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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1차 영혼육 (8) 영체와 영의 지식 [살전 5:2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1.10.17
오늘은 첫 사람 아담의 영과 우리의 영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 후, 영체와 영의 지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영이 죽었고, 그때부터 혼을 주관하는 사단을 통해 비진리가 들어옴으로 사람의 마음과 양심은 점차 악으로 물들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구원에 이르려면 죽은 영이 살아나야 하는데 그 길은 바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심고 그 말씀대로 행해 나감으로 영이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첫 사람 아담의 영과 우리의 영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영체와 영의 지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 사람 아담의 영과 우리 영의 차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실 때, 그 코에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은 오랜 시간이걸린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된 일입니다. 다시 말해, 아담은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으로 지음 받은 후 생령이 되었고 하나님을 통해 점차 영의 지식들을 배워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영은 어떤 비진리나 악이 없는 진리만으로 채워진 영이었지요. 마치 백지에 그림을 그려 나간 것과 같은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의 후손으로서 영이 죽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이 살아난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조상으로부터 전해져 온 죄성이 이미 기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성장하면서 비진리가 입력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온전한 영의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입력된 비진리를 뽑아내면서 생명과 진리가 마음에 심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굳어진 땅을 열심히 쟁기로 갈고 거친 돌을 줍고 가시떨기를 뽑아내어 옥토로 만들듯이 사람의 마음도 개간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비진리를 모두 벗어버리고 100% 진리로만 채워진 마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온 영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담은 비진리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리만 입력된 상태였지만, 이 땅에서 육을 경험하고 온 영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빛과 어둠, 선과 악의 상대성을 알기에 아담처럼 다시 육으로 타락하지 않습니다. 또한 죄에서 구원해 주신 사랑의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영혼육으로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두어 인간 경작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2. 영체

“체”란 어떤 형상을 좇아서 그려낼 수 있는 모습의 형상을 말합니다. 즉 어떤 사물의 형상을 이룬 것을 말하지요.
가령, 우리는 독수리의 체를 보고 독수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사자를 독수리라고 하지 않는 것은 그 체가 독수리의 체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사람의 형체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지, 만약 그 체가 사자로 되어 있다면 그 마음이 아무리 사람과 같다 할지라도 “사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체란 눈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특별히 살갗이 있고 그 살갗이 어떤 형상을 이루어놓은 것을 육체라 말합니다.
그런데 육체가 있으면 영체가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고전 15:38~40). 우리 눈에 보이는 육이 형상을 이룬 육체가 있듯이, 영에도 영혼을 담는 그릇인 영체가 존재하므로 누구의 영인지 구별할 수 있고,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영체란 무엇이며 또 영체는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는데 여기서 기(氣)란 하나님의 모든 능력이 응집된 결정체를 말합니다.
이러한 기가 불어넣어졌기 때문에 아담은 흙으로 지어졌지만 살아있는 영이 된 것입니다. 마치 TV에 전기 코드를 꽂고 스위치를 올릴 때 화면에서 영상과 소리가 나듯이, 아담도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옴으로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영이 되었지요. 이때 영이 몸담고 있는 체가 바로 영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체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의 불순종 이후 하나님께서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영은 죽은 상태가 되었으나 아담의 영을 담고 있던 영체는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육체는 주인인 영혼이 떠나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체는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코 소멸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범죄한 후, 사람의 영은 어떤 상태가 되었을까요?
영은 죽음을 맞이하고 대신 영체 안에 혼이 담기게 됩니다. 짐승은 육의 생명이 끊어지면 혼도 사라지지만 사람은 영이 죽는다 해도 영체 안에 혼이 담겨 영원히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천국과 지옥을 두실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고, 계속해서 성령으로 영을 낳으면 그 영과 진리에 속한 혼이 영체에 담겨서 천국에 들어갑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체 안에 죽은 영과 혼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드로의 저주를 받을 때, “영혼이 떠났다” 하지 않고 “혼이 떠났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행 5:1~11).
그러면 이런 사람들의 혼은 영체에 담겨 어디로 갈까요?
이들은 죄로 오염되어 부패하고 냄새나며 더럽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지옥에 던져집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백보좌대심판 전까지는 아랫음부로 갔다가 부활하여 심판받은 후에는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악하고 추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천국에 간다면 어찌 천국을 아름답다 할 수 있겠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행복하고 평안하게 지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안이 열린 분들은 영체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영체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다릅니다. 각자가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심어 영으로 변화된 만큼 영체에서 더 아름답고 환한 빛이 나오며 그 빛에 따라 나중에 들어갈 천국의 처소와 영광이 달라지지요.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9장 7~8절에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했지요.
이와 같이 우리가 구원받는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영광을 얻는 것이 아님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 해도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전혀 마음에 할례하지 않는 사람은 영체가 검은 빛을 냅니다.
각 사람의 영체에서 흘러나오는 빛만 보아도 그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지,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지, 혹은 사단에 사로잡혀서 곤고해하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영체를 알면 부활이나 휴거도 쉽게 이해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영체는 무게가 있는 것 같으나 없고 없는 것 같으나 또한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이 죽으면 영체가 하늘로 올라가는데, 이때 영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혼도 영체에 함께 담겨 올라갑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 그들의 몸도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공중에 끌어 올려지는데, 이때 주님과 함께 온 영체와 결합되어 영혼육의 완전한 부활체를 이룹니다.
누가복음 24장 39절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도 뼈와 살이 있으시되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을 입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으로 통과하지 않으시고 방에 들어오기도 하셨지요. 이처럼 영체에 신령한 몸이 입혀지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3. 영의 지식

영체가 영과 영을 구분시켜 주는 껍데기라면 영을 이루는 내용물은 바로 영의 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 있는 것처럼 영도 영생하기 위해 영의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처음 생령이 되게 하셨을 때에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아무런 영의 지식이 없는, 비어있는 영의 상태였습니다.
만일 사람이 감각만 느낄 수 있을 뿐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지식도 없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거나 분별할 수도 없다면 어찌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산 영이 된 아담이라 해도 알맹이에 해당되는 영의 지식이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영이라는 근본 자체만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영도 영의 지식이 겸비될 때 온전한 영의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지식이란, 성경 66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과 결부된 모든 말씀들을 말하며 이 영의 지식들이 바로 생명을 작용시킵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미움이나 시기와 같은 썩어질 육이 벗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랑이라는 영 자체가 탄생되지요.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가면 마음 자체가 진리로 변화되어 온 영으로 신속히 일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의 세계는 다함이 없고 끝이 없는 무한한 세계이므로 그 깊이도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조금도 멈추지 아니하고 영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이 도전해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이 발견되면 이를 발견케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족함을 딛고 일어설 수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소망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끝까지 달려나가면 반드시 거기에 대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힘쓰고 애쓰며 인내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라(히 12:4) 말씀했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의 세계를 체험했다 해서 자족하여 나태해지지 말고, 더욱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무한한 영의 세계를 깊이 뚫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10-24 오전 12:44:04 Posted
2021-10-27 오후 3:21:1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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