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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십자가의 도 (5) 선악과를 두신 섭리 [창 2:16-17]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08.27
오늘은 ‘십자가의 도’ 다섯 번째 시간으로, 선악과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담이 지음 받았을 때 그 외모는 장성한 어른의 형상이었지만 지식적으로는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 같았습니다. 이후 아담은 하나님께 많은 영의 지식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지식을 배워 마침내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만한 자격을 갖추었습니다(창 2:19).
이처럼 놀라운 지식과 지혜로 만물을 다스릴 뿐 아니라 아담과 하와는 많은 자녀를 낳으며 번성해 갔습니다(창 1:28).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는 사실은 성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하와에게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창 3:16). 바로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신다는 것은 이전에도 잉태하는 고통이 조금은 있었다는 뜻이지요.
에덴동산은 질병도, 늙음도, 사망도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아담과 하와는 사람으로서는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지냈습니다. 인간 경작의 역사가 육천 년이라고 할 때, 이는 아담이 창조된 때부터가 아니라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난 후부터입니다. 아담이 창조된 후부터 범죄하기까지는 무수한 세월이 흘렀던 것입니다.


1.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을 명심치 못하고 뱀의 미혹을 받아

오랜 세월 동안 아담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큰 권세를 누리며 살았고,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실 때 아담에게 금하신 것이 단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창세기 2장 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담과 하와가 이 명령을 잘 지켰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자 명심하지 못하고 자유의지 가운데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도록 천사들은 지음 받았지만, 사람에게는 자유의지를 주셔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순종할 수도,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도록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까지는 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뱀을 사주하여 하와를 미혹한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뱀을 보면 소름 끼치도록 싫어하고 징그러워하는데, 처음부터 뱀을 싫어하고 징그러워했던 것은 아닙니다. 뱀을 싫어하게 된 것은 뱀으로 인해 인류가 사망으로 가게 되었기 때문에 깊은 본성 속에서부터 싫어하게 된 것이지요.
뱀은 간교하여 하와를 기쁘게 해 줄 수 있었고 하와의 마음을 살 수 있었기에 뱀이 미혹할 때는 하와가 방심하기 더 쉬웠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 사단은 평소에 하와와 가까운 뱀을 이용했지요.
어느 날,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묻습니다. 이에 여자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대답하지요.
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창 2:9). 그러니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셨다는 말은 맞지 않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 선악과만 먹지 말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므로 “죽을까 하노라” 하여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는 것처럼 변질시켜 버린 것입니다.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변질시키는 것을 보자 뱀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듭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한 것입니다.
하와의 입장에서 선악과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과실이기에 예전에는 이것을 먹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뱀의 미혹을 받아들이게 되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자 이제는 선악과를 볼 때 전과는 그 느낌이 달라집니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동함으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었을 뿐 아니라 남편인 아담에게까지 주어서, 먹게 했지요.


2. ‘정녕 죽으리라’ 하신 대로 저주받은 인류와 이 땅의 만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결과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신 영계의 법칙(롬 6:23)대로 죄의 값을 치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당장 그 자리에서 호흡이 끊어져 죽은 것은 아닙니다. “정녕 죽으리라” 하신 것은 육의 죽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죽음, 곧 사람의 영이 죽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요.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의 몸, 곧 육은 영혼을 담고 있는 껍질에 불과한 것이며 사람에게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몸 안에 담겨 있는 영과 혼입니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생명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는데 아담이 범죄하여 죄인이 된 후에는 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단절된 사람을 원수 마귀 사단이 자기 것으로 삼아서 범죄하게 하고, 마침내는 지옥으로 끌고 가게 되었지요. 사람의 몸이 죽어서 썩어 없어진다 해도 사람의 영혼은 소멸하지 않으므로 결국 지옥으로 들어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교통이 끊어진 것을 곧 아담의 영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아담의 범죄로 인해 아담 자신만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 태어난 모든 아담의 후손까지도 아담과 같은 죄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담의 주관 아래 있던 이 땅의 만물도 저주받게 되었지요. 창세기 3장 17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한 대로 전에는 풍성하게 열린 과실을 따 먹기만 하면 되었는데 땅이 저주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므로 아담이 직접 수고하고 땀을 흘려서 경작해야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주받은 땅에는 전에 없던 각종 질병과 해로운 생물들도 생겨났고 사람들은 원수 마귀가 가져다주는 시험 환난 속에 많은 고통을 받게 되었지요.
이처럼 저주받은 만물 중에서도 뱀은 더욱 큰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3장 14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지요. 뱀은 쥐, 개구리, 새, 곤충 같은 것을 먹고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흙을 먹으라 하셨지요. 이때 ‘뱀’은 영적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의미하며 ‘흙’이란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원수 마귀 사단이 죄 가운데 사는 육의 사람을 밥으로 삼아 시험, 환난, 재앙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이지요. 이 말씀대로 범죄하여 육으로 타락한 사람들은 원수 마귀 사단의 주관 아래서 온갖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3. 상대성을 깨닫게 하여 참된 행복을 주시고자 선악과를 두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도 아셨고 그를 너무나 사랑하셨는데도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참된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였지요.
아담이 살던 에덴동산은 너무나 아름답고 평안하며 어떤 부족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지요. 왜냐하면 행복의 반대가 되는 불행을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불행 자체가 없으니, 불행을 설명한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불행을 체험해 보지 못했으니 불행하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도 깨달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것의 참된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되는 것을 체험하여 상대성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지금까지 병에 걸린 적이 한 번도 없다면 병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이 어떤 것인지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마음에서부터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른 사람이 병에 걸려 고통받는 것을 보면 조금은 느낌이 올 수도 있지만 정작 병든 사람의 고통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지요. 이런 사람은 자기 건강에 대해서도 그만큼 감사가 적습니다. 그러나 건강하던 사람이 병에 걸려 고통을 겪으면 건강의 중요성을 마음 깊이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굶주림으로 고생해 본 사람이라야 풍성한 음식을 대할 때 감사할 수 있고, 악이 있어야 선이 좋은지를 알고 어둠이 있어야 빛이 소중한지를 압니다. 가난이 없으면 부요함에 감사할 줄 모르며 미움이 없으면 사랑이 좋은 줄도 모르지요.
불행이 전혀 없는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은 자기 행복을 깨달을 수가 없었고, 죽음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셔도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지만, 아담은 진정 마음 중심에서부터 감사하지는 못했지요.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는 모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저주받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전에는 몰랐던 여러 가지 고통을 겪게 되었지요. 배고픔과 피곤함, 추위와 더위, 죽음, 이별, 그리고 죄악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면서 에덴동산에서 살 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담이 슬픔과 고통을 경험해 보지 않고도 스스로 마음에서 행복을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가 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달리 피조물인 사람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상대성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셨고 그로 인해 불행과 고통도 겪어봄으로 상대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아담이 범죄하도록 하나님께서 유도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단지 아담이 자유의지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뿐이지요.
아담은 결국 자유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먹음으로 불행을 체험하게 되었고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죄인이 되어 버린 후였지요. 이미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어 영이 죽어버렸고,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도, 예전의 행복했던 삶을 되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뿐 아니라 모든 후손까지도 죄인으로서 사망의 형벌을 당할 처지가 되었지요. 그렇다면 죄인 된 인류가 어떻게 해야 사망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하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선악과를 만들어 두시기 전부터,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할 길도 마련해 놓으셨지요. 영계의 법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죄인 된 인류가 사망의 형벌에서 구원받을 길을 만세 전에 예비해 두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악과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깨닫고 천국 소망이 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감사와 기쁨만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날마다 기쁨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8-24 오후 4:33:20 Posted
2023-09-01 오후 3:55:0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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