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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 (3) 삼위일체 하나님 [창 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4.03.01
창세기 강해 세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원래 하나였던 근본의 우주가 네 개의 하늘들로 구분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근본의 우주에 널리 퍼져 있던 "소리를 머금은 빛"이 한데 응집하면서 차원이 다른 공간들이 형성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인간 경작을 위한 각각의 용도가 다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한 편, 영계의 정점에 응집한 근본의 빛은 다시 세 개의 빛으로 분리되었습니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분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곳은 넷째 하늘에 있는 특별한 공간인데,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그 후로 이 공간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고 따로 보존하고 계십니다. 이 공간 안에 가득한 빛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아서, 그 어떤 존재도 감히 들여다볼 수가 없습니다. 천사들도, 구원받은 어떤 영혼들도 접근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근본의 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

근본의 하나님은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하나의 빛으로 응집하신 후, 세 개의 빛으로 분리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의 빛이 세 개로 분리됐다는 의미는 한 덩어리가 세 조각으로 나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근본 하나의 빛에서, 이와 똑같은 빛 두 개가 더 생겨난 것입니다. 근본의 빛이 세 개로 나뉘었지만, 셋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원래 있었던 근본의 빛 자체는 하나요, 나머지 둘은 새롭게 태어난 빛입니다. 하나로 응집한 근본의 빛이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은 두 개의 빛을 낳으신 것입니다. 셋으로 나뉜 빛은 사람과 같은 영의 형체를 입었습니다. 원래 있었던 근본의 빛은 성부 하나님이 되셨고, 나머지 두 빛은 각각 성자, 성령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1) 영의 형체를 입으신 삼위일체 하나님
창세기 1장 26절 전반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나온 "우리"가 바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모두가 사람 모습의 영체를 입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항상 사람 모습의 영체를 입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넷째 하늘을 소유하신 분입니다. 이 넷째 하늘의 공간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마음에 품으시는 대로 자유자재로 모습을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2)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관계
골로새서 1장 15절에 보면, 예수님, 곧 성자 하나님에 대해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 했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성자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도 성자 하나님과 동시에 같은 방식으로 나셨으니 마찬가지입니다. 성자, 성령 하나님은 이처럼 만물이 창조되기 전, 그리고 천군 천사들도 창조되기 이전에 가장 먼저 근본의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분입니다. 따라서 성부 하나님은 아버지의 격이시며, 성자와 성령 하나님은 각각 아들의 격입니다.
성자 하나님, 곧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성경에 직설적으로 여러 번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5장 5절에는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곧 하나님께서)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도 성자 하나님과 동시에 같은 방식으로 근본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셨습니다. 따라서 성령 하나님도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 격"이 됩니다.
성경에도 "성령"을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한 부분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셨다고 했는데, 우리 마음 가운데 오신 분은 바로 "성령"입니다. 성경에서는 이처럼 "성령"을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라 표현했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성령"에 대한 다른 표현들도 나옵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는 주로 "성신"이라 했고, 신약에는 "보혜사", "진리의 영" 등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때그때 역할에 따라 그에 맞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가장 근본적인 직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따라서 성령님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실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안에 바로 성령이 계십니다. 따라서 아들의 영, 곧 성령 받은 우리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이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성령 하나님의 마음은 성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이십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도 독립된 개체시며, 하나님의 아들 격이십니다.

3)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관계
이처럼 근본의 하나님과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이에는 아버지와 아들들이라는 관계가 성립됩니다. 그러면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동등한 관계일까요? 아니면 서열이 있을까요? 히브리서 1장 6절에 보면, 성자 하나님 곧, 예수님을 "맏아들"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성자 하나님이 먼저요, 성령 하나님이 그 다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사이에도 서열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께 권위를 내세우거나 하시지는 않습니다.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세상에 둘도 없이 우애 좋은 형제와 같습니다. 서로 사랑하시고, 온전히 신뢰하시며, 한마음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십니다. 이처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 두 분이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성경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먼저, 욥기 1장 6절에는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했습니다. 또한 욥기 38장 7절에도 "그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9절에도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했습니다. 단, 창세기 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다른 존재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추후 창세기 6장을 강해할 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영어 성경 중 어떤 버전에는 "하나님의 아들들" 부분을 "천사들"이라고 번역해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 중 누구에게도 "너는 내 아들이라"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4) 하나님의 아들들과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표현의 차이
성경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표현이 나오는 것은 성령 하나님도 성자 하나님처럼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도 했습니다. 이 표현만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마치 한 분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에 대해 "독생자"라고 표현하실 때는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이 있는 경우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설명할 때에 "독생자"라는 단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는 말씀과 짝을 이룹니다. 우리가 믿을 때 구원받을 수 있는 이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나오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구세주가 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예수님에 대해 "독생자"라고 표현한 부분은 "구세주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한) 아들"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예수님 이후로, 자신이 구세주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만일 성경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표현하지 않았다면, 그런 거짓된 말에 속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질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시며, 하나님의 독생자임을 분명히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

1) 삼위일체 하나님의 마음
근본의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하신 후 각각의 영체를 입으셨는데, 삼위일체 하나님 세 분의 영체의 모습은 서로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습니다. 세 분 모두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격과 위엄이 느껴지는 영체를 입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도 조금씩 다른 형체를 입고 계십니다. 이처럼 세 분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마음과 생각을 비롯해 사랑과 권능과 지혜 등도 모두 하나입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근본 하나이시기 때문이며,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그릇과 그릇에 담긴 내용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각각 입고 계신 영체가 그릇이라면, 세 분의 그릇 모양은 조금 다릅니다. 그러나 그릇에 담긴 내용물은 세 분 모두 100% 같습니다. 곧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마음, 생각, 사랑, 권능, 지혜 등이 모두 같습니다.
이처럼 온전히 하나이시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으로 오셨을 때 느끼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동일하게 느끼셨습니다. 이는 성령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슬퍼하시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도 슬퍼하시고, 성령 하나님도 슬퍼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느끼실 때는 아버지 하나님도 그 고통을 동일하게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온 땅에 어둠이 임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는 기이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모든 고통을 함께 느끼시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이러한 일들로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근본에서 세 분으로 나뉘셨으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체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도 본질은 같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경우, 일란성 쌍둥이가 외모는 아무리 닮았어도 마음이나 생각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 쓰는 것이 남남이나 다른 형제들보다는 비슷할 수 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라 해도, 각각의 본질인 영혼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체의 모습은 다르지만, 본질인 영은 같습니다. 다만 세 분의 인성적인 면에 있어서 성품은 조금씩 다르십니다. 여기서 성품이 조금 다르다는 의미는 원래 영체에 담긴 마음이 다르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에 있는 속성들 중에서, 겉으로 더 많이 나타나는 분야가 각기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비유를 들면, 똑같이 사랑이 많은 두 사람이 있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두 사람의 성품은 각각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인 사랑에는 온유한 면이 있는가 하면,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이때 영적인 사랑을 온전히 이룬 사람에게서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면을 본다면, 강하다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반면, 온유한 면을 본다면, 부드럽다. 포근하다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때 부드럽게 느껴지는 사람이 강하게 느껴지는 사람보다 영적인 사랑이 더 많은 것은 아닙니다. 또한 강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부드럽게 느껴지는 사람보다 영적인 사랑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겉으로 보이는 성품에 차이가 있는 것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삼위일체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하나이시지만, 인성적인 성품 면에 있어서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완벽한 신성과 인성의 조화를 이루신 분입니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아버지의 성품 중에서 더 많이 드러나는 분야와 조금 덜 드러나는 분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자 하나님에게서는 책임감 있고 듬직하며 강한 장자의 성품이 많이 나타납니다. 즉, 성자 하나님은 인성(人性)보다 신성(神性)이 조금 더 부각됩니다. 반대로, 성령 하나님은 신성(神性)보다 인성(人性)이 조금 더 부각됩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에게서는 섬세하고 감성적이면서 부드러운 성품이 더 많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많은 목회자들이 성령을 어머니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시대적 사명

아버지 하나님께는 혼자서도 능히 인간 경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런데 왜 굳이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이처럼 분리해 내셨을까요? 그것은 인간 경작을 온전한 공의 가운데 이루시기 위한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역사에서 시대에 따라 감당할 사명을 분담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서 인간 경작을 위한 각각의 역할을 정확히 분담하신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를 섭리하시고 주관하십니다. 성자 하나님을 이 땅에 예수님으로 보내시는 일도, 그 뒤를 이어 성령을 보내시는 일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셨습니다. 또한 구약 시대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치리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셨습니다. 그런데 죄인들을 구원할 구세주의 역할과 믿음의 자녀들을 돌보는 보혜사의 역할은 각각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즉, 성자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고, 성령 하나님은 "보혜사"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리로 양육하며 천국에 이르기까지 보살피는 사명을 맡으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처럼 역할을 분담하심으로 인해 사단은 하나님께 전혀 송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신성만이 아니라 사람과 같은 인성도 가지고 계셨으며, 사람들처럼 인간 경작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께서 신성만 가지시고 고통이나 슬픔, 아픔과 배고픔 등을 전혀 당하지 않으셨다면, 사단은 당장 하나님께 송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신성만을 가진 신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죗값을 대신 치러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 경작 자체를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범죄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또 인성은 없고 신성만 있으니 십자가의 고통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사단은 예수님이 구세주가 될 수 없다고 이처럼 하나님께 송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까지 모두 미리 아시고, 성자 하나님을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철저히 겪게 하심으로 완전한 구세주의 자격을 갖추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사단은 어떤 송사도 하지 못한 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내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 땅에 오셔야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구원의 길이 열린 후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을 때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신약 시대에 와서도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처럼 친히 치리하신다면, 사단은 "하나님께서 친히 치리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진정 마음 중심에서 진실로 믿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고 또 송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까지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사랑을 늘 깨닫고 느끼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두려움에서 억지로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대로 행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로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수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간 경작의 모든 것은 근본의 하나님의 계획 속에 다 들어 있었고, 지금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계획 가운데 근본의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하셨던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하시는 "영의 분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홀로 계시던 근본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왜,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셨는지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공의와 사랑 가운데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을 하나하나 준비하셨습니다. 스스로 아들들을 낳으시고, 각각의 사명을 나누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녀들을 낳을 때 그 자녀가 잘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부모는 비록 고생하며 힘들게 살더라도, 자녀들은 오직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들들을 낳으신 것은 오로지 우리 인생들을 위함이었습니다.
한 아들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화목제물로 삼기 위함이었고, 또 한 아들은 인생들이 연약하여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대신 감당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도 아버지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이시기에, 그러한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성도님 모두 마음 깊이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욱 중심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쁨 되는 값진 열매,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02-29 오후 4:41:11 Posted
2024-03-08 오후 3:17:3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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