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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24) 사데 교회 (4) [계 3:1-6]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2.18
벧전 1:23에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썩지 아니할 씨 즉,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을 받으셨는지요?
예, 여러분 대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지 썩지 아니할 씨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만 해서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씨가 싹을 내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면 씨를 받았다 해도 결국 소용이 없기 때문이지요. 마음에 심겨진 말씀의 씨앗을 정성으로 가꾸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 나가는 사람이 정녕 거듭난 사람인 것이며, ‘살았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머리로만 알아서 지식적으로 잘 간직해 놓기만 하는 것은 참 믿음이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들은 말씀을 붙잡고 불같이 기도하며 말씀대로 행해 나갈 때, 마음에 심어진 말씀의 씨가 싹을 내고 자라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놀라운 열매로 맺혀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만약 그동안 들은 말씀은 많지만 마음에 영으로 일군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정녕히 깨닫고 돌이켜서 보고 듣고 배우고 가르침 받은 말씀대로 지켜 행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도적같이 임하시는 주님이 아니라, 사모하는 신랑으로서 오시는 주님을 깨어서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때로는 직분이 있고 믿음도 있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실상은 죽은 믿음을 가진 경우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인정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예수님을 파는 큰 죄로 인해 결국 사망에 이르렀지요.

사울 왕도 한때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 받았지만, 그 마음이 점점 높아져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 나가니 마침내 사망의 길로 갔던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기준은 사람의 겉모습이나, 어떤 직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기준이지요. 직분자요 머리 된 사람이라 해도, 또는 목사님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게 가르치거나 행한다면 결코 거기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위치에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 진정 그 말씀을 지켜 행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마 23:1-3에 보면 가르치기는 하나 스스로는 행치 않는 사람들에 대해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하셨지요.

또한 마 5:19에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작은 것 하나를 가르치더라도 그것을 나 자신이 먼저 행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행하여 온전한 행위를 이룰 때, 그런 사람이 장차 하늘나라에서도 ‘크다’ 일컬음을 받는 것이며, 이 땅에서도 따르는 말씀의 권세로써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고, ‘주여, 주여’ 하지만 말씀 안에 살지 못하므로 결국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가졌던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엄한 책망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가르침 받고 들은 바를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는 말씀을 듣지요. 이러한 사데 교회의 성도 전부가 죽은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 3:4)

본문 4절에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했지요. 물론 “몇 명”이라 하신 대로, 이 말씀은 사데 교회 성도들 중에 극히 일부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지만, 그래도 그들 안에는 믿음을 지키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성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옷’은 ‘사람의 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말씀은 결국 ‘마음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이는 곧 진리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지켜 행하며 살아가므로 그 마음이 세상의 죄와 악으로 더럽혀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열심히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나감으로 진리를 알기 전에 더럽혀졌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요, 이렇게 해서 깨끗해진 마음에 다시는 비진리와 더러운 죄악을 묻히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도 어찌하든 깨어 기도하며 참된 신앙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지요.

설령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양심의 소리를 들음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려는 성도들이 사데 교회 안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흰옷을 입고 나와 (즉, 주님과) 함께 다니리니”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하셨지요.

사데 교회에 있는 몇 명의 성도가 이처럼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말씀과 “합당한 자”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이것이 온전한 성결에 이르렀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데 교회의 전체적인 신앙을 볼 때, 그래도 그런 환경 가운데서 참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했던 것이 주님의 마음에 합당했다는 뜻이지요.

대부분이 죽은 믿음을 가진 사데 교회 안에서 이처럼 믿음을 지키며 말씀 안에 살아감으로, 주님으로부터 합당하다는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그들의 신앙이 좋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 있던 사데에서, 그것도 주변에는 온통 세상에 물들고 세상과 짝하는 성도들뿐인데도 그 안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도 신앙을 굳게 지키며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정과 가족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면서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 나도 남들처럼 가족과 함께 편하게 신앙생활 하면 좋을 텐데’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물론 가정이 온전히 복음화 되어 모두가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참으로 복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이 역시 자신에게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각기 마음밭과 그릇에 따라 연단을 다르게 해 나가시는데, 그러면서 그 연단을 통해 부족한 분야를 채우며 영혼이 잘되는 축복으로 인도해 가시지요.

가족의 핍박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 역시 비록 당장에는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것을 통해 더욱 깨어 기도하게 됩니다. 또한 인내를 배우게 되지요. 그러면서 가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가족에 대한 영적인 사랑이 자라나게 됩니다.

가족을 육의 부모와 형제로 본다면 자신을 핍박하는 것이 서운하게 여겨질 수도 있고, 때로는 미운 감정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영적인 사랑을 가지게 된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가족들 또한 영혼으로 대할 수 있게 됩니다. 동시에 주의 이름으로 받는 핍박이므로 하늘나라에 상급으로 쌓이게 되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며 신앙생활 했기에 더 강한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도 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사데 교회에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않았던 몇몇 사람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다른 곳에서 편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뜨겁게 기도했을 것이고, 삼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더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주님 앞에서 인정받는 합당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주변의 핍박이나 어려운 환경이 당장 보기에는 힘들게 여겨질지 몰라도,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축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데 교회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합당한 자라는 인정을 받은 사람들도 바로 이러한 믿음으로 달려갔기에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과 함께하는 것과 동행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장차 천국의 어느 처소에 들어가더라도 주님께서는 천국의 어디든지 가실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주님과 함께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설령 낙원에 있다 해도 때때로 주님께서 오셔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요.

물론 주님께서 낙원에 오셨다고 해서 낙원에 사는 영혼들이 주님 앞에 나와 얼굴을 마주 대하고 대화하거나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주님께서는 낙원의 백성들과도 함께해 주시지요.

하지만 주님과 동행하는 것은 이런 것과는 다릅니다. 3천층 이상,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과 동행할 수가 있습니다. 동행이란 무엇입니까? 언제 어디든 함께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주님과 확실히 동행할 수 있으려면 새 예루살렘에 거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자유롭게 마주 대하고 대화도 하며 함께 거닐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도 주님과 동행하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진리 안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과는 물론 함께해 주시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 된 사람과는 동행해 주시지요.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것과 동행해 주시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앞서 천국에서의 모습을 통해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땅에서도 그 차이는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동행해 주신다면 그에 따른 보장과 권세, 그리고 능력 등이 확실한 증거로 나타나지요. 여러분 모두도 주님과의 동행함을 사모하셔서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5)

5절 전반부에 여기서 ‘이긴다’는 것은 ‘믿음을 지키고 진리 안에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흰옷을 입는다’ 했는데, 여기서 ‘흰옷’이란 ‘구원받은 사람이 입는 옷’입니다. 설령 주님의 공중 강림 때, 휴거되지 못하고 7년 대환난 중에 남았다가 순교하여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 해도 그에게는 이 흰옷이 주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흰옷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입는 옷으로서 곧, 구원의 표를 말하는 것입니다. 앞서 4절에서도 흰옷이 나왔는데, 거기서 말씀하는 흰옷은 단순히 구원의 표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모두에게 흰옷이 주어지지만 ‘얼마만큼 성결되었느냐’에 따라서 주어지는 흰옷의 빛깔이 다 다르지요. 하나님 앞에 더욱 합한 사람일수록 더 밝은 빛의 흰옷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상대의 입은 옷만 보아도 저가 이 땅에서 경작 받을 때 얼마큼 주님을 닮았는가를 알 수 있지요.

또한 옷에 다는 각종 장식들을 통해 이 땅에서 쌓은 상급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그 상급에 맞는 아름다운 장식들을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장차 천국에서 자신이 입게 될, 찬란한 빛의 흰옷을 머릿속에 한번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빛난 옷을 입고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다짐해 보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지는 5절 중반부에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했습니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육의 생명이 있다고 해서 진정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죽었던 영이 살아나야 진정한 생명이 있는 것이지요.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어두움 가운데 거하며 마귀의 자녀로 있는 사람은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결국 죽어서도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며 그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이 구원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이지요. 계 20:15에도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 현재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구원이 보장되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로 백보좌 대심판 때에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서 생명책을 펴셨을 때, 그곳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야 구원에 이르게 되지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을 우리가 역(逆)으로 생각해 보면,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질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한 번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해도 흐려질 수가 있다는 뜻이지요.

예를 들어 아이가 태어나서 호적에 올렸는데, 그 아이가 얼마 안돼서 죽었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호적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게 되지요.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일단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만 기록되고 나면, 그 후에는 아무렇게나 살면서 죄를 지어도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 천국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그때부터 영생을 얻기 위한 길로 들어선 것이지만, 그 이후에 언제라도 이 영생의 길에서 이탈되면 나중에는 성령이 소멸되며 생명책에서도 그 이름이 흐려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살전 5:19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 말씀했는데, 이는 성령이 소멸될 수도 있으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경계의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출 32:33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말씀하십니다. 즉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 버리실 수도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고전 15:2에도 보면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합니다. 나의 전한 말, 즉 진리의 말씀을 듣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았을 때 구원을 얻는다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면 헛되이 믿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육적인 믿음이요, 진리의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말합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니고 성경 말씀을 많이 안다 해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여전히 세상 사람과 똑같이 행한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현저한 육체의 일을 비롯하여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지요. 물론 죄는 어떠한 것이든 짓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 중에서도 어떤 것은 중심에서 회개하여 사함 받을 수 있는 죄가 있는가 하면 어떤 죄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령 훼방, 모독, 거역, 그리고 성령에 참예한 후 타락함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아 현저히 욕보이는 것과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짓는 것이 사망에 이르는 죄에 해당하지요. ‘믿는다.’ 하면서도 이런 죄를 행하는 사람 역시 결국 헛되이 믿은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는가.’가 기록되어 있지만, 그와 함께 어떻게 하면 사망에 이르는가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구원이란 어느 한순간에 단번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요.

비록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왔던 사람이라 해도 자신의 자유 의지 가운데 선택하여 구원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고, 지금은 구원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어느 순간 구원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님들 모두는 일단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는 끊임없이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서 믿음이 날로 성장해 가시기 바랍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음으로 세상을 주관하는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기고 진리 안에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5절 후반부에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장차 백보좌 대심판 때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은 주님으로부터 ‘이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는 시인을 얻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즉 여러분에 대해 주님께서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 안에 살았습니다.’ 이렇게 인정해 주실 때라야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인정해 주시지요. 그런데 이러한 주님의 시인을 천사들 앞에서도 인정받아야 합니다. 천사들이 여러분의 구원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어떤 배심원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천사들의 인정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요. 왜 그럴까요?

마 18:10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말씀한 대로, 이 땅에서 여러분의 행함과 생각과 마음까지도 감찰하여 하늘나라에 보고하고 기록하는 천사가 있지요.

물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천사도 있지만, 여러분 각자를 감찰하는 사명을 맡은 천사도 있어서 그 천사는 그 누구보다도 여러분에 대해 잘 압니다. 그리고 천사는 영이므로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며 실수가 없지요.

이러한 천사에 의해 기록된 모든 것이 백보좌 심판 때에 증거자료가 되어 여러분을 심판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사가 직접 나서서 여러분에 대해 증언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천사의 정확한 기록에 의해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르게 살았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하지요.

이처럼 여러분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하므로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천사들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말씀하신 것이지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3:6)

주님께서는 사데 교회에 대해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하고 계십니다. 사데 교회 성도들이 지금까지 들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변화되기를 바라는 주님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다시 한번 호소하고 계신 것이지요.

사데 교회는 죽은 믿음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상태였지요. 하지만 그들은 진리를 듣고 배우기는 했기 때문에 그나마 지식적으로는 진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 지식적인 믿음을 행함이 있는 산 믿음으로 바꿔야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구원받을 믿음을 가진 성도라 해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변함없이 이겨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만이 구원의 징표인 흰옷이 주어지며 이 땅에서 행하고 일한 대로 천국에서 영광과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날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채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여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진리로 바르게 깨우쳐 주는 목자가 없으니 구원받을 믿음을 찾아보기 힘들고 소경의 인도를 따라가는 소경과 같은 처지가 되지요.

그래도 교회마다 몇몇 깨어 있는 사람이 있기에 주님께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하시며, 어찌하든 잠자는 영혼들, 죽은 믿음을 가진 영혼들을 깨우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귀 있는 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반드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이며, 간절히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찾으며 진리를 좇기 원하는 영혼들은 어떻게든 바른 목자를 만나 더 좋은 천국, 새 예루살렘까지도 이르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참 생명의 말씀으로 인도받으며 영적인 참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아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흠도 티도 점도 없는 주님의 온전한 신부로서의 자격을 갖추리라는 간절한 소망 가운데 행해 나가심으로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항상 동행할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2-23 오후 3:33:06 Posted
2023-10-26 오후 2:54:0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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