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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19) 두아디라 교회 (3) [계 2:18-29]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1.07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과거보다는 항상 현재가 중요합니다. 비록 과거에는 잘했다 하더라도 현재의 모습이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과거에 쌓아놓은 상급마저 다 잃을 뿐만 아니라 자칫 구원과도 상관이 있게 되지요.

두아디라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은 것에 대해서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지만,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을 용납하고 그 행위에 함께 동참함으로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게 되었지요.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회개하지를 않자, 주님께서는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라’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는 준엄한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시지요. 이처럼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오래 참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벧후 3:8-9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 천년을 하루같이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지요.

주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다시금 권면의 말씀을 이르고 계십니다.

24절에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하셨지요.

여기서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한 자’란 아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초신자입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말씀대로 지켜 행할 만한 믿음은 가지지 못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고 교훈해 주어도 아직 그것을 받을 만한 믿음이 안 되기에 받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을 향해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한다.’ 했는데, ‘사단의 깊은 것’이란 곧, 영의 깊은 세계를 뜻합니다. 어느 나라에든지 법이 있어서 그 법을 알고 지켜 행하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법을 알지 못하면 자칫 뜻하지 않게 법을 어겨서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여서 하나님의 법을 잘 알지 못하면 자칫 사단의 꼬임에 빠져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 대가로 벌을 받게 되는데, 이때 같은 죄를 지어도 ‘어느 단계의 믿음에 있느냐’에 따라 받는 형벌이 달라지지요.

예를 들어 초신자가 안식일을 범하는 것과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이 안식일을 범하는 것과는 같은 죄라 해도 죄의 경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초신자가 진리를 잘 몰라서 남을 판단하고 수군수군하는 것과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요.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수군수군하는 것이 자신이 스스로 재판관이 되는 큰 죄임을 알 텐데, 이처럼 알면서도 행한다면 그 죄는 그만큼 더 큰 사단의 송사거리가 됩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세계도 깊이가 다 다르며 그 깊이에 따른 사단의 역사도 달라지게 되지요. 그런데 초신자는 이러한 영의 세계에 대해 깊이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 다르므로 자신이 경험하고 거쳐 온 믿음의 단계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상담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자신도 경험하지 못했고 통과하지 못한 믿음의 단계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라 말해 줄 수가 없지요. 들은 지식적인 말씀을 가지고 말해 줄 수는 있으나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될 수도 없고 바른 영적 상담이나 심방이 될 수도 없습니다.

영어회화에 능통한 사람이 자신보다 실력이 낮은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평가를 할 수 있고 가르쳐 줄 수도 있지요. 상대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상대의 문제점이나 고쳐야 할 점이 무엇인지도 지적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회화에 서툰 사람이 단지 자신이 알고 있는 이론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자신보다 실력이 더 나은 사람을 평가하거나 가르치는 것은 맞지가 않지요.

물론 어떤 스포츠, 예를 들어 골프에서는 코치가 선수보다 실제 실력은 못하면서 선수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육의 세계에서도 이런 경우보다는 실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마 10:24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하신 말씀처럼, 반드시 영적으로 더 앞선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직접 그 단계에 들어가 보아야만이 그 단계가 어떤지 알 수가 있지요.

우리가 어떤 과일의 맛을 들어서 아는 것과 직접 먹어 보고 아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듯이, 설령 지식으로는 깊은 영의 세계와 더 높은 믿음의 단계에 대해 알고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칫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을 마치 자신이 그 단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면 이는 스스로 교만해지기만 할 뿐이며 당연히 말씀의 권세도 따를 수가 없지요. 하지만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소자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라고 하면 아멘으로 받고 행해야 합니다.

한편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은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어린 신앙의 단계에서 아직 영적으로 눈이 뜨이지 못했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도 소화시키지 못하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도 사랑하며 옛 구습을 버리지 못한 채 어두움과 짝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있었지요.

이는 사람의 육적인 성장단계에 비유하자면, 아직 젖이나 죽을 먹는 어린아이의 믿음에 불과하니, 이들을 향해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직 믿음이 안 되는 사람에게 아주 높은 수준의 믿음을 요구하며 “왜 이렇게 못합니까?” 한다면, 이는 서로가 답답할 뿐이지요.

25절 그러니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들에게 더 깊은 영적 차원, 즉 ‘성결되라’든가 ‘권능을 받으라’는 이런 차원의 것까지는 요구하지 않을 테니, 다만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즉, 지금의 신앙만이라도 굳게 잡아서 구원에 이르도록 하라는 뜻이지요.

성경은 이처럼 신앙 안에서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고전 3:1-2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아, 그냥 주님 오실 때까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 굳게 잡고 있어야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것일까요? 이 말씀을 오해해서 ‘현 상태만 유지하라’는 뜻으로 받아서는 안 됩니다.

자칫 안일한 생각이 틈타서 ‘이 정도면 됐으니, 좀 쉬어야지’ 했다가는 마치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배가 노 젓는 일을 멈추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되지요. 세찬 물살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하루하루가 5년 전, 10년 전의 하루와는 의미가 다르지요. 물론 주 안에서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의미 있지만, 지금 잠시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는 것은 예전에 잠시 게을리 했던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도 시험을 몇 달 남기고 하루를 허비하는 것과 시험을 2,3일 남기고 하루를 허비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큰 차이가 있지요. 그러니 혹여라도 ‘현상유지만 해야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는 결국 엄청나게 퇴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욱 세월을 아껴서 날마다 나중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아지는 뜨겁고 충만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약속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26절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했습니다.

먼저 ‘이기는 자’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비진리와 악과 어두움을 이기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세상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는 것이지요.

즉 선으로 악을 이기고, 말씀으로 세상의 죄악과 미혹을 이기며 말씀대로 의를 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행해 나가므로 어두움의 일들을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사는 것이 이기는 삶이지요.

다음으로 ‘끝까지 내 일을 지킨다’고 했는데, 여기서 주의 일이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한 일은 오직 선을 행하는 일과 생명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오로지 순종만 하셨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만 하셨지요.

따라서 주님의 일을 지킨다는 것은 곧, 주님이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영광을 돌리며 열심히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일 등을 한다는 뜻입니다.

단지 머리로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해 나갈 때, 그것이 곧 지키는 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렇게 이기며 주님의 일을 지키는 사람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 했지요.
그렇다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란 무엇일까요?
이는 곧 이 땅에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원수 마귀를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신 후, 천하만국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담이 그만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아담이 가졌던 권세가 원수 마귀 사단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를 알 수 있는 말씀이 눅 4:5-7에 나오지요.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한 것입니다.

이때 마귀는 예수님께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하지요. 그러면서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라’합니다. 즉, 천하만국에 대한 권세를 원래는 다른 누군가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자신에게 넘겨주게 되었고, 따라서 이제는 자신, 즉 마귀가 원하면 예수님에게 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이 땅에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원수 마귀입니다.

물론 이 권세는 인간 경작의 시간 동안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서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는 주장할 수 없는 권세이지만, 주님을 믿기 전에 세상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며, 죄 가운데서 마귀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모든 피를 흘리고 죽으신 후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마귀의 권세로부터 건져 주셨습니다. 요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한 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받으므로 이제는 마귀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을 받게 되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원수 마귀가 주관하는 이 어두움의 세상과 짝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빛에 속한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곧 앞서도 말씀드린 대로 이기는 것이며 주의 일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지요.

마귀는 여러분을 가만히 놔두려 하지 않습니다. 어찌하든 진리 안에 살지 못하게 하고 다시금 세상으로 빠지도록 만들려고 하지요.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의심을 심어 주고 기도하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를 합니다.

이러한 마귀의 방해를 물리치고 말씀대로 지켜 행하게 되면, 결국 마귀를 한 번, 두 번 점차 이겨나가게 되지요. 마침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마귀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귀를 지배하게 된다면, 그것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말씀대로 더욱 온전히 살면 살수록 더 큰 권세와 능력이 하늘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에 세상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도 더욱 넉넉히 지배해 나가게 되는 것이고요. 말씀 안에 온전히 살므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의 차원에 이르게 되면 악한 자가 여러분을 만질 수도 없게 됩니다.

요일 5:18에 보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어두움이 빛을 감히 어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어두움의 주관자와의 싸움에서 지는 사람은 여전히 마귀의 권세 아래 살게 되지요. 특히 니골라당이나, 발람, 또는 이세벨 등과 같은 사람의 행위를 좇게 되면 그런 사람은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 하며 완전히 그들의 밥이 되고 맙니다. 그러다가 결국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에 대한 말씀이 이어지는 27절에 나옵니다.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말씀하지요.

여기서 철장(鐵杖)은 쇠막대기나 쇠지팡이를 말하는데, 이러한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뜨린다면 질그릇은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신다는 것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권세를 뜻하는데, 질그릇은 흙으로 지어진 사람을 의미하지요.

원래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신 사람은 생령으로서 가치 있고 존귀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의 존재였지요. 그런데 죄로 인해 영이 죽게 되고 혼의 지배를 받는 육의 사람이 됨으로 이제는 마치 가치 없는 질그릇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질그릇을 깨뜨린다.”는 것은 말씀대로 지켜 행하지 못하는 사람, 즉 하나님 앞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을 깨뜨리신다는 의미입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못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원수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에 결국 쓸모없는 질그릇처럼 산산이 조각나서 버림받게 되는 것이지요.

요 12:48에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말씀”으로 심판을 하시게 되지요.

이때,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 마음 안에 두지 않은 사람은, 그 말씀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둠으로 이기고 끝까지 주의 일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는 말씀처럼, 오히려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는 영적인 빛의 권세를 받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말씀하시지요. 새벽별은 가장 밝게 빛나는 별로서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고 인정을 받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 새벽별은 바로 주님을 뜻하지요.

계 22:16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이 새벽별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사랑하고 인정하시는 것처럼, 이기는 자와 끝까지 주의 일을 지키는 자, 곧 말씀대로 행하여 사단을 이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아들로 인정하며 사랑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믿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부지런히 주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주님의 성품을 닮아 영의 사람이 되어가지요. 그럴 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거룩하고 온전해지므로 여러분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을 믿는다 고백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못하여 마귀에게 지는 사람은 새벽별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결국 구원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모든 말씀은 영적인 귀를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하나이신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으로서,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주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말씀 안에 담긴 좀 더 깊은 영적인 내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주 안에서의 사업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에 대해 처음보다 나중 행위가 많은 것을 칭찬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겉으로 보여지는 육적인 행위에 그쳐서는 안 되지요. 육적으로는 아무리 충성하는 것 같고, 갈수록 더 열심 내는 것 같아 보여도, 정작 마음에는 할례를 하지 않는다면 육적인 열심과 충성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육적인 열심과 충성은 있었지만 마음에 할례하는 것에는 열심내지 않았기에, 이세벨과 같은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 빠져 진리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나왔던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거듭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그마저도 돌이키지 않으니 큰 환난에 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직 영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하는 새신자나 초신자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과 재앙을 주겠다” 이러한 말씀을 하시지는 않지요. 신앙생활도 어느 정도 해서 진리도 알고 영의 세계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으며 나름대로 열심내고 충성한다고 했던 사람들 중에, 오랜 세월 마음에 할례는 하지 못하므로 결국 미혹에 빠져 사망으로 가는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간곡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진리도 알고 영의 세계도 알며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신앙생활 했으면서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 중에 그나마 회개하고 돌이켜서 결국은 이기는 자가 되었다 해도 그들은 다만 구원의 약속만을 받을 수 있었지요.

예전에 쌓았던 상급도 다 잃어버렸고 이제는 겨우 구원에 이른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결코 이러한 상황에 처하는 분이 한 사람도 없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 안에는 특히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점검하며 주님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교회들이 칭찬을 받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망이나 권면을 받은 내용들은 어떤 것인지를 잘 듣고 깨달아서 혹여 자신에게 그러한 모습은 없는지를 잘 점검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앞으로도 주님 오실 때까지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는 말씀들이 계속해서 증거되겠지만, 이번에 증거되는 일곱 교회의 말씀을 통해 앞으로는 온전히 칭찬받을 수 있는 모습으로만 달려가실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날마다 나중 행위가 처음보다 많아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기억된바 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사랑받고 인정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1-12 오후 7:46:42 Posted
2023-11-24 오후 3:20:1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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