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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21) 사데 교회 (1), 일곱 영 (1) [계 3:1-6]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1.28
일곱 교회 중에 라오디게아 교회와 함께 주님께로부터 칭찬은 없이 책망만 들었던 사데 교회에 대한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데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하는 마음 아픈 책망을 들은 교회입니다.

이 말씀은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죽은 자라는 뜻으로서,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스스로는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주님 편에서 보실 때는 구원과 상관이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마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신 그대로인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땅에서 나름대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열심히 수고하고 헌신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마 7:23 말씀처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는 말씀을 듣는다면 이보다 더한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스스로의 신앙을 점검하여 하나님 앞에 아무 소용이 없는 죽은 믿음 즉, 살았다 하는 이름뿐인 지식적인 믿음이 아닌 영적인 믿음, 산 믿음, 참 믿음을 소유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약 1:21에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말씀대로 단에서 증거되는 모든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서 믿음과 생명과 능력을 삼는 복되고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우리 주님에 대해 표현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라 했는데 여기에 나오는 ‘일곱 영’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오늘과 다음 시간에 걸쳐서는 이 일곱 영에 대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도 이 일곱 영에 대해서는 몇 차례 증거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 다시 한 번 증거할 때 여러분의 신앙을 잘 점검해서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시지요.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자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해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응답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요. 자녀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실 능력이 있으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중한 질병이나 연약함을 치료받기 원해도, 가난하여 물질의 축복받기를 원해도, 하나님께서는 다 들어주실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세와 지식 등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다 해결해 주실 수가 있지요.

이러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러니 제 기도에 응답해 주세요.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아무리 사랑이 많으시고 자녀들에게 응답해 주기 원하신다고 해도 모든 사람의 기도에 무조건 다 응답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하는 자녀에게 응답하시는 것도 반드시 공의에 맞게 행하시지요. 만약 공의의 법칙에 상관없이 누구나 기도한다고 해서 응답받을 수 있다면 오히려 세상이 얼마나 혼란해지겠습니까?

욕심으로 하는 기도, 악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자기 유익만을 위해 하는 기도, 그릇 준비 되지 않은 사람의 기도 등 만약 이러한 기도까지 다 응답이 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도 결코 득이 되지 못하지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심에 있어서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서 공의에 따라 역사해 가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이 공의의 법칙을 잘 알아야 하는데 본문에 나오는 일곱 영이 바로 여러분이 응답받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공의의 법칙에 해당하는 내용이지요.

그렇다면 일곱 영이란 무엇일까요?
일곱 영이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지요. 세상에서도 자녀들이 부모님께 어떤 것을 청하여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서 그 마음에 맞추어 구했을 때 원하는 것을 쉽게 응답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응답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그 마음과 뜻에 맞게 구했을 때 공의의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경 66권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응답받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에 대해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일곱 영이라는 사실입니다. 일곱 영에서 일곱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 아니지요.

일곱은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요 4:24에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영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한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계 5:6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했습니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인생들을 두루 살피시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바로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행실을 살핌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에게 공의에 맞춰 응답과 축복을 주시는 것이지요.

일곱 영은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하나님 편에서 응답을 주시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고기나 야채 등을 살 때도 저울에 무게를 달아서 그 무게에 해당하는 만큼의 값을 치르고 사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을 받을 때도 일곱 영의 측정에 비춰서 응답받을 조건에 합당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일곱 영은 무엇을 측정해서 응답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일까요? 일곱 영은 사람의 모든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실 등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측정하는데 크게 다음의 일곱 가지 측면에서 측정합니다.

첫째로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믿습니다’ 고백하며 기도한 대로 모든 것을 응답받고 계십니까? 여러분에게 진정 마음에 믿어지는 참 믿음, 영적인 믿음이 와서 고백하고 기도했다면 그것은 반드시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나름대로는 믿는다고 고백하며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그것은 ‘믿습니다.’ 했던 고백이 마음에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육적인 믿음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입술로 고백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참 믿음이라 하시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바로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어지는 믿음이지요,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영적인 믿음은 누구나 갖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믿음으로서 마음에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만 한다고 해서 ‘응답해 주신 것을 믿습니다.’ 하는 고백이 참된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되는 것이 아니지요. 마음에 악을 버리며 할례해 나가면서 기도해야 위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이 와서 믿음으로 고백하며 기도하게 되는 것이고 그럴 때 응답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말씀대로 행하는 행함이 동반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지요. 약 2:22에도 보면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했고, 이어지는 26절에서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신앙의 기본입니다.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믿는 것이며, 십자가에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믿는 것이지요. 심판이 있고, 영원한 내세가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예비 된 천국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진정 마음에 믿는 사람이라면 그의 삶은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헛되고 헛된 이 땅의 삶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게 되는 것이고, 그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기 위해 쉬지 않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하나 행하면서 진리로 변화되어 갑니다.

이렇게 행하며 변화되어 갈수록 믿음은 점점 더 커지게 되고 그러면서 더 큰 믿음의 행함과 순종이 나오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날로 더 커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믿음에 맞는 행함과 순종이 나오고 있습니까? 일곱 영이 측정했을 때, 십 년 전과, 오 년 전, 일 년 전과 비교하여 과연 믿음이 얼마나 성장하셨는지요?

믿음의 척도라 할 수 있는 “행함” 역시 예전과 비교했을 때, 과연 얼마나 더 온전함을 이루셨습니까? 일곱 영의 측정에 있어서 믿음이 가장 앞에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믿음을 기준으로 해서 다른 모든 측정 분야의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일곱 영으로 측정하시는 기준 역시 각각 다르게 두신다는 말이지요.

예를 들어 어린아이만큼의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과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똑같은 응답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린아이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응답받기가 너무 어려울 것이고, 장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너무 쉬울 수가 있지요.

그렇게 되면 어린아이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예 응답받기를 포기해 버릴 것이고, 반면에 장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 더 이상 노력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서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각각 다르게 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영을 통해 믿음을 측정하게 하심으로 나머지 여섯 가지 분야에 대해서도 그 믿음의 분량에 맞는 기준을 적용하시지요. 똑같은 믿음의 분량이라도 더 큰 문제를 응답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더 큰 믿음을 내보여야 합니다.

‘내 믿음의 분량은 이만큼이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뛰어넘는 믿음의 행함이 필요하지요. 그럴 때 큰 문제를 응답받을 수도 있는 것이며, 이 기회를 통해 믿음도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를 삼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일곱 영은, 기도를 측정합니다.

무조건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한 방법을 따라서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번 특별철야에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는 습관을 좇아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말씀처럼, 매일 습관을 좇아 꾸준하게 해야 하지요. 이렇게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라야 늘 깨어 있을 수가 있어서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설령 어떤 문제나 시험이 온다 해도 신속하게 응답받고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특별철야 같은 때만 반짝 기도하고 다른 때는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이 아니지요. 물론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는 특별철야만 잘 참석해도 응답받는 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믿음이 있다” 하는 분들이라면 습관을 좇아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드릴 때라야 마음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받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제부터라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분이 되신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보시겠고 그러니 당연히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다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지요.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뢴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무릎을 꿇을 상황이 안 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더 합한 기도가 될 수가 있지요.

다음으로 내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눅 22:42 후반절에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하셨듯이, 기도는 자기의 뜻이나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해야 하지요.

약 4:2 후반절-3에도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욕심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게 하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힘쓰고 애써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지요. 이러한 기도를 통해 창 3:17 후반절에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처럼 수고와 땀의 소산으로 응답을 얻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마음 중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역시 거룩한 겉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간절한 중심으로 기도하느냐가 중요하지요. 아무리 애쓰고 힘써 기도하는 것 같아 보여도 만약 중심의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중심을 다해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면 저절로 입술이 열리고 소리 내어 기도하게 되며, 감동함 가운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지요. 그래서 중심의 기도를 하게 되면 자연히 애쓰고 힘써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약 1:6-7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7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정말 응답받을 수 있을까, 안 되면 어떡하나’ 이렇게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될 수가 없습니다. 정녕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믿음과 사랑도 각각 일곱 영이 측정하는 분야이지만 기도할 때 믿음과 사랑이 없이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만한 향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일곱 영은 기도 한 가지를 측정함에 있어서도 단순히 기도를 하는가 안 하는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기도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측정해서 기도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사실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일곱 영이 측정하는 나머지 분야들, 즉 기쁨,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일곱 영의 측정하는 일곱 가지 분야 중에 믿음, 기도, 이 두 가지 분야만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으며 계명을 지키고 충성하며 사랑할 수가 있지요. 결국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분야는 서로 따로따로가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상호보완작용을 하며 응답의 조건을 충족시켜 나가게 됩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불같이 기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자연히 중심의 기쁨과 감사도 나오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들을 기쁨과 감사 가운데 지켜 행하게 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지요.

이 모든 것을 억지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또한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게 되지요. 이러한 사실을 잘 깨달아서 여러분의 믿음의 분량에 맞는 일곱 영의 측정 기준을 넘치도록 채우셔서 모두가 응답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후로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하루하루의 삶이 일곱 영의 측정에 합당하여 매일같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며 응답받는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2-04 오전 10:33:05 Posted
2023-11-24 오후 3:20:1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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