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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기도 (2)  [눅 22:39-44]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4.28
지난 시간에 이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 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모습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 네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구원받은 자녀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부흥하며 성전 건축을 이루는 등 하나님의 모든 일은 기도해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 영이 살아났다고 해도 매일매일 영이 성장해야 하는데, 바로 기도를 통해 힘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받고 마음을 결단했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을 지킬 수 없으며 죄를 피 흘리기까지 버릴 수 없음을 알아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쉴 때 육, 세상, 비진리가 틈타고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지킴 받지 못하게 되는데, 이때 원수 마귀는 시험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깨어 기도하면 오는 시험도 미리 막을 수 있고, 설령 시험이 왔다 해도 이내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넷째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맡기므로 모든 것을 위로부터 공급받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며 필요한 모든 것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섯째, 성령 충만함을 지속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성령 충만함을 잃게 되고 점차 하나님과의 교통도 끊기게 됩니다. 더 나아가 성령이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아 성령 충만하지 못할 때 시험이 오면 이길 힘이 없고 죄와 싸워 이길 힘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지 못하지요. 곧 성령 충만함을 입는 것은 모든 영의 일을 함에 있어서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불같은 기도를 통해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을 입으면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도 감히 어찌할 수 없고, 비록 초신자라 할지라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을 입을 때는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게 됩니다.

여섯째, 하나님과 교통하며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응답이 오고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 알지 못했던 크고 비밀한 일들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 상의 인물들도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깊은 교통을 통해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았으며 앞일까지도 밝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금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앞일을 알려주셨고,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서 무시로 기도하여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을 수 있었지요.
이처럼 기도할 때만이 하나님과 밝히 교통할 수 있으니,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기도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아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마음이 진리로 일구어진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만, 기도해 성령 충만함을 입으면 성령께서 진리의 마음을 주관해 주시는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해서 항상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음성에 순종할 때라야 인도함을 받을 수 있지요. 성령께서 주관해 주셨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형통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는 기도해 성령 충만함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할 때 순종도 쉽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육신의 생각을 깨트리고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듯이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하나님 뜻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이론이 앞서고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돼 자기 유익을 좇아 행하게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것이므로 순종할 수 없는 것에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면 참 순종이 나올 수 없고 때로는 당연히 순종할 수 있는 일에도 순종이 나오지 않습니다. 순종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생각 가운데 엉뚱한 행동이 나오게 되고 오히려 하나님 뜻과 반대로 행할 수도 있지요.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을 깨트리고 순종할 수 없는 것에도 아멘과 예로서 순종하기 위해서는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라면 순종해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서 8장 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한 대로 생명과 평안함 가운데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영적인 순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어둠이 주관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어둠과 맞서 싸워 이기고 하나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기 위해서는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아서 항상 스스로를 점검하며 기도해 나가야 하지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더라도 예의에 맞는 대화법이 있고, 상대에게 감동을 줄 대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의 말로 인해 기분이 상하는 일도 있지요. 기도함에 있어서도 성도의 마음과 기도의 자세, 기도의 내용에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정도가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를 올릴 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므로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뜻을 분명히 알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기도했는지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 뜻을 밝히 아시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는지를 살펴본다면 하나님 뜻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9~44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모습

1)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 습관을 좇아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뿐 아니라 많은 믿음의 선진도 그리했습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고(단 6:10),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다 하여(행 3:1) 습관을 좇아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습관을 좇아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사람의 몸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우리의 신체는 규칙적으로 식사할 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몸의 신진대사가 원활히 이루어지고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이 공급되지요. 그런데 이를 무시한 채 식사를 자주 거르거나 불규칙한 식생활을 계속한다면 점차 위장이 상해 음식물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어 쇠약해질 것입니다.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약해져서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리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지요.
기도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공급받게 해 줍니다.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육적인 힘을 공급하듯이, 습관을 좇아 기도하므로 영적인 힘이 끊이지 않고 공급되도록 해야 하지요.
습관을 좇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공급되지 않으므로 성령 충만함도 잃고 마음이 곤고해집니다. 마음을 지킬 수 없으므로 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니 시험과 환난을 만나면 결국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하셨지요(마 26:41).
그런데 많은 교인이 기도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습니다. 충만할 때는 기도하지만 몸이 피곤하거나 졸리면 기도하지 않는다거나 기뻐하고 감사한 일이 있으면 기도하다가 시험이나 어려움이 오면 낙심해 힘을 잃고 기도를 쉬는 것도 봅니다. 또 평소에는 기도를 잘 하지 않다가 시험과 어려움이 다가오면 그제야 기도하느라 애쓰는 성도도 있지요.
그러나 평소에 꾸준히 기도를 쌓아 놓으면 하나님께서 다가올 시험도 물리쳐 주시고, 설령 시험이 왔다 하더라도 하나님 뜻을 밝히 분별할 수 있으며, 축적된 영적인 힘이 있으니 결코 사단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어떤 환경과 조건에 있든 쉬지 않고 기도하므로 하나님 능력을 받아 세상에서 어둠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고백하며(딤후 4:7), 의의 면류관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습관을 좇아 쉬지 말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초신자인 경우 처음에는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정해 놓고 꾸준하게 기도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기도량도 늘게 됩니다. 이처럼 습관을 좇아 기도할 때 하나님과 교통하며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41절에 예수님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마음 중심도 바로 서므로 더욱 뜨겁게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했던 믿음의 선진들도 기도할 때는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고(행 7:60), 바울 사도가 사람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장면도 나오며(행 20:36), 솔로몬왕도 그리했지요(왕상 8:54).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이 왕이라 할지라도, 죽음이 눈앞에 있는 급박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무릎 꿇어 기도했던 것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무리하게 할 것이 아니라 조금씩 무릎 꿇고 기도하는 연습을 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기도하실 때 단정한 몸가짐과 더불어 무릎을 꿇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셔서 하나님의 크신 응답과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다음 시간에 전하겠습니다.


2024-04-25 오후 4:53:05 Posted
2024-05-04 오후 7:53:3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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