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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12) 서머나 교회 (4) [계 2:8-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1.10.29
지난 시간에는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을 통해 마지막 때 본 교회에 주어진 북한 선교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장차 북한 선교를 이루는 과정에서 어떠한 시험과 환난이 오게 되고, 결국 어떻게 될지를 말씀드렸지요.

때가 되면 개방의 물결을 타고 북한에 들어가서 놀라운 권능의 역사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지만, 얼마 지나면 다시 개방의 문이 닫히면서 선교활동 역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핍박과 환난을 겪게 되고 몇 사람은 잡혀 옥에 갇히는 상황까지 이르지요.

권능의 역사와 함께 복음이 급속히 퍼지는 것을 심히도 경계하게 된 북한 당국은 자기들 나름대로 명분을 만들어서 옥에 갇힌 사람들을 죽이기에 이릅니다. 이처럼 순교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진행되는 시간을 가리켜 “십 일”이라 한다 했지요.

그리고 이렇게 순교에 이르기까지 충성했을 때 그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어떤 것인지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신 이 말씀 안에 담겨 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믿음의 4단계에 이른 사람, 즉 성결되어 3천층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이지요.

그렇다 하여 이 말씀이 순교한 사람들이 꼭 3천층에만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거기에 온 집에 충성까지 했으면 능히 새 예루살렘에도 들어갈 수가 있지요. 사실 3천층에 들어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물론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지요.

순교까지 하면서 자신의 육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 드린 사람이라면 능히 죄와도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므로 결국에는 성결을 이룰 사람이기 때문에 이처럼 순교를 이룬 사람에게는 3천층에 해당하는 영광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새 예루살렘까지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구요.

여러분이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안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못한 3천층의 영광이 어떠한지만 밝히 안다면 순교를 해서라도 3천층 이상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순교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정말 믿음으로 그 자리에 이르렀을 때는 세세토록 살아가게 될 천국에서 주어지는 영광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되어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일인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더욱이 북한 선교의 과정에서 이루게 되는 순교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열매를 내게 되지요. 이러한 믿음의 순교를 지켜 본 현지인들 중에 정녕 자신들도 순교의 각오로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복음을 전파할 사람들이 많이 나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외부에서 들어가서 순교의 각오로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그들 자체적으로 믿음이 자라서 순교의 각오로 복음을 전파해 간다면 그것은 참으로 강력한 힘이 될 수가 있지요.

바로 몇몇 사람들의 순교가 이렇게 그들 내부적으로 복음전파의 불을 붙이는 기폭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순교 자체의 상급도 크지만 그 순교가 이후에 수많은 영혼구원을 위해 끼치게 될 영향이 참으로 크기 때문에 이로 인한 상급 역시 함께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북한 선교의 사명을 받지 않은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어떻게 해야 생명의 면류관 그 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지금부터는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에 담긴 보편적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했는데, 마귀는 지난 시간에 설명 드린 대로 사람들로 하여금 행함으로 죄를 짓게 만드는 악한 영의 존재라 했습니다. 또한 죄를 지은 대가로써 여러 가지 시험, 환난을 가져다주지요.

바로 이러한 마귀가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한다 하셨는데, 마귀가 아무나 이처럼 옥에 던져서 시험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옥’이라고 하는 곳은 어떤 법의 기준에 어긋났을 때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들어가는 곳이지요. 그러므로 옥이 있다는 것은 곧 법과 그것을 주관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도 법이 있고 죄의 경중에 따라 법의 판결을 받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어서 사람들이 진리 안에 살 때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나 진리를 어겼을 때는 원수 마귀 사단으로부터 시험, 환난이 주어지지요. 진리를 어기고 죄를 지은 만큼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마귀의 주관에 따라 행함으로 짓는 죄인 육체의 일에 대해서는 그 죄의 경중에 맞는 보응이 따르지요. 이것을 가리켜 ‘마귀가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한다’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받게 되는 시험 환난은 죄의 경중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도 다르지요.

설령 같은 죄를 지었다 해도 믿음이 큰 사람과 적은 사람이 받는 형벌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눅 12:47-48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했지요.

주인의 뜻을 아는 사람, 또한 많이 맡은 사람이란 결국 믿음이 그만큼 더 큰 사람입니다. 반면에 주인의 뜻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만큼 믿음이 적은 사람이지요. 이처럼 믿음의 분량의 차이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은 사람, 즉 믿음이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 큰 책임을 물으십니다.

더 많이 맡긴 자에게서 더 많이 찾으신다 했습니다. 그래서 약 3:1에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믿음이 다른 사람보다 커서 남을 가르치는 선생의 위치에까지 올랐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더 온전히 행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았을 때는 그에 따른 시험, 환난을 받게 됩니다. 이때 각각의 죄에 따라 오는 시험, 환난이 다르고, 각각의 믿음에 따라 오는 시험, 환난이 다르지요. 어떤 것은 짧게 끝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즉시 끝나기도 합니다. 반면에 어떤 것은 오래 가기도 하고 어떤 것은 회개하고 돌이켜도 보응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있지요.

이러한 모든 경우들을 일일이 기록하자면 여러 권의 책으로 기록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이처럼 시험, 환난을 받게 되는 모든 경우들을 총칭하여 본문에는 바로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한 것이지요. 십(10)은 십진법에서는 만수(滿數)로서 꽉 찬 숫자입니다.

그러므로 십(10)이라는 숫자 안에는 모든 경우가 다 포함되는 것이며, 따라서 “십 일 환난” 안에는 죄로 인해 받게 되는 모든 경우의 시험, 환난이 다 포함된다는 말이지요. 결국 “십 일 환난”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땅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환난을 총칭하는 것’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어떻게 하면 복을 받고, 어떻게 하면 저주를 받는지, 또 어떻게 하면 형통함을 받고 어떻게 하면 시험 환난에 빠지게 되는지가 다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것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주의 종이나 일꾼들이 바로 가르치지 못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시험, 환난과 어려움을 겪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무조건 믿으면 구원 받는다’ 하니 어떤 사람들은 교회 다니면서도 여전히 죄를 짓고, 가장 기본적인 십일조와 안식일도 지키지 못하므로 각종 사고와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왜 자신이 이런 환난을 당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니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지요. 무조건 십일조와 안식일만 지킨다 해서 모두가 다 지킴 받는 것은 또 아닙니다.

이미 초신자를 넘어 믿음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단지 십일조와 안식일만 지키는 것으로 자신의 할 바를 다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요. 믿음이 있으면 그만큼 하나님 앞에 행해야 할 바도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초신자 때는 예배를 드려도, 기도를 해도, 봉사를 해도, 마음 중심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했는데, 어느덧 신앙이 성장했다 하면서도 오히려 감사와 기쁨이 없이 의무적으로 예배와 기도와 봉사를 하게 되었다면 이 자체가 이미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하지요.

또한 믿음이 커가면 갈수록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한 믿음의 연단도 함께 따르기 때문에 그럴수록 더욱 자신을 진리 안에 온전히 세워 나가야 합니다. 혹여라도 입술에 올무 될 수 있는 말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하지 말아야 하고 더욱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하지요.

여러분이 영으로, 빛으로 더욱 들어가고자 할수록 사단 역시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도 송사하여 방해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단에서 이러한 영의 법칙에 대해 수없이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경우에 질병이 찾아오는지, 그것도 구체적으로 어떤 병은 왜 오고 어떤 경우에 무슨 질병이 오는지 등을 아주 세세하게 말씀드렸지요. 또 물질의 어려움은 왜 오고, 왜 가정에 이런저런 문제가 오는지, 시험, 환난이 계속될 때는 어떤 분야를 돌아보아야 하는지 등도 자세히 설명 드렸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비춰보면, 지금 환난 중에 있는 분들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 이유가 정확히 나오게 되지요. 그 환난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말씀드렸습니다. 그 가장 기본이 바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지요. 하나님과의 사이의 죄의 담을 먼저 헐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며 하나님 앞에 충성해 나가야 하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충성은 단지 육적인 충성이 아닙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하신 것도 단지 육의 생명을 다하는 충성의 차원이 아니라, 바로 영적인 충성을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 과연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고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는 날, 우리는 이 땅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영으로, 빛으로 일군만큼 그리고 행하고 일한 만큼 그에 따라 주어지는 처소와 상급을 받게 됩니다.

모두가 면류관을 받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면류관을 받는 것도 아니지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살았느냐에 따라 더 좋은 처소로, 더 좋은 상급으로 갚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적당히 신앙생활 한 사람과 하나님 앞에 생명 다해 충성한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같은 위치에 서서 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이 자체가 벌써 공의롭지 못한 일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구분해 놓으셨고, 그 각각의 처소에 맞는 면류관과 영광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따라서 이 시간에는 각 처소에서 주어지는 면류관에 대해서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이 가게 되는 낙원에서는 주어지는 면류관이 없습니다. 간신히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졌을 뿐, 이 땅에서 아무런 상급도 쌓지 않았기에 주어질 면류관도 없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1천층에 가는 사람은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고전 9:25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했지요.

1천층에 들어가는 사람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이 있어서 이 세상의 썩어질 것을 취하지 않기 위해 어찌하든 절제하며 노력한다고 했기 때문에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2천층에 가는 사람은 벧전 5:4에 말씀하신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2천층에 들어갈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가는 사람으로서 그의 말과 행동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지요. 그랬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게 되고, 이런 사람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3천층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을 가진 성결된 사람이 들어가는 곳으로 본문에 나오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온 집에 충성하여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가장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면류관이 주어지는데, 계 4:4에 나오는 금면류관과 딤후 4:8에 나오는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지요.

이밖에도 천국에 가게 되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종류의 면류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 면류관들 중에서 적어도 생명의 면류관 이상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데,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순교의 믿음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가령 신하가 왕에게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 왕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을 말하지요.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3천층에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성결된 사람이 들어간다고 했는데, 이러한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순교의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을 단지 눈에 보이는 육의 생명을 드리는 충성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물론 하나님 앞에 충성하다 보면 앞서간 많은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육의 생명도 드리는 충성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영적인 순교, 즉 살아서 하는 순교도 중요한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모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서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리는 것을 말하지요.

그랬을 때, ‘나’는 온전히 죽어짐으로 오직 여러분 안에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만이 살아 있어서 그 모든 말씀대로 지켜 행해 나갑니다. 고전 15:31에,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한 것도 바로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담아서 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자기’가 철저히 죽어지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 사람이라면 주어진 사명도 잘 감당할 것이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하며 사랑의 간구를 해 나가게 됩니다. 이처럼 성결된 사람이 거룩한 마음 중심에서 생명 다하도록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 이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명을 다한 충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가 ‘나는 이처럼 죽도록 충성한다.’ 생각한다 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도 인정받는 충성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요.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험을 통과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약 1:12에도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했지요. 이 말씀처럼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주어진 시험을 잘 참고 통과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옳다 인정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하셨을 때, 그것을 감사함으로 통과하여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지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정말 흔들리지 않는 반석에 서 있다면 상상할 수 없는 큰 시험이 온다 해도 오직 죽도록 충성하며 모든 시험을 즐거움 가운데 참고, 통과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롬 8:35에 고백하기를“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여러분도 바로 주님을 향한 이러한 사랑이 있다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그리고 성도들을 위해서도 동일한 마음으로 생명 다해 충성할 수 있지요.
이처럼 생명을 다한 충성을 통해 여러분 모두가 적어도 생명의 면류관 그 이상을 넉넉히 약속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수많은 순교의 피가 있었기에 오늘날 기독교가 전 세계로 전파될 수 있었듯이, 본 교회가 이 마지막 때에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이루기 위해서도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기도와 땀과 수고, 그리고 생명 다한 충성이 순교의 피가 되어야 하지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는 것이 몇몇 사람들로 인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모두가 소중하며 여러분이 곳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감당해 주시는 그 헌신과 행함 하나하나가 교회의 너무나 큰 힘이 되고 있지요.

그러나 그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앞에 생명 다한 영적인 충성으로 생명의 면류관뿐만 아니라 금면류관도, 의의 면류관도 받을 수 있는 축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가 빛나는 면류관으로 아름답게 단장하고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11-03 오후 7:10:37 Posted
2023-12-23 오전 12:00:1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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