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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33) 일곱 영 [계 4:5-9]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5.06
오늘 본문에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난다”는 것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이러한 위엄과 영광과 권능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지요.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권능을 표현하며 모든 것이 그 앞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위엄과 권세와 영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했습니다. 일곱 영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서 일곱 등불은 하나의 상징으로서 보여 주신 것이지요.

등불이란 빛으로 환히 밝혀 주는 역할을 하듯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분리된 일곱 영도 모든 것을 밝히 비춤으로써 정확하게 살핍니다. 천하만국을 감찰하시고 인생들의 모든 마음과 생각과 뜻도 감찰하시지요. 그래서 일곱 영은 측량의 기준이 되며 응답의 저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녀들에게 좋은 것 주기 원하시고 축복으로만 인도하기 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기도 하시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것을 주실 수는 없지요. 공의의 조건에 합당할 때 응답과 축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공의의 법칙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녀라 하여 원하는 대로 다 응답받을 수 있다면 오히려 세상이 얼마나 혼란해지겠습니까? 아직 악이 있고 욕심도 있으며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사람들, 또 그릇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도 원하는 대로 응답받아 나간다면 그것은 도리어 자신에게도 결코 득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서 공의에 따라 역사해 가시지요. 이때 공의에 따라 응답과 축복의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는 속성 중에 대표적인 일곱 가지 분야를 일곱 영으로 분리하여 이 일곱 영이 각 사람을 측량하게 되지요.

일곱은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가지 분야만을 측량하지만 그것이 결국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측량을 하게 되지요. 일곱 영의 측정이 바로 온전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피는 것과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행실을 살펴서 공의에 비추어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이 주어지는 것이지요.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분야에 대해서는 앞서 “사데 교회”에 대한 말씀을 증거할 때 설명했습니다. 믿음, 기쁨, 기도, 감사, 충성, 계명 지킴, 사랑. 여러분이 어떤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바로 이 기준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면 됩니다.

물론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기준의 정도는 달라지지요. 일곱 영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하여 그의 수준에 맞게 측정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기 믿음의 분량에서 합당하다면 응답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돌아보아 ‘내가 영으로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살피는 것도 바로 이 일곱 영을 통해 측정해 보면 됩니다. 물론 영으로 이룬 정도를 측정하려면 팔복, 사랑장,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자신을 비춰보면 되지만 일곱 영을 통해서도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압축하여 살펴볼 수가 있지요.

약 1:22에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하신 대로 들은 말씀을 반드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응답도 받는 것이고 영으로도 들어올 수가 있지요. 듣기를 수없이 하고 입술로도 수없이 고백한다 해서 그것만으로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니며 영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님을 꼭 깨닫고 명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본문 6절에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했습니다.

여기서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라 한 것은 바다처럼 크고 넓다는 의미와 함께 너무나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입니다. 천국의 바다는 그 근본이 생명수 강에서 흘러나온 물이므로 이 땅의 바다처럼 짠맛이 나는 것이 아니라 달면서도 오묘한 맛이 나지요. 또한 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므로 그 안에 있는 각종 물고기와 해초들도 속속들이 다 보이게 됩니다.

장차 백보좌대심판의 때가 되면 이 유리바다가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바로 각 사람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어떤 마음과 생각과 뜻과 언어와 행동을 했는지가 이 유리바다에 그대로 드러나 보이게 됩니다. 너무나 맑고 깨끗한 유리바다 위로 조금의 숨김도 없이 모든 것이 다 드러나지요. 유리바다에 비춰진 것은 하나도 거짓이 없이 모든 것이 진실이며 참입니다.

혹여 육으로 생각하면 그 넓은 유리바다에 비춰지는 것을 어떻게 한 눈에 다 볼 수 있나 생각할 수 있지요. 마치 여러분이 동해안 바닷가에 서 있고 동해바다 전체가 화면이라고 하면 육으로 생각할 때는 화면을 한 눈에 다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유리바다는 아무리 넓다고 해도 그곳에 비춰지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런 것도 가능한 것이지요. 육의 세계에서는 자기 눈에 들어오는 한계 안에서만 볼 수 있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크고 넓은 것도 한 눈에 들어오게 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천사나 그룹 중에는 육의 크기로 본다고 하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아주 큰 천사나 그룹도 있지요. 그러나 영안이 열려서 보게 되면 아무리 큰 천사나 그룹이라 할지라도 한눈에 다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한 번에 볼 수 있지요. 더욱이 영감으로 함께 느끼면서 보게 되면 전체적인 것을 보면서 동시에 부분적인 세세한 것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미가엘 천사장은 많은 천사장들 중에서 군대 장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천사장입니다. 그 위엄과 권세가 대단하며 그 크기도 매우 크지요. 이 미가엘 천사장의 모습에 대해 잠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머리에는 마치 왕관과 같은 투구를 썼고 손에는 긴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른쪽 가슴 위편에는 녹보석이 아래편에는 홍보석이 달려있고, 왼쪽 가슴에는 마치 명찰과 같은 것이 있어서 거기에는 그가 누구이며 어떤 계급인지를 나타내는 표식이 새겨져 있습니다.

벨트를 차고 있는데, 이 벨트에는 여러 가지 무기들이 달려 있고요. 또한 긴 치마와 비슷한 것을 입고 있어서 다리가 드러나지 않고 가려져 있습니다. 영안이 열리신 분들은 이런 모습을 한 천사를 보게 되면 ‘그가 미가엘 천사장이구나’ 아시면 되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네 생물에 대해서도 이미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지요. 본문에도 보면 네 생물이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다 했는데 이는 네 생물의 위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증거입니다. 네 생물은 그룹들의 가장 머리로서, 마치 호위대장과 같이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존재 중에 하나이지요.

그 권세 역시 대단하며 그 휘하에 있는 수많은 그룹들을 지휘합니다. 때를 따라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아 수행하기도 하지요. 네 생물에 대해서는 계시록과 함께 에스겔서에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그 내용만 보아서는 네 생물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에스겔 선지자는 겔 1:6에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했는데 반면에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8절에 “각각 여섯 날개가 있다” 했습니다. 이는 네 생물이 합체된 모습을 보면서 각각의 날개들이 연합하기도 하고 서로 포개지기도 하는 모습을 표현하다 보니 두 사람의 기록에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 하여 성경이 잘못 기록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서로 다르게 기록됨으로써 네 생물의 모습을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합체되었을 때와 분리되었을 때, 또한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보여지는 모습이 달라질 수가 있다는 말이지요.

네 생물은 말 그대로 생물 넷이 짝을 이루고 있는 그룹인데 넷이 합체된 형태로 있기도 하고 따로 분리된 형태로 있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형상은 사람과 비슷하며 머리는 하나이지만 머리의 사면에 각각 네 개의 얼굴이 있지요.

네 생물은 뒤로 돌아서서 간다거나 머리를 좌우로 돌리는 일이 없기 때문에 분리된 네 생물의 정면에서 보이는 얼굴이 각각 그 생물을 대표하는 얼굴이 됩니다. 네 생물의 얼굴은 각각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이지요.

본문 7절에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다” 했습니다. 사실 네 생물을 정확히 보기란 쉽지 않은데 그만큼 영안이 밝히 열린 사람이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볼 수가 있지요.

네 생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님 보좌 주변을 떠나지 않으며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은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잘 드러내지 않고 가리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제단에는 수년 전에 이 네 생물의 모습과 역할에 대해 밝히 풀어 주시고 영안이 열린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네 생물은 일반 천사나 천군과 달리 매우 무섭고, 보는 사람에게 위협까지도 느끼게 합니다. 전체적인 색상도 조금 어둡고 진하며, 매우 강하고 단단한 느낌을 주지요. 하나로 합체되어 있던 네 생물이 어떤 명령을 수행하려고 할 때는 순식간에 해체되면서 사방으로 날아갑니다.

네 생물은 항상 앞으로만 곧게 행하며 그 날아가는 속도가 아주 빠르지요. 겔 1:12에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했고 겔 1:14에는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르더라”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8절에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말씀한 대로 이 네 생물은 온몸에 눈이 가득하지요. 이는 그들의 역할이 하나님 가까이에서 지키는 것이므로 당연히 주변을 빈틈없이 살피기 위한 것이지만 또 다른 목적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이 땅을 두루 살피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네 생물은 마치 옛날에 왕에게 속한 의금부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직접 관련된 죄가 있을 때는 네 생물이 직접 나서게 되지요. 예를 들어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나 하나님을 심히 대적하여 공의의 선을 넘은 경우, 바로 이 네 생물이 직접 나서서 재앙이나 환난의 심판을 내리게 됩니다.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나 하나님을 심히 대적하여 공의의 선을 넘은 경우, 바로 이 네 생물이 직접 나서서 재앙이나 환난의 심판을 내리게 됩니다. 소돔, 고모라에 심판이 내릴 때도 네 생물이 직접 명령을 받아 수행한 것이었으며 장차 7년 환난의 때에도 네 생물이 직접 관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네 생물은 전체적인 사명도 있지만 각각이 가지는 고유의 사명과 역할이 있습니다.
먼저 인자의 형상을 한 생물은 그룹들을 명하여 움직이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가 입을 열어 명할 때 그룹들이 움직이지요. 둘째 하늘에 있는 그룹들도 그 인자 형상의 생물의 명령에 따라 움직입니다.

다음으로 독수리 형상의 생물은 하늘 문을 열고 닫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의 날개짓을 통해 영계의 문이 열리지요. 하늘에 구름이 나오고 들어가는 것도 이 생물이 둘째 하늘로 통하는 문을 열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영계의 문을 열어 이동하는 별을 보거나 이중 이상의 원형 무지개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바로 이 독수리 형상의 생물이 관여하게 되지요.

사자 형상의 생물은 재앙을 부리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가 입을 열어 불의 재앙, 온역의 재앙 등이 임하게 하는 것이며, 임했던 재앙을 거두는 권세도 있지요.

마지막으로 송아지 형상의 생물은 첫째 하늘에서 천기를 주관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구름을 모으거나 비를 내리게 하는 것 또는 비를 멈추거나 태풍을 움직이고 소멸하는 것 등이 바로 이 생물의 권세로 이루는 일들이지요.

네 생물은 각각의 사명과 역할이 있지만, 함께 연합하여 그 엄청난 권세로서 동시에 역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엄청난 권세를 가진 네 생물을 주관하시므로 공의에 따라 천기를 움직이시고 재앙을 내리게도 또한 거두게도 하시며 영계의 문을 열어 놀라운 현상들을 나타내 보여 주실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혹여 어떤 분들은 이러한 네 생물의 모습에 대한 기록을 읽을 때에 ‘좀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그 위엄과 권세가 대단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마저 들게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곁에서 친히 경호하는 존재이므로 당연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왕도 가장 멋지고 늠름한 장수를 뽑아 주변에서 호위하게 하듯이 하나님을 경호하는 임무를 맡은 네 생물도 실제로 보면 너무나 위엄 있고 멋이 있으며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네 생물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고백하는 내용이 본문에 나오지요.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린다” 했습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새 예루살렘으로부터 낙원에 이르기까지 항상 비취기 때문에 어두움이나 밤이 없지요. 그럼에도 밤낮이라 표현한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편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한 것입니다. 즉 쉬지 않고 항상 그렇게 한다는 뜻이지요.

성경의 표현 중에는 사람이 육으로 생각하면 오해되는 표현들이 종종 나오는데 예를 들어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해서 그것이 24시간, 일 년 내내 기도하라는 뜻은 아니지요.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으라는 뜻이지요. 기도하는 시간에는 당연히 중심을 모아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이고, 기도하지 않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마음만은 항상 하나님을 향해 있으라는 뜻이지요.

이런 것처럼 네 생물이 밤낮 하나님 보좌 앞에서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며 찬양 드린다는 것도 단 1초도 쉬지 않고 그런다는 뜻이 아니라, 늘 중심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 드리는 마음으로 있다는 의미입니다. 때로는 실제로 들리는 음성으로 고백하기도 하고 때로는 들리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고백할 때도 있지요. 천국에서는 실제로 늘 찬양이 끊이지 않습니다.

네 생물 이 외에도 찬양만을 위해 지어진 천사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구원받아 천국에 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서는 찬양이 끊이질 않지요. 영원히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한다 해도 어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를 다 할 수가 있겠습니까?

천국 곳곳에서는 늘 연회가 베풀어지므로 그곳에서 누구든지 마음껏 찬양하며 하나님께 마음으로 향을 올려드릴 수가 있지요. 또한 연회가 아니라 해도 얼마든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고요. 소리 나는 찬양으로도, 마음의 향으로도 마음의 감동함으로도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네 생물도 그 중심으로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양하고 있는데 하나님 앞에 “거룩하다” 고백하고 있지요. 벧전 1:16에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며 자녀 된 우리들 역시 거룩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진정 거룩해진 자녀들이 그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라야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지요. 천국에 가면 낙원에서부터 새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모든 천국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텐데 하나님께서 그중에 누구의 찬양을 더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온전히 닮아 새 예루살렘에 들어온 자녀들의 찬양이지요.

이 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외모나 육적인 실력을 먼저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중심의 거룩함을 보시며 거룩한 중심을 가진 자녀들이 올리는 찬양을 기쁘게 흠향하시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중심의 거룩함을 이룬 자녀가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심을 가지고 연습하고 다듬어서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올린다면 그것은 더 큰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목소리가 곱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처럼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하기 위해 애쓰고 힘써 노력해 온 마음과 정성을 기쁜 마음으로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른 분야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중심이지만 마음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표현하는 행함 역시 중요하지요. 마음은 없이 외적인 행함만을 치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마음 중심과 함께 정성을 담은 행함까지 드린다면 그것은 더 진한 향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 드릴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일 3:18에도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하여 행함과 진실함을 함께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러니 장차 천국에 들어온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경작 받으며 일군 영의 마음을 가지고 세세토록 변함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마음껏 그 사랑과 감사를 표현해 드릴 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시겠는지요?

특히 24장로와 같은 분들이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찬양과 경배는 더더욱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장차 천국에 가게 되면 그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또 앞에서 누가 인도해 가지 않아도 여러분의 입술에는 늘 찬양이 넘칩니다. 감사의 고백이 넘치며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광 돌리는 고백이 항상 끊이지를 않지요. 마음에서부터 샘솟듯이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하신지요? 지금 이 땅에서도 그런 분이 있다면 그분의 마음에는 분명 천국이 가득할 것입니다. 적어도 영으로만 들어가도 이렇게 될 수 있지요. 그리고 그 기쁨과 은혜는 이 세상의 무엇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이 좋은 것을 여러분도 누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모두에게 길은 열려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육의 세상의 온갖 근심과 염려와 고통 가운데 머물면서 주저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조금의 미련이나 주저함 없이 여러분을 육의 세상 가운데 붙잡아 두려고 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영으로 ‘쏙’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더 많이많이 나오셔서 이 땅에서도 장차 천국에서 느낄 기쁨과 감사를 누리며 늘 하나님 앞에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5-11 오후 2:55:07 Posted
2023-10-05 오전 10:38:0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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