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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10) 서머나 교회 (2) [계 2:8-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1.10.15
주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이나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원칙적으로는, 비록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 안에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므로 모든 환난이 떠나야 하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주를 믿는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환난을 당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를 믿는 사람들이 겪는 환난과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환난과는 다르지요. 겉으로 볼 때는 비슷한 것처럼 보여도, 주 안에 들어와서 겪는 환난은 그것을 믿음으로 잘 통과해 나왔을 때 결국 영혼이 잘되어지며 하늘에도 상급을 쌓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주를 믿는 사람이 겪는 환난에는 두 종류가 있지요.
첫 번째는 주님을 믿기 까닭에 받는 환난입니다. 어둠의 이 세상 가운데서 빛이신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받아야 하는 이런저런 환난들이 있지요.

예를 들면 믿지 않는 가족들이나 주변으로부터 받는 핍박이 있을 수 있고, 학교나 직장 등에서 진리대로 살려고 하다보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게 되는 환난이나 핍박 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그 모든 환난과 핍박이 오히려 받는 사람에게 상급과 축복이 되지요.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믿었던 사도들은 자신들이 주의 이름으로 인해 핍박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는 사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인해 채찍에 맞기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41절에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했지요.

그러니 사도들은 주의 이름으로 인해 환난을 당할 때에도 그것을 힘들어하거나 부끄러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 여러분 편에서는 주를 믿기 때문에 환난이나 핍박을 당한다고는 말하지만, 실제로는 지혜롭지 못해서 굳이 받지 않아도 되는 환난이나 핍박을 자초하는 경우들도 있지요. 그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들입니다.

아내가 지혜롭지 못하게 행동하므로 믿지 않는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가 교회 나가는 것을 시기, 질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절제하지 못하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하지 못하므로 교회가 애매히 욕을 받도록 만들기도 하지요.

또는 믿지 않는 가족들로 하여금 반발심을 일으키도록 말하거나 행동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들은 여러분이 주를 믿기 때문에 받는 환난이나 핍박이라고 하기보다는 여러분이 조금만 지혜롭고 선하게 행동한다면 얼마든지 받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이지요.

이런 경우들과는 달리 원수 마귀 사단의 주관을 받는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받는 환난과 핍박이 있습니다. 바로 구약과 신약의 믿음의 선진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기 위해 받아야 했던 환난과 핍박이지요.

만약 오늘날에 그러한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 주의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고 하면 과연 담대히 나가서 전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본 교회에는 앞으로 때가 되면 바로 이러한 환난과 핍박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복음전파를 위해 숱한 환난과 핍박을 당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세계선교의 섭리는 더욱 창대하게 이루어져 왔던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롬 12:14에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축복해 주고 기도해 줄 수 있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이 얼마나 선한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러한 마음을 일구었고, 주를 위해 받는 핍박과 환난을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도 그처럼 높은 위치에 이를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진리를 좇기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받는 어떠한 환난이 있다 할지라도 마음 중심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분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에서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으로 갚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인해 받게 되는 환난과는 달리, 자신이 진리 안에 살지 못하므로 사단의 송사를 받아서 오는 환난이 있습니다. 물론 주님을 믿기 전에도 세상에 살면서 원수 마귀 사단으로부터 많은 시험, 환난을 당하지요.

그러나 그때는 왜 자신에게 그러한 시험 환난이 왔는지도 모른 채 원수 마귀의 밥이 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주 안에서 겪게 되는 시험, 환난은 세상에서 당하던 시험, 환난과는 다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우리가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빌 3:20에 말씀한 대로 우리는 하늘나라에 시민권을 가진 천국백성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하늘나라의 법에 따라야 하지요. 그런데 만약 이 법에서 어긋나게 되면 그때는 원수 마귀가 송사를 하게 됩니다.

원수 마귀의 입장에서는 세상의 죄악 가운데서 마귀의 자녀였던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자기 자녀를 빼앗겼기 때문에 어떻게든 다시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요. 어떻게든 송사거리만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송사하여 시험, 환난을 가져다줌으로 어려움을 겪게 하고 고통을 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험, 환난을 겪는 사람 중에 혹 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시험, 환난을 당하면서도 이를 오해하여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러나 결코 이러한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시험하시는 분이 아니지요.

약 1:13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험, 환난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시험과 환난을 받는 것은 약 1:14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말씀한 대로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기 때문이지요. 즉,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도 법을 어기는 것이 죄이며 그 죄로 인해 벌을 받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때도 그에 따른 대가가 주어지는 것이지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오직 좋은 것만 주기를 원하시지만 우리 사람 편에서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사단의 송사거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 해도 죄를 지으면 지켜 주실 수가 없는 것이고 결국 죄를 범한 만큼 원수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시험 환난을 가져다주지요.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약 1:15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했고, 롬 6:23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지요. 죄의 결과는 결국 사망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죄를 범하여 사망으로 가는 자녀를 가만두면 어찌되겠습니까? 그러한 자녀를 가만두는 것이 사랑일까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계실 수 없기에, 징계를 통해서라도 회개하여 돌이킬 수 있도록 사단의 송사에 따라 시험 환난을 허락하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히 12:5-6에는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 이것이 주님을 믿기 때문에 온 것인가? 아니면 죄를 지음으로 온 것인가를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온 것이라면 신속히 잘못된 것을 찾아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주님의 축복 안에 다시 들어올 수 있어야 하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진리인 하나님의 법 안에만 산다면 결코 악한 자들이 만지지 못합니다. 모든 시험, 환난도 물러가고 오히려 만사형통의 축복이 임하게 되지요. 따라서 시험, 환난이 찾아온다면 오히려 그것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시킬 수 있고 더 나아가 축복까지 받을 수 있는 기회이니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9절 전반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환난만 아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네 궁핍을 안다”고도 하셨는데, 그러면 궁핍은 왜 오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주 안에 들어오게 되면 날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야 하므로 물질의 축복 또한 받아야 합니다.

오히려 반대로 주 안에 들어와서 물질의 궁핍함을 당하는 경우가 있지요. 주님을 믿지 않을 때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일함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핍박을 받기도 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주일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일을 지키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직장을 옮겨야 하는 경우들이 있지요.

이로 인해 오게 되는 물질의 궁핍함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궁핍함은 잠시잠깐일 뿐, 주님을 믿음으로 인해 겪게 되는 궁핍함을 주님께서 어찌 오래 두시겠습니까? 직장에서 상대가 아무리 나를 핍박해도 내편에서 더욱 선으로 빛으로 대해 나간다면 결국 상대도 그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되지요.

직장생활을 하시는 성도님들 중에는 이러한 경험을 해 보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으로 인해 궁핍이 아닌 넘치는 축복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이유에서의 궁핍이 아닌 스스로 원하는 궁핍함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 중에는 충분히 누릴 수 있고, 즐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다 보니 자신을 위해 쓸 것을 거의 쓰지 않고 모아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 앞에 드리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러니 이러한 경우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감사함으로 궁핍함에 처하는 것이지요.

우리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십니까?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을 가만히 두시지 않지요. 물론 하늘나라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상급으로 쌓이고 있지만 이 땅에서도 필요를 따라 공급해 주시고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주시므로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말씀하시지요.

고후 8:9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장 부요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마구간에서 태어나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으며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때로는 굶주리시고 잠자리도 없이 광야에서 주무시는 등, 우리의 가난을 대속해 주심으로 우리를 모든 가난의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셨지요.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우리는 결코 가난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부요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다 부요해지는 것은 아니지요.

신 28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할 때 들어와도 복, 나가도 복, 머리 될지언정 꼬리 되지 않는,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는 복을 주시겠다,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혹 시험과 환난 또는 궁핍함에 처해 있다면 혹여 말씀 안에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행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다면 그것을 허물지 않는 이상은 여러분이 아무리 노력해도 형통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그렇게 형통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여 돌이키게 하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진정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고 빛 가운데 거한다면 그때는 시험, 환난과 궁핍이 올 리가 없고 설령 주님의 이름으로 인해 잠시 받는 것이라 해도 결국은 모든 것이 물러가고 더 큰 축복이 임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예비되어 있으며, 영혼이 잘된 만큼 이 땅에서도 만사형통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부요한 자입니까? 이러한 부요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9절 후반절에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했습니다. ‘유대인’이란 원래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선택받은 사람들을 말하지요. 따라서 오늘날은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영적인 의미로서의 유대인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자칭 유대인” 즉, 스스로를 가리켜 유대인이라 말하는 사람들이라 말씀하고 있지요. 유대인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들인데, 예수님 당시에 보면 이렇게 유대인이라 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핍박하고 거슬렀으며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여서 주님을 믿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자신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 정죄하며 시기, 질투하여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찌 우리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라 인정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들이 바로 자칭 유대인인 것이며,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고 있음을 아신다 하시며 실상은 그들이 유대인이 아니라 말씀하시지요. 즉,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 보기에 혹은 사람 보기에 아무리 믿음이 있어 보이고, 의인인 것 같으며 선한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면 소용이 없습니다. 마 13:49-50에 보면,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즉 스스로는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 자녀라 말해도 그의 말과 행실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그는 자칭 유대인일 뿐이며 마지막 심판 날에는 모두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칭 유대인인 사람들은 굳이 마지막 심판 날이 아니라 해도 이미 그들의 삶 속에서 열매가 드러나지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고, 진리를 좇아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며 선한 말과 행함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시기, 질투, 판단, 정죄, 미움, 분쟁 등이 나타난다면 이는 누구의 역사이겠습니까? 바로 사단의 역사이지요.
이처럼 사단의 역사를 받아가는 사람들이 두 사람 이상 모이게 될 때 이를 가리켜 바로 사단의 회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 사단의 회로 인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통을 받고 있지요.
사단의 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러분의 마음이 부요하면 주변의 환경과 조건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부요하다”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천국의 소망이 넘치고 하늘나라에서 주어질 상급을 바라보며 믿음과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마 5:3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나오는데, 여기서 심령이 가난한 자와 반대되는 의미의 “심령이 부요한 자”란 세상의 욕심과 자기 정욕, 자존심 등으로 마음에 가득 찬 사람을 뜻하는 것이지요. 지금 말씀드리는 마음의 부요함이란 그러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천국의 소망과 믿음, 사랑 등 영적인 것으로 그 마음이 부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 고후 6:10에 보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로다” 말씀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렇게 마음이 부요한 사람에게는 이 땅에서의 핍박과 환난과 궁핍 등 그 어떤 것도 결코 그를 약하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것들로 부요해 보십시오. 지금 현실에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 해도 그것이 여러분이 가는 길에 있어서 아무런 장해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겉만 번듯하되 속이 없는 쭉정이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이 영적인 열매로 꽉 차서 주님으로부터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하시는 이러한 칭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의 부요함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속에서도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들로 나오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10-24 오전 12:43:35 Posted
2023-12-23 오전 12:00:1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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