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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십자가의 도 (11) 치료의 주님 [벧전 2:24]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10.15
오늘부터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혈을 흘리신 섭리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십자가형도 참혹한 형벌이지만, 채찍에 맞는 것도 결코 가벼운 형벌이 아닙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인 로마에서 잘 훈련받은 병사가 채찍을 내리치면 채찍이 몸을 한 바퀴 반을 휘감으며 살을 찢을 뿐 아니라 채찍 끝의 납덩이가 몸속으로 박히지요. 이 채찍을 다시 강한 힘으로 낚아채면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심한 형벌을 당하심으로 뼈가 드러날 정도로 상처를 입고 많은 피를 쏟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아 심한 고통을 받으며 피를 흘리셔야 했을까요?


1. 우리의 나음을 위해 채찍에 맞아 피 흘리신 예수님

이사야 53장 5~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했습니다. 즉 채찍에 맞고 피 흘리심은 우리가 나음을 입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고 범죄치 않으면 어떤 질병도 임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 15:26). 즉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서는 먼저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을 보면 침상에 누운 중풍 병자를 사람들이 데려오자,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중풍 병자가 온전케 되어 일어나 걷지요. 병자를 치료해 주시기 전에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14절에도 병 치료를 받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시지요. 바로 질병을 대속하기 위해서도 피 흘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2. 질병의 대속을 마음 중심에서 믿고 고백해야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으심으로 피 흘려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 대신 고통을 당하심으로 우리를 모든 질병의 고통에서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했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는 “…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말씀합니다. ‘나을 것’이라 하지 않고 ‘나음을 얻었다.’ 완료형을 쓰고 있지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 피 흘리심으로 질병을 대속하셨음을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연약함이나 질병으로 고통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간혹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연약함으로 넘어질 때도 있고 범죄 할 때도 있다. 사람이 온전히 말씀대로 살기는 힘들다.”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스로 “연약하다.” 생각하고 고백하면 연약할 수밖에 없으며, “죄 버리기가 힘들다.” 고백하면 신앙생활 하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지요.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은혜로 강건하다.”, “충만하다.” 고백할 때 그 믿음의 고백대로 하나님 은혜와 능력이 임하고 피곤함도 능히 이길 수 있으며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뀝니다.
치료받고자 기도 받았을 때도 “나을 것으로 믿습니다.”가 아니라 “나은 줄로 믿습니다.” 고백할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지요. “기도 받아 나을 줄로 믿지만 지금은 여전히 통증이 있어요. 여전히 아파요.” 한다면 믿음이 아닙니다. “여전히 아픈데 어떻게 나았다고 합니까? 거짓말 아닌가요?”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영적인 믿음이 무엇인지 이해하면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했습니다. ‘받을 줄로 믿으라.’ 한 것이 아니라 ‘받은 줄로 믿으라.’ 곧 받은 줄로 믿을 때 그대로 되리라 했지요.
히브리서 11장 1~2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했습니다. 믿음은 이미 이뤄진 것을 보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바랄 때 실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바라볼 때 보이지 않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지요.
그렇다고 마음속에 믿어지지도 않는데 입술로만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그대로 이뤄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마음에서 진실하게 믿어지는 믿음을 입술로 고백할 때 바로 그 믿음대로 되지요. 그러니 “나은 줄로 믿습니다.”, “응답받은 줄로 믿습니다.” 고백하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며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연약함과 질병을 대속하기 위해 채찍에 맞아 피 흘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믿지 못하고 믿음으로 고백하지도 못하면 여전히 질병이 떠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받아도 ‘아프다. 아직 낫지 않았다.’라고 믿으니 여전히 아픈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깨뜨리지 않는 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믿습니다.”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도 마비된 몸이 움직이며 일어나 걷고 뛸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은 치료의 역사뿐 아니라 창조의 역사 자체를 베풉니다. 성경에 보면 마른 뼈들에 명하신다 해도 살이 돋고 힘줄이 생기며 가죽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가서 살아 있는 큰 군대를 이루는 장면도 나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어떤 질병 하나를 고치지 못 하시겠으며 불구 된 몸을 고치지 못하시겠는지요.


3. ‘나 보기에 의’가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해야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 질병을 대속하신 사실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도 여전히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를 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애굽은 영적으로 세상을 말하며 출애굽 당시 애굽에 내렸던 열 재앙은 세상의 모든 질병을 총칭하지요.
하나님 계명을 지키면 어떤 질병에도 걸리지 않으며, 혹시 질병에 걸렸다 해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능히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를 행하되 하나님의 의를 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 편에서의 의는 사람마다 다른데, 이는 태어나 자라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다르고 자란 환경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의롭다고 생각하는 일이 저 사람은 불의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진리 자체인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신 것만이 참으로 의로운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다른 아이에게 맞고 들어오면 부모는 심히 속상해하며 상대를 찾아가 따집니다. 어떤 부모는 “왜 바보처럼 맞고만 다니느냐? 너도 때려 줘라.”고 가르치기도 하고, “한 대 맞으면 너는 두, 세 대 때려줘라.” 하는 부모도 있지요. 그러나 진리는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대어 줘라.”, “화평을 좇아라.”, “원수까지 사랑하라.”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만약 사람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의를 좇아 가르침 받고 성장한다면 그 사람은 장차 많은 사람을 품고 이해하며 앞서서 지도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좇을 때 사람이 보기에는 당장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고 높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사람은 ‘그 많은 규례를 어떻게 다 지킬까.’ 하고 힘들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니 순종할 수 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도와주시며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능력 주시므로 능히 할 수 있다.’ 이렇게 믿고 행하면 너무나 쉽습니다. 더구나 계명이 많은 것 같아도 결국 요약하면 십계명으로 축소되지요. 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영적인 사랑, 팔복 정도만 이뤄도 하나님의 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고 천국 소망이 있으면, 천국의 영광과 상급을 바라본다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고 순종하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나는 너무나 버릴 것이 많은데 어느 세월에 다 버릴까.’ 하는 분들이 있다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혈기든, 미움이든, 간음이든, 제일 버리기 힘든 것을 놓고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금식해 버리고 나면 나머지 것들은 쉽게 버려집니다. 마치 나무를 뽑아도 큰 뿌리를 뽑아내면 잔뿌리들은 한꺼번에 뽑히는 것과 같습니다.


4. 범사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역대하 16장에 나오는 남유다의 아사 왕은 원래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아사 왕 36년에 북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남유다 왕국을 치려고 올라오자, 이방 나라에 뇌물을 주고 북이스라엘을 공격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전에 하나님만 의존했던 믿음이 변질한 것입니다.
이에 선견자가 와서 왕을 책망합니다. 심히 강한 이방 군대가 침략했을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하나님께서 적군을 물리쳐 주셨는데, 이제는 이방 군대를 의지하니 하나님께서 외면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사 왕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선견자를 핍박하며 계속 죄의 담을 쌓아가므로 발에 심히 중한 병이 들고 맙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닌 의원들에게 구해 죽고 말지요.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해 심히 서운하심으로 이러한 기록을 성경에 남겨두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말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합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지요. 기도해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을 의지하고 약을 의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듣고 알아도 계명을 지키며 살지 않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을 중심에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이제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의 가운데 행해 나가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헐립니다. 헐리는 만큼 내 안에 믿어지는 믿음이 오고, 이 믿음이 오는 만큼 범사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 나갈 수 있지요. 질병에 걸리지도 않으며, 혹여 질병이 틈탔다 해도 이미 나았다고 믿으면 즉시 해결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채찍에 맞아 피 흘리심으로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대속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온전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연약하다.”, “아프다.” 부정적인 고백을 하지 마시고 주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해 “강건하다.”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열심히 지켜 행하고 범사에 전폭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므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역사 속에 항상 영광 돌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10-13 오후 1:13:42 Posted
2023-10-20 오후 11:34:5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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