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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 (81)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 [계 22:6-10]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06.30
계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뤄질 일들을 선지자들로 하여금 힘써 전하게 하셨지요. 이 모든 말씀은 신실하고 참된 말씀입니다. 듣는 사람들을 깨우쳐서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하는 말씀이지요. 또한 말씀만 듣고는 믿지 않는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증거를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곧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타내 보이시지요. 이런 일들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지요.

마 7:21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고, 23절에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진실로 믿는다면 어찌 불법을 행하고 죄 가운데 살겠습니까? 또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심을 때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을 믿는다면 심는 데에 인색할 사람이 없지요.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알려줘도 믿지 못하면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의 상급보다는 눈앞의 유익을 구하게 되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게 되지요.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아무리 표적을 보아도 마음에 믿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합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믿게 하시려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어 깨우치고 또 깨우쳐 주시지요.

계 22:6 후반절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많은 선지자들에게 천사들을 보내셔서 앞일을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앞으로의 일들을 미리 알려주시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됩니다.

신명기 18:21-22에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했습니다.

이 육의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결코 앞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악한 영들도 영의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에 지난 일은 알 수도 있지만 앞으로 될 일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악한 영과 교통하여 예언을 한다고 하는데 이는 확률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정확하게 앞일을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실 때라야 미래를 정확히 예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 속에서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함 속에서 ‘영으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본문에서는 ‘선지자들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암 3:7에도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했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종’이란 영적인 자격을 갖춘 참된 종을 말합니다. 자기 의사가 없고 주인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들이며, 생명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지요.

꼭 예언을 기록한 선지자들만이 아니라 선하고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때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게 됩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동방의 박사들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니 구세주의 탄생을 미리 알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그들의 선한 마음을 보시고 앞일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실 때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도 “속히 오신다” 하셨지요. 그런데 이처럼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말씀을 드러내어 증거하면 “잘못되었다”는 비난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것은 성경에 확실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 신랑 되신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런 약속이 없고 그런 소망이 없다면 여러분 참 교회 다니는 것 빡빡하고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씀을 듣기 싫어한다면 이는 그 자신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아직 못했기 때문이지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을 잘못 적용하여 그릇된 길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곧 오신다면 지금 열심히 살 필요가 없구나, 적당히 살아도 되나 보다” 하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당장 해야 할 자신의 의무를 뒤로 하고 불성실하게 살아가므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잘못 적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서 마땅히 선포해야 할 말을 안 할 수는 없지요. 세상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겠느냐’는 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선포하는 것은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바르게 깨우쳐 주면 되지요.

마지막 때가 가까운 것을 정말 믿는 사람들은 무절제하거나 방탕하게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다듬어 더욱 반듯하게, 더욱 정결하게 살아가지요. 마음을 더 거룩하게 하고, 온 집에 충성하면서 거룩하신 주님의 신부로 단장합니다.

성도들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이 말씀을 더욱 열심히 전하며 서로 격려하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녕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신다는 말을 들을 때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그날을 얼마나 자주 떠올려 보시는지요? 주님께서 임하시는 그 순간 공중에 우렁찬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영광의 구름 속에 주님께서 임하십니다. 천군 천사와 수많은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공중에 임하게 되지요. 우리의 몸은 순간에 신령한 몸으로 변하여 하늘로 들려 올라가며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이 감동의 순간을 떠올리면 밤잠을 설칠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분이라면 ‘내가 빨리 주님 맞을 준비를 마쳐야지, 어서 속히 신부 단장을 끝내야지’ 하면서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살다가 갑자기 주님을 맞게 되면 큰일이지요. 앞으로 일주일 후에, 혹은 한 달 후에 이렇게 바로 코앞에 다가왔을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알게 된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그 시점을 알았다고 해서 남은 시간 동안 신부 단장이 온전히 되겠습니까? 아무리 조급하다 해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 성도님들은 지금까지 성결되기 위해 날마다 부르짖어 기도해 왔으니 이 사실을 절실히 느끼실 것입니다.

영적인 신부 단장이라는 것이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들이 속히 다시 오실 주님을 널리 선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여인들이 결혼할 때도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준비를 하지요.

제가 어릴 때 당시의 부모님들은 딸이 태어나면 그 딸이 어릴 때부터 벌써 시집보낼 준비를 했습니다. 빠듯한 살림 속에서도 틈틈이 비단이나 가구 등 여러 가지 혼숫감들을 마련해 두는 것이지요. 육의 혼인도 이렇게 정성들여 준비하는데 하물며 우리 영의 신랑과 혼인 잔치를 하려면 얼마나 정성껏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이 곧 오신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신랑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렇게 외치고 또 외치는 것입니다.

계 22:8-9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요한은 깊은 계시의 말씀들을 받고 너무나 감격스러운 마음에 자신을 안내해 준 천사에게 절을 합니다. 그러자 천사는 자신에게 경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했지요. 요한이 보고 들은 모든 섭리와 천국의 영광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도, 독생자를 주셔서 구원하신 분도, 천국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선한 것이 있어서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지요. 우리의 모든 삶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으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 안에서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칭찬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찬양팀이 특송을 충만하게 하면 열정적인 박수가 나오지요. 그러나 이는 세상 가수들에게 박수치는 것과 달리 ‘노래를 잘했다’고 칭찬하는 박수가 아닙니다. 그 찬양을 통해 은혜와 감동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지요. 물론 수고해서 힘껏 준비한 찬양팀에 대한 격려와 감사의 표현도 담겨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은혜와 감동은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입을 수 있는 것이며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는 것입니다.

찬양한 사람이 “내가 이렇게 잘했다” 하고 교만해지거나 스스로 영광을 누리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찬양하는 사람의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때 이것이 참으로 천국의 상급이 되지요.

범사에 마찬가지입니다. 벧전 4:11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했습니다.
구역장이 심방을 해서 양 떼가 은혜를 받았을 때도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여 양 떼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십 수 년 동안 변함없이 봉사를 해서 교회에서 상을 받았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그렇게 충성할 수 있는 건강과 성실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간증하는 것도 자기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중심으로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감사의 조건과 영광 돌릴 조건을 여러분의 삶 속에 더욱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계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이란 좁게는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의 말씀이지만 넓게는 성경 66권을 다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사람들이 보고 듣고 전파하기를 원하시지요. 그런데 종종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비밀한 것을 알려 주시면서 “공개하지는 말라” 하실 때가 있습니다. 아직 드러낼 때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단 12:4 전반절에 보면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 가장 적절한 때와 시점이 있습니다. 그때가 무르익기 전에는 아무리 중요한 예언을 한다 해도 유익이 없지요. 오히려 불필요한 핍박만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앞일을 알려주신다 해도 필요한 순간이 되기까지는 선포하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는 세계와 국내의 정세나 교계의 일들을 밝히 알려 주십니다. 그중에 어떤 것은 즉시 선포하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것도 많지요. 때가 되기까지 함구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설명한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의 첫 글자만 따서 주보에 실었던 적도 있구요. 영계의 비밀한 일들에 대해 알려 주실 때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내용을 처음부터 깊이 있게 풀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은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점점 더 깊이 풀어주셨습니다. 천국의 단계도 처음에는 세 단계로 풀어주셨다가 성도님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다시 상세하게 다섯 단계로 세분해 주셨지요.

또 어떤 내용들은 밝히 알려 주시면서 “아직은 함구하라” 하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가 되어 어떤 것을 “선포하라” 하시면 저는 반드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게 될 줄 안다 해도 망설이지 않았지요.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축복인 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의 말씀도 이 마지막 때에 인봉하지 말고 널리 선포해야 한다 말씀하십니다.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인봉해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들을 사람의 생각 속에서 임의대로 해석하여 잘못 적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이 그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모른다고 해서 “성도님들도 그 말씀을 읽으면 안 됩니다” 하고 막을 수는 없지요. 성도들이 안 배워도 되는 내용이라면 하나님께서 왜 성경 66권 가운데 두셨겠습니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교과서 한 권 전체가 시험 범위라면 교사는 전체를 다 가르쳐줘야 합니다. “나도 이 부분은 잘 모르니까 너희도 공부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라” 한다면 학생들이 어떻게 좋은 성적을 내겠습니까? 책임감 있는 선생님이라면 자신이 모를 때는 배워서라도 가르쳐 줘야 하지요.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양 떼를 가르치는 사명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모를 때 배워서라도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내용이라면 하나님께 금식하고 철야하며 매달려서라도 깨우침을 받아서 가르쳐야 하지요. 그래야 가르침 받는 사람들의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 바른길로 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봉인하지 말라” 하신 것은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때’가 가깝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간 경작의 기간이 거의 다 찼다는 뜻입니다. 이는 성경 곳곳에 기록된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 24:12에 보면 마지막 때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하셨습니다. 또 14절에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단 12:4 후반절에도 마지막 때에 대해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그 외에도 많은 말씀들을 통해 경작의 끝 날이 매우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깨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여러분은 이 요한계시록 강해를 통해서 마지막 때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더욱 실감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 속에서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때가 가깝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둘째로 “때가 가깝다는 것”은 개인적인 의미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언제라도 사람이 죽는 그 순간이 그 사람에게는 마지막 심판의 때이지요. 시 90:10에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했습니다.

이 짧은 인생 가운데 그나마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없지요.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영혼을 불러 가시면 그 인생은 끝입니다. 비록 인류의 역사가 수천 년이 더 이어진다 해도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습니다.

더구나 사람이 꼭 늙어서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혹은 어린 나이에도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갑자기 세상을 뜨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이야 그런 경우가 없다시피 하지만 믿지 않는 일가친척이나 이웃 등 주변에서는 그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럴 때면 다시 한 번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숙연한 마음이 들지요.

이처럼 사람의 수명이 제한적인 것을 생각하면 이천 년 전의 사람들이나 지금의 우리들이나 때가 가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때라도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때가 가깝다는 말씀을 널리 선포하는 것은 듣고 깨닫는 사람마다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지요.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전 5:2-3에 보면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영적인 잠에 빠진 사람들은 주님께서 더디 오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도둑을 맞는 것처럼 준비하지 못한 채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지요. 그러나 깨어 있는 성도들에게는 주님께서 갑자기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빛 가운데 살면서 준비하게 하시고 기쁨과 감격으로 주님을 맞을 수가 있지요.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모두가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읽고 깨달으며 중심을 다해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랑 되신 주님을 만날 때 큰 영광을 누리는 복된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6-29 오후 7:59:16 Posted
2023-07-02 오전 10:36:3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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