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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36) 새 노래 [계 5:9-14, 6:1-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6.03
이사야 43:21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이유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지요. 하나님을 위해 지음 받았고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함이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찬양을 매우 기뻐 받으십니다. 하지만 모든 찬양을 다 기뻐 받으시는 것은 아니지요. 향이 되어 올려지는 찬양만을 받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찬양은 드리는 사람에 따라 각각 향이 다르지요. 찬양을 드리는 사람이 얼마나 깨끗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또 얼마나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느냐에 따라 그 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향의 진하기도 다르고 올려지는 향의 굵기도 다르지요. 이 모든 것이 정확하게 측정되어서 천사와 천사장을 거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입니다.

기도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여러분이 올리는 기도 역시 향이 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상달됩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정성스럽게 올린 기도가 금 대접에 담겨져 하나님 앞에 올려지게 되고, 공의에 합당한 분량에 이르렀을 때 응답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모든 기도가 다 향이 되어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죄의 담이 있는 상태에서 올리는 기도나 잡념과 졸음 속에 중언부언하며 올리는 기도, 또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게 올리는 기도 등은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가 없지요. 그리고 얼마나 성결된 깨끗한 마음으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하느냐에 따라 기도의 향이 다 다른 것입니다.

이처럼 향이 되어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여러분의 찬양과 기도는 정확하게 측정되어 그 모든 것이 마지막 심판 날에 낱낱이 드러나게 되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의 기도를 향으로 올렸는지가 여러분의 상급으로 갚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꼭 기도와 찬양에 대해서만 이렇게 측정하여 갚아주시는 것이 아니지요.

마 12:36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하십니다. 아무리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그 모든 것이 정확히 기록되었다가 그에 대한 상(賞)이나 벌(罰)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 한마디, 찬양 한마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는 측량이나 기록은 실수가 나올 수 있지만 천사들에 의한 측량과 기록에는 한 치의 오차도 있을 수가 없지요. 마지막 심판 날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에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있었던 모든 것이 정확하게 펼쳐져 보이므로 누구도 핑계나 이유를 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꼭 명심하셔서 여러분의 기도와 찬양과 말, 그리고 생각까지라도 늘 진리 안에서 아름답게 이룰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계 5:9-10에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여기서 “새 노래”란 이 땅에서 부르던 노래가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새롭게 부르는 노래를 말하지요. 이 땅에서 부르는 노래는 물론 하나님을 경배하며 높여드리는 찬양도 있지만 우리가 충만함을 입고 감동함을 입기 위해 부르는 찬양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나라에 가서는 우리의 충만함이나 감동함을 위해 찬양을 할 필요는 없지요.

물론 하늘나라에 가서도 찬양을 하면 더욱 충만함과 감동함이 더해지지만 이 땅에서처럼 육을 입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굳이 충만함이나 감동함을 입기 위해 찬양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찬양의 목적도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며 영광과 감사를 돌리기 위한 것이지요.

지금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도 이 땅에서 부르던 찬양과는 다른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봉을 떼기에 합당한 분임을 고백하고 있으며 구세주로서의 사역을 노래하고 있지요.

예수님은 단지 이스라엘 민족만의 구세주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어주시기 위해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고” 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 값으로 말미암아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얻으신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일찍 죽임을 당하셨다”는 것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것을 말하고요. 또한 “저희로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이며 땅에서 왕노릇 할 것을 말씀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만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었지요. 그래서 백성이 죄를 지으면 제사장이 대신 짐승을 잡아 그 피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 제단에 뿌림으로 죄를 대속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의 휘장이 갈라졌지요.

마 27:51에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했습니다. 이에 히 10:19-20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말씀하지요.

이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소에 들어가 예배하며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 제사장과 같은 자격을 얻은 것이지요. 또한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받았고 만왕의 왕 되신 주님의 신부로서 공중 7년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장차 천년왕국 동안에는 이 땅에서 왕노릇 하며 지내게 되지요.

그래서 벧전 2:9 전반절에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이러한 내용의 새 노래를 주님 앞에 올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진행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지요.

계 5:11-12에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사도 요한은 지금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를 둘러 선 무수히 많은 천사들을 보고 있지요.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만 해도 이렇게 많은 천사들이 있는데 하물며 천국 전체에는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있겠습니까?

이 천사들의 세계에도 정확한 질서와 서열이 있습니다. 또한 천사들도 각각 이름이 있으며 능력과 권세 역시 각각 다르지요. 천사와는 좀 다른 천군도 있으며 천사들의 머리급인 천사장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브리엘, 미가엘과 같은 천사장의 이름이 나오며 힘센 천사, 힘 있는 천사 등의 표현도 나오지요. 이러한 천사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돕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명하여 천기를 움직이게도 하시며 재앙의 권한을 주어 행하게도 하시지요. 삼하 24:16에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 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곳곳에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의 권세를 받은 천사들이 이 땅에 갖가지 재앙을 내리게 하는 것도 볼 수가 있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 하나님의 자녀들을 돕게도 하십니다.

단 6:22에 보면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했지요. 바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사자 굴에 들어간 다니엘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행 12:7에는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의 사자 곧 천사가 와서 옥에 갇힌 베드로를 구해낸 것이지요.

이밖에도 히 1:14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말씀한 대로 천사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구원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의 생명을 마치게 되면 이때도 천사들에 의해 그 영혼이 인도를 받게 되지요. 이처럼 천사들도 각각의 사명이 있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 냅니다.

이러한 천사들이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데 그들이 주님을 향해 큰 소리로 고백하고 있지요.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했던 것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들을 영생의 길로 인도해 내신 주님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시지요.

또한 주님께는 이 땅의 썩어져 없어질 부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부(富)가 있습니다. 천지 만물이 다 주님의 것이지요. 주님은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과 하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지혜는 성결의 지혜요, 선의 지혜이지요. 이러한 성결로부터 오는 선의 지혜를 받게 되면 모든 일에 형통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간교한 사단의 지혜도 능히 간파할 수 있고 어떤 궤계라도 능히 깨뜨릴 수가 있지요.

주님께서는 힘이 있으신데 이 힘은 육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전혀 없는데서 오는 영적인 힘이 있으시지요. 죄가 없는 성결된 마음에서는 무한한 힘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어둠이라도 지배하고 정복하며 물리쳐 나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도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게 되면 이러한 영적인 빛의 권세와 힘이 주어집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인이십니다. 가장 존귀한 분이시며 모든 피조물로부터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지요. 또한 모든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계 5:13-14에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계속해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이신 주님을 찬양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크고 영화로운지를 찬양하고 있는 것이며 모든 섭리를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늘 위의 천군, 천사들 또한 구원받은 영혼들, 땅 위의 모든 인류와 생물들 그리고 땅 아래 음부에 있는 영혼들과 바다의 모든 생물들까지도 창조주 하나님과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에 네 생물이 아멘으로 화답하며 이십사 장로들도 엎드려 경배하고 있지요. 이처럼 인간 경작이 마무리 될 때가 되면 영계에 있는 존재들뿐만 아니라 경작 받아 구원에 이른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모든 피조물도 하나님 앞에 경배하게 되고요. 이제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롬 8:19-22에 보면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했지요.

우리 모두가 이렇게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그날을 사모하며 열심히 신부단장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을 때는 이제 계 6장부터 전개되는 이 땅에서의 7년 환난에 떨어져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고통 가운데로 들어가지요.

계시록 6장부터는 7년 환난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주님의 공중 강림과 함께 휴거되고 나면, 그때부터 이 땅에는 7년 환난이 시작되지요. 7년 환난은 인간에 의한 전쟁과 자연에 의한 재앙이 합쳐지면서 전무후무한 환난 상황으로 전개되어집니다.

계시록 6장에서는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갈 제3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시작되고 있지요. 성경에서 말씀하는 “끝”에 다다른 것입니다. 마 24:3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 오리이까” 여쭈는 장면이 나오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6절에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난리”란, 어느 한 나라나 지역에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일이지요. 따라서 “난리와 난리”란 바로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어도 아직 끝은 아니라 했지요. 그러므로 “끝”이 되면 다시 한번 난리와 같은 상황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인 것입니다.

‘정말 이것이 끝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엄청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바로 그 “끝”에 일어나는 일이 제3차 세계대전이 되는 것이고요. 주님께서 일곱 인을 떼기 시작하면서 7년 환난 중에 있는 이 땅은 점차 세계 대전이 촉발될 수밖에 없는 긴장 상황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계 6:1-2에 “내가 보매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레 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어린양이신 주님께서 인을 떼셔야 비로소 재앙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는 3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7년 환난 동안의 모든 사건들이 주님의 주관 아래서 이루어지게 됨을 의미하지요. 또한 주님께서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자, 하나님의 직속으로 되어 있는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레 같은 소리로 말했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직속으로 명령을 수행하는 네 생물이 이처럼 직접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이지요. 그렇다 하여 하나님께서 7년 환난의 재앙들을 이 땅에 직접 내리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차피 공의의 법칙에 따라 이 땅에 임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전쟁과 자연의 재앙들이지만 그것조차도 결국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그에 따라 모든 것을 계획해 놓으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흘러간다는 의미이지요. 네 생물의 소리를 우레 소리에 비유한 것은 그들이 그만큼 큰 힘과 권세를 가진 존재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오라” 한 것은, 이제부터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보여주겠다는 의미이지요. 이에 사도 요한이 보니 “흰 말”이 보였습니다. 흰색은 빛, 깨끗함, 성결함을 뜻하며,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뜻하지요.

또한 말은 권세와 위엄을 뜻하며 한편으로는 전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말이 전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이러한 흰 말을 탄 자가 보였는데, 그는 권세와 위엄을 받아서 부릴 수 있는 자로서, 곧 주의 이름으로 일을 수행하는 사자입니다.

그리고 그가 활을 가졌다 했지요. ‘활’은 ‘분쟁과 싸움’을 의미합니다. 활은 어떤 목표를 향해 쏘는 것처럼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가다 보면 부딪힘과 다툼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의 사자가 활을 가졌다는 것은 결국 부딪힘으로 인해 화평을 깨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으로 면류관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보장을 받는다는 의미이지요. 머리가 된다는 의미이며, 부와 명예와 권세가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면류관은 자부심과 교만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지금까지 설명드린 내용에 부합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바로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합니다. 즉, 흰 말은 영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하며, 그 말에 탄 자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그들의 운명을 좌우해 가는 머리되는 세력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흰색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의미하며, 말은 권세와 위엄과 함께 전쟁을 의미한다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하나님께 속한 선민이며 역사상 그들로 인해 많은 전쟁이 일어났지요. 또한 활을 가졌다는 것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화평을 깬다는 의미인데, 실제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주변과 늘 마찰을 빚어왔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보장하심 가운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부와 명예와 권세를 누리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교만이 있습니다. 자신들은 선민이며, 하나님의 보장하심 가운데 늘 승리한다는 교만이지요. 이러한 모습을 면류관을 받았다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설명드린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요 19:23-24에 보면,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십자가의 도”에서 자세히 설명을 했지요. 그 내용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여기서 예수님의 옷은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옷을 네 깃으로 나눴다는 것은 육적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나뉘어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의미이지요.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짰으므로 찢어서 나누지 않았다 했는데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내면적인 것 곧, 중심만은 나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서기 70년에 로마의 타이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없어지지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로 인해 지금도 유대 민족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철저히 나라가 파괴되고 백성들도 다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내면적인 것 바로 하나님을 향한 중심만은 그 누구도 빼앗거나 무너뜨릴 수가 없었지요.

그 후로도 유대 민족을 뿌리째 없애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오히려 1948년 5월 14일에 독립된 나라를 세우기에 이릅니다. 세계사의 그 어디에서도 이처럼 나라 자체가 완전히 파괴되고 사라진 후에, 1900여 년이나 지나서 자신들의 민족들로 다시 독립된 나라를 이룬다는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는 사건이지요.

이스라엘의 옛날 영토 주변에 있는 많은 아랍 국가들도 이스라엘의 이러한 행동을 결코 반겨 맞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국가 독립을 선포하자 바로 다음 날인 5월 15일 아침 아랍의 연합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옵니다. 일명 “팔레스타인 전쟁”이라고도 하고, “독립 전쟁”이라고도 하는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것이지요.

당시 이스라엘 군대는 비록 규모도 작고 무기도 빈약한 상태였지만 단합된 힘으로 이 전쟁을 압승으로 이끕니다. 1956년 10월에는 “수에즈 전쟁”이라 불리는 제2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는데, 이때도 이스라엘이 승리하지요.

1967년 6월 5일에 일어난 제3차 중동전쟁은 그 유명한 “6일 전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도 아랍의 여러 국가들이 연합하여 공격해 왔는데 이스라엘은 6일 만에 그들을 무찌르지요. 더욱이 이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요르단 서안지구, 골란고원, 또 가자, 시나이 반도 등 많은 영토를 점령하게 됩니다.

예루살렘도 재통합하게 되며 이스라엘은 이후로 크게 번영을 하게 되지요. 그 당시 유명한 일화 중에 하나가 있는데 이스라엘 군을 이끌던 가장 머리된 장군이 참모들과의 회의 자리에서 지휘봉을 높이 들고, “하나님이여, 이 전쟁이 6일 만에 끝나게 해 주시어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는 내용입니다.

그 후에도 1973년에 일명 “욤 키푸르(속죄일) 전쟁”이라 부르는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는데, 이때도 이스라엘은 결국 승리를 이룹니다. 이밖에도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에는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전쟁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지요.

대하 20:15에 보면 이때도 모압과 암몬을 비롯한 이방 연합군이 여호사밧이 다스리고 있던 유다를 침공해 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와의 신이 야하시엘이라는 사람에게 임하여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지요.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전쟁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생사화복과 세계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관 하에 들어 있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비록 육적으로는 아무리 힘이 없고 빈약해 보이는 것 같은 상태라 해도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가며 의지할 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반드시 승리했습니다.

반면에 육적으로는 많은 것을 가졌다 해도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지 못했을 때는 주변 이방 국가들로부터 침략을 받으며 전쟁의 패배로 인한 고통을 당해야 했지요. 지금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은 이미 하나님께서 구약에 예언해 놓으시고 섭리해 놓으신 대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중에 한 가지만 찾아보면, 겔 38:8-9에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내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네가 올라오되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한 많은 백성이 광풍같이 이르고 구름 같이 땅을 덮으리라” 하셨지요.
이 말씀이 얼마나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이러한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기 위해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편을 들어 그들에게 승리를 주실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말씀하신 대로 보장해 주시는 것이며,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섭리하신 대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하여 아직 완전히 이긴 것은 아님을 말씀하고 있지요. 다시 말해, 아직도 싸움이 진행 중이며 결정적으로 완전히 이겼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는 바로 앞으로 있을 3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또 하나의 전쟁이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제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데에도 이스라엘 민족이 깊이 관여되어 있는데 앞으로 있을 3차 세계대전에도 이스라엘이 밀접하게 연관이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위치하고 있는 땅과 그 주변의 땅들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시는 출발점이 되었던 곳이지요. 그런데 인간 경작의 마무리 역시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이며 이스라엘과 중동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으로 인해 결국에는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되고, 인류가 멸망으로 가는 계기가 되지요. 이스라엘은 이처럼 인류 역사에 있어서 마지막까지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되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모든 주변의 환경 하나 하나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한 번 하신 말씀을 얼마나 신실히 지키시는지를 “이집트”라는 나라를 통해 다시 한 번 알 수가 있지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의 4차에 걸친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모두 승리하게 되자, 1978년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에 평화 협정이 체결됩니다.

주변의 아랍 국가들로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심한 비난을 받았지만 1982년에는 협정의 이행을 위해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해 주기에 이르지요.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창 47:7-12의 내용을 보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덕분에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극심한 기근을 피해 애굽 즉, 지금의 이집트 땅으로 이주해 올 수가 있었지요. 이때 바로 왕 앞에 선 야곱이 바로를 축복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왕은 야곱과 그의 가족들을 선대하여 그들에게 거할 땅을 주게 되지요.

11-12절에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 아비와 형들에게 거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를 그들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고 또 그 아비와 형들과 아비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하였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즉, 이스라엘 민족의 시초가 되는 사람들이 애굽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신 23:7 후반절에 보면,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었음이니라” 하신 것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시초가 되는 야곱이 애굽의 왕 바로에게 축복을 빌어 주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마침내 육적으로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평화 협정까지 맺을 수가 있었지요. 이 평화 협정으로 인해, 지금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 일어날 큰 전쟁 상황에서도 이집트는 중동의 다른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큰 재앙을 면할 수가 있게 됩니다.

결국 3차 세계대전의 상황 속에서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의 나라들이 전쟁에 휩쓸려 엄청난 재앙을 맞게 되지요. 시작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의 전쟁이지만 그것이 결국은 석유를 중심으로 한 각 나라들 간의 이권과 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세계의 열강들이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 됩니다.

계 9:16에 나오는 “이만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군대가 부딪히는 큰 전쟁이 일어나고 마는 것이지요. 바로 3차 세계대전이 최고조에 이르는 상황입니다. 본문 1-2절 안에는 이처럼 엄청난 의미들까지도 담겨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어지는 말씀에 나오는 “붉은 말”, “검은 말”의 의미와 전 세계가 전쟁으로 휘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그 당시의 상황들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앞으로 있게 될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 간의 큰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한 세계대전 등은,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날 일들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살펴보았듯이, 마지막 때에 일어날 그러한 일들이 그때 가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있었던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공의에 맞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모든 일들이 정확하게 진행되었고, 그 결과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요한계시록 강해를 들으시면서 앞으로 되어질 세계사의 흐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어 간다는 사실을 꼭 마음에 믿고 능력을 삼으시기 바랍니다.

행 13:22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6-08 오후 3:16:58 Posted
2023-09-15 오후 11:13:1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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