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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3차 영혼육 (7) 육의 것들을 신속하게 벗어 버리는 구체적인 방법 [요일 2:24-25, 15-1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등록일
2022.03.20
지난 시간까지 육체의 일들에 대해 설명했고, 오늘부터는 육의 것들을 신속하게 벗어 버리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은 영에 속한 영혼육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범죄한 후로 아담과 그 후손들의 영혼육은 육에 속한 영혼육으로 변질되어 버렸지요.
생령이었던 아담의 영이 죽은 영이 되었고, 진리의 지식만 담아서 진리로만 혼의 작용을 했던 것이 비진리를 담고 활용하는 혼의 작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늙지 않던 육도 늙고 변질되고 썩어지는 육으로 변했지요.
이렇게 육에 속한 영혼육을 다시 영에 속한 영혼육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경작하시는 목적입니다.
우리가 영에 속한 사람으로 온전히 변화되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에서 큰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가지고, 기도하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축복받아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는 삶을 살게 되지요.
그러므로 주를 믿는 자녀들은 하루하루의 시간들을 날마다 영에 속한 영혼육으로 변화되어 가는 귀한 시간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1. 선악과를 두신 이유

영에 속한 영혼육을 가진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범죄하여 육에 속한 영혼육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선악과가 없었다면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지도 않았고 육에 속한 영혼육으로 타락할 일도 없었겠지요.
그런데 굳이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심으로 사람이 육을 체험한 후에 다시 영에 속한 영혼육으로 회복되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육을 알지 못하는 영은 완전한 영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상대성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불행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고 고통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참 평안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배고파 본 사람만이 풍성한 음식에 감사할 줄 알고 병들어 아파 본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압니다.
선악과를 따 먹기 전 아담은 고통도 슬픔도 불행도 체험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에덴에서 모든 좋은 것을 누리면서도 자신이 정녕 행복하다고 느낄 수 없었지요. 그러니 영에 속한 영혼육을 가졌다고는 해도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곧 육을 알고 육의 것을 체험해 본 상태라야 영으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경작의 섭리 속에 선악과를 두셨고, 선악과를 따 먹으면 어떤 고통을 겪게 될지를 아담에게 다 알려 주셨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금하기는 하셨지만 그 결과에 대해 충분히 알려 주시고 자유의지 가운데 아담이 선택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아담이 진정한 의미의 영의 사람이었다면 불순종의 결과로 다가올 모든 불행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알았을 것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지를 깨닫고 감사했겠지요. 육이 얼마나 추하고 악한 것인지, 영에 속한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선악과가 탐스럽게 열려 있어도 영원히 따 먹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육을 겪어 보지 않은 아담은 자유의지 가운데 스스로 육을 받아들여 변질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고,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에서는 온전한 영적인 존재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을 체험해 본 상태로서의 진정한 영의 사람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중심에서 우러난 감사를 드리며 영원히 변질되지 않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참된 자녀를 원하셨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악과를 두셨고 오늘날과 같은 인간 경작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역으로 영을 알지 못하는 육은 더더욱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결국 영에 속한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어서 타락함으로 육을 알게 되었다 해도 그 상태로는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지요. 영으로 변화되지 않고 계속 육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이 죄의 종으로 살다가, 결국은 죽어서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육에서 벗어나 영에 속한 존재로 변화되어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예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먼저 육으로 변질되어 죽었던 우리의 영이 살아납니다. 하루하루 성령으로 영을 낳아 가는 만큼, 다시 말해 육을 벗어 나가는 만큼 영과 혼과 육이 영에 속한 온전한 것으로 변화되지요.
그러니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여기서 답이 나옵니다. 예배에 참여하는 것, 충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육을 벗어 버리는 과정인 것입니다.
육신의 일, 육체의 일을 부지런히 벗어 나가는 성결의 과정이 있어야 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며,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 할 수 있지요. 이렇게 인간 경작의 목적을 진정으로 깨우치면 육을 벗어 버릴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2. 육을 벗어 버리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세 가지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맨 처음 사람을 생령으로 창조하시고 그 안에 영의 내용물들로 채워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진실, 사랑, 온유, 화평, 섬김, 이런 진리의 지식들을 가르쳐 주시고 마음에 채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하여 영이 죽은 후에는 이 세상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이 사람에게 비진리의 지식들, 곧 육의 내용물들을 심어 주었습니다. 미움, 시기, 질투, 혈기, 욕심, 간음, 이런 비진리의 지식들이 마음에 심어지는 만큼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영의 내용물들은 차츰차츰 빠져 나갔지요.
세월이 지날수록 원수 마귀 사단이 권세 잡은 육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점점 더 많은 육의 내용물이 사람에게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온 것들, 곧 육의 내용물들을 본문에서는 세 가지 분야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지요.
따라서 육을 벗어 버리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 가지 분야가 무엇인지를 알고, 이것이 얼마나 추하고 더러우며 우리를 해롭게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버릴 수 있는 방법을 알아서 그대로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1) 육신의 정욕
‘육신의 정욕’이란, 육신을 좇아 범죄하려고 하는 속성입니다.
‘육신’은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몸’이란,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어 주신 영의 지식이 빠져 나간 뒤에 남겨진 육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육으로 타락한 사람의 마음에 죄성들이 결합되어서 온갖 비진리를 품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미움, 혈기, 욕심, 음욕, 시기, 교만, 이런 속성들이 사람 안에 가득 담아져 있는데, 그러다 보니 자기 안에 있는 악한 마음의 소욕을 좇아 보고 듣고 생각하며 행하고 싶어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 안에 판단 정죄의 속성이 있으면 남의 소문을 듣는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것을 듣고 옮기며 수군수군하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지지요. 육신의 정욕을 좇지 않으려고 하면, 곧 듣지 않고 전하지 않으려고 하면 입이 가렵고 좀이 쑤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혈기가 있으면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분을 발하는 것이 통쾌하고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분나는 것을 참고 육신의 속성을 좇지 않으려 하면 마음이 부글부글 끓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교만한 속성을 좇아 섬김 받기 원하고 자신을 드러내어 자랑하려고 합니다. 탐심이 있기에 남에게 해를 입혀서라도 불의한 재물을 모으려고 하지요.
그러면 이처럼 육의 것을 좇아 행한다고 해서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이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애매한 주변 사람들과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심지어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일까지 있지요. 사업터, 일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수치를 당하기도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악을 행하므로 결국은 영적인 사망, 곧 지옥으로 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믿는 사람들 중에서 이렇게 추하고 악한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명히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죄의식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지요. 이는 사람이 죄악 가운데서 태어나고 살면서, 죄악에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더럽혀져 있는 것이지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나며 부모의 죄를 기속에 물려받게 됩니다. 또 자라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들도 대부분 비진리의 지식들이지요.
예를 들어, 자녀가 친구들에게 맞고 울면서 집에 오면 부모님은 뭐라고 가르칩니까? 진리대로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 줘라, 모든 사람과 화평하라” 이렇게 가르치나요? 아닙니다. “왜 바보같이 맞고 다니냐?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려서라도 너를 우습게 보지 못하게 해야지” 하고 야단치지요.
그러면 아이들에게 ‘맞고만 있으면 잘못하는 것이고 때려야 옳은 것이구나’라고 입력됩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잘못된 비진리의 지식을 마치 옳은 지식처럼 입력시켜 오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더러운 것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세상에서 죄로 물든 마음으로는 죄를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마치 밝은 빛으로 더러운 곳을 비추는 것처럼 죄악이 분별되고 죄를 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가르침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하면 불같이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버리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하지요. 마음에 영의 것을 채워 나가면 육이 하나하나 빠져 나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데 있으며 얼마만큼 육을 버리고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됩니다(전 12:13).
육에 머물러 있으면 사람의 본분도 다하지 못하는 것이며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서 결국은 지옥에 들어가게 되지요. 농사를 지어 알곡이 아닌 쭉정이가 나오면 아무리 아까워도 태워 버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경작의 목적을 깨닫고 참다운 하나님의 자녀들로 변화되어 천국에 다 들어가며 하나님 보좌 더욱 가까운 곳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3-23 오후 1:24:00 Posted
2022-03-25 오후 4:21:1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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