놓은 벤치들이 수없이 놓여 있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생명 과일이 먹고 싶다는 마음을 품기만 해도 수종 드는 천사가 주인의 마음을 알고 황금으로 된 꽃바구니에 담아 갖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천국의 처소에서 개인에게 수종 드는 천사가 붙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명수 강가에 놓인 벤치에 나란히 앉아 찬란한 빛을 발하는 생명수 강을 바라보거나, 생명나무 길을 따라 거닐면서 이 땅에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눌 천국의 생활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지 않는지요? 생명수 강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 속으로 들어가 수영도 할 수 있습니다. 수영을 하지 못한 사람이라 해도 천국에서는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등 자유자재로 수영을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호흡이 자유롭기 때문에 다른 아무런 장비들을 갖추지 않아도 물고기처럼 오래 물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영을 하러 들어가면 강 속에 있던 물고기들이 반기듯이 우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오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는 수영하려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하고 나서는 젖은 옷을 다시 갈아입어야 하는 등 과정이 번거롭지만, 천국에서는 물이 옷에 스며들지 않고 물방울이 되어 또르르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수영을 하고 싶을 때는 언제라도 자유롭게 옷을 입은 그대로 마음껏 즐길 수 있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에 가는 길이 육적으로는 좁고 험난해 보일 때도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생명에 이를 수 있는 길을 택하길 원하십니다(마 7:13~14). 지금 걷고 있는 신앙의 길이 비록 협착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 끝에는 주님이 계심을 믿고, 천국에 대한 소망 가운데 날마다 새 예루살렘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09-29 오후 2:24:33 Posted
2020-10-04 오전 11:22:4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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