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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11) 서머나 교회 (3) [계 2:8-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1.10.22
에베소서 1:23 전반절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말씀한 대로, 교회는 주님께서 피 값을 주고 사신 주님의 몸입니다. 그리고 고전 12:27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말씀한 대로,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한 모든 직분자들과 사명자들, 그리고 성도들은 주님의 몸을 이루는 각각의 지체들이지요.

만약 이러한 몸의 각 지체들끼리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다툰다면 그 몸은 제대로 설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하는 교회 안에서 만약 지체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 서로 헐뜯고 미워하며 비방하게 된다면 그곳에는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원수 마귀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지요.

이러한 교회는 점점 사랑이 식어지고 기도의 불도 꺼지게 되며 결국 부흥이 멈추어 하나님의 일도 이룰 수가 없게 됩니다. 바로 교회들을 이렇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가 사단의 회이지요.

‘사단의 회’란, 간단히 말해서 ‘사단의 역사를 받는 사람들이 두 사람 이상 모인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 말씀하고 있는 대로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지요. 이러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유대인, 즉 하나님의 자녀이며 주를 믿는 자라 말하지만 실상은 사단의 역사를 받아서 교회 안에 시기, 질투, 판단, 정죄, 미움, 다툼 등을 일으키고 분쟁을 만들어 냅니다.

이를 통해 결국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며 교회가 훼파되도록 만들어 가지요. 그러니 교회 안에 이러한 사단의 회가 아예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의 회’란 여러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이 그 안에 포함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지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별 생각 없이 어떤 사람이 하는 비진리의 말과 수군거림을 듣고 거기에 한두 마디 동조를 했다고 합시다. 물론 여러분은 악한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여러분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동조한 말들이 결국 교회 안에 이런저런 거짓소문을 만들어 내고 널리 퍼지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온전히 영으로 일구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악이 마음 안에 있기 때문에 어떤 상대를 만나고 어떤 상황에, 어떤 환경에 처하느냐에 따라 그 악이 얼마든지 발동될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입술에서 불평과 불만을 쏟아 내거나 단지 자기가 싫고 자기 보기에 좋지 않으므로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하는 순간에도 늘 반대적인 말을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그런 식으로 해왔기 때문에 스스로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지요.

이런 사람은 은근히 주변에서도 자신의 입장에 동조하는 세력을 찾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에게 동조하게 되면 그것도 결국은 사단의 회가 될 수가 있지요. 이때는 상대의 말에 함께 입을 맞추지 않으면 되고, 더 나아가 여러분 편에서 계속 진리의 말로 대응해 주면 됩니다. 빛으로 대응하게 되면 자연히 어둠은 물러가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은 진리의 가르침에 따라 늘 선한 것만 보고, 선한 것만 들으며 선한 것만 말하고 선한 것만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 나갈 때 사단의 회가 교회 안에 발붙일 수가 없는 것이고, 설령 누군가 악의적으로 거짓된 소문을 퍼뜨리려 해도 그러한 말이 전해질 리가 없지요.

전해지기도 전에 자연히 사라져버릴 것이고, 그러한 소문을 퍼뜨렸던 사람도 잠잠하거나 스스로 떠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을 명심하셔서 여러분 모두는 다시 한 번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집 안에서, 기관이나 선교회 또는 교구나 가까이 지내는 성도들 사이에서 교회를 어렵게 하는 사단의 회가 만들어져서는 안 되지요.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과 입술을 지킴으로 사단의 미혹을 능히 물리칠 수 있어야 하며 어떠한 사단의 궤계라도 깨뜨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시험에 들지 않게 늘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자칭 유대인들로 인한 사단의 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있어서도 큰 훼방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도 가장 심하게 그를 훼방했던 이들이 바로 유대인들이었지요.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못했고 주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가장 앞장서서 훼방해 나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주님께서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본 교회도 지금까지 세계선교를 이루는 과정에서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사람들로 인해 수많은 훼방을 받아야 했지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실 분이 계실 수도 있지만, 예수님을 당시 자신들의 지배국인 로마인들의 손에 넘겨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한 것도 바로 예수님의 동족인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대제사장들과 제사장들,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권능을 행하시며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났지요. 거기에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율법의 틀과 의에 맞추어 예수님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죽이게 되었지요.

장차 본 교회에서 북한에 들어가 사역을 할 때는 생명의 말씀과 함께 수많은 권능의 역사들이 따르게 됩니다. 북한에 있는 성도들도 확실한 천국 소망 가운데 달려갈 수 있도록 영의 세계에 대해서도 밝히 풀어 주게 되지요. 이로 인해 본 교회가 겪었던 것과 동일한 핍박이 만민의 이름으로 북한선교를 이루는 분들에게도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바로 우리와 똑같은 목적으로 북한선교의 사역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사역을 훼방하고 어렵게 만든다는 말이지요. 북한선교를 준비하는 분들은 이러한 상황을 미리 알았으니 실제 사역을 이룰 때에도 잘 대처해 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잘 대처하라’는 말은 결국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뜻이며, 맞대항해 싸우는 게 아니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더욱 깨어 기도로 준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칭 유대인들로 인한 훼방이 클수록 그것을 선과 믿음과 사랑으로 잘 승리했을 때 그만큼 권능의 역사도 크게 나타난다는 사실 역시 여러분이 잘 명심해 두시기를 바랍니다.

육적으로는 그러한 훼방이 복음전파를 위한 장애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로 인해 더 큰 권능의 역사 가운데 이 성결의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본 교회가 날로 더 큰 권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훼방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잘 승리해 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여러분이 성결되기 전까지는, 여러 시험 환난과 고난이 올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여러분에게 영육 간의 부요함을 가져다주기 위한 것이며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과정이지요.

주의 이름으로 받는 핍박과 환난이라면 당연히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고, 여러분이 아직 진리 안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시험과 환난 역시 더욱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 시험, 환난의 연단을 잘 통과해서 육을 벗고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니, 진정 믿음이 있다고 하면 그러한 것을 조금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이지요.

약 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말씀한 대로 시험을 통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됨이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또한 온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받아야 할 어떠한 고난이 있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지요. 그런데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하신 이 말씀 안에는 앞으로 북한선교를 이룰 때에도 어떠한 핍박이 있게 될지를 깨달아야 됩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사람들로 인한 훼방도 있지만, 결국에는 자신들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북한 당국의 핍박이 있게 될 것입니다. 장차 때가 되면 북한의 선교의 문이 열리고 그곳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런 분위기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했지요. 북한도 필요에 의해 잠시 동안 개방의 문을 열지만 체제유지를 위해 다시 개방의 문을 닫게 되는 때가 오지요.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위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위협을 느끼게 하는 데 큰 요인이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만민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사역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단지 말씀 증거로만 끝나지 않고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보여주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권능을 두려워하게 되고 이를 제지하기 위한 핍박이 가해지게 됩니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예수님 당시에도 제자들과 사도 바울 시대에도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곳에는 동일합니다. 북한은 한국에 있는 만민의 제단과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민의 사역에 대해 점차 경계를 하게 될 것이지요.

권능이 워낙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개월 전부터 준비를 했다가 적당한 때를 정해 북한에 만민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를 폐하며 함께 사역하던 사람들을 잡아가게 되지요. 그들을 옥에 가두고 나서는 자신들끼리 명분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즉 잡아 가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명분이지요. 무조건 종교적인 이유만 가지고 죽일 때는 세계의 이목과 반발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명분에 맞는 심판의 기준이 만들어지기까지 옥에 갇힌 사람들은 환난을 받게 되지요.

바로 이 기간을 “십 일”이라 말씀합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대로 꼭 딱 “십 일 동안”만 환난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적당한 명분 아래 심판의 기준을 만들어서 마침내 몇 사람을 죽이게 되기까지의 기간을 “십 일”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주님의 이름으로, 만민의 이름으로 순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니 두려우신가요? 믿음이 있다면, 천국에 대한 소망과 장차 주어질 영광과 상급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이러한 말씀이 두렵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결코 두렵지가 않지요.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 지금 말씀드린 것보다도 훨씬 더한 핍박과 멸시, 천대와 욕을 받으셨고 마침내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한 고난 받는 것으로 인해 슬퍼하시고 고통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오직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향한 애통함으로 마음 아파하셨지요.

이러한 주님을 생각한다면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어떠한 환난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점은 모든 것은 자신의 자유의지 가운데 선택하여 행해야 한다는 사실이지요.

여러분의 선택 여하에 따라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핍박이나 환난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한다는 것은 그 상급과 영광이 참으로 크지요. 그것도 마음을 영으로, 온 영으로 일구어서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가운데 자신의 생명을 주를 위해 드렸다면 그 상급과 영광은 실로 대단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말씀이 꼭 순교의 상황에 놓이게 될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하신 말씀대로, 여러분 모두도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이러한 순교의 믿음으로 행해 나갈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하신 이 말씀에 담긴 일반적인 의미를 알아야 하지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사단과 마귀’에 대해 정확히 분별하여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면서도 ‘사단과 마귀가 무엇이고 각각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런데 성경은 분명 사단과 마귀에 대해 구별해 주고 있습니다.

사단은 쉽게 말해 악한 영의 가장 우두머리인 루시퍼의 마음이며, 마귀는 그 수하에서 부리는 영이지요. 그리고 사단과 마귀는 각각 하는 일이 다릅니다. ‘사단’은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생각을 품게 하고 비진리의 마음이 요동하게 만들지요.

그러면 ‘마귀’는 이러한 사단의 역사를 받은 사람이 그러한 생각이나 마음을 실제 행함으로 옮기도록 만드는 것이구요. 즉, 생각 속에 사단의 사주를 받은 것이 행함으로 나타냈을 때 이것을 가리켜 마귀의 역사라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드리면 만약 누가 여러분을 헐뜯고 비방할 때 이를 불쾌하게 여기고 기분 나빠하며 더 나아가 미워하는 등의 악한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사단은 생각을 통해 ‘내가 분해서 못 견디겠다, 억울하다’ ‘내가 참을 수 없으니 욕을 해 주든가 때리든가 해야지’ 하는 이러한 생각들을 불어 넣는 것이지요.

이때 어떤 사람은 그 생각에 있던 것을 실제 행함으로 옮기기도 합니다. 상대에게 따지고 욕을 하거나 심지어 때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악한 행동으로 나타나도록 마음을 사로잡아 주관해 가는 것이 마귀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사단과 마귀의 역사에 대해 정확히 구분을 해놓았지요.

마 16:21-23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여 삼 일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만류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였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십니다. 베드로가 사람의 일을 생각함으로 자기 생각 가운데 예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만류하자,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책망하신 것이지요.

또한 눅 22:3에 보면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했는데, 사단이 들어갔다는 것은 사단이 그의 생각을 사로잡았다는 뜻입니다. 지금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돈 받고 팔리라’ 하는 이러한 생각이 들어갔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요 13:2에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했습니다. 이것은 마귀가 생각을 통해 역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귀가 이미 유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는 의미이지요. 이렇게 마귀가 마음을 사로잡음으로 결국 유다에게서는 예수님을 파는 마귀의 행함이 나왔구요.

요일 3:8 전반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하였는데, 여기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행함으로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요 6:70에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며 결국 자신을 팔아넘길 가룟 유다를 마귀라 표현하고 계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행함으로 죄를 짓는 것은 마귀의 역사이며 죄를 행하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한 자로서 마귀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가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한다” 말씀합니다. 그러면 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어떤 사람에게 이러한 시험이 오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롬 2:28-29 전반절에 보면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했습니다.

육적인 혈통이나 태생이 유대인이라 하여 모두가 유대인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이 유대인이요, 마음에 할례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찾은 자녀, 주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 이러한 사람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유대인입니다.

진정 주님을 믿는 사람인 것이며, 하나님의 선택받은 천국 백성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참된 유대인이 되려다 보면 이런저런 핍박과 환난을 겪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때 요일 4:18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말씀한 대로 온전한 사랑을 이룬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지요.

예수님께는 온전한 사랑이 있으셨기에 모든 인류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사랑의 힘은 이처럼 참으로 위대하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내어주신 것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도, 믿음의 선진들이 그처럼 생명 다해 주의 복음을 전한 것도 모두가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사랑의 힘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원수 된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그들을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주님의 사랑을 진정 마음에서 느낀다면 누구를 이해하지 못하겠고 누구를 사랑하지 못하겠는지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시키신 주님을 닮아 여러분 안에도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내는 하나님의 참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10-27 오후 7:43:01 Posted
2023-12-23 오전 12:00:1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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