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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46) 7년 환난, 셋째 화 [계 11:14-19]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8.12
요한계시록의 주된 시대적인 배경은 7년 환난 기간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두 휴거되고 난 후 이 땅에 7년 동안 있게 될 대환난이 나오지요. 그러다 보니 계시록 전반적으로는 계속해서 환난과 재앙에 대한 내용이 펼쳐집니다.

일곱 인을 하나씩 뗄 때마다 또 일곱 나팔을 하나씩 불 때마다 7년 환난은 더 깊어만 가지요. 각종 자연 재해와 기근, 전쟁 등의 재앙으로 인해 이 땅은 사람이 살기에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앞으로 또 15장에 가면 ‘일곱 대접’이 나옵니다. 이처럼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등이 계속해서 나오다 보니 성도님들이 좀 혼동이 되실 수도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비슷한 내용들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요.

‘3차 대전은 정확히 언제 시작되는 것인지, 적그리스도가 세력을 잡는 것은 언제인지 두 증인이 등장하는 시점은 언제인지…’ 이러한 내용들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사건들은 시간적으로 칼로 자르듯이 딱딱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사건과 다른 하나의 사건이 동일한 시간대에 겹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기록된 순서로는 앞에 나와 있지만 시간상으로는 뒤에 일어날 사건도 있지요. 그러므로 사건의 시간적인 순서에만 너무 집착하지 마시고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 흐름을 대략 설명하자면 7년 환난에 접어든 이 땅은 세계 곳곳에서 14만 4천의 전도자가 일어나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믿고 구원에 이르지요. 하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섭리 가운데 두 증인의 사역이 시작되지요. 그들의 권능 앞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정말 회개하고 돌이키는 계기는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알게 되는 사건입니다.

적그리스도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게 된 것을 깨닫고는 비로소 자신들의 무지함을 회개하지요. 이것이 두 증인의 사역과 맞물리면서 이스라엘에도 커다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니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보겠습니까? 어떻게든 두 증인을 잡아 죽이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가 되기까지는 죽일 수가 없지요. 그러다 두 증인의 사역이 마쳐질 때가 되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두 증인은 순교합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두 증인을 죽일 때도 자신들이 직접 나서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세계를 장악하며 주관해 가고 있지만 자신들은 배후에서 모든 것을 조종해 나가지요. 다른 나라의 군대들을 동원해서 두 증인을 잡기 위한 대대적인 공세를 취합니다. 그래서 결국 두 증인을 잡아 죽이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한 내용이 여기까지이지요.
오늘은 일곱째 나팔이 울리는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계 11:14에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여기서 셋째 화라는 것은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임하는 재앙을 의미하지요. 7년 환난 때는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암울한 날들을 지내게 됩니다. 1년, 2년, 3년, 이렇게 시간이 지나갈수록 현실은 점점 더 비관적으로 변해가고 1분, 1초까지도 길게 느껴지지요.

아무리 극심한 재앙이라 해도 결국 정해진 기한이 차면 끝나게 됩니다. 그 후에는 천년왕국이 이르게 되지요. 천년왕국이 끝나면 백보좌대심판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정확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둘째 화가 지나고 나자 어김없이 셋째 화가 이르고 있지요. 지체함 없이 속히 이른다 말씀합니다.

계 11:15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7년 환난이 시작되면서부터 계속된 재앙으로 세상은 너무나 파괴되었고 마치 회복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요. 이때는 악한 자들이 권세를 휘두르며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는 것같이 보입니다. 이는 원수 마귀 사단이 가진 세상 권세를 하나님께서 아직 거두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권세는 아담의 범죄 이후 원수 마귀 사단에게 넘어간 것이었지요. 눅 4:5-7에 보면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영계의 법칙에 의하면 순종하는 자는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됩니다. 롬 6:16에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죄에 순종하면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요,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 속한 의의 자녀가 되지요.

아담은 원수 마귀 사단의 미혹을 받아 범죄했고,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때 아담에게 속해 있던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도 원수 마귀 사단에게 넘어가고 말았지요. 그래서 원수 마귀 사단이 세상을 주관하는 권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 다시 상황이 역전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을 어긴 것이지요. 이때부터 원수 마귀 사단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음으로 주님과 하나 된 사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기 권세를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으므로 그들에게는 죄의 삯인 사망의 권세를 더 이상 주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내어주어야 하게 됐지요. 그러나 원수 마귀 사단은 여전히 어둠을 주관하는 권세는 가지고 있습니다. 죄와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주관하며 그들을 사망으로 이끌고 갈 권세이지요.

그래서 7년 환난 동안에도 원수 마귀 사단은 자신들의 권세를 가지고 최후에 최후까지 악을 발하게 됩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도 주님의 권세 앞에 굴복하고, 주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하실 때가 옵니다. 7년 환난이 다 끝나고 천년왕국이 이를 때이지요.

원수 마귀 사단의 모든 권세가 거두어지고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됩니다. 이 땅에 오염된 것을 정화시키고 파괴된 것을 회복시키지요. 이렇게 회복된 땅에서 평화로운 천 년이 지나면 백보좌대심판이 있습니다.

그 후에는 세세토록 주님께서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지요.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며 큰 소리로 온 하늘에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 11:16에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인간 경작의 모든 섭리를 계획하시고 온전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24장로는 하나님 앞에 각자의 보좌가 있어서 거기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장차 천국에서 가장 높은 서열들을 차지하는 대단한 지위와 권세를 가지고 있지요. 이러한 24장로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지극히 겸비한 모습으로 경배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경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와 기도할 때 어떤 마음과 자세인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기도할 때는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 말들로 하나님 앞에 구하는지요? 혹여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면서 무례히 행하는 경우는 없으셨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며, 진리 가운데 거할수록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스럽고 친밀한 아버지가 되어 주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친밀하고 가깝다 해서 하나님 앞에 무례히 행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육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지만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늘 이러한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어찌 이 세상의 어떠한 권세나 위엄을 가진 사람 앞에 나가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하나님 앞에 더욱 온전하고 바른 모습으로 서야 할 것입니다. 두렵고 무서워서가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높여 주십니다. 삼상 2:30 후반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어찌 예배시간이나 기도 시간에 졸겠으며 마음과 생각을 다른 곳에 두겠습니까? 마음도, 생각도, 눈도, 귀도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을 향하게 되지요.

24장로는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지극히 경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본이 될 만한 사랑과 정성과 행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겼지요.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지극히 존귀한 자리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계 11:17-18에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이는 결국 사단의 권세가 폐하여지고 하나님께서 왕 노릇 하시는 때가 이른다는 내용입니다. ‘이방들이 분노한다’는 것은 주를 믿지 않는 자들이 자기 악함 속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말하지요. 이러한 자들에게 주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는데 이때 ‘죽은 자를 심판한다’ 했습니다.

여기서 죽은 자란 영이 죽은 자들 곧 구원받지 못할 자들을 의미합니다. 아담은 원래 영과 혼과 육으로 지어진 ‘생령’ 즉 살아 있는 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인해 영이 죽고 말았지요.

‘영이 죽었다’는 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므로 영이 활동할 수 없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영이 죽으므로 대신 혼이 주인이 되고 말았지요. 그리고 이 혼은 사단의 주관을 받습니다. 그래서 영이 죽은 상태로는 원수 마귀 사단의 주관 아래 죄의 종노릇하다가 결국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가게 되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성령이 마음 안에 오십니다. 그때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되지요. 영이 살아난 사람은 육의 수명이 다해 임종을 맞아도 영이 살아 있기에 ‘죽었다.’ 하지 않고 ‘잔다.’ 합니다.

본문에 “죽은 자를 심판하신다”는 것은 영이 죽은 사람들 즉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심판한다는 의미이지요. 반면에 이러한 심판의 때에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신다” 했습니다. 이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각각 그 행함에 따라 상급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지요.

이처럼 주를 믿지 않고 대적한 사람들과 주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각각 심판하실 때가 곧 이르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4장로가 이와 같은 고백을 할 때에 사도 요한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 11:19에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여기서 성전 안에 언약궤가 보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모든 말씀이 신실하게 성취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다”는 것은 7년 환난의 모든 재앙들과 심판이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음을 의미하지요. 역사의 흐름과 인생의 생사화복 등 모든 것이 공의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그대로 성취되지요.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정확하게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약 1:17 후반 절에는 하나님에 대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했습니다.

또 민 23:19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했습니다. 지금까지 기록된 성경의 모든 예언들이 그대로 성취되어 온 것처럼 요한계시록의 말씀들도 반드시 성취됩니다.

주님의 강림, 7년 환난, 7년 공중 혼인잔치, 천년왕국과 백보좌대심판에 이르기까지 다 이루어질 일들입니다. 정확한 공의에 따라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지요. 이는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우리 마음이 각각 하나의 성전이 됩니다.

고전 3:16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계시니 우리 마음이 성전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성전 안에 언약궤가 있는 것처럼 여러분 안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빛 가운데 거하면 축복을 주신다 했지요.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할 때는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고전 3:17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인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거룩케 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성전을 더럽히면 축복과 소망과 구원 등에 대한 약속의 말씀도 더 이상 우리 안에 계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마음의 성전을 거룩케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 안에 주신 언약의 말씀들이 신실하게 성취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모든 일들도 두려움과 떨림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함으로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장부터는 상황들이 아주 급박하게 진행됩니다. 내용도 마치 공상 소설에 나오는 듯하지요.
계 12:1-5를 보면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했습니다.

그 뒤로도 여자와 용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지요. 용이 여자를 핍박하므로 여자가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날아서 광야로 도망합니다. 거기서도 용이 여자를 죽이려고 하지만 실패하는 내용들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이것은 공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차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과 관련하여 일어날 사건들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시험을 보게 되면 ‘시험 범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범위 안에서만 시험 문제를 내겠다고 하는 약속과도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시험 범위를 알려 주고 시험을 봐도 다양한 학생들이 나옵니다. 시험 범위 안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공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학생이 있습니다. 적당히 공부하여 낙제만 면하는 학생도 있지요.

반면에 시험 범위를 알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아서 결국 낙제 점수를 받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는 인간 경작의 과정에서도 동일한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인간 경작에 필요한 모든 내용이 다 있습니다. 단에서는 늘 그 내용들을 풀어서 가르치지요.

간혹 영적인 깊은 내용들이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모른다 해서 인간 경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알면서도 행치 않는 것이지요. 미워하면 안 되는 줄 아는데 미워합니다.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하지 못합니다. 감정을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하는데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합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정답인지 아는데도 그처럼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시험 준비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막상 시험에서는 뻔히 아는 문제를 계속해서 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렇게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빌 4:9에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이제부터는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평강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형통하고 축복된 삶을 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8-17 오후 7:06:07 Posted
2023-08-11 오전 10:44:3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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